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층시사국] 우영우, 별이, 그리고 우리들

입력 2023.10.08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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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신드롬을 일으킨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주인공이 자폐였기에 사회적 관심도 높았습니다.

자폐아동 부모
“이해하는 눈빛, '쟤가 자폐구나'하는 느낌. 그전에는 자폐라는 걸 몰랐다면 자폐인의 특성상 반향어를 하나 보다 상동 행동하나 보다 하면서”

하지만 불과 1년 새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녹취]KBS뉴스(8월 1일)
“웹툰 작가 주호민 씨에게 아동학대 혐의로 고소당하며 직위해제됐던 특수교사가 오늘 복직했습니다.”

[녹취]KBS뉴스(8월 28일)
“쟁점이 된 녹음파일은 지난해 9월 주 씨 측이 아들을 통해 녹음한 2시간 30분 분량의 자료로...”

자폐가 있는 주 씨의 아들을 분리해 지도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출처 : 관련 기사의 댓글 갈무리)(출처 : 관련 기사의 댓글 갈무리)

자폐 아동은 도전 행동, 다른 말로 문제 행동을 하기에 분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그러자 정부는 특수교육 현장에 대한 지침을 마련하겠다고 합니다.

이주호/교육부 장관(8월 17일, 교육부 브리핑 중)
“무너져버린 교권을 바로 세워 교육 현장의 균형을 회복하는 큰 발걸음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장은미/전국특수교사노조 위원장
“여러 가지 고시들도 있었고 법령들도 있고 교육과 관련된 여러 가지 대책이 있는데 의도하지 않았든 의도했든 간에 자꾸 (특수교육은) 배제가 되는 거예요.”

이창호/자폐아동 부모
“분리를 했을 때 그걸로 끝이 아니잖아요. 그 아이를 또 누군가가 돌봐야 되고 누군가가 교육을 해야 해요. 그리고 며칠 지나서 아이가 다시 교실로 복귀했을 때 달라진 건 없어요.”


■ 조금씩, 천천히 모두가 달라졌다 "느려도 괜찮아"

초등학교 2학년, 자폐 스펙트럼 진단을 받은 시안이. 시안이는 어엿한 2년차 태권도 수련생입니다.

또래 친구들과 함께 훈련을 하다가 가끔씩 몸을 흔드는 상동 행동을 보이지만, 한 시간 가까이 이어지는
수업을 곧잘 따라갑니다.

최낙춘/태권도장 관장
“시안이가 장애가 있다는 편견 때문에 그런 부분이 있는데, 그 외적으로 봤을 때는 다른 친구들과 저는 별반 다를 게 없다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태권도 수업을 마치고 아빠와 또다시 길을 나섭니다. 시안이가 향한 곳은 집 근처의 요리학원입니다.

2년 넘게 요리 학원을 다닌 시안이.

고아라/요리학원 선생님
“시안이 같은 경우는 도움 받는 걸 안 좋아해요. 도와주는 걸 굉장히 싫어하고 '내가 할 수 있는데 왜 도와줘'라는 이야기를 표현을 하거든요.”

그런 시안이에게 선생님은 약간의 도움만 줄 뿐입니다.

시안이의 하루는 순식간에 지나갑니다.

이창호/시안이 아버지
“시안이는 학교 끝나고 월요일이랑 수요일 같은 경우는 태권도, 피아노 이렇게 두 가지를 하고 화목에는 태권도와 미술, 금요일에는 태권도, 요리 이렇게 하루에 2개 정도 하고 있어요.”

시안이의 방과후 활동시안이의 방과후 활동

하지만 처음부터 모든 게 순조로웠던 것은 아닙니다.

초등학교 입학 전 태권도장을 찾았던 시안이.

최낙춘/태관도장 관장
“저도 그런 아이들을 가르쳐본 적이 한 번도 없었고 좀 부담감이 있었는데 1시간 정도 고민하고 난 뒤에 우선 기회를 한번 줘보자고 해서 먼저 체험 수업을 진행을 했었고...”

이창호/시안이 아버지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데리고 갔었거든요. 근데 그때 처음으로 본 거예요. 아이의 모습을. 태권도가 시작됐는데 여기저기 막 뛰어다니고 구석구석 막 다 헤집고 다니고 그러다가 끝나기 한 20분 전쯤에 태권도장 한가운데 드러누워서 '그만, 그만, 그만해' 그러면서 막 소리를 지르더라고요.”

