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은 사과하지 않았다

입력 2023.10.27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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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13일 - 택배기사 사망 1일 차

13일 새벽 4시 44분, 경기 군포의 한 빌라 4층 복도에 "호흡하지 않는 사람이 문 앞에 쓰러져 있다"는 신고가 119에 접수됩니다.

사망자는 63년생 박 모 씨, 고인 머리 위에는 쿠팡 종이박스와 보냉팩 등 쿠팡 택배 상자 3개가 놓여있었습니다.

‘쿠팡 새벽 배송’ 하청 노동자 숨진 채 발견…머리 맡엔 택배 상자 (2023.10.13 뉴스9)‘쿠팡 새벽 배송’ 하청 노동자 숨진 채 발견…머리 맡엔 택배 상자 (2023.10.13 뉴스9)

오후 2시 30분, 민주노총 택배노조는 국회 앞에서 '쿠팡 택배 노동자 과로사 추정 사망 관련 긴급 기자회견'을 엽니다.

노조는 "쿠팡의 배송 시스템은 필연적으로 장시간 노동을 낳을 수밖에 없다"며 과거 택배 노동자 과로사 사건들에서 나타난 정황을 볼 때 박 씨도 과로사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습니다.

심야노동 시 산업재해 판정 기준인 30%를 가산하면 박 씨의 주당 노동 시간이 70시간에 달한다는 점, 배송 수행률 기준에 못 미치면 배송 구역을 회수하는 쿠팡의 이른바 '클렌징' 제도를 근거로 들었습니다.

“새벽배송 하다가” 쿠팡 하청 택배기사 사망…노조, “예견된 참사” (2023.10.16)“새벽배송 하다가” 쿠팡 하청 택배기사 사망…노조, “예견된 참사” (2023.10.16)

하지만 그날 쿠팡 뉴스룸에는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일방적인 주장을 중단해 주기 바랍니다"라는 글이 올라옵니다.

쿠팡은 경찰이 현재 사망 원인을 조사하고 있고, 고인의 근무시간과 평균 배송 물량 역시 통상적인 수준으로 확인됐다고 반박했습니다.

쿠팡은 특히 입장문 첫 머리에서 "고인은 쿠팡 근로자가 아닌 군포시 소재 전문배송 업체 A물산 소속 개인사업자"라고 강조했습니다.

출처 : 쿠팡 뉴스룸(https://news.coupang.com)출처 : 쿠팡 뉴스룸(https://news.coupang.com)

실제 숨진 박 씨의 머리맡엔 쿠팡 택배 상자가 놓여있었지만, 조끼엔 쿠팡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지 않았습니다.

박 씨는 쿠팡의 물류배송 자회사인 쿠팡 로지스틱스서비스(CLS)와 위탁계약을 맺은 군포 물류 업체의 특수고용 배송기사였습니다. 쿠팡은 박 씨 같은 이들을 '퀵플렉서'라 부릅니다.

■ 10월 15일 - 택배기사 사망 3일 차

사고 이틀 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부검 결과, 박 씨의 심장이 비대해져 있었다는 구두소견을 경찰에 전달합니다.

심근경색이 꾸준히 진행됐고, 이로 인해 박 씨의 심장이 통상 300그램 정도인 일반인 심장의 2배가 넘는 800그램 정도까지 커졌다는 겁니다.

해석은 달랐습니다.

노조는 가장 일반적인 과로사의 요인이 심근경색이고, 그러니 심장 비대는 과로사의 '결과'라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쿠팡은 "심장 비대로 인한 사망이라는 국과수의 1차 부검 소견에도 불구하고, 노조가 고인의 안타까운 죽음마저 쿠팡에 대한 악의적 비난의 도구로 이용하고 있다"고 반박했습니다.

경찰은 박 씨의 사망사건에 대한 내사를 종결하기로 했습니다. 타살 혐의점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박 씨의 사망이 지병 때문인지, 과로 때문인지 밝히는 건 경찰의 역할이 아닙니다.

이날 이후, 박 씨 사망 관련 보도는 현저히 줄었습니다.

