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롭혔지만, 왕따는 아니다?…학군단 폭력행위 축소 논란

입력 2023.10.27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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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한 대학 학군단에서 후보생들이 동기를 따돌리고 괴롭히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피해 후보생은 정신적인 충격에 시달리다 어렵게 피해를 신고했는데요.

그런데 황당한 심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괴롭힘은 있었던 거로 확인되지만, 따돌림인지는 모르겠다는 겁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 희귀병에 걸린 뒤 발생한 괴롭힘


지난해 말, 22살 신 모 씨는 대학 학군단에 입단해 기초 군사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근육 성분을 만드는 세포가 녹는 '횡문근 융해증'에 걸리고 맙니다.

소변으로 근육 세포가 나오고, 근육 효소가 손상해 사망률이 5 ~ 10%에 이르는 위험한 병이었습니다.

신 씨는 급하게 병원에 입원했고 닷새 동안 치료를 받았습니다.

문제는 퇴원 이후부터 발생합니다.

생활관에 돌아오니 동기생 두 명으로부터 괴롭힘이 시작된 겁니다.

이들은 신 씨가 닷새 동안 훈련을 덜 받았으니 자신들에게 높임말을 써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당황한 신 씨는 미안한 마음에 장난식으로 높임말을 썼다고 합니다.


그런데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여러 사람들 앞에서 신 씨의 억양을 비꼬며 관등성명을 따라 하는가 하면, 훈련도 제대로 안 받으면서 부식을 먹는다며 모욕을 줬습니다.

또 고의로 어깨를 세게 부딪치기도 했는데요.


특히 부식으로 콜라가 나왔는데, 희귀병으로 인한 혈뇨 증상을 콜라 색에 빗대며 놀리기까지 했다고 신 씨는 주장합니다.

신 씨가 왜 자신을 괴롭히냐며 따졌지만, 별 소용이 없었고 괴롬힘은 훈련기간 내내 이어졌다고 합니다.

이러한 모욕과 괴롭힘에 신 씨는 결국,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됐습니다.

신 씨가 1차 병원에서 받은 진료 의뢰서. 좌불안석과 과호흡 , 실신 등 다양한 증상이 확인되었다.신 씨가 1차 병원에서 받은 진료 의뢰서. 좌불안석과 과호흡 , 실신 등 다양한 증상이 확인되었다.

[신학영/피해자 아버지 : "거의 말을 안 하고 상당히 힘들어하면서 5월경에는 실신까지 하고 파티마병원에서 치료까지 받고 그랬었습니다."]

■ 신고했는데, 3개월 동안 조사도 안 해

결국, 신 씨는 반 년만인 지난 7월 학군단에 이를 신고했습니다.

그러나 조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가해자로 지목된 한 명에 대한 조사는 석 달이나 지나서 이뤄졌고, 당연히 그동안 피·가해자 분리도 없었습니다.

그러다 지난 11일에야 징계위원회가 개최됐습니다.

그런데 황당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복수의 동기들이 신 씨를 괴롭힌 것이 사실로 확인됐지만, 집단 따돌림은 식별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마치 술은 마셨는데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는 한 가수의 말이 떠오르죠?

■ 군 수사기관에서 수사도 못 해

신 씨는 또 징계와 별개로 군 수사기관에 폭력 사건 신고를 요청했는데, 이 신고도 거부됐습니다.

아무리 폭력 사건이 발생했더라도 신고 시점에 신 씨가 군사 훈련소에 있지 않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학군단 측은 <군형법>의 한 조항을 그 근거로 삼았습니다.


군형법 제1조 3항에는 '법 적용 대상자'를 재영 (在營), 즉 병영에 있는 학생으로 한정하고 있는데요.

그런데 학군단 후보생들은 방학 기간에만 훈련소에 있죠.

즉 학군단 후보생들이 군 수사기관에 수사를 요청하려면, 신고 기간이 훈련소에 있을 때라야만 한다는 겁니다.

결국, 신 씨는 민간 경찰에 폭력 사건을 신고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민간 경찰이 군 내부에서 발생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합니다.


[신학영/피해자 아버지 : "이 친구들이 만약에 장교로 임관했을 때 소대원들을 관리하면서 자기보다 약한 애들은 계속 따돌리지 않겠나. 그렇다면 어느 부모가 안심하고 국방의 의무를 하는 애들을 군에 보낼 수 있겠습니까."]

학군단 양성을 담당하는 육군학생군사학교 측은, 법과 규정에 따라 사안을 정상적으로 처리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데요.