‘이대로 학교에 보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다니게 된 요리 학원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혼자 수업을 들었습니다.

고아라/요리학원 선생님
“한 번에 많은 인원을 넣은 게 아니라 조금 차분한 아이랑 같이 먼저 같이 시작하고 거기에서 또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면 점차 인원을 늘려갔거든요.”

그 과정에서 시안이의 도전 행동이 낯선 환경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됐습니다.

천근아/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 교수
“예측하지 못한 환경 속에서 자폐 스펙트럼 아이들은 갑자기 불안해지면서 소리를 지른다거나, 확 뛰쳐나가려고 한다거나 그런 것 때문에 이제 문제 행동들이 유발이 되거든요.”

자주, 조금씩 적응할 시간을 주자 도전 행동은 줄기 시작했습니다.

이창호/시안이 아버지
“같이 수업을 하는데 5분 정도라도 다른 아이들 옆에서 같이 할 수 있게끔 해달라고 했는데 그러면서 얘가 점점 시간이 늘어나고 변하는 거예요.”

그렇게 시안이는 약 3년 만에 다시 태권도장을 찾았습니다.

최낙춘/태권도장 관장
“(다른 친구가) 물 먹는 방법도 처음에도 알려줬었고 그런 시안이가 새로운 친구가 왔을 때 하나씩 그걸 알려주는 모습도 있었고요. 그런 점에서 아이들이 조금 더 서로서로 밀어주고 당겨주고 하다 보니까 더 좋아질 수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이창호/시안이 아버지
“제가 먼저 변했고 그리고 우리 모두가 변했고 다 같이 함께하니까 이게 가능하다는 걸 그때 겪었던 것 같아요.”

■ 통합교육은 어떻게 이뤄질까?

김기화/9층시사국 MC:
시안의 사례가 통합교육에는 굉장히 좋은 사례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보통 학교에서도 이런 시도가 지금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조혜진/9층시사국 기자:
원래 그런 취지로 도입된 게 통합학교입니다. 통합학교는 일반 학급과 특수학급으로 운영이 되는데요. 수학이라든지 국어 같은 교과목은 특수학급에서 장애아동 개개인의 특성에 맞춰서 지도를 하게 되고요. 그 외에 다른 과목들은 친구들과 일반 학급에서 듣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이제 도전 행동 같은 것들이 나타나게 되면 시안이 사례처럼 원인을 찾고 그걸 지도를 하는 거죠.

김기화:
근데 실제 교육 현장에서는 이렇게 시안이 같은 잘 된 사례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가요?

조혜진:
아무래도 일반 학급에는 학생이 30명 정도 되죠. 그러다 보니 선생님 한 명이 신경 써야 할 학생들이 굉장히 많고요. 그리고 이 학생이 특수학급에서 수업을 받게 돼도 6명 중 1인데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특수학급에서는 장애아동 맞춤형 수업을 1대 1로 진행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집중적으로도전 행동을 개선할 수 있게끔 지도할 시간이 좀 부족하다는 거죠. 그래서 지금의 학교 현장은 도전 행동을 개선할 만한 환경이 되지 못한다는 게 선생님들의 얘기였습니다.

장은미/전국특수교사노조 위원장
“수업시간이라는 건 한정되어 있는데 아이들이 많다 보면 개별 시간을 따져봤을 때 아이들에게 돌아가는 시간이 너무 부족한 거죠. 그러다 보니 특수교육적 효과도 많이 떨어지고 또 우리가 계속해서 얘기했던 그런 행동 중재(도전 행동 개선)에 대한 엄두는 못 내고 있는 거죠.”

■ 교사도, 부모도 "정부 대책은 현실과 동떨어져"

8년째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정원화 씨. 저학년부터 고학년 수업교재가 나란히 꽂혀 있습니다.

정 씨는 6명의 학생이 있는 특수학급의 교사입니다. 많게는 서너 학년의 학생을 한꺼번에 가르쳐야 합니다.

