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도축장에서 구조돼, 다시 도축장 전 직원에게…“동물 입양 절차 허술”

입력 2023.10.27 (06:00)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요약

지난 8월, 춘천의 한 도견장에서 구출된 개 두 마리가 도견장에서 일하던 전 직원에게 입양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동물보호단체들은 이른바 '묻지 마 ' 식으로 이뤄진 입양 절차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동물보호센터의 입양 과정에서 입양자가 자격이 있는지, 개를 잘 키울 수 있는지 제대로 검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 9월, 춘천의 한 고물상에서 발견된 개(웅이)지난 9월, 춘천의 한 고물상에서 발견된 개(웅이)

지난 9월 26일, 강원도 춘천의 한 고물상 한편에 개 두 마리가 묶여 있습니다. 한눈에 봐도 열악한 환경에서 개들은 짧은 쇠사슬에 묶여 있는 상태였습니다. 물통에는 깨끗한 물 대신 더러운 물이 고여 있었고, 개들은 먹이를 제대로 먹지 못했는지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나 있었습니다. 그중 한 마리는 피부병까지 걸려 치료가 필요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동물보호단체 활동가 중 한 명은 고개를 갸우뚱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묶여 있던 개들이 어디선가 많이 본 듯 낯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춘천의 한 고물상에서 발견된 케리와 웅이춘천의 한 고물상에서 발견된 케리와 웅이

"뭔가 이상했어요. 저 아이들이 어디서 본 애들 같은데 혹시나 해서 찾아봤죠."
-동물보호단체 활동가-

동물권단체 케어 활동가가 묶여 있는 개의 동물등록번호를 조회하고 있다.동물권단체 케어 활동가가 묶여 있는 개의 동물등록번호를 조회하고 있다.

동물보호단체 활동가들은 이후, 동물등록번호 리더기를 가져와 이 개들의 목덜미에 대봤습니다. "삐빅" 하는 소리와 함께 인식번호가 나왔습니다. 등록번호를 조회하니 문제의 개들, 단체 회원들과 어디선가 만났던 개들이 맞았습니다.

지난 8월, 이 단체들의 도움을 받아 강원도 춘천의 한 도견장에서 구조됐던 케리와 웅이로 확인됐기 때문입니다. 도견장에서 벗어나 새로운 주인과 행복한 삶을 살거라고 기대했던 케리와 웅이가 다시 열악한 환경에서 발견된 사실에 동물보호단체 회원들은 충격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습니다.

지난 8월, 춘천의 한 도견장에서 구조되는 개들지난 8월, 춘천의 한 도견장에서 구조되는 개들

그런데 더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케리와 웅이를 입양한 입양자 A 씨의 이름도 이들의 귀에 익숙했던 겁니다.
바로, A 씨는 케리와 웅이가 구조되던 도견장에서 일하던 전 직원이었습니다.

■ 개 도축장 전 직원이 도축장에서 구조된 개들을 입양했다?

도견장에서 개를 잡기 위해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도구와 도견장 내부에서 발견된 개들도견장에서 개를 잡기 위해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도구와 도견장 내부에서 발견된 개들

취재진이 A 씨에게 자초지종을 묻자 A 씨는 불과 얼마 전까지 운영되던 개 도축장에서 일했으며 케리와 웅이를 자신이 입양한게 맞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과거에도 식용 목적으로 개 사육장을 운영했었다는 사실도 털어놨습니다.

"산에서 송이하고 더덕 심어둔 거 지키려고 입양한 거예요. 고물상에는 잠깐 맡겨둔 거고요."
-A 씨-

하지만 A 씨는 케리와 웅이를 입양한 이유는 키우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지금은 산에서 버섯과 약초를 재배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케리와 웅이는 식용 목적이 아니라 산의 임산물을 지키기 위해 입양한 것이라는 설명이었습니다.

