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 가도 남는 장사?…한 푼도 안 남긴다”

입력 2023.10.2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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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제주시에서 돼지고기 식품업체를 운영하던 A 씨는 원산지를 허위로 표시했다가 자신이 소유한 신축 건물을 국가에 빼앗길 위기에 처했습니다. 어떻게 된 걸까요?

제주경찰청에 따르면 A 씨는 2020년 2월부터 2022년 9월까지 다른 지역에서 도축된 돼지를 제주로 들여온 뒤, 원산지를 '제주산'으로 허위 표시해 전국의 식당과 가공업체 등에 유통했다가 경찰에 적발됐습니다.

약 2년 반 동안의 범행으로 수억 원을 벌어들인 A 씨는 제주시에 신축 건물까지 소유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장부 정리를 하지 않아 범죄 수익금이 얼마나 되는지 특정하기 어려웠습니다.

이에 제주경찰청 범죄수익추적수사팀은 A 씨의 업체에 도축된 돼지를 공급한 업체로부터 판매 물량을 확보한 뒤, 축협을 통해 시기별 시세를 일일이 대입해 유통 금액을 추산했습니다.

이렇게 확인된 범죄 수익금만 13억 원. 경찰은 A 씨가 소유한 건물에서 13억 원 상당의 가압류를 걸었습니다.

범죄로 벌어들인 수익을 남김없이 환수해 '경제적 이득'이라는 범죄 동기 요소를 박탈하고, 재범 의지를 차단하는 겁니다.

■ "경찰 수사는 끝나도 범죄수익 추적은 계속"


실제로 경제 범죄는 범죄자가 취득하는 막대한 경제적 이득에 비해 형사처벌 수위가 낮아 재범률이 높습니다. 이 때문에 '감옥에 가도 남는 장사'라는 인식이 있습니다.

이에 제주경찰청은 2021년 2월부터 '범죄수익추적수사팀'을 신설해 '기소 전 몰수·추징 보전' 업무를 맡도록 했습니다.

법원의 유죄 판결 전 범죄자들이 재산을 처분하거나 은닉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경찰 수사 단계에서부터 재산을 몰수하거나 추징해 보전하는 겁니다.

향후 법원의 판결에 따라 몰수·추징 명령이 내려지면, 검찰이 명령을 집행해 국고로 환수하거나 피해자에게 변제하게 됩니다.

김준행 제주경찰청 범죄수익추적팀장이 범죄 판례 등을 찾아보는 모습.김준행 제주경찰청 범죄수익추적팀장이 범죄 판례 등을 찾아보는 모습.

3년간 범죄수익추적수사팀을 이끌어온 김준행 팀장은 "과거에는 피의자 검거나 사건의 신속한 처리에 초점이 맞춰졌지만, 최근에는 피해 회복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수사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 팀장은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으로 원산지를 허위 표시한 돼지고기 식품업체 추징 건을 꼽으며 "6개월간 다른 지역 보급 업체까지 뒤지며 수익금 특정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만큼 보람도 컸다"고 말했습니다.

■ 3년간 '58억여 원' 보전…"단 1원도 범죄자에게 가지 않도록"

제주경찰청 범죄수익추적수사팀. 사진 왼쪽부터 문동민 경위, 김준행 팀장, 성희주 경위.제주경찰청 범죄수익추적수사팀. 사진 왼쪽부터 문동민 경위, 김준행 팀장, 성희주 경위.

현재 제주경찰청 범죄수익추적수사팀은 김 팀장을 비롯해 문동민 경위와 성희주 경위·이정민 경장까지 4명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회계 특채로 팀에 합류한 이정민 경장은 "서민들은 힘들게 돈을 버는데, 범죄자들은 너무 쉽게 단기간에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것을 보고 화가 났다"며 "어차피 뺏길 돈이라는 걸 알려주고 싶어서 저를 갈아 넣어서 수사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들의 노력은 실제 성과로 나타났습니다. 2021년 14건·33억 7,000만 원의 범죄수익을 보전한 것을 시작으로 지난해에는 41건·8억 1,000만 원, 올해 들어 9월까지 19건·16억 7,000만 원 등 최근 3년간 74건의 범죄수익 58억 5,000만 원을 보전했습니다.

회계 특채인 이정민 경장이 회계 분석을 하고 있는 모습.회계 특채인 이정민 경장이 회계 분석을 하고 있는 모습.

이 가운데 잘 알려진 사건 중 하나가 성매매를 알선한 서귀포의 한 호텔 건물을 몰수한 겁니다.

이 호텔 업주는 유흥업소 업주와 짜고 2019년 11월부터 2020년 4월까지 6개월간 성매매 장소를 제공한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는데, 경찰은 관련 법에 따라 성매매 행위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 범죄에 제공된 11억 원 상당의 건물을 빼앗기로 했습니다.

또, 도내 모 유명 온라인 게임사에서 '민원 해결' 위탁 업무를 맡던 업체 직원이 관리자 계정으로 접속해 벌어들인 '게임 아이템' 수익 47억 원 가량도 추징해 보전한 적도 있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미얀마 현지에 사무실을 두고 불법 스포츠 도박 사이트를 운영한 피의자들로부터 부동산과 가상 화폐 등 14억 원 상당의 범죄 수익을 추징하기도 했습니다.