정원화/특수교사
“두 자릿수 덧셈 뺄셈을 하는 친구가 있고 5 이하의 덧셈 뺄셈을 하는 친구가 있고 아직 덧셈 뺄셈은 어려워서 숫자 공부를 하는 친구가 있어요.”

그런 정 씨의 학급에도 이따금씩 도전 행동을 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정원화/특수교사
“감정 조절이 잘 안 되는 문제 행동을 일으킨 적이 있었어요. 그때 교무실에 도움을 요청했고 교감 선생님께서 와주셔서 그 학생을 따로 지도해 주신 적이 있으세요 진정될 때까지.”

특수교사가 수업을 진행하면서 도전 행동까지 대응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이에 교육부는 앞으로 수업을 방해한 학생을 분리할 수 있다고 고시했습니다.

어디로 분리해야 할까. 학교에서는 특수학급의 법정 기준인원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습니다.

인원이 많아지면 학급을 추가해야 하지만, 공간이 없다며 졸업을 기다릴 뿐입니다.

장은미/전국특수교사노조 위원장
“고등학교 특수학급이 9명씩도 있어요. 특수학급을 증설할 만한 공간이 없기 때문에 할 수가 없다. 그러니 그냥 이렇게 해야 한다고 얘기하는 거예요.”

분리 이후 누구의 책임하에 지도가 이뤄져야 하는지도 불분명합니다.

이창호/시안이 아버지
“그 아이를 또 누군가가 돌봐야 하고 누군가가 교육을 해야 하고, 결국엔 사람이 필요한 거고.”

정원화/특수교사
“특수학급으로 분리하자는 말이 나오는 경우들이 있어요. 근데 그러면 안되잖아요. 사실 특수학급에서 수업하는 아이들도 있고.”

또다른 대안으로 언급되는 행동 중재 지원은 전문성을 가진 외부 교사나 전문가를 불러 개별 학생을 지도하는 겁니다.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 해설서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 해설서

실효성이 있는 얘기일까. 이를 논의하기 위해 모인 선생님들은 할 말이 많습니다.

정원화/특수교사
“저희는 일단 신청했는데 탈락했어요. 굉장히 심각한 문제 행동을 보이는 아이가 2명이나 있음에도 불구하고요.”

신선영/행동 중재 전문교사
“가정하고 연계가 안되니까 안되는 경우도 있고. 근데 가정도 다 했지만 또 통합 학급에서 안 되기 때문에….”

장은미/전국특수교사노조 위원장
“신청부터 신청 양식 자체가 너무 어마어마해서 선생님들이 신청조차도 못한다는….”

지금도 운영되고 있지만, 이를 활용해 본 교사는 극소숩니다.

행동 중재 전문 교사 역시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집니다.

신선영/행동 중재 전문교사
“진짜 의사소통이 안 되는 아이들은 일대일의 시간 확보가 필요한데 사실 학급이나 학교가 일대일로 아이를 만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에요.”

행동 중재 전문가가 모든 책임을 지기는 어렵다는 말도 나옵니다.

신선영/행동 중재 전문교사
“(가정에서) 무조건 연수를 3시간 이상 받아야 된다. 그리고 특수교사도 저희가 연수를 열면 무조건 의무 참여해야 된다는 데에 동의하는 그런 학교만 받게….”

■ 부모, 교사가 말하는 정말 필요한 지원은?

김기화/9층시사국 MC:
아이들 분리나 행동 중재 지원에 교육부가 나서고 있는 것 같긴 해요. 그런데 그래도 학부모님이나 선생님들이 걱정이 굉장히 크신 것 같아요.

조혜진/9층시사국 기자:
통합교육 현장에서 도전 행동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모두가 동의할 겁니다. 하지만 지금 교육부의 방침은 사실상 현상 유지에 가깝다는 거죠. 가장 근본적으로 인력이 추가로 필요하다는 데에는 선생님들뿐만 아니라 학부모들도 굉장히 공감하고 있습니다.

이창호/시안이 아버지:
“전부 교사한테만, 교사 한 명에게 떠맡겨지니깐 그게 너무 힘들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해요. 그러다 보니깐 선생님은 선생님대로, 부모는 부모대로 이렇게 부딪힐 수밖에 없는 것 같고.”

