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번 ‘코끼리 쏘기’나선 김기현…‘위기론’ 잠재울 수 있을까?

입력 2023.10.18 (15:18) 수정 2023.10.18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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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나는 코끼리를 쏴야 했다. 소총을 가져오라고 시켰을 때, 이미 나는 그렇게 선언한 거나 다름없었다. 단호하고, 생각이 분명하고, 확실히 행동하는 것처럼 보여야 했다. 2천 명 군중을 이끌고 여기까지 와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슬그머니 물러나 버린다? 그런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군중이 날 비웃을 터였다."

소설 '1984'로 유명한 조지 오웰의 자전적 경험을 담은 단편 '코끼리를 쏘다'의 한 부분입니다. 영국 식민지 미얀마에서 경찰로 일했던 오웰은 마을에 피해를 준 코끼리를 쏠 생각이 없었지만, 수많은 군중에 둘러싸여, 그들의 바람대로 결국 코끼리를 쏴서 죽이게 됩니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에게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는 이런 '코끼리 쏘기'였는지도 모릅니다.

쏘기 싫었지만 쏘아야 했고, 방아쇠를 당기는 그 순간에도 '단호하고, 생각이 분명하고, 확실히 행동하는 것처럼' 보여야 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결과는 참패. 그 후폭풍은 고스란히 김 대표의 몫으로 돌아왔습니다.

김 대표는 선거 직후 의원총회에서 '당 혁신기구·총선기획단·인재영입위 조기 출범' 등 쇄신안을 수습 카드로 내세우며 재신임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난 오늘까지도 쇄신을 맡을 구체적인 인선은 발표되지 않았습니다.

'당 혁신기구'는 당초 대표 산하에 TF 형태를 두는 방안이 검토됐다가 "진정성이 없다"는 내외부 비판에 '별도 위원회' 형태로 가닥이 잡혔지만, '신선한 충격'을 이끌 혁신기구의 수장 자리를 두고 지도부의 고심이 깊어지는 거로 보입니다.

신임 지도부는 일단 당내 전·현직 의원과 경제계, 학계를 통틀어 10명 정도의 후보군을 추린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윤희석 선임대변인은 비공개 회의를 마치고 "인물난이라기보다는 이번 혁신위가 가진 의미가 막중하기 때문"이라며 "주말까지 혁신위원장을 인선해 월요일에 혁신위가 출범하는 것을 목표로 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여기에 사무총장을 보좌해 총선 기획을 담당할 전략기획부총장 자리도 여전히 공석입니다. 영남 출신 이만희 의원이 신임 사무총장을 맡으며 '도로 영남당'이라는 비판을 받는 상황에서 '수도권·충청권 원내 인사'를 물색 중이지만, 대상자의 고사로 퍼즐 맞추기가 쉽지 않은 모습입니다.

국민의힘 유의동 신임 정책위의장(좌)과 윤재옥 원내대표(중), 이만희 신임 사무총장(우)국민의힘 유의동 신임 정책위의장(좌)과 윤재옥 원내대표(중), 이만희 신임 사무총장(우)

물리적 시간 제약에 "허수아비 기구" 비판도

뿐만 아니라 김 대표가 혁신기구에 권한을 얼마나 위임할 지도 관심입니다. 총선이 6개월여 남은 상황에서 '전권형 혁신위'를 두기는 어려워 '허수아비 기구'에 그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옵니다.

이와 관련해 윤희석 대변인은 "1월 초에 공천관리위가 구성될 수 있어서 총선을 앞두고 혁신위 활동 기간에 제약을 둘 수밖에 없다"면서도 "물리적으로 90일이라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지 않고, 혁신위가 업무를 빨리하면 해결될 문제"라고 설명했습니다.

결국 백지 상태에서 새 혁신안을 만들기보다는 기존 발표된 개혁안들을 총망라해 총선 준비 과정에 적용할 내용을 선별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김 대표가 이준석 전 대표 시절 당 혁신위에서 만든 혁신안을 검토 중이라는 보도까지 나왔는데, 박정하 수석대변인은 즉각 나서 "사실과 다르다"며 반박하기도 했습니다.


김기현, 혁신위원장 카드로 "위기론" 불식시킬까?

국민의힘 내부에선 선거 패배의 후폭풍이 당초 예상을 훌쩍 넘어서고 있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보궐선거 패배는 예상했지만, 그 결과가 보수 언론까지 나서서 융단폭격으로 당 지도부를 흔드는 상황으로 이어질 줄은 예측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결국 이런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선 국민의힘 대다수 의원들과 지지자들에게 '지지율이 반등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줘야 하는데, 대표적인 수단이 혁신위로 대표되는 '쇄신안'입니다.

다시 말해 보수의 가치를 내재하고 정치개혁 의지도 갖춘,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는 인물을 찾아 혁신위를 구성함으로써 희망을 살려내야 한다는 겁니다.

