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야오 감독은 진짜 잔소리를 했을까…먼저 본 ‘그대들’ 감상은?
입력 2023.10.25 (06:00)
수정 2023.10.25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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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신작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가 오늘(25일) 개봉합니다. 이미 사전 예매로 어젯밤 기준 27만 명 넘는 이들의 선택을 받으며, 높은 관심을 증명하고 있는데요. 영화 개봉 첫날인 오늘, 개인 감상을 비롯해 몇 가지 이야기를 전합니다.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있으며, 작품을 제작한 스튜디오 지브리의 스즈키 토시오 프로듀서가 직접 설명하는 영화 내용은 아래 동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연관 기사] 미야자키 하야오, 돌아오다…“이번 작품의 최종 테마는 ‘친구’”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800779
■ 제목, 알고 보면 낚시? …'잔소리' 보다는 '자전적' 이야기
우선, 이번 작품에서 가장 화제가 된 것은 독특한 제목일 겁니다.
주인공 '아시타카'의 대사를 통해 '살아라'는 강렬한 메시지를 전했던 '모노노케 히메'(1997) 이후, 무려 26년만에 미야자키 감독이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답을 내놓았으리라는 기대를 품게 하는 제목이었습니다.
온라인에서도 '미야자키 할아버지의 잔소리가 기대된다'는 반응을 비롯해 미야자키 감독이 깨달은 인생의 진리나 방향에 대한 내용이 담겼을 거라는 추측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본 영화는 남들을 향해 '어떻게 살아라'고 가르친다기보다, '나는 이렇게 살아왔다'에 가까웠습니다. 조금 더 풀어쓰자면, 나는 어떻게 애니메이션 영화에 발을 들였고, 평생 무엇을 그려왔는지에 대해 미야자키 감독다운 방식으로 설명하는 영화입니다.
많이 알려진 것처럼, 주인공 마히토의 설정은 미야자키 감독의 유년 시절과 흡사합니다. 군수공장 경영자였던 아버지와 유복한 가정 환경, 그러나 내면은 상당히 어두운 소년이었던 점 등 자전적 요소를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스튜디오 지브리 사람들에 대한 묘사도 숨어 있습니다. 마히토를 이세계로 이끄는 왜가리는 스즈키 토시오 프로듀서를 묘사한 것이고, 신비한 탑의 주인 '큰할아버지'는 미야자키 감독을 애니메이션의 세계에서 이끌어 준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입니다. 30년간 지브리의 색채 설계를 담당했던 야스다 미치요(2016년 별세)를 포함해 애니메이터들도 모습을 비칩니다.
대놓고 세계관이 연결되는 건 아니지만, 감독의 전작이 연상되는 부분도 많습니다. 예고편에도 등장하는 '와라와라'의 생김새에선 '모노노케 히메'의 '코다마'가 떠오르고, 저택의 살림을 책임지는 할머니들에게선 '붉은 돼지'나 '벼랑 위의 포뇨' 등에서 만난 할머니 캐릭터가 연상되는 식입니다.
이세계 자체가 스튜디오 지브리를 빗댔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그대들' 제작 도중 세상을 떠난 지브리의 공동 창립자 타카하타 감독처럼, 탑의 주인 '큰할아버지'는 자신의 세계가 이제 끝나간다고 고백합니다. 또 한편으론 큰할아버지를 몰아내고 왕좌를 차지하려는 모의가 진행되죠. 안팎으로 위기에 처한 이세계의 모습은 마땅한 후계자를 찾지 못한 데다 최근 니혼TV 측에 경영권을 넘긴 지브리의 현실을 비추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 살아있다는 건, 움직인다는 것…평생을 매달린 '애니메이션'의 세계
그렇지만 가장 압도적으로 느껴지는 건 미야자키 감독이 품은 애니메이션에 대한 열정입니다. 미야자키 감독이 평생에 걸쳐 매달려 온 '움직임' 그 자체에 대한 탐구와 애정이, 무서울 정도로 표현돼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마감을 정해 놓고 작업에 임하는 여타 애니메이션 영화와 달리, 이번 작업에서 미야자키 감독은 작업 기한을 정하지 않았습니다. 5년이 걸리든 10년이 걸리든,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걸 전부 하겠다는 각오였다고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일본 최고의 애니메이터로 꼽히는 혼다 다케시 감독을 포함해 20~30명이 달려들어 일절 CG 없이 손 그림으로 그려낸 장면들은 그야말로 압도적입니다. 심지어 초반의 화재 장면 같은 경우, 제작 기간 내내 그리다시피 했다고 합니다.