조혜진:
정부가 제안한 교육청 행동중재지원단만 해도 서울에 고작 2명뿐입니다. 그러다 보니 학교 측에서 이 행동중지라는 걸 신청을 해도 과연 제때 제대로 된 조치가 이뤄질 수 있느냐 이런 데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거죠.

김기화:
그리고 또 인력이 확보되는 건 좋은데 인력이 확보되는 대로 아이들을 분리만 계속 시키는 것이 과연 능사인가, 통합교육의 어떤 취지에는 좀 안 맞는 것 아닌가 이런 생각도 좀 드네요.

조혜진: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게 모든 자폐아동이 학교에서 심각한 도전 행동을 하는 건 아닙니다. 실제로 오랜 기간 자폐 아동을 봐온 한 전문가 역시 자신이 본 아이들 중 과반수는 학교에서 적응하는 데 큰 문제가 없었다고 얘기를 했습니다.

천근아/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 교수:
“70~80%는 걱정을 많이 했는데 애가 생각보다 40분동안 자리 이탈 안하고 잘 앉아 있고 또 우리 스펙트럼 아이들은 굉장히 지침을 잘 따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조혜진:
그리고 도전 행동이 나타나도 학급에서 선생님의 노력, 또 가정에서 부모의 노력, 아동 자신의 노력으로 이를 개선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보다 적극적인 치료도 필요합니다. 도전 행동이 자신이나 아니면 다른 학생들을 위험하게 만드는 경우입니다.

천근아/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 교수:
“행동치료를 통해서도 도움이 되지만 즉각적인 효과를 담보할 수 없기 때문에 약물 치료를 통해서 어느 정도는 공격성을 줄여주고 일반 학교 일반반에서의 통합 수업을 받는 데 도움을 저희가 드리려고 하고 있죠.”

조혜진:
다만 이러한 치료는 통합을 전제로, 또 통합을 목표로 이뤄져야 한다고 합니다. 특수교육 현장의 선생님들 역시 이 부분을 굉장히 강조합니다.

정원화/특수교사:
“이런 행동을 고치고 이런 행동이 있는 학생들이 우리랑 같이 어울려서 살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그 점을 좀 같이 고민해주셨으면 싶어요.”

■ 우영우, 별이, 그리고 우리들

딩동댕유치원의 ‘별이’는 국내 어린이 프로그램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자폐 아동 캐릭터입니다.

‘딩동댕유치원’ 자폐아동 캐릭터 별이(출처:EBS)‘딩동댕유치원’ 자폐아동 캐릭터 별이(출처:EBS)

방송에서 딩동선생님은 별이를 '우리와 같은 점도 있지만, 별이만의 생각이 있다'고 소개합니다.

별이의 머릿속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소리에 예민한 모습도 그대로 보여줍니다.

이지현/'딩동댕유치원' PD
"자폐 친구들이 언어 소통은 조금 어려운데 대신에 시각적으로 생각을 하는 거예요."

조금 더 현실적으로,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별이를 그려냅니다.

지금까지 아무도 시도해보지 않았던 일입니다.

이지현/'딩동댕유치원' PD
"저희 큰아이는 초등학교 3학년이니깐 그 학교에 자폐인 아이가 있어요. 저도 그래서 엄청 많이 공부를 해가면서 이걸 만들면서 내 아이에게 내가 답을 줄 수 있는 게 너무 좋아요."

김예령/‘별이’ 성우
“왜 저러지, 이상해 이것보다는 쟤도 별이처럼 그런 부분이 있나보다, 그렇게 서로 이해할 수 있게 되면 그게 제일 좋지 않을까요.”

이처럼 혐오와 차별이 아닌, 이해와 다양성의 가치를 믿는 이들도 많습니다.

이창호/시안이 아버지
“부모님 중에 한 분이 시안이가 어떤 행동을 싫어하는지, 어떤 행동에 예민한지 말씀을 해 줄 수 있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저는 그 질문이 너무 감사했어요, 그때.”

현장에는 치열하게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원화/특수교사
“결국 아이들에게 궁극적으로 필요한 건 저는 두 가지라고 생각해요. 문제 행동을 중재하는 행동 중재 전문가, 그리고 적절한 의료기관과의 연계.”

이들은 우리 사회가 충분한 답을 내놓을 의지가 있는지 묻고 있습니다.