춘천시 동물보호센터춘천시 동물보호센터

"저희도 동물보호단체에서 알려준 다음에야 그분(A 씨)이 문제가 되는 걸 알았어요. 지금 상황에서는 저희가 범죄 이력을 조회할 수는 없죠..."
-춘천시 동물보호센터 관계자-

그렇다면 이런 일은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춘천시 동물보호센터는 동물보호단체가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하기 전까지 A 씨가 도축장업에 종사한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해명했습니다. 민원이 이어지고 나서야 문제를 파악한 것이죠. 이른바 '묻지마 식 입양' 이었던 것입니다.

■ '지침 있지만'… 제대로 된 검증 없는 동물 입양 과정

농림축산식품부가 고시한 동물보호센터 운영지침을 찾아봤습니다. 제19조(동물의 분양 절차 및 사후관리)에 동물을 입양할 수 없는 대상을 규정해 뒀습니다.

먼저, 동물학대 범죄 이력이 있으면 입양을 할 수 없습니다. 또 식용목적의 개사육장 운영자도 입양이 불가능합니다.

농림축산식품부의 동물보호센터 운영 지침농림축산식품부의 동물보호센터 운영 지침

하지만 A 씨는 별다른 제지 없이 케리와 웅이를 입양할 수 있었습니다. 입양 당시 보호소에서 개 도축장에서 일했던 경력이나 개사육장을 운영한 사실이 있냐고 확인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런 검증은 케리와 웅이의 입양 과정에선 없었습니다.
A 씨 역시, 자신이 말하지 않았으니 보호소에서도 알지 못했을 것이라 답했습니다.

춘천시 동물보호센터의 입양절차춘천시 동물보호센터의 입양절차

실제로 춘천시 동물보호센터의 입양절차를 보면 별다른 검증과정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입양서류에서도 입양 후 동물을 학대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 문구만 있을 뿐 동물학대 이력이 있는지 등 결격사유를 묻는 검증절차는 이뤄지지 않습니다. 입양 과정에 사흘의 숙고 기간만 있을 뿐 누구나 개인 인적사항만 작성한다면 입양을 받을 수 있는 겁니다.

■ 동물보호센터 입양자 검증 좀 더 꼼꼼해져야

농림축산식품부의 운영지침은 어디까지나 지침일 뿐입니다. 동물보호센터의 실질적인 관리 권한은 지자체에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자체마다 입양절차에서 차이를 보입니다. 대전시의 경우 입양자를 검증하기 위해 입양 전 2시간가량의 의무 교육을 필수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대전시 동물보호센터의 입양절차대전시 동물보호센터의 입양절차

또 입양 안내문에 동물학대 이력 등 결점 사유를 미리 표시하도록 합니다. 동물보호센터는 사법기관이 아니라 범죄 경력을 조회할 권한이 없지만, 이렇게라도 '묻지 마 입양'을 막아보겠다는 겁니다. 여기에 더해 마지막으로 입양 전 상담을 진행한 뒤에야 입양이 이뤄집니다. 문제가 된 춘천시와는 사뭇 다른 모습입니다.

대전시 동물보호센터의 입양 안내문대전시 동물보호센터의 입양 안내문

"지자체 동물보호소는 입양률만 높여서 안락사율을 줄이면 된다고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실적 쌓기를 위해서요. 누구한테 입양을 가는 지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는 거죠. 결국, 인식의 부재입니다."
-이찬 변호사-

전문가들은 지자체의 동물보호센터가 입양자 검증에 좀 더 신중해져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이찬 변호사는 묻지 마 입양을 막기 위해서라도 지자체가 더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대전시처럼 입양 서류에 학대 경력이 있었냐는 물음을 넣고 만약 허위로 답변할 경우 소유권을 반환하거나 형사 처벌을 할 수 있다는 조건을 달아야 한다는 것이죠. 학대 등 불순한 의도를 갖고 입양하려는 예비 입양자들을 심리적으로 억제해야 한다는 겁니다.

도견장 내부에서 발견된 강아지들도견장 내부에서 발견된 강아지들

이번에 문제가 된 춘천시도 변화를 약속했습니다.

