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성단층 발견됐는데…국내 원전 부품 내진설계 ‘구멍’?

입력 2023.10.1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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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12년이 흘렀습니다. 단 한 번의 사고가 가져온 재앙은 우려보다 더 컸습니다. 지진은 원전에 가장 치명적인 재해로 꼽힙니다.

1978년 국내 최초 원전인 고리 1호기가 완공돼 가동에 들어간 뒤, 우리나라에선 아직 단 한 건의 원전 사고도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단언하긴 어렵습니다.

최근 경주와 포항 등에서 강진이 일어나며, 원전 인근 활성단층의 위험성이 제기됐습니다. 동남권 16곳이 활성단층으로 분석된 만큼, 한반도 역시 더이상 안전지대가 아닌 셈입니다.

그런데, 국내 원전 설비 가운데 일부가 이 같은 자연재해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는 '부적합' 설비라는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내진설계 강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입니다.

■ 비상디젤발전기 연료탱크 '통기관', 재난 시 안전 유지에 필수

설계결함 의혹이 제기된 설비는 비상디젤발전기 연료탱크가 과압 또는 진공으로 파손되는 것을 방지하는 '통기관'입니다.

지진이나 태풍 같은 재해가 발생했을 때 통기관이 손상돼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다면, 연료탱크와 연료펌프가 무용지물이 되고 비상디젤발전기의 기능 상실로 이어져 큰 사고가 날 수 있습니다.

비상디젤발전기가 작동해야 외부전원이 끊겼을 때도 지속적으로 전원을 공급해 안전 장치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고리 1, 2호기 비상디젤발전기와 연료 계통의 설계책임자였던 A 씨는 "연료가 소비되는데도 공기가 유입되지 못한다면 탱크 내부에 진공이 발생하여 탱크가 찌그러들 수 있다"며 "깡통이 외압을 받으면 쉽게 찌그러드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연료탱크 통기관은 연료탱크와 마찬가지로 지진과 같은 재해에도 구조와 기능을 유지시키는 내진설계가 되어야 한다"며 "반드시 안전등급으로 설계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 국내 설계 원전서 모두 '비안전등급' 분류…"사고 위험 노출"

그런데, 국내 원전의 연료탱크 통기관은 이러한 '안전 설계'를 갖추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용민 의원이 한국수력원자력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내 설계사가 설계한 원전 16기의 연료탱크 통기관은 모두 '비안전등급', 즉 안전등급을 매길 필요 없는 설비로 분류됩니다. 내진등급 역시 대체로 '비내진등급'으로 설계됐습니다.

반면, 외국 회사가 설계한 연료탱크 통기관은 '안전등급 3'으로 설계됐고, 내진등급 역시 가장 높은 'I 등급'으로 분류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국내 회사가 설계한 통기관보다 지진·해일 등 재난 상황에서 더 확실하게 기능할 수 있는 셈입니다.


A 씨는 "외국사가 설계한 고리 3, 4호기, 한빛 1, 2호기의 경우는 이러한 요건에 따라 비상디젤발전기 연료탱크의 통기관이 연료탱크와 동일하게 안전등급, 내진등급으로 설계됐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국내 주도로 설계한 원전의 경우 연료탱크는 안전등급, 내진등급으로 설계됐지만, 통기관은 그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비안전등급, 비내진등급으로 설계되면서 위험에 노출돼 있다"며 "기술기준에 따라 안전등급, 내진등급 설계로 바꾸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했습니다.

■ 원안위 "규정 위반 아냐…지금 설계로도 충분"

관련 규정을 살펴봤습니다. 미국 원자력위원회 규정에는 비상디젤발전기의 연료계통 시스템은 '비안전등급'이 아닌 '안전등급 3'을 갖춰야 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국내 원자력안전위원회의 고시인 '원자로 시설의 안전등급과 등급별 규격에 관한 규정'에도 '비상 디젤기관의 연료급유기능'의 경우 '안전등급 3'에 해당한다고 규정돼 있습니다.

하지만, 원안위의 해석은 조금 달랐습니다. 통기관의 경우 '연료탱크의 고장을 방지하는 기능'을 하는 간단하고 보조적인 설비이기 때문에, 연료탱크와 동일한 안전등급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겁니다.

원안위 관계자는 KBS와의 통화에서 "통기관의 기능과 역할을 봤을 때, 규정상 안전등급까지 설계하지 않아도 된다. 위반 사항은 없다"며 "전수조사까진 할 수 없겠지만, 지금 미국에서 운전 중인 원전(Byron, Braidwood) 중 몇 개는 비안전등급으로 설계된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해당 원전들은 국내 한빛 3·4호기 설계 시 참고가 된 원전으로 모두 1980년대에 지어져 현재까지 운전 중입니다.

이 관계자는 특히 "비상디젤발전기에 연료를 공급하는 설비인 연료탱크와 펌프, 급유배관은 관련 규정에 따라 모두 안전등급으로 설계됐다"며 "통기관에 정말 문제가 생긴다고 해도, 원래 그런 목적으로 설치된 건 아니지만, 공기가 통하는 또 다른 배관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 설계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했습니다.


이에 대해, A 씨는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에서 만든 안전표준심사지침서를 보면, 통기관(vent)이 ‘비상 디젤기관의 연료급유기능 계통’으로 명시돼있다"고 반박했습니다.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민의 안전과 직결된 문제이기에 규정을 떠나 시정해야 한다”며 “현재 우리나라는 활성단층 등 환경적 요인 자체가 급변했기에 안전을 우선해서 현재 규정과 원전시설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자료제공: 더불어민주당 김용민 의원실 / 그래픽: 김홍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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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활성단층 발견됐는데…국내 원전 부품 내진설계 ‘구멍’?
    • 입력 2023-10-18 07: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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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12년이 흘렀습니다. 단 한 번의 사고가 가져온 재앙은 우려보다 더 컸습니다. 지진은 원전에 가장 치명적인 재해로 꼽힙니다.

