[통일로 미래로] 황해도의 해학과 풍자, 은율탈춤

입력 2023.10.07 (08:17) 수정 2023.10.07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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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우리의 전통문화 가운데 하나인 ‘탈춤’은 당대의 사회적 모순이나 부조리를 해학과 풍자로 재치 있게 풀어냈다는 특징을 갖고 있죠.

특히 ‘한국의 탈춤’은 춤과 노래, 연극을 아우르는 종합 예술로서, 지난해 유네스코에 인류 무형문화유산 대표 목록에 등재되기도 했습니다.

우리의 ‘탈춤’은 지역별로 조금씩 다르게 발전해 왔는데요.

북한에선 황해도 중심의 봉산탈춤과 강령탈춤, 은율탈춤 등이 있고 서울, 경기 지역은 산대놀이, 경상남도 지방은 오광대, 부산에선 야류라는 탈춤이 지금도 전승되고 있습니다.

오늘 ‘통일로 미래로’에선, 북한 황해도 지역에서 전해진 ‘은율 탈춤’을 꿋꿋하게 보존하고 있는 현장을 찾아가 보겠습니다.

최효은 리포터와 함께 보시죠.

[리포트]

위풍당당한 걸음으로 커다란 흰 사자가 탈 판에 등장합니다.

사자는 귀신을 쫓는 춤을 추며 은율탈춤의 시작을 알립니다.

장단에 맞춘 관객의 호응에, 사자춤의 흥취가 더해지고, 6개의 다리를 한 몸처럼 움직이며, 역동적인 춤사위가 계속됩니다.

그리고 등장한 목중들.

고깔과 시뻘건 탈을 쓴 목중들은 술을 먹은 중으로 당시 종교의 타락성을 상징합니다.

어느덧 탈춤은 대단원으로 향합니다.

["남편과 해로하고 남녀 자손이 많은 대로 (점지를 하니.)"]

무당이 무명필을 가르며 서민의 한을 풀어주는 이 장면은 은율탈춤의 백미로 꼽힙니다.

[박일흥/이사장/은율탈춤 보존회 : "옛날엔 무명필 가를 때 동네 사람들이 우리 집안에 액운, 누가 아프니까 아픈 병 좀 갖다 버려달라고 (했어요)."]

우리나라의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13개의 탈춤 가운데 이 은율탈춤을 비롯해 4개의 탈춤이 북한지역에서 전승된 것입니다.

탈춤은 가면을 활용한 일종의 가면극인데요.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는 가면의 익명성을 활용해서 당시의 지배계층이었던 양반들을 풍자하고 조롱했던 대표적인 서민 문화였습니다.

황해도 은율 지방에서 계승된 은율탈춤은 황해도의 봉산탈춤 그리고 강령탈춤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는데요.

그렇다면 어떠한 매력이 있을지 그리고 어떻게 계승되고 있을지 그 현장을 함께 만나보시죠.

국가무형문화재 은율탈춤이 전승되고 있는 전수관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이곳에선 청소년 수업이 진행됩니다.

장단에 맞춰 사뿐사뿐 나비 걸음을 걷거나 오른발을 힘껏 뻗으며 까치걸음을 내딛습니다.

등장인물의 특색을 살리는 섬세한 동작이 주요 포인트입니다.

[조용휘/은율탈춤 전승교육사 : "할미춤은 엉덩이 춤이죠. 이 상태에서 하나에 오른발이 (앞으로) 나오면서 뒷발이 찍어주는 거예요. 덩기닥 덩기닥 덩기닥."]

6년째 은율탈춤을 배우는 보빈 양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동작을 거침없이 보여줍니다.

보빈 양은 은율탈춤의 매력을 한마디로 정리합니다.

[금보빈/중학생 : "멋진 춤사위를 가진 탈춤인 것 같습니다."]

유현 군은 탈춤을 배우며 가장 신기했던 점을 이야기하는데요.

[강유현/초등학생 : "북한 지역 탈춤이 지금 우리나라 남한에 있다는 게 신기했어요."]

재치 있는 대사와 해학이 담긴 상황은 현대의 모습과 교차하면서 어린 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유민준/초등학생 : "에라 말뚝아! 에라 말뚝아!"]

[조용휘/은율탈춤 전승교육사 : "양반이 말뚝이를 불러요. 그럼 말뚝이가 한 번에 부르면 안 나와요. 세 번이나 불러야 나와요. 양반을 무시하는 거죠."]

여기에 온몸을 힘차게 도약하며 역동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동작들은 황해도에서 발전된 은율, 봉산, 강령 탈춤의 공통된 특징이라고 합니다.