■ 10월 26일 - 택배기사 사망 14일 차

박 씨가 숨지고 2주가 지난 26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장에 쿠팡 로지스틱스서비스(CLS) 홍용준 대표가 증인으로 출석했습니다.

홍 대표를 향한 첫 질문은 "(숨진 박 씨는) 직고용이 아니어서 우리가 잘못한 게 없다. 그래서 사죄할 일도 없다고 하는데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였습니다.

이에 홍 대표는 이렇게 말합니다.

"의원님, 개인적으로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으며 고인과 유족에게 위로와 애도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이에 질의자인 이학영 의원이 "죄송하다는 말씀 한마디 하세요, 국민들 앞에서. 그게뭐 어렵습니까?"라고 재차 묻자 홍 대표는 "고인에게 정말 애도의 마음을 표합니다"라고 답합니다.

잠시 장내에 침묵이 흐르고, 이 의원이 다시 "확실하게 미안하다고 하세요"라며 사과를 요청했지만, 홍 대표는 또 한 번 "정말 안타깝게 생각하고 위로와 애도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 끝내 사과하지 않은 쿠팡 CLS 대표

사과와 애도는 다릅니다.

애도는 안타까운 일에 슬픔을 표하는 것이고, 누구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과는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비는 일입니다. 잘못이 없을 땐 사과도 하지 않습니다.

쿠팡의 택배운송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쿠팡 CLS 대표는 쿠팡 물품을 배송하다 숨진(하지만 쿠팡의 근로자는 아닌) 박 씨의 사망에 애도했지만, 사과는 하지 않았습니다.

■ "사회적 대화 참여" 요청도 거부

소셜커머스 업체로 시작해 매년 적자를 거듭하던 쿠팡은 이제 없으면 못 사는 존재로 성장했고, 그 성장 이면에는 지금은 '쿠팡 친구'로 이름을 바꾼, 쿠팡이 직고용한 정규직 배송기사 '쿠팡맨'이 있습니다.

26일 국정감사 질의과정에서 공개된 쿠팡의 직고용 인력은 7천 명 수준입니다. 과거 만 5천 명 수준에서 반으로 준 겁니다. 반면 숨진 박 씨처럼 위탁업체와 계약한 특수고용 노동자는 현재 만 3천 명가량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난 2021년 택배 기사들의 과로사가 잇따르자 정부와 업체, 노조가 함께 참여하는 사회적 합의 기구에서 주 60시간 근무와 분류 작업 금지 등 몇 가지 합의안을 마련합니다.

택배 2차 사회적합의 잠정 타결…내일부터 업무 복귀 (2021.6.16 뉴스9)택배 2차 사회적합의 잠정 타결…내일부터 업무 복귀 (2021.6.16 뉴스9)

하지만 이 합의에 쿠팡은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택배사에 비해 소규모 신생업체였고, 무엇보다 쿠팡맨이라는 직고용 인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2년이 지난 지금, 쿠팡은 다른 택배사를 압도하는 대형 업체로 성장했고, 대중이 환호했던 직고용 인력은 간접고용 인력의 절반 수준으로 줄었습니다.

홍용준 CLS 대표는 "CLS의 근로 여건은 이미 사회적 합의 수준의 근로 여건을 훨씬 상회 하고 배송 시스템도 일반 택배 업계의 배송 시스템하고는 구조가 다르다"며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 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 계속 이런 쿠팡과 살아야 할까?

쿠팡의 미션이기도 한 "쿠팡 없이 그동안 어떻게 살았을까"란 질문에, 2023년 지금 많은 사람은 "그러게, 어떻게 살았지"라고 답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편리한 쿠팡의 힘은 분명 쿠팡이 고용하는 노동자입니다.

실제로 쿠팡 전체 고용 인원은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에 이어 국내 3위 규모입니다.

노조는 유통업계 1위 쿠팡의 이 같은 방침으로 사회적 합의 이전, 택배 노동자 과로사가 횡행했던 과거로 회귀할까 우려하고 있습니다.

쿠팡 없던 세상을 상상하기 어려운 상황인 만큼, '어떤 모습의 쿠팡'과 함께 살아가야 할지도 고민해봐야 하는 시점입니다.

