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현상이나 지표를 놓고도 사람마다 바라보는 시각은 조금씩 다릅니다. '컵에 물이 반이나 남았다', '물이 반밖에 안 남았다'. 보는 사람에 따라 해석의 차이는 생기기 마련이지만 경제 문제라면 조금 더 냉정히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최근 가계부채 통계를 놓고도 해석은 엇갈립니다.
지난 11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의 가장 큰 화두는 '가계부채' 문제였습니다. 급증하는 가계부채 문제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데는 여야의 시각이 다르지 않았습니다.
금융당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현재 수준에 대해서는 관리 가능하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나 대출 정책이 최근 가계부채 급증을 불러온 건 아니라고도 항변했습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다음날 발표될 '9월 가계부채' 통계를 미리 거론하며 8월과 비교하면 9월 들어서는 증가 폭이 확연히 줄었다고 강조했습니다.
■ 가계대출 증가 폭 둔화…정부 "노력한 결과"
한국은행이 발표한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9월 말 기준 예금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1,079조 원으로 한 달 전보다 4조 9천억 원 늘었습니다.
정부는 4조 9천억 원이란 숫자에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지난달 6조 9천억 원 불어났던 은행권 가계대출 증가 폭과 비교하면 한 달 사이 2조 넘게 줄었습니다.
전체 금융권의 가계대출 증가폭 축소는 더 두드러집니다. 9월에 2.4조 원 증가하며 7월(5.3조), 8월(6.1조)보다 훨씬 기울기가 완만해졌습니다.
'가계부채 증가 폭이 7~8월의 절반 이하로 감소했다', '빠르게 증가한 가계부채 증가 폭이 다소 안정된 모습'이라는 긍정적 평가를 정부가 내놓은 것도 이런 맥락입니다.
최상목 경제수석은 12일 가계대출 증가 폭 감소에 대해 "관계부처와 합동으로 엄중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해서 노력한 결과"라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 증가세 주춤 '반짝 효과'…"계절적·일시적 요인"
반면 9월 가계대출 증가세가 주춤한 건 '반짝 효과'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9월의 계절적·일시적 특수성이 반영됐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겁니다.
실제로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추석 연휴 등으로 영업일이 감소하며 규모가 줄어든 측면이 있고, 기타대출도 명절 상여금 유입에 따른 일부 대출금 상환, 부실채권 매·상각 등의 영향으로 감소폭이 커졌습니다.
물론 정부가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한 가계대출 급증세를 진화하기 위해 부랴부랴 특례보금자리론 일반형 신청을 중단하고 은행권의 50년 만기 주담대 연령 제한 조치를 취한건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런 정책들이 고금리에도 주택담보대출이 계속 증가하는 추세 자체를 확연히 꺾지는 못했습니다.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은 정부의 각종 억제책에도 불구하고 6조 1,000억 원 늘었습니다. 이는 2009년 통계 속보치 작성(6조 7,000억 원) 이후 두 번째로 큰 폭의 증가입니다.
■ 새로운 뇌관 '기업대출'…11조 넘게 늘어
이런 가운데 기업대출도 9월 기준 역대 최대 규모로 늘었습니다. 기업의 자금 수요가 커진 상황에서 은행이 금융당국의 압박에 가계대출을 줄이고 기업대출을 늘린 결과입니다.
9월 말 기준 기업 대출 잔액은 1,238조 2,000억 원으로 11조 3,000억 원 늘었습니다.
대기업 대출은 한 달 사이 4조 900억 원 늘며 올해 1월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증가했고, 중소기업 대출도 6조 4,000억 원 증가했습니다.
고금리 상황이 이어지면서 기업들도 회사채보다는 은행을 통한 자금 조달을 선호하고 있는 건데 문제는 '건전성'입니다.
금리가 계속 높은 상황에서 경기가 개선되지 않으면 기업이 대출을 상환하지 못할 위험이 커지고 이는 금융권의 건전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7월 말 기준 은행권의 기업대출 연체율은 0.41%로 지난해 말 같은 기간보다 0.14%p 상승했습니다. 1년 전인 지난해 7월과 비교해도 0.17%p 뛰었습니다.
