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치 들고 쫓아간다”…감정노동자 보호법 5년 현장은?

입력 2023.10.18 (21:35) 수정 2023.10.18 (22:02)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앵커]

누군가에게 콜센터는 "총알을 맞는 것 같은" 장소입니다.

수화기 너머 쏟아지는 험악한 말들이 총알처럼 마음에 박힌다는 겁니다.

콜센터를 비롯해 감정노동자에게 고통주지 말자고 법 만들어 시행한지 5년입니다.

그 동안 얼마나 달라졌는지 배지현 기자가 현장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콜센터 직원들에게 폭언은 여전히 일상입니다.

["아까 전에 ** 바로 전화하라고 해. 무슨 일이 있어도 전화하라 그래. 지금 바로 당장. 소송 걸 거니까. (선생님 죄송합니다만 제가) 아 입닥쳐 ** 진짜!"]

흉기 같은 말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다 보면, 깊은 무기력에 빠집니다.

[민간 콜센터 노동자/익명 : "너 어디서 일하는지 안다. 너 콜센터, 망치 들고 쫓아가서 너 머리 깰 거다..."]

[김현주/민간 콜센터 노동자 : "(전화 상으로 저렇게 욕을 할 때) 그 사람과 저만 있는 공간에서 한없이 저희는 약자이고, 그리고 어떤 말도 들어내야 하는 (상담사로 존재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전화를 마음대로 끊을 수는 없습니다.

[민간 콜센터 노동자/익명 : "'고객님 계속 성희롱 하셔서 상담은 불가하여 정말 끊겠습니다'를, 세 번을 들어야지만, 욕설도 마찬가지고 (세 번) 들어야지만 (전화를 끊을 수 있어요.)"]

21년차 검침원 이기복 씨, 아직도 문을 두드릴 땐 두렵습니다.

[이기복/과장/전기 검침원 : "(연체되신 분은) 그 상황이 너무 기분이 안 좋으니까 계량기를 부셔 버리는…."]

["이 개**야 왜 만 사천 팔백팔십원이 나왔는지. 갖고 오라고. 내가 가지러갈까?"]

[조한남/지점장/녹취 당사자 : "(민원 전화 중) 술 마셨을 때가 거의 한 반 정도 됐던 것 같습니다. (다음에 전화 받기) 망설여지기도 하고, 언제 올까 노심초사하는 경우도 있었고."]

고객의 반복되는 폭언에도.

["할아버지도 잘 찾아왔는데 니가 왜 못찾아와! 자꾸 잘한 거지 잘한거냐고, **? 잘한거냐고?"]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이 할 수 있는 건 마땅치 않습니다.

[배달 노동자/녹취 당사자 : "고객센터 답변은 그냥 고객한테 원칙을 고수해라. 당신 할 일은 음식 갖다 주면 되는 거다. 그거 외에 더 해줄 말이 없다."]

최근 조사에서 직장인 10명 중 6명은 회사가 민원인 갑질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지 않는다고 답했고, 10명 중 3명은 아예 보호법이 있는지도 몰랐다고 답했습니다.

KBS 뉴스 배지현입니다.

[앵커]

이 문제 취재한 배지현 기자 나와 있습니다.

감정 노동자들의 고통과 스트레스가 고스란히 느껴지는데, 만나보니 힘들어들 하시죠?

[기자]

리포트에서 '망치 들고 쫓아간다'는 말을 들은 콜센터 직원분은 일시적으로 앞이 보이지 않았다고 하세요.

폭언 스트레스가 그만큼 심한 겁니다.

충격적인 내용들이지만, 이 녹음을 들은 다른 직원들은 이 욕설, 협박들이 익숙하다고까지 했는데요.

그만큼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앵커]

또 하나 궁금한건, '욕설이든 성희롱이든 세 번을 들어야 끊을 수 있다' 삼진아웃 부분.

저렇게 심하게 말하면 한 번만 들어도 끊을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닐까요?

[기자]

그게 직원분들이 이구동성으로 지적한 부분이었습니다.

대개 사업장의 메뉴얼에는 폭언이 반복돼야 응대를 멈출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관리자의 판단에 따라 전화를 끊을 수 있게 하고 있고요.

또 관리자가 '경고 메시지 말해도 된다'고 승인을 해줘야 고객에게 주의를 줄 수 있습니다.

마트나 백화점 직원이나 배달 라이더 같은 현장직들은 아예 무방비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앵커]

현장에선 왜 변화를 체감하기 힘들다는 걸까요?

[기자]

법에 과태료나 벌칙 조항이 있긴 하지만, 일이 발생한 뒤에,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은 사업주 처벌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됩니다.

[김종진/일하는시민연구소·유니온센터 이사장 : "사전적 예방 조치를 적극적으로 하고 사후적 관리를 보완적으로 해야 되는데 기업과 회사들은 법은 시행됐는데 마지 못해, 그리고 어쩔 수 없이, 그리고 해야 되니까 라는 소극적 의미로 하고 있는 거죠."]

[앵커]

앞으로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기자]

감정노동자는 계속 늘어나는 추세로 천만 명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는데요.