[조용휘/은율탈춤 전승교육사 : "한삼을 멀리 쳐주고 뿌려주고 높이 뿌려주고 하는 그런 춤동작이 있고 그 다음 다리 동작은 땅에서 높이 뛰어주는 동작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뛰거나, 이렇게 뛰거나 이런 동작들을 하기 때문에 춤 사위가 크고 활발합니다."]

탈춤의 표현은 다소 과장된 부분은 있는데 특히 은율탈춤은 내용에 있어서 매우 과감하다고 합니다.

은율탈춤에 자유분방한 내용이 담길 수 있었던 건 이런 탈 덕분입니다.

이 탈의 이름은 말뚝이라고 합니다. 탈에 새긴 얼굴엔 상징적인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탈춤 전체의 분위기를 주도하는 탈에는 어떤 해학과 의미가 담겨져 있을까요.

은율탈춤에는 양반과 노비, 사자와 원숭이 등 스물여덟 개의 배역이 등장합니다.

탈은 얼굴색과 혹 등으로 각 역할의 개성을 극대화시킵니다.

[전경석/은율탈춤보존회 사무국장 : "우리나라 전통색이라고 하죠. 오방색(황색, 청색, 흰색, 적색, 흑색)이라고 합니다. 그게 그려져 있는 게 특징이고요. (혹에) 우리 탈은 집안에 걸어 놓으면 안돼요. 명절이나 제사 때 우리 조상신들이 들어오질 못한답니다. 탈신이 워낙 강해서..."]

한때는 놀이가 끝나면 탈을 불 태우기도 했지만 현재 공연에 쓰이는 탈은 모두 전수관에서 제작해 소장하고 있습니다.

마침 목중탈을 만들기 위해 석고 틀 위에 초배지를 바르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었는데요.

[전경석/은율탈춤보존회 사무국장 : "(어떤 단계인가요?) 탈 만들 때 석고 틀에서 잘 마르면 잘 빠져 나오게 하려고 먼저 초배지를 바릅니다."]

이 위에 종이를 반복해서 덧붙이는 방식으로 탈을 만들어가는데, 그 과정이 열 단계에 이르고, 하나의 탈을 만들기까진 보름의 시간이 걸립니다.

이처럼 북녘에서 시작된 은율탈춤이 분단 이후에도 특유의 전통과 원형을 보존할 수 있기까지는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박일흥/은율탈춤 예능보유자 : "은율탈춤을 처음에 재연하면서부터 시작된 모든 과정들을 자료로 만들어 놓은 거예요. (그럼 전부 기록을 하신 거예요?) 그렇죠 옛날엔 다 수기로 했죠."]

북한에선 2016년 은율탈춤을 국가비물질문화유산으로 등록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남한에선 북한보다 앞선, 1978년에 은율탈춤의 문화재적 가치가 인정됩니다.

여기엔 6.25전쟁 당시 인천으로 피난 온 장용수 선생 등 황해도 실향민들의 노력이 있었습니다.

[박일흥/은율탈춤 예능보유자 : "장용수 선생님이 은율에 사시다가 6.25 피난 때 인천으로 내려오게 됐죠. 그러시다가 우리 김춘식 선생님을 만나게 됐고, 그다음에 춤을 직접 췄던 장기원 선생님을 만나게 됐어요. 그래서 그 세 분이서 봉산탈춤의 인간문화재가 되신 양서원 선생님한테 재연을 부탁해서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됐습니다.)"]

전쟁과 가난으로 어려운 시기 은율 지역의 춤과 가락을 구현하고, 가면과 의상 제작을 도맡아, 전통을 계승해 나갔다는 스승들.

덕분에 1982년엔 인천시가 전승지로 지정됐고, 현재는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재가 됐습니다.

50년 세월을 은율탈춤 속 최괄이와 함께 살아왔다는 박일흥 예능보유자.

그는 묵묵히 지켜나간 은율탈춤의 역사를 계속해서 이어가기를 염원합니다.

[박일흥/은율탈춤 예능보유자 : "우리나라 탈춤이 유네스코에 등재됐고 하니 우리 탈춤을 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그런 계기가 필요하겠고요. 전통 예술의 맥을 이어 갈 수 있도록 해줬으면 고맙겠습니다."]

