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두순은 어디에 살게 해야 할까?’…한국형 제시카법의 딜레마

입력 2023.10.24 (18:14) 수정 2023.10.24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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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가 이른바 '한국형 제시카법' 도입 방침을 밝혔습니다.

이른바 '고위험 성범죄자'를 전자장치 부착 기간 동안 국가나 지자체, 공공기관 등이 운영하는 지정 시설에 거주하도록 강제하겠다는 게 핵심 내용입니다.

오늘(24일) 입법예고된 '고위험 성폭력범죄자의 거주지 제한 등에 관한 법률안' 등 제·개정안의 주요 내용을 살펴봤습니다.

■ 격리 대상은 '고위험 성폭력범죄자'…어느 정도여야?

법안은 격리 대상으로 '고위험 성폭력범죄자'를 새롭게 정의하고 있는데, 아래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는 범죄자가 여기 포함됩니다.

△13세 미만 아동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르거나, 3회 이상 성폭력 범죄를 저질러 그 습관이 인정되는 사람일 것
△성폭력범죄로 10년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받았을 것
△전자장치 부착명령 판결·결정을 선고받았을 것

법무부가 집계한 고위험 성폭력 범죄자는 현재 300명 수준입니다.

보호관찰소장은 이들 가운데 형 집행 중이어서 출소하지 않았거나, 이미 출소해 전자장치 부착명령 기간 중인 고위험 성폭력범죄자를 대상으로 검사에게 거주지 제한명령 청구를 신청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동의한 사람을 대상으로 약물 치료를 병행할 수 있습니다. 이후 검사가 범죄경력, 재범 위험성 등을 고려해 법원에 이를 청구하게 되는 구조입니다.

최종적으로는 관할 법원이 고위험 성폭력범죄자의 거주를 제한할지 결정하게 되는데, 전자장치 부착 기간이 종료될 때까지만 거주지를 제한할 수 있습니다.

법원이 거주지 제한을 결정하면 고위험 성폭력범죄자는 동거하는 가족이 있거나, 원래 살고 있는 다른 곳이 있더라도 이른바 '지정거주시설'에 들어가야 합니다.

국가, 지방자치단체 또는 공공기관이 설치·운영하고 법무부장관이 지정하는 곳인데, 법원 결정에 불복할 수는 있지만 거주지 제한 명령이 취소되기 전까진 시설에 머물러야 합니다.

시설에 머무는 비용은 고위험 성폭력범죄자가 자비로 부담하며, 돈이 없는 경우 국가가 부담합니다.


■ 문제는 인권 침해 우려…사회복귀 사실상 어려워

다만 특정 구역으로부터 거리 제한을 두는 '원본' 제시카법에서도 문제가 됐던 기본권 침해 우려는 여전합니다.

전과자들의 재사회화 역시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서 거주를 지나치게 제한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입니다. 사회복귀를 통한 재범 예방이라는 흐름을 방해할 수 있고, 더 강하게 사회에서 격리시키는 방법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이 될 수 있겠냐는 겁니다.

입법예고된 법안 역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고위험 성폭력범죄자의 원활한 사회 복귀를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제3조)'는 내용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국가나 지자체가 관리하는 지정거주시설은 혐오 시설로 분류돼 여러 군데 짓기 어려울 전망인데, 고위험 성범죄자의 원래 거주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거주시설이 지정된 경우에는 기존의 직장 유지가 불가능할 여지가 있어 보입니다.

또 실거주 확인 목적으로 거주지 안에 언제든 보호관찰관이 출입하는 것을 감수해야 하고, 1일 이상 출장, 여행, 출국 등으로 거주지를 벗어나려 하는 경우엔 보호관찰소장의 허가를 반드시 받아야 합니다.

특히 거주지 제한은 형벌이 아닌 '보안처분'에 해당해 이중 처벌에 해당되진 않는다지만, 기본권에 사실상의 불이익을 가하는 만큼 논란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입니다.

법무부 관계자는 그러나 "여러 다른 제도와 비교해볼 때 헌법의 근본적 가치를 훼손시킬 정도의 과도한 제한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 '혐오시설 중 혐오시설' 어디 지을까 …법무부는 묵묵부답

특히 고양이 목에 누가 방울을 달 것인지, 현실적인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혐오시설 중 혐오시설'로 꼽힐 이 지정거주시설을 어디 짓느냐입니다.

법무부도 이 문제의 민감성을 고려한 듯 "지금 단계에서 어디에 설치하겠다고 하면 대책에 대한 논의가 많이 왜곡될 수 있을 것 같다"며 시설 설치 후보 지역은 함구했습니다.

아울러 법무부 관계자는 "이 법은 법안 통과 시 부칙을 보면 상당 기간 유예 기간을 두고 있다"며 "기존 시설 등을 이용하는 방안을 폭넓게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입법예고된 '고위험 성폭력범죄자의 거주지 제한 등에 관한 법률안' 부칙은 이 법의 시행일을 '공포 후 6개월이 경과한 날부터 공포 후 2년이 넘지 않는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고위험 성범죄자를 관리해야 하는 보호관찰관 역량도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보호관찰관 1명이 관리해야 하는 관리 인원 수는 지난해 102명 정도로, OECD 국가 평균(27.3명)의 네 배 수준입니다.

법안은 고위험 성범죄자 1명당 전담 보호관찰관을 지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지만(제14조 제2항), 현실적으로 가능할지는 의문입니다.

법무부는 이에 대해 "충분한 예산과 인력 증원이 필요한 제도이고, 충원을 위한 예산은 명분이 있다고 본다"고 밝혔습니다.