[연관 기사] ‘그대들’ 작화 감독 “모든 장면 어려웠지만, 만족도는 100%”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800780
'슥' 베어낸 무언가에서, 내용물이 '꿀렁'대며 '주르륵' 흘러나오는 모습. 아주 얇은 종이 수천 개가 일제히 '파닥파닥' 나부끼는 맹렬함. 심지어 멀리 배경에 그려진 산등성이마저 멈춰 있지 않습니다. 어두운 밤하늘을 배경으로, 마치 숨 쉬듯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립니다.
단 1초라도 화면 안에 움직임이 담기지 않은 순간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흩어지고 일렁대고 튀고 날아오르는, 갖가지 묘사가 시시각각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저는, 이런 영상 자체가 이번 '그대들'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내용을 떠나 영상미만으로도 볼 가치가 있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셀 애니메이션에 장인 정신을 담아 구현해 낸 온갖 '움직임'이야말로, 미야자키 감독이 말하려고 한 작품의 주제라는 생각입니다.
지브리 미술관에는 애니메이터가 갖춰야 하는 소양에 대한 하야오의 생각이 쓰여 있습니다. '손이 느린 사람은 안 된다' 등의 내용이 담긴 짧은 문장이지만, 이 문장에서 하야오는 힘주어 말합니다. '애니메이터에게 가장 중요한 건 생명에 대한 애정'이라고요.
생명이란 무엇일까요. '살아있다'는 건 곧 '움직인다'는 뜻입니다. 겉보기에는 움직이지 않는 나무나 이끼라고 해도, 그 안에서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미야자키 감독은 중요한 건 '상상'이 아니라 '관찰'이라는 엄격한 예술관을 유지하며, 이러한 생명의 움직임을 생생하게 포착하는 데 평생을 매진해 온 사람입니다. 자신의 말마따나 애정이 없으면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곧, 멈춰있는 그림(원화)을 움직이게 만드는 애니메이션 작업 자체가, 어찌 보면 무생물에 생명을 깃들게 하는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원이 된 라틴 단어 '아니마(anima)'부터가 생명을 뜻합니다.
감히 따라 하고 싶어도 따라 하지 못할 영상을 통해, 하야오는 자신이 애니메이터로 추구하고자 했던 게 무엇인지 설명을 이미 끝낸 게 아닐까요. 화면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애니메이션의 세계에 대한 매혹과 찬탄을 동시에 드러내면서요. 생명을 사랑한다는 것, 세상을 사랑한다는 것, 애니메이션을 사랑한다는 것. 이 모든 것이 미야자키 감독에게는 같은 의미였을지 모릅니다.
영화 말미, '큰할아버지'는 "너만의 탑을 쌓아 가거라. 풍요롭고 평화로우며 아름다운 세계를 만들거라"는 메시지를 주인공 마히토에게 전합니다. 이는 젊은 시절 타카하타 이사오에게 미야자키 하야오 자신이 받은 가르침일 수 있겠지만, 이제는 백발 노장이 된 미야자키 감독이 후배 애니메이터들과 관객들에게 건네는 이야기일수도 있을 겁니다. 애니메이션을 통해서라면 어떤 세계도 만들 수 있으며, 나는 한평생 이런 세계를 그려 왔노라는 자기 고백 말이죠.