김준행 팀장은 "진화하는 범죄수익 은닉 행위에 대응하기 위해 전문 역량을 지속적으로 강화할 계획"이라며 "단 1원의 범죄수익도 범죄자에게 귀속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면서 "범죄로 벌어들인 수익을 남김없이 환수하는 것은 발생한 범죄에 대한 엄정한 제재임과 동시에 향후 발생할 범죄를 근절하는 실효적 방안"이라며 "엄정한 수사로 경찰 수사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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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0-22 07: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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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제주시에서 돼지고기 식품업체를 운영하던 A 씨는 원산지를 허위로 표시했다가 자신이 소유한 신축 건물을 국가에 빼앗길 위기에 처했습니다. 어떻게 된 걸까요?

제주경찰청에 따르면 A 씨는 2020년 2월부터 2022년 9월까지 다른 지역에서 도축된 돼지를 제주로 들여온 뒤, 원산지를 '제주산'으로 허위 표시해 전국의 식당과 가공업체 등에 유통했다가 경찰에 적발됐습니다.

약 2년 반 동안의 범행으로 수억 원을 벌어들인 A 씨는 제주시에 신축 건물까지 소유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장부 정리를 하지 않아 범죄 수익금이 얼마나 되는지 특정하기 어려웠습니다.

이에 제주경찰청 범죄수익추적수사팀은 A 씨의 업체에 도축된 돼지를 공급한 업체로부터 판매 물량을 확보한 뒤, 축협을 통해 시기별 시세를 일일이 대입해 유통 금액을 추산했습니다.

이렇게 확인된 범죄 수익금만 13억 원. 경찰은 A 씨가 소유한 건물에서 13억 원 상당의 가압류를 걸었습니다.

범죄로 벌어들인 수익을 남김없이 환수해 '경제적 이득'이라는 범죄 동기 요소를 박탈하고, 재범 의지를 차단하는 겁니다.

■ "경찰 수사는 끝나도 범죄수익 추적은 계속"


실제로 경제 범죄는 범죄자가 취득하는 막대한 경제적 이득에 비해 형사처벌 수위가 낮아 재범률이 높습니다. 이 때문에 '감옥에 가도 남는 장사'라는 인식이 있습니다.

이에 제주경찰청은 2021년 2월부터 '범죄수익추적수사팀'을 신설해 '기소 전 몰수·추징 보전' 업무를 맡도록 했습니다.

법원의 유죄 판결 전 범죄자들이 재산을 처분하거나 은닉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경찰 수사 단계에서부터 재산을 몰수하거나 추징해 보전하는 겁니다.

향후 법원의 판결에 따라 몰수·추징 명령이 내려지면, 검찰이 명령을 집행해 국고로 환수하거나 피해자에게 변제하게 됩니다.

김준행 제주경찰청 범죄수익추적팀장이 범죄 판례 등을 찾아보는 모습.
3년간 범죄수익추적수사팀을 이끌어온 김준행 팀장은 "과거에는 피의자 검거나 사건의 신속한 처리에 초점이 맞춰졌지만, 최근에는 피해 회복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수사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 팀장은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으로 원산지를 허위 표시한 돼지고기 식품업체 추징 건을 꼽으며 "6개월간 다른 지역 보급 업체까지 뒤지며 수익금 특정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만큼 보람도 컸다"고 말했습니다.

■ 3년간 '58억여 원' 보전…"단 1원도 범죄자에게 가지 않도록"

제주경찰청 범죄수익추적수사팀. 사진 왼쪽부터 문동민 경위, 김준행 팀장, 성희주 경위.
현재 제주경찰청 범죄수익추적수사팀은 김 팀장을 비롯해 문동민 경위와 성희주 경위·이정민 경장까지 4명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회계 특채로 팀에 합류한 이정민 경장은 "서민들은 힘들게 돈을 버는데, 범죄자들은 너무 쉽게 단기간에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것을 보고 화가 났다"며 "어차피 뺏길 돈이라는 걸 알려주고 싶어서 저를 갈아 넣어서 수사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들의 노력은 실제 성과로 나타났습니다. 2021년 14건·33억 7,000만 원의 범죄수익을 보전한 것을 시작으로 지난해에는 41건·8억 1,000만 원, 올해 들어 9월까지 19건·16억 7,000만 원 등 최근 3년간 74건의 범죄수익 58억 5,000만 원을 보전했습니다.

회계 특채인 이정민 경장이 회계 분석을 하고 있는 모습.
이 가운데 잘 알려진 사건 중 하나가 성매매를 알선한 서귀포의 한 호텔 건물을 몰수한 겁니다.

이 호텔 업주는 유흥업소 업주와 짜고 2019년 11월부터 2020년 4월까지 6개월간 성매매 장소를 제공한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는데, 경찰은 관련 법에 따라 성매매 행위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 범죄에 제공된 11억 원 상당의 건물을 빼앗기로 했습니다.

또, 도내 모 유명 온라인 게임사에서 '민원 해결' 위탁 업무를 맡던 업체 직원이 관리자 계정으로 접속해 벌어들인 '게임 아이템' 수익 47억 원 가량도 추징해 보전한 적도 있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미얀마 현지에 사무실을 두고 불법 스포츠 도박 사이트를 운영한 피의자들로부터 부동산과 가상 화폐 등 14억 원 상당의 범죄 수익을 추징하기도 했습니다.

김준행 팀장은 "진화하는 범죄수익 은닉 행위에 대응하기 위해 전문 역량을 지속적으로 강화할 계획"이라며 "단 1원의 범죄수익도 범죄자에게 귀속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면서 "범죄로 벌어들인 수익을 남김없이 환수하는 것은 발생한 범죄에 대한 엄정한 제재임과 동시에 향후 발생할 범죄를 근절하는 실효적 방안"이라며 "엄정한 수사로 경찰 수사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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