한국은행은 앞서 지난달 통화신용정책 보고서를 통해 기업대출이 금융시장 불안이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한 바 있습니다. 당장의 기업대출 증가가 은행 수익성에 도움을 줄 수 있지만 부실이 커지면 부메랑이 돼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겁니다.
■ 부채 관리 '이중고'…다음 달 지표는 어떨까?
9월의 특수성이 있었던 만큼 다음 달에 발표될 10월 통계에 더 관심이 쏠립니다.
가계대출 증가세는 10월 들어 다시 뚜렷해질 가능성이 큽니다.
한국은행 윤옥자 시장총괄팀 차장은 금융시장 동향 백 브리핑에서 10월 가계대출 전망에 대해 "9월 가계대출 둔화 요인이 해소되는 데다 통상 가을에는 이사철 효과도 있고 7~8월 주택거래량이 확대된 부분도 시차를 두고 반영되는 만큼 가계대출 증가 규모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통상적으로도 10월과 11월이 되면 평균 2조 원 정도 가계대출이 다시 증가하는 경향을 보여왔습니다.
윤 차장은 다만 "정부에서 여러 가계대출 관리 강화 조치를 시행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이 가계대출 증가의 제약 요인이 될 수도 있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정부도 관계 장관회의를 열고 주택경기나 시중금리 추이에 따라 가계부채 증가속도가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만큼 가계부채가 추세적으로 안정될지는 향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을 하며 판단할 부분이라고 진단했습니다.
그러면서도 '50년 만기 주담대' 관리 강화 조치 등의 효과가 10월 이후 본격적으로 나타날 것이라며 낙관적인 전망을 보였습니다.
대출 증가폭은 통제하면서도 규제 완화 기조를 이어 가겠다는 정부의 '두 마리 토끼 잡기' 전략, 10월 통계를 봐야 '통하였는지'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픽: 권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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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전히 불안한 ‘가계부채’ 10월엔?…기업 빚 증가도 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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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3-10-13 08:00:41
같은 현상이나 지표를 놓고도 사람마다 바라보는 시각은 조금씩 다릅니다. '컵에 물이 반이나 남았다', '물이 반밖에 안 남았다'. 보는 사람에 따라 해석의 차이는 생기기 마련이지만 경제 문제라면 조금 더 냉정히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최근 가계부채 통계를 놓고도 해석은 엇갈립니다.
지난 11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의 가장 큰 화두는 '가계부채' 문제였습니다. 급증하는 가계부채 문제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데는 여야의 시각이 다르지 않았습니다.
금융당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현재 수준에 대해서는 관리 가능하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나 대출 정책이 최근 가계부채 급증을 불러온 건 아니라고도 항변했습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다음날 발표될 '9월 가계부채' 통계를 미리 거론하며 8월과 비교하면 9월 들어서는 증가 폭이 확연히 줄었다고 강조했습니다.
■ 가계대출 증가 폭 둔화…정부 "노력한 결과"
한국은행이 발표한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9월 말 기준 예금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1,079조 원으로 한 달 전보다 4조 9천억 원 늘었습니다.
정부는 4조 9천억 원이란 숫자에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지난달 6조 9천억 원 불어났던 은행권 가계대출 증가 폭과 비교하면 한 달 사이 2조 넘게 줄었습니다.
전체 금융권의 가계대출 증가폭 축소는 더 두드러집니다. 9월에 2.4조 원 증가하며 7월(5.3조), 8월(6.1조)보다 훨씬 기울기가 완만해졌습니다.
'가계부채 증가 폭이 7~8월의 절반 이하로 감소했다', '빠르게 증가한 가계부채 증가 폭이 다소 안정된 모습'이라는 긍정적 평가를 정부가 내놓은 것도 이런 맥락입니다.
최상목 경제수석은 12일 가계대출 증가 폭 감소에 대해 "관계부처와 합동으로 엄중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해서 노력한 결과"라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 증가세 주춤 '반짝 효과'…"계절적·일시적 요인"
반면 9월 가계대출 증가세가 주춤한 건 '반짝 효과'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9월의 계절적·일시적 특수성이 반영됐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겁니다.