앞에서 짚었듯이 혁신위 구성은 김 대표에겐 또 한 번의 '코끼리 쏘기'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소설 속 조지 오웰처럼 군중만 의식해 '단호하고, 생각이 분명하고, 확실히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려고만 한다면 또 다른 후폭풍이 닥쳐올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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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0-18 15:18:25
    • 수정2023-10-18 17:5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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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나는 코끼리를 쏴야 했다. 소총을 가져오라고 시켰을 때, 이미 나는 그렇게 선언한 거나 다름없었다. 단호하고, 생각이 분명하고, 확실히 행동하는 것처럼 보여야 했다. 2천 명 군중을 이끌고 여기까지 와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슬그머니 물러나 버린다? 그런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군중이 날 비웃을 터였다."

소설 '1984'로 유명한 조지 오웰의 자전적 경험을 담은 단편 '코끼리를 쏘다'의 한 부분입니다. 영국 식민지 미얀마에서 경찰로 일했던 오웰은 마을에 피해를 준 코끼리를 쏠 생각이 없었지만, 수많은 군중에 둘러싸여, 그들의 바람대로 결국 코끼리를 쏴서 죽이게 됩니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에게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는 이런 '코끼리 쏘기'였는지도 모릅니다.

쏘기 싫었지만 쏘아야 했고, 방아쇠를 당기는 그 순간에도 '단호하고, 생각이 분명하고, 확실히 행동하는 것처럼' 보여야 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결과는 참패. 그 후폭풍은 고스란히 김 대표의 몫으로 돌아왔습니다.

김 대표는 선거 직후 의원총회에서 '당 혁신기구·총선기획단·인재영입위 조기 출범' 등 쇄신안을 수습 카드로 내세우며 재신임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난 오늘까지도 쇄신을 맡을 구체적인 인선은 발표되지 않았습니다.

'당 혁신기구'는 당초 대표 산하에 TF 형태를 두는 방안이 검토됐다가 "진정성이 없다"는 내외부 비판에 '별도 위원회' 형태로 가닥이 잡혔지만, '신선한 충격'을 이끌 혁신기구의 수장 자리를 두고 지도부의 고심이 깊어지는 거로 보입니다.

신임 지도부는 일단 당내 전·현직 의원과 경제계, 학계를 통틀어 10명 정도의 후보군을 추린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윤희석 선임대변인은 비공개 회의를 마치고 "인물난이라기보다는 이번 혁신위가 가진 의미가 막중하기 때문"이라며 "주말까지 혁신위원장을 인선해 월요일에 혁신위가 출범하는 것을 목표로 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여기에 사무총장을 보좌해 총선 기획을 담당할 전략기획부총장 자리도 여전히 공석입니다. 영남 출신 이만희 의원이 신임 사무총장을 맡으며 '도로 영남당'이라는 비판을 받는 상황에서 '수도권·충청권 원내 인사'를 물색 중이지만, 대상자의 고사로 퍼즐 맞추기가 쉽지 않은 모습입니다.

국민의힘 유의동 신임 정책위의장(좌)과 윤재옥 원내대표(중), 이만희 신임 사무총장(우)
물리적 시간 제약에 "허수아비 기구" 비판도

뿐만 아니라 김 대표가 혁신기구에 권한을 얼마나 위임할 지도 관심입니다. 총선이 6개월여 남은 상황에서 '전권형 혁신위'를 두기는 어려워 '허수아비 기구'에 그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옵니다.

이와 관련해 윤희석 대변인은 "1월 초에 공천관리위가 구성될 수 있어서 총선을 앞두고 혁신위 활동 기간에 제약을 둘 수밖에 없다"면서도 "물리적으로 90일이라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지 않고, 혁신위가 업무를 빨리하면 해결될 문제"라고 설명했습니다.

결국 백지 상태에서 새 혁신안을 만들기보다는 기존 발표된 개혁안들을 총망라해 총선 준비 과정에 적용할 내용을 선별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김 대표가 이준석 전 대표 시절 당 혁신위에서 만든 혁신안을 검토 중이라는 보도까지 나왔는데, 박정하 수석대변인은 즉각 나서 "사실과 다르다"며 반박하기도 했습니다.


김기현, 혁신위원장 카드로 "위기론" 불식시킬까?

국민의힘 내부에선 선거 패배의 후폭풍이 당초 예상을 훌쩍 넘어서고 있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보궐선거 패배는 예상했지만, 그 결과가 보수 언론까지 나서서 융단폭격으로 당 지도부를 흔드는 상황으로 이어질 줄은 예측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결국 이런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선 국민의힘 대다수 의원들과 지지자들에게 '지지율이 반등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줘야 하는데, 대표적인 수단이 혁신위로 대표되는 '쇄신안'입니다.

다시 말해 보수의 가치를 내재하고 정치개혁 의지도 갖춘,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는 인물을 찾아 혁신위를 구성함으로써 희망을 살려내야 한다는 겁니다.

앞에서 짚었듯이 혁신위 구성은 김 대표에겐 또 한 번의 '코끼리 쏘기'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소설 속 조지 오웰처럼 군중만 의식해 '단호하고, 생각이 분명하고, 확실히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려고만 한다면 또 다른 후폭풍이 닥쳐올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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