결국, 내용의 호불호는 갈릴지언정 '그대들'이 미야자키 감독이 내놓은 가장 자전적인 작품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을 듯합니다. 넘치는 에너지와 상상력으로, 미야자키 감독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만드는 작품이기도 하고요. 여러분의 감상이 궁금해집니다.
[연관 기사] 미야자키 하야오, 돌아오다…“이번 작품의 최종 테마는 ‘친구’”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800779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한 장면. 주인공 ‘마히토’(왼쪽)는 수상한 왜가리(오른쪽)를 만난다. 대원미디어 제공.
■ 제목, 알고 보면 낚시? …'잔소리' 보다는 '자전적' 이야기
우선, 이번 작품에서 가장 화제가 된 것은 독특한 제목일 겁니다.
주인공 '아시타카'의 대사를 통해 '살아라'는 강렬한 메시지를 전했던 '모노노케 히메'(1997) 이후, 무려 26년만에 미야자키 감독이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답을 내놓았으리라는 기대를 품게 하는 제목이었습니다.
온라인에서도 '미야자키 할아버지의 잔소리가 기대된다'는 반응을 비롯해 미야자키 감독이 깨달은 인생의 진리나 방향에 대한 내용이 담겼을 거라는 추측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본 영화는 남들을 향해 '어떻게 살아라'고 가르친다기보다, '나는 이렇게 살아왔다'에 가까웠습니다. 조금 더 풀어쓰자면, 나는 어떻게 애니메이션 영화에 발을 들였고, 평생 무엇을 그려왔는지에 대해 미야자키 감독다운 방식으로 설명하는 영화입니다.
주인공 ‘마히토’와 살림꾼 할머니들의 모습. 스튜디오 지브리의 여성 애니메이터들을 묘사했다. 대원미디어 제공.
많이 알려진 것처럼, 주인공 마히토의 설정은 미야자키 감독의 유년 시절과 흡사합니다. 군수공장 경영자였던 아버지와 유복한 가정 환경, 그러나 내면은 상당히 어두운 소년이었던 점 등 자전적 요소를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스튜디오 지브리 사람들에 대한 묘사도 숨어 있습니다. 마히토를 이세계로 이끄는 왜가리는 스즈키 토시오 프로듀서를 묘사한 것이고, 신비한 탑의 주인 '큰할아버지'는 미야자키 감독을 애니메이션의 세계에서 이끌어 준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입니다. 30년간 지브리의 색채 설계를 담당했던 야스다 미치요(2016년 별세)를 포함해 애니메이터들도 모습을 비칩니다.
대놓고 세계관이 연결되는 건 아니지만, 감독의 전작이 연상되는 부분도 많습니다. 예고편에도 등장하는 '와라와라'의 생김새에선 '모노노케 히메'의 '코다마'가 떠오르고, 저택의 살림을 책임지는 할머니들에게선 '붉은 돼지'나 '벼랑 위의 포뇨' 등에서 만난 할머니 캐릭터가 연상되는 식입니다.
이세계 자체가 스튜디오 지브리를 빗댔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그대들' 제작 도중 세상을 떠난 지브리의 공동 창립자 타카하타 감독처럼, 탑의 주인 '큰할아버지'는 자신의 세계가 이제 끝나간다고 고백합니다. 또 한편으론 큰할아버지를 몰아내고 왕좌를 차지하려는 모의가 진행되죠. 안팎으로 위기에 처한 이세계의 모습은 마땅한 후계자를 찾지 못한 데다 최근 니혼TV 측에 경영권을 넘긴 지브리의 현실을 비추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영화 속에서 가장 압도적 장면 중 하나였던 대목. 대원미디어 제공.
