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나서 문을 못 열어요”…악취민원 37배 폭증

입력 2023.11.0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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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서구 염색산업단지 전경대구 서구 염색산업단지 전경

■ "냄새 나서 문을 못 열어요" … 악취 민원 1년 만에 37배 폭증

최근 대구 서구에서 가장 큰 이슈를 꼽으라면 단연 '악취'입니다.

사실 이 일대에서 '악취 민원'은 새로운 일이 아닙니다.

염색산업단지와 음식물처리장 등 악취 배출 시설이 밀집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올해 들어 '악취 민원'은 그야말로 심각한 양상을 띠고 있습니다.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대구 서구청에 접수된 악취 민원은 무려 6,413건. 지난 한달 동안에만 무려 6,091건이 접수됐습니다.

지난해(173건)와 비교해서는 37배, 5년 전(42건)보다는 무려 150배가 늘어난 겁니다.

대체 무슨 일일까? 사실 악취의 주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염색산업단지에는 큰 변화가 없습니다.

오히려 주요 악취물질은 줄어든 것으로 파악됐습니다.(2019년 대비 올 상반기 암모니아 50%, 황화수소 68% 감소)

악취 민원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이유는 대규모 재개발 사업에 있습니다. 대구 서구 평리동 일대에 대단지 아파트가 속속 입주하면서 민원도 폭증하고 있는 겁니다.


실제 염색산단 반경 1.5km 안에는 지난 3월부터 신축 아파트단지 4곳, 5천 5백여 가구가 입주했습니다.

고현미/대구 서구 평리동 아파트 주민
"문을 열었는데 안 나던 냄새가 나는 거에요. 그래서 우리 큰애가 몸이 안 좋으니까 더 안 좋아지는 거 아닌가..."

구유성/대구 서구 평리동 아파트 주민
"탄내가 기본적으로 나면서 무슨 음식 썩는 냄새라고 해야 하나요? 계란 썩는 냄새. 와, 이거는 내가 맡으면 정말 나에게 좋지 않은 냄새고..."

대구 염색산단 인근 아파트 단지대구 염색산단 인근 아파트 단지

이 일대에는 내년 초 1,400여 가구 규모의 아파트 입주가 또 예정돼있어, 앞으로 악취 민원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 대구 서구 '악취실태조사'…"반경 2km 복합악취 최대 48배"

이같은 악취 민원 폭증 문제는 이미 수년 전부터 예견됐습니다.

대구 서구청이 3년 전인 2020년, 대구시에 '악취실태조사'를 요청하면서 제시한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 서대구 KTX역 착공, 재개발 사업 등 지역개발에 따른 민원 지속 발생
▷ 염색산단 주변 재개발로 10,000세대 주민 입주 시작돼 대규모 집단민원 예상,
해결방안 마련 위한 조사 필요

즉, 서대구 KTX역이 개통하고 서구 평리동 재개발 사업이 끝나면 악취 민원이 크게 늘 거란 걸 알고 있었던 겁니다.

이에 대구시는 환경부에, 환경부는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환경공단에 '악취실태조사'를 맡깁니다.

환경공단은 2020년 2월부터 10달간 대구 염색산업단지와 주변을 중심으로 실태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이 일대를 대상으로 장기간 악취 실태를 추적 관찰한 첫 사례입니다.


KBS가 조사 결과 보고서를 단독 입수했습니다.

조사단은 염색산단 악취배출사업장에 대한 복합악취 측정 결과와 기상자료를 바탕으로 '악취 확산 모델링'을 실시했습니다.

결과는 심각했습니다.

2가지 이상의 복합악취는 염색산단 반경 2km 모든 지역에서 10배에서 48배, 비산7동 행정복지센터 등 거주 지역과 서대구 역은 무려 86배나 영향을 주는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통상 복합악취가 10배를 넘으면 대부분의 사람이 악취를 느낀다고 합니다. 이를 감안하면
인근 주민들이 고농도 악취에 시달리고 있는 사실이 확인된 겁니다.


특정 장소의 공기를 포집하는 대기 질 조사에서도 복합악취는 3~10배로 측정됐고, 지정악취물질 역시 기준치보다 최대 8배 이상 검출됐습니다. (이 방법은 바람에 의해 많이 희석됐을 가능성이 크고, 특정 포집 시간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결괏값은 모델링보다 낮게 나올 확률이 높다는 게 관련 전문가의 설명입니다)


악취물질 배출 사업장 관리도 제대로 안 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염색산단 사업장 41곳 중 18곳(44%)이 복합악취 배출 허용기준을 초과했고, '악취배출 총량'을 조사해보니 염색산단 반경 3km까지 영향을 주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한국환경공단 관계자
"조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본 것은, 이 염색산단의 악취 영향이 영향 지역에 미치냐 안 미치냐 하는 것인데. 조사 결과를 봤을 때 악취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확실한 것이죠. 다만, 어느 정도 악취 영향을 미치는지는 구간별로, 지점별로 조금씩 다를 수 있습니다."