황해도에서 시작된 은율탈춤은 대한민국 인천으로 계승 발전되면서 새로운 역사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특유의 해학이 삶의 무게로 힘들어하는 세계인을 위로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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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일로 미래로] 황해도의 해학과 풍자, 은율탈춤
    • 입력 2023-10-07 08:17:35
    • 수정2023-10-07 09:4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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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우리의 전통문화 가운데 하나인 ‘탈춤’은 당대의 사회적 모순이나 부조리를 해학과 풍자로 재치 있게 풀어냈다는 특징을 갖고 있죠.

특히 ‘한국의 탈춤’은 춤과 노래, 연극을 아우르는 종합 예술로서, 지난해 유네스코에 인류 무형문화유산 대표 목록에 등재되기도 했습니다.

우리의 ‘탈춤’은 지역별로 조금씩 다르게 발전해 왔는데요.

북한에선 황해도 중심의 봉산탈춤과 강령탈춤, 은율탈춤 등이 있고 서울, 경기 지역은 산대놀이, 경상남도 지방은 오광대, 부산에선 야류라는 탈춤이 지금도 전승되고 있습니다.

오늘 ‘통일로 미래로’에선, 북한 황해도 지역에서 전해진 ‘은율 탈춤’을 꿋꿋하게 보존하고 있는 현장을 찾아가 보겠습니다.

최효은 리포터와 함께 보시죠.

[리포트]

위풍당당한 걸음으로 커다란 흰 사자가 탈 판에 등장합니다.

사자는 귀신을 쫓는 춤을 추며 은율탈춤의 시작을 알립니다.

장단에 맞춘 관객의 호응에, 사자춤의 흥취가 더해지고, 6개의 다리를 한 몸처럼 움직이며, 역동적인 춤사위가 계속됩니다.

그리고 등장한 목중들.

고깔과 시뻘건 탈을 쓴 목중들은 술을 먹은 중으로 당시 종교의 타락성을 상징합니다.

어느덧 탈춤은 대단원으로 향합니다.

["남편과 해로하고 남녀 자손이 많은 대로 (점지를 하니.)"]

무당이 무명필을 가르며 서민의 한을 풀어주는 이 장면은 은율탈춤의 백미로 꼽힙니다.

[박일흥/이사장/은율탈춤 보존회 : "옛날엔 무명필 가를 때 동네 사람들이 우리 집안에 액운, 누가 아프니까 아픈 병 좀 갖다 버려달라고 (했어요)."]

우리나라의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13개의 탈춤 가운데 이 은율탈춤을 비롯해 4개의 탈춤이 북한지역에서 전승된 것입니다.

탈춤은 가면을 활용한 일종의 가면극인데요.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는 가면의 익명성을 활용해서 당시의 지배계층이었던 양반들을 풍자하고 조롱했던 대표적인 서민 문화였습니다.

황해도 은율 지방에서 계승된 은율탈춤은 황해도의 봉산탈춤 그리고 강령탈춤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는데요.

그렇다면 어떠한 매력이 있을지 그리고 어떻게 계승되고 있을지 그 현장을 함께 만나보시죠.

국가무형문화재 은율탈춤이 전승되고 있는 전수관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이곳에선 청소년 수업이 진행됩니다.

장단에 맞춰 사뿐사뿐 나비 걸음을 걷거나 오른발을 힘껏 뻗으며 까치걸음을 내딛습니다.

등장인물의 특색을 살리는 섬세한 동작이 주요 포인트입니다.

[조용휘/은율탈춤 전승교육사 : "할미춤은 엉덩이 춤이죠. 이 상태에서 하나에 오른발이 (앞으로) 나오면서 뒷발이 찍어주는 거예요. 덩기닥 덩기닥 덩기닥."]

6년째 은율탈춤을 배우는 보빈 양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동작을 거침없이 보여줍니다.

보빈 양은 은율탈춤의 매력을 한마디로 정리합니다.

[금보빈/중학생 : "멋진 춤사위를 가진 탈춤인 것 같습니다."]

유현 군은 탈춤을 배우며 가장 신기했던 점을 이야기하는데요.

[강유현/초등학생 : "북한 지역 탈춤이 지금 우리나라 남한에 있다는 게 신기했어요."]

재치 있는 대사와 해학이 담긴 상황은 현대의 모습과 교차하면서 어린 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유민준/초등학생 : "에라 말뚝아! 에라 말뚝아!"]

[조용휘/은율탈춤 전승교육사 : "양반이 말뚝이를 불러요. 그럼 말뚝이가 한 번에 부르면 안 나와요. 세 번이나 불러야 나와요. 양반을 무시하는 거죠."]