우리는 물론 편리한 소비를 원하는 소비자이지만, 동시에 직장에서 일을 해서 생계를 꾸려가는 노동자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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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쿠팡은 사과하지 않았다
    • 입력 2023-10-27 17:4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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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13일 - 택배기사 사망 1일 차

13일 새벽 4시 44분, 경기 군포의 한 빌라 4층 복도에 "호흡하지 않는 사람이 문 앞에 쓰러져 있다"는 신고가 119에 접수됩니다.

사망자는 63년생 박 모 씨, 고인 머리 위에는 쿠팡 종이박스와 보냉팩 등 쿠팡 택배 상자 3개가 놓여있었습니다.

‘쿠팡 새벽 배송’ 하청 노동자 숨진 채 발견…머리 맡엔 택배 상자 (2023.10.13 뉴스9)
오후 2시 30분, 민주노총 택배노조는 국회 앞에서 '쿠팡 택배 노동자 과로사 추정 사망 관련 긴급 기자회견'을 엽니다.

노조는 "쿠팡의 배송 시스템은 필연적으로 장시간 노동을 낳을 수밖에 없다"며 과거 택배 노동자 과로사 사건들에서 나타난 정황을 볼 때 박 씨도 과로사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습니다.

심야노동 시 산업재해 판정 기준인 30%를 가산하면 박 씨의 주당 노동 시간이 70시간에 달한다는 점, 배송 수행률 기준에 못 미치면 배송 구역을 회수하는 쿠팡의 이른바 '클렌징' 제도를 근거로 들었습니다.

“새벽배송 하다가” 쿠팡 하청 택배기사 사망…노조, “예견된 참사” (2023.10.16)
하지만 그날 쿠팡 뉴스룸에는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일방적인 주장을 중단해 주기 바랍니다"라는 글이 올라옵니다.

쿠팡은 경찰이 현재 사망 원인을 조사하고 있고, 고인의 근무시간과 평균 배송 물량 역시 통상적인 수준으로 확인됐다고 반박했습니다.

쿠팡은 특히 입장문 첫 머리에서 "고인은 쿠팡 근로자가 아닌 군포시 소재 전문배송 업체 A물산 소속 개인사업자"라고 강조했습니다.

출처 : 쿠팡 뉴스룸(https://news.coupang.com)
실제 숨진 박 씨의 머리맡엔 쿠팡 택배 상자가 놓여있었지만, 조끼엔 쿠팡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지 않았습니다.

박 씨는 쿠팡의 물류배송 자회사인 쿠팡 로지스틱스서비스(CLS)와 위탁계약을 맺은 군포 물류 업체의 특수고용 배송기사였습니다. 쿠팡은 박 씨 같은 이들을 '퀵플렉서'라 부릅니다.

■ 10월 15일 - 택배기사 사망 3일 차

사고 이틀 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부검 결과, 박 씨의 심장이 비대해져 있었다는 구두소견을 경찰에 전달합니다.

심근경색이 꾸준히 진행됐고, 이로 인해 박 씨의 심장이 통상 300그램 정도인 일반인 심장의 2배가 넘는 800그램 정도까지 커졌다는 겁니다.

해석은 달랐습니다.

노조는 가장 일반적인 과로사의 요인이 심근경색이고, 그러니 심장 비대는 과로사의 '결과'라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쿠팡은 "심장 비대로 인한 사망이라는 국과수의 1차 부검 소견에도 불구하고, 노조가 고인의 안타까운 죽음마저 쿠팡에 대한 악의적 비난의 도구로 이용하고 있다"고 반박했습니다.

경찰은 박 씨의 사망사건에 대한 내사를 종결하기로 했습니다. 타살 혐의점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박 씨의 사망이 지병 때문인지, 과로 때문인지 밝히는 건 경찰의 역할이 아닙니다.

이날 이후, 박 씨 사망 관련 보도는 현저히 줄었습니다.

■ 10월 26일 - 택배기사 사망 14일 차

박 씨가 숨지고 2주가 지난 26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장에 쿠팡 로지스틱스서비스(CLS) 홍용준 대표가 증인으로 출석했습니다.