■ '악취관리지역' 지정 권고했지만…대구는 '0곳'

대구 염색산단 전경대구 염색산단 전경

한국환경공단은 염색 산단 일대 악취가 광범위한 지역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결론을 내고,
9가지 개선 방안을 내놨습니다.

그 중 첫 번째가 바로 '악취관리지역' 지정과 신고 대상 시설 지정 검토입니다.

염색산단은 악취 민원이 수십 년간 지속되고 있고, 상당수 사업장이 배출 허용 기준을 초과하는 등 지정 요건을 충족한다는 겁니다.

'악취관리지역'으로 지정되면 무엇이 달라질까?

배출허용 기준을 보다 엄격하게 정할 수 있고, 적발되면 과징금은 물론 조업정지까지 내릴 수 있습니다.

예전보다 강력한 행정처분이 가능해지는 겁니다.


지금은 아무리 배출 기준을 어겨도 '과태료 2백만 원' 부과가 전부인 상황.

최근 3년간 대구 서구 일대 복합악취 기준치 초과 적발 건수는 73건, 이 가운데 과태료를 부과한 건 9건에 불과합니다. '솜방망이 처벌'인 겁니다.

그런데도 대구시는 여전히 '악취관리지역' 지정에 소극적입니다.

사업장에 대한 과도한 규제와 재산가치 하락 등을 우려해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또 내년까지 진행하는 대기환경 개선사업 결과를 살펴본 뒤 결정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환경부 역시 뒷짐을 지고 있습니다. 자치단체에 악취관리지역 지정을 권고하고, 자치단체는 1년 안에 이를 따라야 하는 관련 법이 올해 개정됐지만 "대구시 판단이 중요하다"며 책임을 떠넘깁니다.

법 개정 취지가 무색한 상황인 겁니다.

지금까지 지정된 악취관리지역은 전국 12개 시도 52곳,

대구는 민원이 끊이질 않는 서구는 물론 단 한 곳도 지정되지 않았습니다.

대구 염색산단  전경대구 염색산단 전경

환경당국이 모두 손 놓고 있는 사이, 주민들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악취와 싸우며 날마다 고통받고 있습니다.

여인오/대구 서구 평리동 아파트 주민
"온종일 음식물 쓰레기통 옆에 살고 있다 생각해 봐요, 냄새 심할 때. 그러면 사람이 견디겠어요? 맞잖아요."

(촬영기자 백재민, CG그래픽 인푸름)

[연관 기사]
[집중취재] 대구 서구 악취민원 37배 폭증…아파트 입주에 민원 빗발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809064
[집중취재] 대구 염색산단 반경 2㎞ “고농도 악취 확인”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809065
[집중취재] 악취관리지역 대구 ‘0곳’…지정 권고에도 손 놓은 대구시·환경부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809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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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냄새나서 문을 못 열어요”…악취민원 37배 폭증
    • 입력 2023-11-04 06:00:01
    심층K
대구 서구 염색산업단지 전경
■ "냄새 나서 문을 못 열어요" … 악취 민원 1년 만에 37배 폭증

최근 대구 서구에서 가장 큰 이슈를 꼽으라면 단연 '악취'입니다.

사실 이 일대에서 '악취 민원'은 새로운 일이 아닙니다.

염색산업단지와 음식물처리장 등 악취 배출 시설이 밀집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올해 들어 '악취 민원'은 그야말로 심각한 양상을 띠고 있습니다.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대구 서구청에 접수된 악취 민원은 무려 6,413건. 지난 한달 동안에만 무려 6,091건이 접수됐습니다.

지난해(173건)와 비교해서는 37배, 5년 전(42건)보다는 무려 150배가 늘어난 겁니다.

대체 무슨 일일까? 사실 악취의 주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염색산업단지에는 큰 변화가 없습니다.

오히려 주요 악취물질은 줄어든 것으로 파악됐습니다.(2019년 대비 올 상반기 암모니아 50%, 황화수소 68% 감소)

악취 민원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이유는 대규모 재개발 사업에 있습니다. 대구 서구 평리동 일대에 대단지 아파트가 속속 입주하면서 민원도 폭증하고 있는 겁니다.


실제 염색산단 반경 1.5km 안에는 지난 3월부터 신축 아파트단지 4곳, 5천 5백여 가구가 입주했습니다.

고현미/대구 서구 평리동 아파트 주민
"문을 열었는데 안 나던 냄새가 나는 거에요. 그래서 우리 큰애가 몸이 안 좋으니까 더 안 좋아지는 거 아닌가..."

구유성/대구 서구 평리동 아파트 주민
"탄내가 기본적으로 나면서 무슨 음식 썩는 냄새라고 해야 하나요? 계란 썩는 냄새. 와, 이거는 내가 맡으면 정말 나에게 좋지 않은 냄새고..."

대구 염색산단 인근 아파트 단지
이 일대에는 내년 초 1,400여 가구 규모의 아파트 입주가 또 예정돼있어, 앞으로 악취 민원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 대구 서구 '악취실태조사'…"반경 2km 복합악취 최대 48배"

이같은 악취 민원 폭증 문제는 이미 수년 전부터 예견됐습니다.