보호법이 그간 생소했던 '감정 노동'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면, 앞으로는 어떻게 법의 실효성을 높일지 고민해야할 때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망치 들고 쫓아간다”…감정노동자 보호법 5년 현장은?
    • 입력 2023-10-18 21:35:00
    • 수정2023-10-18 22:02:32
    뉴스 9
[앵커]

누군가에게 콜센터는 "총알을 맞는 것 같은" 장소입니다.

수화기 너머 쏟아지는 험악한 말들이 총알처럼 마음에 박힌다는 겁니다.

콜센터를 비롯해 감정노동자에게 고통주지 말자고 법 만들어 시행한지 5년입니다.

그 동안 얼마나 달라졌는지 배지현 기자가 현장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콜센터 직원들에게 폭언은 여전히 일상입니다.

["아까 전에 ** 바로 전화하라고 해. 무슨 일이 있어도 전화하라 그래. 지금 바로 당장. 소송 걸 거니까. (선생님 죄송합니다만 제가) 아 입닥쳐 ** 진짜!"]

흉기 같은 말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다 보면, 깊은 무기력에 빠집니다.

[민간 콜센터 노동자/익명 : "너 어디서 일하는지 안다. 너 콜센터, 망치 들고 쫓아가서 너 머리 깰 거다..."]

[김현주/민간 콜센터 노동자 : "(전화 상으로 저렇게 욕을 할 때) 그 사람과 저만 있는 공간에서 한없이 저희는 약자이고, 그리고 어떤 말도 들어내야 하는 (상담사로 존재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전화를 마음대로 끊을 수는 없습니다.

[민간 콜센터 노동자/익명 : "'고객님 계속 성희롱 하셔서 상담은 불가하여 정말 끊겠습니다'를, 세 번을 들어야지만, 욕설도 마찬가지고 (세 번) 들어야지만 (전화를 끊을 수 있어요.)"]

21년차 검침원 이기복 씨, 아직도 문을 두드릴 땐 두렵습니다.

[이기복/과장/전기 검침원 : "(연체되신 분은) 그 상황이 너무 기분이 안 좋으니까 계량기를 부셔 버리는…."]

["이 개**야 왜 만 사천 팔백팔십원이 나왔는지. 갖고 오라고. 내가 가지러갈까?"]

[조한남/지점장/녹취 당사자 : "(민원 전화 중) 술 마셨을 때가 거의 한 반 정도 됐던 것 같습니다. (다음에 전화 받기) 망설여지기도 하고, 언제 올까 노심초사하는 경우도 있었고."]

고객의 반복되는 폭언에도.

["할아버지도 잘 찾아왔는데 니가 왜 못찾아와! 자꾸 잘한 거지 잘한거냐고, **? 잘한거냐고?"]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이 할 수 있는 건 마땅치 않습니다.

[배달 노동자/녹취 당사자 : "고객센터 답변은 그냥 고객한테 원칙을 고수해라. 당신 할 일은 음식 갖다 주면 되는 거다. 그거 외에 더 해줄 말이 없다."]

최근 조사에서 직장인 10명 중 6명은 회사가 민원인 갑질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지 않는다고 답했고, 10명 중 3명은 아예 보호법이 있는지도 몰랐다고 답했습니다.

KBS 뉴스 배지현입니다.

[앵커]

이 문제 취재한 배지현 기자 나와 있습니다.

감정 노동자들의 고통과 스트레스가 고스란히 느껴지는데, 만나보니 힘들어들 하시죠?

[기자]

리포트에서 '망치 들고 쫓아간다'는 말을 들은 콜센터 직원분은 일시적으로 앞이 보이지 않았다고 하세요.

폭언 스트레스가 그만큼 심한 겁니다.

충격적인 내용들이지만, 이 녹음을 들은 다른 직원들은 이 욕설, 협박들이 익숙하다고까지 했는데요.

그만큼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앵커]

또 하나 궁금한건, '욕설이든 성희롱이든 세 번을 들어야 끊을 수 있다' 삼진아웃 부분.

저렇게 심하게 말하면 한 번만 들어도 끊을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닐까요?

[기자]

그게 직원분들이 이구동성으로 지적한 부분이었습니다.

대개 사업장의 메뉴얼에는 폭언이 반복돼야 응대를 멈출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관리자의 판단에 따라 전화를 끊을 수 있게 하고 있고요.

또 관리자가 '경고 메시지 말해도 된다'고 승인을 해줘야 고객에게 주의를 줄 수 있습니다.

마트나 백화점 직원이나 배달 라이더 같은 현장직들은 아예 무방비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앵커]

현장에선 왜 변화를 체감하기 힘들다는 걸까요?

[기자]

법에 과태료나 벌칙 조항이 있긴 하지만, 일이 발생한 뒤에,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은 사업주 처벌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됩니다.

[김종진/일하는시민연구소·유니온센터 이사장 : "사전적 예방 조치를 적극적으로 하고 사후적 관리를 보완적으로 해야 되는데 기업과 회사들은 법은 시행됐는데 마지 못해, 그리고 어쩔 수 없이, 그리고 해야 되니까 라는 소극적 의미로 하고 있는 거죠."]

[앵커]

앞으로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기자]

감정노동자는 계속 늘어나는 추세로 천만 명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는데요.

보호법이 그간 생소했던 '감정 노동'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면, 앞으로는 어떻게 법의 실효성을 높일지 고민해야할 때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