여기에 온몸을 힘차게 도약하며 역동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동작들은 황해도에서 발전된 은율, 봉산, 강령 탈춤의 공통된 특징이라고 합니다.

[조용휘/은율탈춤 전승교육사 : "한삼을 멀리 쳐주고 뿌려주고 높이 뿌려주고 하는 그런 춤동작이 있고 그 다음 다리 동작은 땅에서 높이 뛰어주는 동작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뛰거나, 이렇게 뛰거나 이런 동작들을 하기 때문에 춤 사위가 크고 활발합니다."]

탈춤의 표현은 다소 과장된 부분은 있는데 특히 은율탈춤은 내용에 있어서 매우 과감하다고 합니다.

은율탈춤에 자유분방한 내용이 담길 수 있었던 건 이런 탈 덕분입니다.

이 탈의 이름은 말뚝이라고 합니다. 탈에 새긴 얼굴엔 상징적인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탈춤 전체의 분위기를 주도하는 탈에는 어떤 해학과 의미가 담겨져 있을까요.

은율탈춤에는 양반과 노비, 사자와 원숭이 등 스물여덟 개의 배역이 등장합니다.

탈은 얼굴색과 혹 등으로 각 역할의 개성을 극대화시킵니다.

[전경석/은율탈춤보존회 사무국장 : "우리나라 전통색이라고 하죠. 오방색(황색, 청색, 흰색, 적색, 흑색)이라고 합니다. 그게 그려져 있는 게 특징이고요. (혹에) 우리 탈은 집안에 걸어 놓으면 안돼요. 명절이나 제사 때 우리 조상신들이 들어오질 못한답니다. 탈신이 워낙 강해서..."]

한때는 놀이가 끝나면 탈을 불 태우기도 했지만 현재 공연에 쓰이는 탈은 모두 전수관에서 제작해 소장하고 있습니다.

마침 목중탈을 만들기 위해 석고 틀 위에 초배지를 바르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었는데요.

[전경석/은율탈춤보존회 사무국장 : "(어떤 단계인가요?) 탈 만들 때 석고 틀에서 잘 마르면 잘 빠져 나오게 하려고 먼저 초배지를 바릅니다."]

이 위에 종이를 반복해서 덧붙이는 방식으로 탈을 만들어가는데, 그 과정이 열 단계에 이르고, 하나의 탈을 만들기까진 보름의 시간이 걸립니다.

이처럼 북녘에서 시작된 은율탈춤이 분단 이후에도 특유의 전통과 원형을 보존할 수 있기까지는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박일흥/은율탈춤 예능보유자 : "은율탈춤을 처음에 재연하면서부터 시작된 모든 과정들을 자료로 만들어 놓은 거예요. (그럼 전부 기록을 하신 거예요?) 그렇죠 옛날엔 다 수기로 했죠."]

북한에선 2016년 은율탈춤을 국가비물질문화유산으로 등록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남한에선 북한보다 앞선, 1978년에 은율탈춤의 문화재적 가치가 인정됩니다.

여기엔 6.25전쟁 당시 인천으로 피난 온 장용수 선생 등 황해도 실향민들의 노력이 있었습니다.

[박일흥/은율탈춤 예능보유자 : "장용수 선생님이 은율에 사시다가 6.25 피난 때 인천으로 내려오게 됐죠. 그러시다가 우리 김춘식 선생님을 만나게 됐고, 그다음에 춤을 직접 췄던 장기원 선생님을 만나게 됐어요. 그래서 그 세 분이서 봉산탈춤의 인간문화재가 되신 양서원 선생님한테 재연을 부탁해서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됐습니다.)"]

전쟁과 가난으로 어려운 시기 은율 지역의 춤과 가락을 구현하고, 가면과 의상 제작을 도맡아, 전통을 계승해 나갔다는 스승들.

덕분에 1982년엔 인천시가 전승지로 지정됐고, 현재는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재가 됐습니다.

50년 세월을 은율탈춤 속 최괄이와 함께 살아왔다는 박일흥 예능보유자.

그는 묵묵히 지켜나간 은율탈춤의 역사를 계속해서 이어가기를 염원합니다.

[박일흥/은율탈춤 예능보유자 : "우리나라 탈춤이 유네스코에 등재됐고 하니 우리 탈춤을 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그런 계기가 필요하겠고요. 전통 예술의 맥을 이어 갈 수 있도록 해줬으면 고맙겠습니다."]

황해도에서 시작된 은율탈춤은 대한민국 인천으로 계승 발전되면서 새로운 역사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특유의 해학이 삶의 무게로 힘들어하는 세계인을 위로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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