대구 서구청이 3년 전인 2020년, 대구시에 '악취실태조사'를 요청하면서 제시한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 서대구 KTX역 착공, 재개발 사업 등 지역개발에 따른 민원 지속 발생
▷ 염색산단 주변 재개발로 10,000세대 주민 입주 시작돼 대규모 집단민원 예상,
해결방안 마련 위한 조사 필요

즉, 서대구 KTX역이 개통하고 서구 평리동 재개발 사업이 끝나면 악취 민원이 크게 늘 거란 걸 알고 있었던 겁니다.

이에 대구시는 환경부에, 환경부는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환경공단에 '악취실태조사'를 맡깁니다.

환경공단은 2020년 2월부터 10달간 대구 염색산업단지와 주변을 중심으로 실태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이 일대를 대상으로 장기간 악취 실태를 추적 관찰한 첫 사례입니다.


KBS가 조사 결과 보고서를 단독 입수했습니다.

조사단은 염색산단 악취배출사업장에 대한 복합악취 측정 결과와 기상자료를 바탕으로 '악취 확산 모델링'을 실시했습니다.

결과는 심각했습니다.

2가지 이상의 복합악취는 염색산단 반경 2km 모든 지역에서 10배에서 48배, 비산7동 행정복지센터 등 거주 지역과 서대구 역은 무려 86배나 영향을 주는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통상 복합악취가 10배를 넘으면 대부분의 사람이 악취를 느낀다고 합니다. 이를 감안하면
인근 주민들이 고농도 악취에 시달리고 있는 사실이 확인된 겁니다.


특정 장소의 공기를 포집하는 대기 질 조사에서도 복합악취는 3~10배로 측정됐고, 지정악취물질 역시 기준치보다 최대 8배 이상 검출됐습니다. (이 방법은 바람에 의해 많이 희석됐을 가능성이 크고, 특정 포집 시간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결괏값은 모델링보다 낮게 나올 확률이 높다는 게 관련 전문가의 설명입니다)


악취물질 배출 사업장 관리도 제대로 안 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염색산단 사업장 41곳 중 18곳(44%)이 복합악취 배출 허용기준을 초과했고, '악취배출 총량'을 조사해보니 염색산단 반경 3km까지 영향을 주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한국환경공단 관계자
"조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본 것은, 이 염색산단의 악취 영향이 영향 지역에 미치냐 안 미치냐 하는 것인데. 조사 결과를 봤을 때 악취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확실한 것이죠. 다만, 어느 정도 악취 영향을 미치는지는 구간별로, 지점별로 조금씩 다를 수 있습니다."

■ '악취관리지역' 지정 권고했지만…대구는 '0곳'

대구 염색산단 전경
한국환경공단은 염색 산단 일대 악취가 광범위한 지역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결론을 내고,
9가지 개선 방안을 내놨습니다.

그 중 첫 번째가 바로 '악취관리지역' 지정과 신고 대상 시설 지정 검토입니다.

염색산단은 악취 민원이 수십 년간 지속되고 있고, 상당수 사업장이 배출 허용 기준을 초과하는 등 지정 요건을 충족한다는 겁니다.

'악취관리지역'으로 지정되면 무엇이 달라질까?

배출허용 기준을 보다 엄격하게 정할 수 있고, 적발되면 과징금은 물론 조업정지까지 내릴 수 있습니다.

예전보다 강력한 행정처분이 가능해지는 겁니다.


지금은 아무리 배출 기준을 어겨도 '과태료 2백만 원' 부과가 전부인 상황.

최근 3년간 대구 서구 일대 복합악취 기준치 초과 적발 건수는 73건, 이 가운데 과태료를 부과한 건 9건에 불과합니다. '솜방망이 처벌'인 겁니다.

그런데도 대구시는 여전히 '악취관리지역' 지정에 소극적입니다.

사업장에 대한 과도한 규제와 재산가치 하락 등을 우려해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또 내년까지 진행하는 대기환경 개선사업 결과를 살펴본 뒤 결정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환경부 역시 뒷짐을 지고 있습니다. 자치단체에 악취관리지역 지정을 권고하고, 자치단체는 1년 안에 이를 따라야 하는 관련 법이 올해 개정됐지만 "대구시 판단이 중요하다"며 책임을 떠넘깁니다.

법 개정 취지가 무색한 상황인 겁니다.

지금까지 지정된 악취관리지역은 전국 12개 시도 52곳,

대구는 민원이 끊이질 않는 서구는 물론 단 한 곳도 지정되지 않았습니다.

대구 염색산단  전경
환경당국이 모두 손 놓고 있는 사이, 주민들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악취와 싸우며 날마다 고통받고 있습니다.

여인오/대구 서구 평리동 아파트 주민
"온종일 음식물 쓰레기통 옆에 살고 있다 생각해 봐요, 냄새 심할 때. 그러면 사람이 견디겠어요? 맞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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