일단, 여러 지적에 따라 춘천시 동물보호센터는 케리와 웅이의 소유권을 A씨로부터 다시 회수했습니다. 또, 케리와 웅이의 입양 절차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입양관리사를 채용하는 등 앞으로 동물 입양 절차를 보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케리와 웅이 같은 '묻지 마 식 입양'은 사라질 수 있을까요? 아직, 답을 하기엔 이른듯 합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개 도축장에서 구조돼, 다시 도축장 전 직원에게…“동물 입양 절차 허술”
    • 입력 2023-10-27 06:00:11
    심층K
지난 8월, 춘천의 한 도견장에서 구출된 개 두 마리가 도견장에서 일하던 전 직원에게 입양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동물보호단체들은 이른바 '묻지 마 ' 식으로 이뤄진 입양 절차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동물보호센터의 입양 과정에서 입양자가 자격이 있는지, 개를 잘 키울 수 있는지 제대로 검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 9월, 춘천의 한 고물상에서 발견된 개(웅이)
지난 9월 26일, 강원도 춘천의 한 고물상 한편에 개 두 마리가 묶여 있습니다. 한눈에 봐도 열악한 환경에서 개들은 짧은 쇠사슬에 묶여 있는 상태였습니다. 물통에는 깨끗한 물 대신 더러운 물이 고여 있었고, 개들은 먹이를 제대로 먹지 못했는지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나 있었습니다. 그중 한 마리는 피부병까지 걸려 치료가 필요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동물보호단체 활동가 중 한 명은 고개를 갸우뚱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묶여 있던 개들이 어디선가 많이 본 듯 낯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춘천의 한 고물상에서 발견된 케리와 웅이
"뭔가 이상했어요. 저 아이들이 어디서 본 애들 같은데 혹시나 해서 찾아봤죠."
-동물보호단체 활동가-

동물권단체 케어 활동가가 묶여 있는 개의 동물등록번호를 조회하고 있다.
동물보호단체 활동가들은 이후, 동물등록번호 리더기를 가져와 이 개들의 목덜미에 대봤습니다. "삐빅" 하는 소리와 함께 인식번호가 나왔습니다. 등록번호를 조회하니 문제의 개들, 단체 회원들과 어디선가 만났던 개들이 맞았습니다.

지난 8월, 이 단체들의 도움을 받아 강원도 춘천의 한 도견장에서 구조됐던 케리와 웅이로 확인됐기 때문입니다. 도견장에서 벗어나 새로운 주인과 행복한 삶을 살거라고 기대했던 케리와 웅이가 다시 열악한 환경에서 발견된 사실에 동물보호단체 회원들은 충격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습니다.

지난 8월, 춘천의 한 도견장에서 구조되는 개들
그런데 더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케리와 웅이를 입양한 입양자 A 씨의 이름도 이들의 귀에 익숙했던 겁니다.
바로, A 씨는 케리와 웅이가 구조되던 도견장에서 일하던 전 직원이었습니다.

■ 개 도축장 전 직원이 도축장에서 구조된 개들을 입양했다?

도견장에서 개를 잡기 위해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도구와 도견장 내부에서 발견된 개들
취재진이 A 씨에게 자초지종을 묻자 A 씨는 불과 얼마 전까지 운영되던 개 도축장에서 일했으며 케리와 웅이를 자신이 입양한게 맞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과거에도 식용 목적으로 개 사육장을 운영했었다는 사실도 털어놨습니다.

"산에서 송이하고 더덕 심어둔 거 지키려고 입양한 거예요. 고물상에는 잠깐 맡겨둔 거고요."
-A 씨-

하지만 A 씨는 케리와 웅이를 입양한 이유는 키우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지금은 산에서 버섯과 약초를 재배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케리와 웅이는 식용 목적이 아니라 산의 임산물을 지키기 위해 입양한 것이라는 설명이었습니다.