취재기자 : 조혜진
촬영 : 강우용
영상편집: 강정희
CG : 정예나
리서처: 신용하
AD: 정현주 유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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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아동 부모
“이해하는 눈빛, '쟤가 자폐구나'하는 느낌. 그전에는 자폐라는 걸 몰랐다면 자폐인의 특성상 반향어를 하나 보다 상동 행동하나 보다 하면서”

하지만 불과 1년 새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녹취]KBS뉴스(8월 1일)
“웹툰 작가 주호민 씨에게 아동학대 혐의로 고소당하며 직위해제됐던 특수교사가 오늘 복직했습니다.”

[녹취]KBS뉴스(8월 28일)
“쟁점이 된 녹음파일은 지난해 9월 주 씨 측이 아들을 통해 녹음한 2시간 30분 분량의 자료로...”

자폐가 있는 주 씨의 아들을 분리해 지도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출처 : 관련 기사의 댓글 갈무리)
자폐 아동은 도전 행동, 다른 말로 문제 행동을 하기에 분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그러자 정부는 특수교육 현장에 대한 지침을 마련하겠다고 합니다.

이주호/교육부 장관(8월 17일, 교육부 브리핑 중)
“무너져버린 교권을 바로 세워 교육 현장의 균형을 회복하는 큰 발걸음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장은미/전국특수교사노조 위원장
“여러 가지 고시들도 있었고 법령들도 있고 교육과 관련된 여러 가지 대책이 있는데 의도하지 않았든 의도했든 간에 자꾸 (특수교육은) 배제가 되는 거예요.”

이창호/자폐아동 부모
“분리를 했을 때 그걸로 끝이 아니잖아요. 그 아이를 또 누군가가 돌봐야 되고 누군가가 교육을 해야 해요. 그리고 며칠 지나서 아이가 다시 교실로 복귀했을 때 달라진 건 없어요.”


■ 조금씩, 천천히 모두가 달라졌다 "느려도 괜찮아"

초등학교 2학년, 자폐 스펙트럼 진단을 받은 시안이. 시안이는 어엿한 2년차 태권도 수련생입니다.

또래 친구들과 함께 훈련을 하다가 가끔씩 몸을 흔드는 상동 행동을 보이지만, 한 시간 가까이 이어지는
수업을 곧잘 따라갑니다.

최낙춘/태권도장 관장
“시안이가 장애가 있다는 편견 때문에 그런 부분이 있는데, 그 외적으로 봤을 때는 다른 친구들과 저는 별반 다를 게 없다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태권도 수업을 마치고 아빠와 또다시 길을 나섭니다. 시안이가 향한 곳은 집 근처의 요리학원입니다.

2년 넘게 요리 학원을 다닌 시안이.

고아라/요리학원 선생님
“시안이 같은 경우는 도움 받는 걸 안 좋아해요. 도와주는 걸 굉장히 싫어하고 '내가 할 수 있는데 왜 도와줘'라는 이야기를 표현을 하거든요.”

그런 시안이에게 선생님은 약간의 도움만 줄 뿐입니다.

시안이의 하루는 순식간에 지나갑니다.

이창호/시안이 아버지
“시안이는 학교 끝나고 월요일이랑 수요일 같은 경우는 태권도, 피아노 이렇게 두 가지를 하고 화목에는 태권도와 미술, 금요일에는 태권도, 요리 이렇게 하루에 2개 정도 하고 있어요.”

시안이의 방과후 활동
하지만 처음부터 모든 게 순조로웠던 것은 아닙니다.

초등학교 입학 전 태권도장을 찾았던 시안이.

최낙춘/태관도장 관장
“저도 그런 아이들을 가르쳐본 적이 한 번도 없었고 좀 부담감이 있었는데 1시간 정도 고민하고 난 뒤에 우선 기회를 한번 줘보자고 해서 먼저 체험 수업을 진행을 했었고...”

이창호/시안이 아버지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데리고 갔었거든요. 근데 그때 처음으로 본 거예요. 아이의 모습을. 태권도가 시작됐는데 여기저기 막 뛰어다니고 구석구석 막 다 헤집고 다니고 그러다가 끝나기 한 20분 전쯤에 태권도장 한가운데 드러누워서 '그만, 그만, 그만해' 그러면서 막 소리를 지르더라고요.”