■ 살아있다는 건, 움직인다는 것…평생을 매달린 '애니메이션'의 세계
그렇지만 가장 압도적으로 느껴지는 건 미야자키 감독이 품은 애니메이션에 대한 열정입니다. 미야자키 감독이 평생에 걸쳐 매달려 온 '움직임' 그 자체에 대한 탐구와 애정이, 무서울 정도로 표현돼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마감을 정해 놓고 작업에 임하는 여타 애니메이션 영화와 달리, 이번 작업에서 미야자키 감독은 작업 기한을 정하지 않았습니다. 5년이 걸리든 10년이 걸리든,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걸 전부 하겠다는 각오였다고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일본 최고의 애니메이터로 꼽히는 혼다 다케시 감독을 포함해 20~30명이 달려들어 일절 CG 없이 손 그림으로 그려낸 장면들은 그야말로 압도적입니다. 심지어 초반의 화재 장면 같은 경우, 제작 기간 내내 그리다시피 했다고 합니다.
[연관 기사] ‘그대들’ 작화 감독 “모든 장면 어려웠지만, 만족도는 100%”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800780
'슥' 베어낸 무언가에서, 내용물이 '꿀렁'대며 '주르륵' 흘러나오는 모습. 아주 얇은 종이 수천 개가 일제히 '파닥파닥' 나부끼는 맹렬함. 심지어 멀리 배경에 그려진 산등성이마저 멈춰 있지 않습니다. 어두운 밤하늘을 배경으로, 마치 숨 쉬듯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립니다.
단 1초라도 화면 안에 움직임이 담기지 않은 순간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흩어지고 일렁대고 튀고 날아오르는, 갖가지 묘사가 시시각각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한 장면. 배경 묘사마저 애니메이션 효과가 들어갔다. 대원미디어 제공.
저는, 이런 영상 자체가 이번 '그대들'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내용을 떠나 영상미만으로도 볼 가치가 있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셀 애니메이션에 장인 정신을 담아 구현해 낸 온갖 '움직임'이야말로, 미야자키 감독이 말하려고 한 작품의 주제라는 생각입니다.
지브리 미술관에는 애니메이터가 갖춰야 하는 소양에 대한 하야오의 생각이 쓰여 있습니다. '손이 느린 사람은 안 된다' 등의 내용이 담긴 짧은 문장이지만, 이 문장에서 하야오는 힘주어 말합니다. '애니메이터에게 가장 중요한 건 생명에 대한 애정'이라고요.
생명이란 무엇일까요. '살아있다'는 건 곧 '움직인다'는 뜻입니다. 겉보기에는 움직이지 않는 나무나 이끼라고 해도, 그 안에서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미야자키 감독은 중요한 건 '상상'이 아니라 '관찰'이라는 엄격한 예술관을 유지하며, 이러한 생명의 움직임을 생생하게 포착하는 데 평생을 매진해 온 사람입니다. 자신의 말마따나 애정이 없으면 할 수 없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선배이자 동료였던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을 모델로 한 ‘큰할아버지’. 대원미디어 제공.
그리고 곧, 멈춰있는 그림(원화)을 움직이게 만드는 애니메이션 작업 자체가, 어찌 보면 무생물에 생명을 깃들게 하는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원이 된 라틴 단어 '아니마(anima)'부터가 생명을 뜻합니다.
감히 따라 하고 싶어도 따라 하지 못할 영상을 통해, 하야오는 자신이 애니메이터로 추구하고자 했던 게 무엇인지 설명을 이미 끝낸 게 아닐까요. 화면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애니메이션의 세계에 대한 매혹과 찬탄을 동시에 드러내면서요. 생명을 사랑한다는 것, 세상을 사랑한다는 것, 애니메이션을 사랑한다는 것. 이 모든 것이 미야자키 감독에게는 같은 의미였을지 모릅니다.
영화 말미, '큰할아버지'는 "너만의 탑을 쌓아 가거라. 풍요롭고 평화로우며 아름다운 세계를 만들거라"는 메시지를 주인공 마히토에게 전합니다. 이는 젊은 시절 타카하타 이사오에게 미야자키 하야오 자신이 받은 가르침일 수 있겠지만, 이제는 백발 노장이 된 미야자키 감독이 후배 애니메이터들과 관객들에게 건네는 이야기일수도 있을 겁니다. 애니메이션을 통해서라면 어떤 세계도 만들 수 있으며, 나는 한평생 이런 세계를 그려 왔노라는 자기 고백 말이죠.