백인성 법조전문기자·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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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가 이른바 '한국형 제시카법' 도입 방침을 밝혔습니다.

이른바 '고위험 성범죄자'를 전자장치 부착 기간 동안 국가나 지자체, 공공기관 등이 운영하는 지정 시설에 거주하도록 강제하겠다는 게 핵심 내용입니다.

오늘(24일) 입법예고된 '고위험 성폭력범죄자의 거주지 제한 등에 관한 법률안' 등 제·개정안의 주요 내용을 살펴봤습니다.

■ 격리 대상은 '고위험 성폭력범죄자'…어느 정도여야?

법안은 격리 대상으로 '고위험 성폭력범죄자'를 새롭게 정의하고 있는데, 아래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는 범죄자가 여기 포함됩니다.

△13세 미만 아동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르거나, 3회 이상 성폭력 범죄를 저질러 그 습관이 인정되는 사람일 것
△성폭력범죄로 10년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받았을 것
△전자장치 부착명령 판결·결정을 선고받았을 것

법무부가 집계한 고위험 성폭력 범죄자는 현재 300명 수준입니다.

보호관찰소장은 이들 가운데 형 집행 중이어서 출소하지 않았거나, 이미 출소해 전자장치 부착명령 기간 중인 고위험 성폭력범죄자를 대상으로 검사에게 거주지 제한명령 청구를 신청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동의한 사람을 대상으로 약물 치료를 병행할 수 있습니다. 이후 검사가 범죄경력, 재범 위험성 등을 고려해 법원에 이를 청구하게 되는 구조입니다.

최종적으로는 관할 법원이 고위험 성폭력범죄자의 거주를 제한할지 결정하게 되는데, 전자장치 부착 기간이 종료될 때까지만 거주지를 제한할 수 있습니다.

법원이 거주지 제한을 결정하면 고위험 성폭력범죄자는 동거하는 가족이 있거나, 원래 살고 있는 다른 곳이 있더라도 이른바 '지정거주시설'에 들어가야 합니다.

국가, 지방자치단체 또는 공공기관이 설치·운영하고 법무부장관이 지정하는 곳인데, 법원 결정에 불복할 수는 있지만 거주지 제한 명령이 취소되기 전까진 시설에 머물러야 합니다.

시설에 머무는 비용은 고위험 성폭력범죄자가 자비로 부담하며, 돈이 없는 경우 국가가 부담합니다.


■ 문제는 인권 침해 우려…사회복귀 사실상 어려워

다만 특정 구역으로부터 거리 제한을 두는 '원본' 제시카법에서도 문제가 됐던 기본권 침해 우려는 여전합니다.

전과자들의 재사회화 역시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서 거주를 지나치게 제한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입니다. 사회복귀를 통한 재범 예방이라는 흐름을 방해할 수 있고, 더 강하게 사회에서 격리시키는 방법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이 될 수 있겠냐는 겁니다.

입법예고된 법안 역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고위험 성폭력범죄자의 원활한 사회 복귀를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제3조)'는 내용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국가나 지자체가 관리하는 지정거주시설은 혐오 시설로 분류돼 여러 군데 짓기 어려울 전망인데, 고위험 성범죄자의 원래 거주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거주시설이 지정된 경우에는 기존의 직장 유지가 불가능할 여지가 있어 보입니다.

또 실거주 확인 목적으로 거주지 안에 언제든 보호관찰관이 출입하는 것을 감수해야 하고, 1일 이상 출장, 여행, 출국 등으로 거주지를 벗어나려 하는 경우엔 보호관찰소장의 허가를 반드시 받아야 합니다.

특히 거주지 제한은 형벌이 아닌 '보안처분'에 해당해 이중 처벌에 해당되진 않는다지만, 기본권에 사실상의 불이익을 가하는 만큼 논란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입니다.

법무부 관계자는 그러나 "여러 다른 제도와 비교해볼 때 헌법의 근본적 가치를 훼손시킬 정도의 과도한 제한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 '혐오시설 중 혐오시설' 어디 지을까 …법무부는 묵묵부답

특히 고양이 목에 누가 방울을 달 것인지, 현실적인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혐오시설 중 혐오시설'로 꼽힐 이 지정거주시설을 어디 짓느냐입니다.

법무부도 이 문제의 민감성을 고려한 듯 "지금 단계에서 어디에 설치하겠다고 하면 대책에 대한 논의가 많이 왜곡될 수 있을 것 같다"며 시설 설치 후보 지역은 함구했습니다.

아울러 법무부 관계자는 "이 법은 법안 통과 시 부칙을 보면 상당 기간 유예 기간을 두고 있다"며 "기존 시설 등을 이용하는 방안을 폭넓게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입법예고된 '고위험 성폭력범죄자의 거주지 제한 등에 관한 법률안' 부칙은 이 법의 시행일을 '공포 후 6개월이 경과한 날부터 공포 후 2년이 넘지 않는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고위험 성범죄자를 관리해야 하는 보호관찰관 역량도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보호관찰관 1명이 관리해야 하는 관리 인원 수는 지난해 102명 정도로, OECD 국가 평균(27.3명)의 네 배 수준입니다.

법안은 고위험 성범죄자 1명당 전담 보호관찰관을 지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지만(제14조 제2항), 현실적으로 가능할지는 의문입니다.

법무부는 이에 대해 "충분한 예산과 인력 증원이 필요한 제도이고, 충원을 위한 예산은 명분이 있다고 본다"고 밝혔습니다.

백인성 법조전문기자·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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