실제로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추석 연휴 등으로 영업일이 감소하며 규모가 줄어든 측면이 있고, 기타대출도 명절 상여금 유입에 따른 일부 대출금 상환, 부실채권 매·상각 등의 영향으로 감소폭이 커졌습니다.
물론 정부가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한 가계대출 급증세를 진화하기 위해 부랴부랴 특례보금자리론 일반형 신청을 중단하고 은행권의 50년 만기 주담대 연령 제한 조치를 취한건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런 정책들이 고금리에도 주택담보대출이 계속 증가하는 추세 자체를 확연히 꺾지는 못했습니다.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은 정부의 각종 억제책에도 불구하고 6조 1,000억 원 늘었습니다. 이는 2009년 통계 속보치 작성(6조 7,000억 원) 이후 두 번째로 큰 폭의 증가입니다.
■ 새로운 뇌관 '기업대출'…11조 넘게 늘어
이런 가운데 기업대출도 9월 기준 역대 최대 규모로 늘었습니다. 기업의 자금 수요가 커진 상황에서 은행이 금융당국의 압박에 가계대출을 줄이고 기업대출을 늘린 결과입니다.
9월 말 기준 기업 대출 잔액은 1,238조 2,000억 원으로 11조 3,000억 원 늘었습니다.
대기업 대출은 한 달 사이 4조 900억 원 늘며 올해 1월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증가했고, 중소기업 대출도 6조 4,000억 원 증가했습니다.
고금리 상황이 이어지면서 기업들도 회사채보다는 은행을 통한 자금 조달을 선호하고 있는 건데 문제는 '건전성'입니다.
금리가 계속 높은 상황에서 경기가 개선되지 않으면 기업이 대출을 상환하지 못할 위험이 커지고 이는 금융권의 건전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7월 말 기준 은행권의 기업대출 연체율은 0.41%로 지난해 말 같은 기간보다 0.14%p 상승했습니다. 1년 전인 지난해 7월과 비교해도 0.17%p 뛰었습니다.
한국은행은 앞서 지난달 통화신용정책 보고서를 통해 기업대출이 금융시장 불안이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한 바 있습니다. 당장의 기업대출 증가가 은행 수익성에 도움을 줄 수 있지만 부실이 커지면 부메랑이 돼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겁니다.
■ 부채 관리 '이중고'…다음 달 지표는 어떨까?
9월의 특수성이 있었던 만큼 다음 달에 발표될 10월 통계에 더 관심이 쏠립니다.
가계대출 증가세는 10월 들어 다시 뚜렷해질 가능성이 큽니다.
한국은행 윤옥자 시장총괄팀 차장은 금융시장 동향 백 브리핑에서 10월 가계대출 전망에 대해 "9월 가계대출 둔화 요인이 해소되는 데다 통상 가을에는 이사철 효과도 있고 7~8월 주택거래량이 확대된 부분도 시차를 두고 반영되는 만큼 가계대출 증가 규모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통상적으로도 10월과 11월이 되면 평균 2조 원 정도 가계대출이 다시 증가하는 경향을 보여왔습니다.
윤 차장은 다만 "정부에서 여러 가계대출 관리 강화 조치를 시행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이 가계대출 증가의 제약 요인이 될 수도 있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정부도 관계 장관회의를 열고 주택경기나 시중금리 추이에 따라 가계부채 증가속도가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만큼 가계부채가 추세적으로 안정될지는 향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을 하며 판단할 부분이라고 진단했습니다.
그러면서도 '50년 만기 주담대' 관리 강화 조치 등의 효과가 10월 이후 본격적으로 나타날 것이라며 낙관적인 전망을 보였습니다.
대출 증가폭은 통제하면서도 규제 완화 기조를 이어 가겠다는 정부의 '두 마리 토끼 잡기' 전략, 10월 통계를 봐야 '통하였는지'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픽: 권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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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서영 기자 belles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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