결국, 내용의 호불호는 갈릴지언정 '그대들'이 미야자키 감독이 내놓은 가장 자전적인 작품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을 듯합니다. 넘치는 에너지와 상상력으로, 미야자키 감독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만드는 작품이기도 하고요. 여러분의 감상이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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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야오 감독은 진짜 잔소리를 했을까…먼저 본 ‘그대들’ 감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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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3-10-25 06:00:11
- 수정2023-10-25 17:06:00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신작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가 오늘(25일) 개봉합니다. 이미 사전 예매로 어젯밤 기준 27만 명 넘는 이들의 선택을 받으며, 높은 관심을 증명하고 있는데요. 영화 개봉 첫날인 오늘, 개인 감상을 비롯해 몇 가지 이야기를 전합니다.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있으며, 작품을 제작한 스튜디오 지브리의 스즈키 토시오 프로듀서가 직접 설명하는 영화 내용은 아래 동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연관 기사] 미야자키 하야오, 돌아오다…“이번 작품의 최종 테마는 ‘친구’”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800779
■ 제목, 알고 보면 낚시? …'잔소리' 보다는 '자전적' 이야기
우선, 이번 작품에서 가장 화제가 된 것은 독특한 제목일 겁니다.
주인공 '아시타카'의 대사를 통해 '살아라'는 강렬한 메시지를 전했던 '모노노케 히메'(1997) 이후, 무려 26년만에 미야자키 감독이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답을 내놓았으리라는 기대를 품게 하는 제목이었습니다.
온라인에서도 '미야자키 할아버지의 잔소리가 기대된다'는 반응을 비롯해 미야자키 감독이 깨달은 인생의 진리나 방향에 대한 내용이 담겼을 거라는 추측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본 영화는 남들을 향해 '어떻게 살아라'고 가르친다기보다, '나는 이렇게 살아왔다'에 가까웠습니다. 조금 더 풀어쓰자면, 나는 어떻게 애니메이션 영화에 발을 들였고, 평생 무엇을 그려왔는지에 대해 미야자키 감독다운 방식으로 설명하는 영화입니다.
많이 알려진 것처럼, 주인공 마히토의 설정은 미야자키 감독의 유년 시절과 흡사합니다. 군수공장 경영자였던 아버지와 유복한 가정 환경, 그러나 내면은 상당히 어두운 소년이었던 점 등 자전적 요소를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스튜디오 지브리 사람들에 대한 묘사도 숨어 있습니다. 마히토를 이세계로 이끄는 왜가리는 스즈키 토시오 프로듀서를 묘사한 것이고, 신비한 탑의 주인 '큰할아버지'는 미야자키 감독을 애니메이션의 세계에서 이끌어 준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입니다. 30년간 지브리의 색채 설계를 담당했던 야스다 미치요(2016년 별세)를 포함해 애니메이터들도 모습을 비칩니다.
대놓고 세계관이 연결되는 건 아니지만, 감독의 전작이 연상되는 부분도 많습니다. 예고편에도 등장하는 '와라와라'의 생김새에선 '모노노케 히메'의 '코다마'가 떠오르고, 저택의 살림을 책임지는 할머니들에게선 '붉은 돼지'나 '벼랑 위의 포뇨' 등에서 만난 할머니 캐릭터가 연상되는 식입니다.