춘천시 동물보호센터
"저희도 동물보호단체에서 알려준 다음에야 그분(A 씨)이 문제가 되는 걸 알았어요. 지금 상황에서는 저희가 범죄 이력을 조회할 수는 없죠..."
-춘천시 동물보호센터 관계자-

그렇다면 이런 일은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춘천시 동물보호센터는 동물보호단체가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하기 전까지 A 씨가 도축장업에 종사한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해명했습니다. 민원이 이어지고 나서야 문제를 파악한 것이죠. 이른바 '묻지마 식 입양' 이었던 것입니다.

■ '지침 있지만'… 제대로 된 검증 없는 동물 입양 과정

농림축산식품부가 고시한 동물보호센터 운영지침을 찾아봤습니다. 제19조(동물의 분양 절차 및 사후관리)에 동물을 입양할 수 없는 대상을 규정해 뒀습니다.

먼저, 동물학대 범죄 이력이 있으면 입양을 할 수 없습니다. 또 식용목적의 개사육장 운영자도 입양이 불가능합니다.

농림축산식품부의 동물보호센터 운영 지침
하지만 A 씨는 별다른 제지 없이 케리와 웅이를 입양할 수 있었습니다. 입양 당시 보호소에서 개 도축장에서 일했던 경력이나 개사육장을 운영한 사실이 있냐고 확인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런 검증은 케리와 웅이의 입양 과정에선 없었습니다.
A 씨 역시, 자신이 말하지 않았으니 보호소에서도 알지 못했을 것이라 답했습니다.

춘천시 동물보호센터의 입양절차
실제로 춘천시 동물보호센터의 입양절차를 보면 별다른 검증과정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입양서류에서도 입양 후 동물을 학대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 문구만 있을 뿐 동물학대 이력이 있는지 등 결격사유를 묻는 검증절차는 이뤄지지 않습니다. 입양 과정에 사흘의 숙고 기간만 있을 뿐 누구나 개인 인적사항만 작성한다면 입양을 받을 수 있는 겁니다.

■ 동물보호센터 입양자 검증 좀 더 꼼꼼해져야

농림축산식품부의 운영지침은 어디까지나 지침일 뿐입니다. 동물보호센터의 실질적인 관리 권한은 지자체에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자체마다 입양절차에서 차이를 보입니다. 대전시의 경우 입양자를 검증하기 위해 입양 전 2시간가량의 의무 교육을 필수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대전시 동물보호센터의 입양절차
또 입양 안내문에 동물학대 이력 등 결점 사유를 미리 표시하도록 합니다. 동물보호센터는 사법기관이 아니라 범죄 경력을 조회할 권한이 없지만, 이렇게라도 '묻지 마 입양'을 막아보겠다는 겁니다. 여기에 더해 마지막으로 입양 전 상담을 진행한 뒤에야 입양이 이뤄집니다. 문제가 된 춘천시와는 사뭇 다른 모습입니다.

대전시 동물보호센터의 입양 안내문
"지자체 동물보호소는 입양률만 높여서 안락사율을 줄이면 된다고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실적 쌓기를 위해서요. 누구한테 입양을 가는 지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는 거죠. 결국, 인식의 부재입니다."
-이찬 변호사-

전문가들은 지자체의 동물보호센터가 입양자 검증에 좀 더 신중해져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이찬 변호사는 묻지 마 입양을 막기 위해서라도 지자체가 더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대전시처럼 입양 서류에 학대 경력이 있었냐는 물음을 넣고 만약 허위로 답변할 경우 소유권을 반환하거나 형사 처벌을 할 수 있다는 조건을 달아야 한다는 것이죠. 학대 등 불순한 의도를 갖고 입양하려는 예비 입양자들을 심리적으로 억제해야 한다는 겁니다.

도견장 내부에서 발견된 강아지들
이번에 문제가 된 춘천시도 변화를 약속했습니다.

일단, 여러 지적에 따라 춘천시 동물보호센터는 케리와 웅이의 소유권을 A씨로부터 다시 회수했습니다. 또, 케리와 웅이의 입양 절차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입양관리사를 채용하는 등 앞으로 동물 입양 절차를 보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케리와 웅이 같은 '묻지 마 식 입양'은 사라질 수 있을까요? 아직, 답을 하기엔 이른듯 합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