홍 대표를 향한 첫 질문은 "(숨진 박 씨는) 직고용이 아니어서 우리가 잘못한 게 없다. 그래서 사죄할 일도 없다고 하는데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였습니다.

이에 홍 대표는 이렇게 말합니다.

"의원님, 개인적으로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으며 고인과 유족에게 위로와 애도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이에 질의자인 이학영 의원이 "죄송하다는 말씀 한마디 하세요, 국민들 앞에서. 그게뭐 어렵습니까?"라고 재차 묻자 홍 대표는 "고인에게 정말 애도의 마음을 표합니다"라고 답합니다.

잠시 장내에 침묵이 흐르고, 이 의원이 다시 "확실하게 미안하다고 하세요"라며 사과를 요청했지만, 홍 대표는 또 한 번 "정말 안타깝게 생각하고 위로와 애도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 끝내 사과하지 않은 쿠팡 CLS 대표

사과와 애도는 다릅니다.

애도는 안타까운 일에 슬픔을 표하는 것이고, 누구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과는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비는 일입니다. 잘못이 없을 땐 사과도 하지 않습니다.

쿠팡의 택배운송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쿠팡 CLS 대표는 쿠팡 물품을 배송하다 숨진(하지만 쿠팡의 근로자는 아닌) 박 씨의 사망에 애도했지만, 사과는 하지 않았습니다.

■ "사회적 대화 참여" 요청도 거부

소셜커머스 업체로 시작해 매년 적자를 거듭하던 쿠팡은 이제 없으면 못 사는 존재로 성장했고, 그 성장 이면에는 지금은 '쿠팡 친구'로 이름을 바꾼, 쿠팡이 직고용한 정규직 배송기사 '쿠팡맨'이 있습니다.

26일 국정감사 질의과정에서 공개된 쿠팡의 직고용 인력은 7천 명 수준입니다. 과거 만 5천 명 수준에서 반으로 준 겁니다. 반면 숨진 박 씨처럼 위탁업체와 계약한 특수고용 노동자는 현재 만 3천 명가량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난 2021년 택배 기사들의 과로사가 잇따르자 정부와 업체, 노조가 함께 참여하는 사회적 합의 기구에서 주 60시간 근무와 분류 작업 금지 등 몇 가지 합의안을 마련합니다.

택배 2차 사회적합의 잠정 타결…내일부터 업무 복귀 (2021.6.16 뉴스9)
하지만 이 합의에 쿠팡은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택배사에 비해 소규모 신생업체였고, 무엇보다 쿠팡맨이라는 직고용 인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2년이 지난 지금, 쿠팡은 다른 택배사를 압도하는 대형 업체로 성장했고, 대중이 환호했던 직고용 인력은 간접고용 인력의 절반 수준으로 줄었습니다.

홍용준 CLS 대표는 "CLS의 근로 여건은 이미 사회적 합의 수준의 근로 여건을 훨씬 상회 하고 배송 시스템도 일반 택배 업계의 배송 시스템하고는 구조가 다르다"며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 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 계속 이런 쿠팡과 살아야 할까?

쿠팡의 미션이기도 한 "쿠팡 없이 그동안 어떻게 살았을까"란 질문에, 2023년 지금 많은 사람은 "그러게, 어떻게 살았지"라고 답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편리한 쿠팡의 힘은 분명 쿠팡이 고용하는 노동자입니다.

실제로 쿠팡 전체 고용 인원은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에 이어 국내 3위 규모입니다.

노조는 유통업계 1위 쿠팡의 이 같은 방침으로 사회적 합의 이전, 택배 노동자 과로사가 횡행했던 과거로 회귀할까 우려하고 있습니다.

쿠팡 없던 세상을 상상하기 어려운 상황인 만큼, '어떤 모습의 쿠팡'과 함께 살아가야 할지도 고민해봐야 하는 시점입니다.

우리는 물론 편리한 소비를 원하는 소비자이지만, 동시에 직장에서 일을 해서 생계를 꾸려가는 노동자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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