이세계 자체가 스튜디오 지브리를 빗댔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그대들' 제작 도중 세상을 떠난 지브리의 공동 창립자 타카하타 감독처럼, 탑의 주인 '큰할아버지'는 자신의 세계가 이제 끝나간다고 고백합니다. 또 한편으론 큰할아버지를 몰아내고 왕좌를 차지하려는 모의가 진행되죠. 안팎으로 위기에 처한 이세계의 모습은 마땅한 후계자를 찾지 못한 데다 최근 니혼TV 측에 경영권을 넘긴 지브리의 현실을 비추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 살아있다는 건, 움직인다는 것…평생을 매달린 '애니메이션'의 세계
그렇지만 가장 압도적으로 느껴지는 건 미야자키 감독이 품은 애니메이션에 대한 열정입니다. 미야자키 감독이 평생에 걸쳐 매달려 온 '움직임' 그 자체에 대한 탐구와 애정이, 무서울 정도로 표현돼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마감을 정해 놓고 작업에 임하는 여타 애니메이션 영화와 달리, 이번 작업에서 미야자키 감독은 작업 기한을 정하지 않았습니다. 5년이 걸리든 10년이 걸리든,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걸 전부 하겠다는 각오였다고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일본 최고의 애니메이터로 꼽히는 혼다 다케시 감독을 포함해 20~30명이 달려들어 일절 CG 없이 손 그림으로 그려낸 장면들은 그야말로 압도적입니다. 심지어 초반의 화재 장면 같은 경우, 제작 기간 내내 그리다시피 했다고 합니다.
[연관 기사] ‘그대들’ 작화 감독 “모든 장면 어려웠지만, 만족도는 100%”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800780
'슥' 베어낸 무언가에서, 내용물이 '꿀렁'대며 '주르륵' 흘러나오는 모습. 아주 얇은 종이 수천 개가 일제히 '파닥파닥' 나부끼는 맹렬함. 심지어 멀리 배경에 그려진 산등성이마저 멈춰 있지 않습니다. 어두운 밤하늘을 배경으로, 마치 숨 쉬듯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립니다.
단 1초라도 화면 안에 움직임이 담기지 않은 순간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흩어지고 일렁대고 튀고 날아오르는, 갖가지 묘사가 시시각각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저는, 이런 영상 자체가 이번 '그대들'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내용을 떠나 영상미만으로도 볼 가치가 있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셀 애니메이션에 장인 정신을 담아 구현해 낸 온갖 '움직임'이야말로, 미야자키 감독이 말하려고 한 작품의 주제라는 생각입니다.
지브리 미술관에는 애니메이터가 갖춰야 하는 소양에 대한 하야오의 생각이 쓰여 있습니다. '손이 느린 사람은 안 된다' 등의 내용이 담긴 짧은 문장이지만, 이 문장에서 하야오는 힘주어 말합니다. '애니메이터에게 가장 중요한 건 생명에 대한 애정'이라고요.
생명이란 무엇일까요. '살아있다'는 건 곧 '움직인다'는 뜻입니다. 겉보기에는 움직이지 않는 나무나 이끼라고 해도, 그 안에서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미야자키 감독은 중요한 건 '상상'이 아니라 '관찰'이라는 엄격한 예술관을 유지하며, 이러한 생명의 움직임을 생생하게 포착하는 데 평생을 매진해 온 사람입니다. 자신의 말마따나 애정이 없으면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곧, 멈춰있는 그림(원화)을 움직이게 만드는 애니메이션 작업 자체가, 어찌 보면 무생물에 생명을 깃들게 하는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원이 된 라틴 단어 '아니마(anima)'부터가 생명을 뜻합니다.
감히 따라 하고 싶어도 따라 하지 못할 영상을 통해, 하야오는 자신이 애니메이터로 추구하고자 했던 게 무엇인지 설명을 이미 끝낸 게 아닐까요. 화면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애니메이션의 세계에 대한 매혹과 찬탄을 동시에 드러내면서요. 생명을 사랑한다는 것, 세상을 사랑한다는 것, 애니메이션을 사랑한다는 것. 이 모든 것이 미야자키 감독에게는 같은 의미였을지 모릅니다.
영화 말미, '큰할아버지'는 "너만의 탑을 쌓아 가거라. 풍요롭고 평화로우며 아름다운 세계를 만들거라"는 메시지를 주인공 마히토에게 전합니다. 이는 젊은 시절 타카하타 이사오에게 미야자키 하야오 자신이 받은 가르침일 수 있겠지만, 이제는 백발 노장이 된 미야자키 감독이 후배 애니메이터들과 관객들에게 건네는 이야기일수도 있을 겁니다. 애니메이션을 통해서라면 어떤 세계도 만들 수 있으며, 나는 한평생 이런 세계를 그려 왔노라는 자기 고백 말이죠.