‘이대로 학교에 보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다니게 된 요리 학원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혼자 수업을 들었습니다.

고아라/요리학원 선생님
“한 번에 많은 인원을 넣은 게 아니라 조금 차분한 아이랑 같이 먼저 같이 시작하고 거기에서 또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면 점차 인원을 늘려갔거든요.”

그 과정에서 시안이의 도전 행동이 낯선 환경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됐습니다.

천근아/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 교수
“예측하지 못한 환경 속에서 자폐 스펙트럼 아이들은 갑자기 불안해지면서 소리를 지른다거나, 확 뛰쳐나가려고 한다거나 그런 것 때문에 이제 문제 행동들이 유발이 되거든요.”

자주, 조금씩 적응할 시간을 주자 도전 행동은 줄기 시작했습니다.

이창호/시안이 아버지
“같이 수업을 하는데 5분 정도라도 다른 아이들 옆에서 같이 할 수 있게끔 해달라고 했는데 그러면서 얘가 점점 시간이 늘어나고 변하는 거예요.”

그렇게 시안이는 약 3년 만에 다시 태권도장을 찾았습니다.

최낙춘/태권도장 관장
“(다른 친구가) 물 먹는 방법도 처음에도 알려줬었고 그런 시안이가 새로운 친구가 왔을 때 하나씩 그걸 알려주는 모습도 있었고요. 그런 점에서 아이들이 조금 더 서로서로 밀어주고 당겨주고 하다 보니까 더 좋아질 수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이창호/시안이 아버지
“제가 먼저 변했고 그리고 우리 모두가 변했고 다 같이 함께하니까 이게 가능하다는 걸 그때 겪었던 것 같아요.”

■ 통합교육은 어떻게 이뤄질까?

김기화/9층시사국 MC:
시안의 사례가 통합교육에는 굉장히 좋은 사례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보통 학교에서도 이런 시도가 지금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조혜진/9층시사국 기자:
원래 그런 취지로 도입된 게 통합학교입니다. 통합학교는 일반 학급과 특수학급으로 운영이 되는데요. 수학이라든지 국어 같은 교과목은 특수학급에서 장애아동 개개인의 특성에 맞춰서 지도를 하게 되고요. 그 외에 다른 과목들은 친구들과 일반 학급에서 듣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이제 도전 행동 같은 것들이 나타나게 되면 시안이 사례처럼 원인을 찾고 그걸 지도를 하는 거죠.

김기화:
근데 실제 교육 현장에서는 이렇게 시안이 같은 잘 된 사례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가요?

조혜진:
아무래도 일반 학급에는 학생이 30명 정도 되죠. 그러다 보니 선생님 한 명이 신경 써야 할 학생들이 굉장히 많고요. 그리고 이 학생이 특수학급에서 수업을 받게 돼도 6명 중 1인데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특수학급에서는 장애아동 맞춤형 수업을 1대 1로 진행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집중적으로도전 행동을 개선할 수 있게끔 지도할 시간이 좀 부족하다는 거죠. 그래서 지금의 학교 현장은 도전 행동을 개선할 만한 환경이 되지 못한다는 게 선생님들의 얘기였습니다.

장은미/전국특수교사노조 위원장
“수업시간이라는 건 한정되어 있는데 아이들이 많다 보면 개별 시간을 따져봤을 때 아이들에게 돌아가는 시간이 너무 부족한 거죠. 그러다 보니 특수교육적 효과도 많이 떨어지고 또 우리가 계속해서 얘기했던 그런 행동 중재(도전 행동 개선)에 대한 엄두는 못 내고 있는 거죠.”

■ 교사도, 부모도 "정부 대책은 현실과 동떨어져"

8년째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정원화 씨. 저학년부터 고학년 수업교재가 나란히 꽂혀 있습니다.

정 씨는 6명의 학생이 있는 특수학급의 교사입니다. 많게는 서너 학년의 학생을 한꺼번에 가르쳐야 합니다.

정원화/특수교사
“두 자릿수 덧셈 뺄셈을 하는 친구가 있고 5 이하의 덧셈 뺄셈을 하는 친구가 있고 아직 덧셈 뺄셈은 어려워서 숫자 공부를 하는 친구가 있어요.”