어쩔 수 없이 가해 후보생들과 함께 지내야 하는 상황에 신 씨는 다음달인 11월에 탈단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신학영/피해자 아버지 : 우리 아버지도 군인이셨기 때문에 저희 아들도 장교로 잘 생활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일이 발생해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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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0-27 18:3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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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한 대학 학군단에서 후보생들이 동기를 따돌리고 괴롭히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피해 후보생은 정신적인 충격에 시달리다 어렵게 피해를 신고했는데요.

그런데 황당한 심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괴롭힘은 있었던 거로 확인되지만, 따돌림인지는 모르겠다는 겁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 희귀병에 걸린 뒤 발생한 괴롭힘


지난해 말, 22살 신 모 씨는 대학 학군단에 입단해 기초 군사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근육 성분을 만드는 세포가 녹는 '횡문근 융해증'에 걸리고 맙니다.

소변으로 근육 세포가 나오고, 근육 효소가 손상해 사망률이 5 ~ 10%에 이르는 위험한 병이었습니다.

신 씨는 급하게 병원에 입원했고 닷새 동안 치료를 받았습니다.

문제는 퇴원 이후부터 발생합니다.

생활관에 돌아오니 동기생 두 명으로부터 괴롭힘이 시작된 겁니다.

이들은 신 씨가 닷새 동안 훈련을 덜 받았으니 자신들에게 높임말을 써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당황한 신 씨는 미안한 마음에 장난식으로 높임말을 썼다고 합니다.


그런데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여러 사람들 앞에서 신 씨의 억양을 비꼬며 관등성명을 따라 하는가 하면, 훈련도 제대로 안 받으면서 부식을 먹는다며 모욕을 줬습니다.

또 고의로 어깨를 세게 부딪치기도 했는데요.


특히 부식으로 콜라가 나왔는데, 희귀병으로 인한 혈뇨 증상을 콜라 색에 빗대며 놀리기까지 했다고 신 씨는 주장합니다.

신 씨가 왜 자신을 괴롭히냐며 따졌지만, 별 소용이 없었고 괴롬힘은 훈련기간 내내 이어졌다고 합니다.

이러한 모욕과 괴롭힘에 신 씨는 결국,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됐습니다.

신 씨가 1차 병원에서 받은 진료 의뢰서. 좌불안석과 과호흡 , 실신 등 다양한 증상이 확인되었다.
[신학영/피해자 아버지 : "거의 말을 안 하고 상당히 힘들어하면서 5월경에는 실신까지 하고 파티마병원에서 치료까지 받고 그랬었습니다."]

■ 신고했는데, 3개월 동안 조사도 안 해

결국, 신 씨는 반 년만인 지난 7월 학군단에 이를 신고했습니다.

그러나 조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가해자로 지목된 한 명에 대한 조사는 석 달이나 지나서 이뤄졌고, 당연히 그동안 피·가해자 분리도 없었습니다.

그러다 지난 11일에야 징계위원회가 개최됐습니다.

그런데 황당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복수의 동기들이 신 씨를 괴롭힌 것이 사실로 확인됐지만, 집단 따돌림은 식별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마치 술은 마셨는데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는 한 가수의 말이 떠오르죠?

■ 군 수사기관에서 수사도 못 해

신 씨는 또 징계와 별개로 군 수사기관에 폭력 사건 신고를 요청했는데, 이 신고도 거부됐습니다.

아무리 폭력 사건이 발생했더라도 신고 시점에 신 씨가 군사 훈련소에 있지 않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학군단 측은 <군형법>의 한 조항을 그 근거로 삼았습니다.


군형법 제1조 3항에는 '법 적용 대상자'를 재영 (在營), 즉 병영에 있는 학생으로 한정하고 있는데요.

그런데 학군단 후보생들은 방학 기간에만 훈련소에 있죠.

즉 학군단 후보생들이 군 수사기관에 수사를 요청하려면, 신고 기간이 훈련소에 있을 때라야만 한다는 겁니다.

결국, 신 씨는 민간 경찰에 폭력 사건을 신고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민간 경찰이 군 내부에서 발생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합니다.


[신학영/피해자 아버지 : "이 친구들이 만약에 장교로 임관했을 때 소대원들을 관리하면서 자기보다 약한 애들은 계속 따돌리지 않겠나. 그렇다면 어느 부모가 안심하고 국방의 의무를 하는 애들을 군에 보낼 수 있겠습니까."]

학군단 양성을 담당하는 육군학생군사학교 측은, 법과 규정에 따라 사안을 정상적으로 처리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데요.


어쩔 수 없이 가해 후보생들과 함께 지내야 하는 상황에 신 씨는 다음달인 11월에 탈단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신학영/피해자 아버지 : 우리 아버지도 군인이셨기 때문에 저희 아들도 장교로 잘 생활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일이 발생해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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