결국, 내용의 호불호는 갈릴지언정 '그대들'이 미야자키 감독이 내놓은 가장 자전적인 작품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을 듯합니다. 넘치는 에너지와 상상력으로, 미야자키 감독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만드는 작품이기도 하고요. 여러분의 감상이 궁금해집니다.
[연관 기사] 미야자키 하야오, 돌아오다…“이번 작품의 최종 테마는 ‘친구’”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800779
■ 제목, 알고 보면 낚시? …'잔소리' 보다는 '자전적' 이야기
우선, 이번 작품에서 가장 화제가 된 것은 독특한 제목일 겁니다.
주인공 '아시타카'의 대사를 통해 '살아라'는 강렬한 메시지를 전했던 '모노노케 히메'(1997) 이후, 무려 26년만에 미야자키 감독이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답을 내놓았으리라는 기대를 품게 하는 제목이었습니다.
온라인에서도 '미야자키 할아버지의 잔소리가 기대된다'는 반응을 비롯해 미야자키 감독이 깨달은 인생의 진리나 방향에 대한 내용이 담겼을 거라는 추측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본 영화는 남들을 향해 '어떻게 살아라'고 가르친다기보다, '나는 이렇게 살아왔다'에 가까웠습니다. 조금 더 풀어쓰자면, 나는 어떻게 애니메이션 영화에 발을 들였고, 평생 무엇을 그려왔는지에 대해 미야자키 감독다운 방식으로 설명하는 영화입니다.
많이 알려진 것처럼, 주인공 마히토의 설정은 미야자키 감독의 유년 시절과 흡사합니다. 군수공장 경영자였던 아버지와 유복한 가정 환경, 그러나 내면은 상당히 어두운 소년이었던 점 등 자전적 요소를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스튜디오 지브리 사람들에 대한 묘사도 숨어 있습니다. 마히토를 이세계로 이끄는 왜가리는 스즈키 토시오 프로듀서를 묘사한 것이고, 신비한 탑의 주인 '큰할아버지'는 미야자키 감독을 애니메이션의 세계에서 이끌어 준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입니다. 30년간 지브리의 색채 설계를 담당했던 야스다 미치요(2016년 별세)를 포함해 애니메이터들도 모습을 비칩니다.
대놓고 세계관이 연결되는 건 아니지만, 감독의 전작이 연상되는 부분도 많습니다. 예고편에도 등장하는 '와라와라'의 생김새에선 '모노노케 히메'의 '코다마'가 떠오르고, 저택의 살림을 책임지는 할머니들에게선 '붉은 돼지'나 '벼랑 위의 포뇨' 등에서 만난 할머니 캐릭터가 연상되는 식입니다.
이세계 자체가 스튜디오 지브리를 빗댔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그대들' 제작 도중 세상을 떠난 지브리의 공동 창립자 타카하타 감독처럼, 탑의 주인 '큰할아버지'는 자신의 세계가 이제 끝나간다고 고백합니다. 또 한편으론 큰할아버지를 몰아내고 왕좌를 차지하려는 모의가 진행되죠. 안팎으로 위기에 처한 이세계의 모습은 마땅한 후계자를 찾지 못한 데다 최근 니혼TV 측에 경영권을 넘긴 지브리의 현실을 비추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 살아있다는 건, 움직인다는 것…평생을 매달린 '애니메이션'의 세계
그렇지만 가장 압도적으로 느껴지는 건 미야자키 감독이 품은 애니메이션에 대한 열정입니다. 미야자키 감독이 평생에 걸쳐 매달려 온 '움직임' 그 자체에 대한 탐구와 애정이, 무서울 정도로 표현돼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마감을 정해 놓고 작업에 임하는 여타 애니메이션 영화와 달리, 이번 작업에서 미야자키 감독은 작업 기한을 정하지 않았습니다. 5년이 걸리든 10년이 걸리든,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걸 전부 하겠다는 각오였다고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일본 최고의 애니메이터로 꼽히는 혼다 다케시 감독을 포함해 20~30명이 달려들어 일절 CG 없이 손 그림으로 그려낸 장면들은 그야말로 압도적입니다. 심지어 초반의 화재 장면 같은 경우, 제작 기간 내내 그리다시피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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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슥' 베어낸 무언가에서, 내용물이 '꿀렁'대며 '주르륵' 흘러나오는 모습. 아주 얇은 종이 수천 개가 일제히 '파닥파닥' 나부끼는 맹렬함. 심지어 멀리 배경에 그려진 산등성이마저 멈춰 있지 않습니다. 어두운 밤하늘을 배경으로, 마치 숨 쉬듯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립니다.