그런 정 씨의 학급에도 이따금씩 도전 행동을 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정원화/특수교사
“감정 조절이 잘 안 되는 문제 행동을 일으킨 적이 있었어요. 그때 교무실에 도움을 요청했고 교감 선생님께서 와주셔서 그 학생을 따로 지도해 주신 적이 있으세요 진정될 때까지.”

특수교사가 수업을 진행하면서 도전 행동까지 대응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이에 교육부는 앞으로 수업을 방해한 학생을 분리할 수 있다고 고시했습니다.

어디로 분리해야 할까. 학교에서는 특수학급의 법정 기준인원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습니다.

인원이 많아지면 학급을 추가해야 하지만, 공간이 없다며 졸업을 기다릴 뿐입니다.

장은미/전국특수교사노조 위원장
“고등학교 특수학급이 9명씩도 있어요. 특수학급을 증설할 만한 공간이 없기 때문에 할 수가 없다. 그러니 그냥 이렇게 해야 한다고 얘기하는 거예요.”

분리 이후 누구의 책임하에 지도가 이뤄져야 하는지도 불분명합니다.

이창호/시안이 아버지
“그 아이를 또 누군가가 돌봐야 하고 누군가가 교육을 해야 하고, 결국엔 사람이 필요한 거고.”

정원화/특수교사
“특수학급으로 분리하자는 말이 나오는 경우들이 있어요. 근데 그러면 안되잖아요. 사실 특수학급에서 수업하는 아이들도 있고.”

또다른 대안으로 언급되는 행동 중재 지원은 전문성을 가진 외부 교사나 전문가를 불러 개별 학생을 지도하는 겁니다.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 해설서
실효성이 있는 얘기일까. 이를 논의하기 위해 모인 선생님들은 할 말이 많습니다.

정원화/특수교사
“저희는 일단 신청했는데 탈락했어요. 굉장히 심각한 문제 행동을 보이는 아이가 2명이나 있음에도 불구하고요.”

신선영/행동 중재 전문교사
“가정하고 연계가 안되니까 안되는 경우도 있고. 근데 가정도 다 했지만 또 통합 학급에서 안 되기 때문에….”

장은미/전국특수교사노조 위원장
“신청부터 신청 양식 자체가 너무 어마어마해서 선생님들이 신청조차도 못한다는….”

지금도 운영되고 있지만, 이를 활용해 본 교사는 극소숩니다.

행동 중재 전문 교사 역시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집니다.

신선영/행동 중재 전문교사
“진짜 의사소통이 안 되는 아이들은 일대일의 시간 확보가 필요한데 사실 학급이나 학교가 일대일로 아이를 만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에요.”

행동 중재 전문가가 모든 책임을 지기는 어렵다는 말도 나옵니다.

신선영/행동 중재 전문교사
“(가정에서) 무조건 연수를 3시간 이상 받아야 된다. 그리고 특수교사도 저희가 연수를 열면 무조건 의무 참여해야 된다는 데에 동의하는 그런 학교만 받게….”

■ 부모, 교사가 말하는 정말 필요한 지원은?

김기화/9층시사국 MC:
아이들 분리나 행동 중재 지원에 교육부가 나서고 있는 것 같긴 해요. 그런데 그래도 학부모님이나 선생님들이 걱정이 굉장히 크신 것 같아요.

조혜진/9층시사국 기자:
통합교육 현장에서 도전 행동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모두가 동의할 겁니다. 하지만 지금 교육부의 방침은 사실상 현상 유지에 가깝다는 거죠. 가장 근본적으로 인력이 추가로 필요하다는 데에는 선생님들뿐만 아니라 학부모들도 굉장히 공감하고 있습니다.

이창호/시안이 아버지:
“전부 교사한테만, 교사 한 명에게 떠맡겨지니깐 그게 너무 힘들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해요. 그러다 보니깐 선생님은 선생님대로, 부모는 부모대로 이렇게 부딪힐 수밖에 없는 것 같고.”

조혜진:
정부가 제안한 교육청 행동중재지원단만 해도 서울에 고작 2명뿐입니다. 그러다 보니 학교 측에서 이 행동중지라는 걸 신청을 해도 과연 제때 제대로 된 조치가 이뤄질 수 있느냐 이런 데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거죠.