1978년 국내 최초 원전인 고리 1호기가 완공돼 가동에 들어간 뒤, 우리나라에선 아직 단 한 건의 원전 사고도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단언하긴 어렵습니다.

최근 경주와 포항 등에서 강진이 일어나며, 원전 인근 활성단층의 위험성이 제기됐습니다. 동남권 16곳이 활성단층으로 분석된 만큼, 한반도 역시 더이상 안전지대가 아닌 셈입니다.

그런데, 국내 원전 설비 가운데 일부가 이 같은 자연재해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는 '부적합' 설비라는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내진설계 강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입니다.

■ 비상디젤발전기 연료탱크 '통기관', 재난 시 안전 유지에 필수

설계결함 의혹이 제기된 설비는 비상디젤발전기 연료탱크가 과압 또는 진공으로 파손되는 것을 방지하는 '통기관'입니다.

지진이나 태풍 같은 재해가 발생했을 때 통기관이 손상돼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다면, 연료탱크와 연료펌프가 무용지물이 되고 비상디젤발전기의 기능 상실로 이어져 큰 사고가 날 수 있습니다.

비상디젤발전기가 작동해야 외부전원이 끊겼을 때도 지속적으로 전원을 공급해 안전 장치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고리 1, 2호기 비상디젤발전기와 연료 계통의 설계책임자였던 A 씨는 "연료가 소비되는데도 공기가 유입되지 못한다면 탱크 내부에 진공이 발생하여 탱크가 찌그러들 수 있다"며 "깡통이 외압을 받으면 쉽게 찌그러드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연료탱크 통기관은 연료탱크와 마찬가지로 지진과 같은 재해에도 구조와 기능을 유지시키는 내진설계가 되어야 한다"며 "반드시 안전등급으로 설계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 국내 설계 원전서 모두 '비안전등급' 분류…"사고 위험 노출"

그런데, 국내 원전의 연료탱크 통기관은 이러한 '안전 설계'를 갖추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용민 의원이 한국수력원자력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내 설계사가 설계한 원전 16기의 연료탱크 통기관은 모두 '비안전등급', 즉 안전등급을 매길 필요 없는 설비로 분류됩니다. 내진등급 역시 대체로 '비내진등급'으로 설계됐습니다.

반면, 외국 회사가 설계한 연료탱크 통기관은 '안전등급 3'으로 설계됐고, 내진등급 역시 가장 높은 'I 등급'으로 분류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국내 회사가 설계한 통기관보다 지진·해일 등 재난 상황에서 더 확실하게 기능할 수 있는 셈입니다.


A 씨는 "외국사가 설계한 고리 3, 4호기, 한빛 1, 2호기의 경우는 이러한 요건에 따라 비상디젤발전기 연료탱크의 통기관이 연료탱크와 동일하게 안전등급, 내진등급으로 설계됐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국내 주도로 설계한 원전의 경우 연료탱크는 안전등급, 내진등급으로 설계됐지만, 통기관은 그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비안전등급, 비내진등급으로 설계되면서 위험에 노출돼 있다"며 "기술기준에 따라 안전등급, 내진등급 설계로 바꾸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했습니다.

■ 원안위 "규정 위반 아냐…지금 설계로도 충분"

관련 규정을 살펴봤습니다. 미국 원자력위원회 규정에는 비상디젤발전기의 연료계통 시스템은 '비안전등급'이 아닌 '안전등급 3'을 갖춰야 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국내 원자력안전위원회의 고시인 '원자로 시설의 안전등급과 등급별 규격에 관한 규정'에도 '비상 디젤기관의 연료급유기능'의 경우 '안전등급 3'에 해당한다고 규정돼 있습니다.

하지만, 원안위의 해석은 조금 달랐습니다. 통기관의 경우 '연료탱크의 고장을 방지하는 기능'을 하는 간단하고 보조적인 설비이기 때문에, 연료탱크와 동일한 안전등급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겁니다.

원안위 관계자는 KBS와의 통화에서 "통기관의 기능과 역할을 봤을 때, 규정상 안전등급까지 설계하지 않아도 된다. 위반 사항은 없다"며 "전수조사까진 할 수 없겠지만, 지금 미국에서 운전 중인 원전(Byron, Braidwood) 중 몇 개는 비안전등급으로 설계된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해당 원전들은 국내 한빛 3·4호기 설계 시 참고가 된 원전으로 모두 1980년대에 지어져 현재까지 운전 중입니다.

이 관계자는 특히 "비상디젤발전기에 연료를 공급하는 설비인 연료탱크와 펌프, 급유배관은 관련 규정에 따라 모두 안전등급으로 설계됐다"며 "통기관에 정말 문제가 생긴다고 해도, 원래 그런 목적으로 설치된 건 아니지만, 공기가 통하는 또 다른 배관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 설계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했습니다.


이에 대해, A 씨는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에서 만든 안전표준심사지침서를 보면, 통기관(vent)이 ‘비상 디젤기관의 연료급유기능 계통’으로 명시돼있다"고 반박했습니다.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민의 안전과 직결된 문제이기에 규정을 떠나 시정해야 한다”며 “현재 우리나라는 활성단층 등 환경적 요인 자체가 급변했기에 안전을 우선해서 현재 규정과 원전시설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자료제공: 더불어민주당 김용민 의원실 / 그래픽: 김홍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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