단 1초라도 화면 안에 움직임이 담기지 않은 순간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흩어지고 일렁대고 튀고 날아오르는, 갖가지 묘사가 시시각각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저는, 이런 영상 자체가 이번 '그대들'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내용을 떠나 영상미만으로도 볼 가치가 있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셀 애니메이션에 장인 정신을 담아 구현해 낸 온갖 '움직임'이야말로, 미야자키 감독이 말하려고 한 작품의 주제라는 생각입니다.
지브리 미술관에는 애니메이터가 갖춰야 하는 소양에 대한 하야오의 생각이 쓰여 있습니다. '손이 느린 사람은 안 된다' 등의 내용이 담긴 짧은 문장이지만, 이 문장에서 하야오는 힘주어 말합니다. '애니메이터에게 가장 중요한 건 생명에 대한 애정'이라고요.
생명이란 무엇일까요. '살아있다'는 건 곧 '움직인다'는 뜻입니다. 겉보기에는 움직이지 않는 나무나 이끼라고 해도, 그 안에서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미야자키 감독은 중요한 건 '상상'이 아니라 '관찰'이라는 엄격한 예술관을 유지하며, 이러한 생명의 움직임을 생생하게 포착하는 데 평생을 매진해 온 사람입니다. 자신의 말마따나 애정이 없으면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곧, 멈춰있는 그림(원화)을 움직이게 만드는 애니메이션 작업 자체가, 어찌 보면 무생물에 생명을 깃들게 하는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원이 된 라틴 단어 '아니마(anima)'부터가 생명을 뜻합니다.
감히 따라 하고 싶어도 따라 하지 못할 영상을 통해, 하야오는 자신이 애니메이터로 추구하고자 했던 게 무엇인지 설명을 이미 끝낸 게 아닐까요. 화면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애니메이션의 세계에 대한 매혹과 찬탄을 동시에 드러내면서요. 생명을 사랑한다는 것, 세상을 사랑한다는 것, 애니메이션을 사랑한다는 것. 이 모든 것이 미야자키 감독에게는 같은 의미였을지 모릅니다.
영화 말미, '큰할아버지'는 "너만의 탑을 쌓아 가거라. 풍요롭고 평화로우며 아름다운 세계를 만들거라"는 메시지를 주인공 마히토에게 전합니다. 이는 젊은 시절 타카하타 이사오에게 미야자키 하야오 자신이 받은 가르침일 수 있겠지만, 이제는 백발 노장이 된 미야자키 감독이 후배 애니메이터들과 관객들에게 건네는 이야기일수도 있을 겁니다. 애니메이션을 통해서라면 어떤 세계도 만들 수 있으며, 나는 한평생 이런 세계를 그려 왔노라는 자기 고백 말이죠.
결국, 내용의 호불호는 갈릴지언정 '그대들'이 미야자키 감독이 내놓은 가장 자전적인 작품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을 듯합니다. 넘치는 에너지와 상상력으로, 미야자키 감독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만드는 작품이기도 하고요. 여러분의 감상이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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