김기화:
그리고 또 인력이 확보되는 건 좋은데 인력이 확보되는 대로 아이들을 분리만 계속 시키는 것이 과연 능사인가, 통합교육의 어떤 취지에는 좀 안 맞는 것 아닌가 이런 생각도 좀 드네요.

조혜진: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게 모든 자폐아동이 학교에서 심각한 도전 행동을 하는 건 아닙니다. 실제로 오랜 기간 자폐 아동을 봐온 한 전문가 역시 자신이 본 아이들 중 과반수는 학교에서 적응하는 데 큰 문제가 없었다고 얘기를 했습니다.

천근아/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 교수:
“70~80%는 걱정을 많이 했는데 애가 생각보다 40분동안 자리 이탈 안하고 잘 앉아 있고 또 우리 스펙트럼 아이들은 굉장히 지침을 잘 따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조혜진:
그리고 도전 행동이 나타나도 학급에서 선생님의 노력, 또 가정에서 부모의 노력, 아동 자신의 노력으로 이를 개선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보다 적극적인 치료도 필요합니다. 도전 행동이 자신이나 아니면 다른 학생들을 위험하게 만드는 경우입니다.

천근아/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 교수:
“행동치료를 통해서도 도움이 되지만 즉각적인 효과를 담보할 수 없기 때문에 약물 치료를 통해서 어느 정도는 공격성을 줄여주고 일반 학교 일반반에서의 통합 수업을 받는 데 도움을 저희가 드리려고 하고 있죠.”

조혜진:
다만 이러한 치료는 통합을 전제로, 또 통합을 목표로 이뤄져야 한다고 합니다. 특수교육 현장의 선생님들 역시 이 부분을 굉장히 강조합니다.

정원화/특수교사:
“이런 행동을 고치고 이런 행동이 있는 학생들이 우리랑 같이 어울려서 살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그 점을 좀 같이 고민해주셨으면 싶어요.”

■ 우영우, 별이, 그리고 우리들

딩동댕유치원의 ‘별이’는 국내 어린이 프로그램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자폐 아동 캐릭터입니다.

‘딩동댕유치원’ 자폐아동 캐릭터 별이(출처:EBS)
방송에서 딩동선생님은 별이를 '우리와 같은 점도 있지만, 별이만의 생각이 있다'고 소개합니다.

별이의 머릿속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소리에 예민한 모습도 그대로 보여줍니다.

이지현/'딩동댕유치원' PD
"자폐 친구들이 언어 소통은 조금 어려운데 대신에 시각적으로 생각을 하는 거예요."

조금 더 현실적으로,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별이를 그려냅니다.

지금까지 아무도 시도해보지 않았던 일입니다.

이지현/'딩동댕유치원' PD
"저희 큰아이는 초등학교 3학년이니깐 그 학교에 자폐인 아이가 있어요. 저도 그래서 엄청 많이 공부를 해가면서 이걸 만들면서 내 아이에게 내가 답을 줄 수 있는 게 너무 좋아요."

김예령/‘별이’ 성우
“왜 저러지, 이상해 이것보다는 쟤도 별이처럼 그런 부분이 있나보다, 그렇게 서로 이해할 수 있게 되면 그게 제일 좋지 않을까요.”

이처럼 혐오와 차별이 아닌, 이해와 다양성의 가치를 믿는 이들도 많습니다.

이창호/시안이 아버지
“부모님 중에 한 분이 시안이가 어떤 행동을 싫어하는지, 어떤 행동에 예민한지 말씀을 해 줄 수 있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저는 그 질문이 너무 감사했어요, 그때.”

현장에는 치열하게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원화/특수교사
“결국 아이들에게 궁극적으로 필요한 건 저는 두 가지라고 생각해요. 문제 행동을 중재하는 행동 중재 전문가, 그리고 적절한 의료기관과의 연계.”

이들은 우리 사회가 충분한 답을 내놓을 의지가 있는지 묻고 있습니다.


취재기자 : 조혜진
촬영 : 강우용
영상편집: 강정희
CG : 정예나
리서처: 신용하
AD: 정현주 유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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