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핵 과학자가 본 ‘북핵의 변곡점’은?

입력 2023.11.0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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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커 헤커 박사 / @이화여대 홍보실 제공헤커 헤커 박사 / @이화여대 홍보실 제공

영화 '오펜하이머'로 잘 알려진 세계적인 기술과학 연구소인 미국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의 5대 소장이자, 북핵에 관해 손꼽히는 전문가로 알려진 시그프리드 헤커 박사가 한국을 찾았습니다.

과거 북한 당국의 초청으로 영변 핵시설 내부까지 직접 들어가 보기도 한 헤커 박사가, 점차 고도화되는 북핵 위기에 대해 어떤 진단을 내놨을까요?

"한국의 '자체 핵무장론', 한반도 더욱더 위험에 빠뜨릴 것"

7일 이화여대의 초청으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헤커 박사는 최근 들어 한국에서 '자체 핵무장론'이 제기되는 것에 대해 단호하게 '나쁜 생각(bad idea)'이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대량의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과의 균형을 위해 핵무기를 갖는다는 차원이라면, 한국도 핵무기 1, 2기를 보유하는 선에서 그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게 헤커 박사의 설명입니다.

헤커 박사는 "한국은 경제 발전을 위해 힘써 왔고, 북한은 (핵 개발에 몰두하는)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이라며 "(한국이 자체 핵무장에 나선다면) 경제 발전 등에 쏟아붓는 자원을 돌려 핵무장에 쏟아부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한반도에서 (남북의) 두 명의 지도자가 핵 발사 권한을 갖고 있다는 것은 "한반도를 분명히 더 위험하게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무엇보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헤커 박사는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원자력 발전 역량을 갖춘 한국이 이러한 역량과 기회를 모두 핵무장만을 위해 버리려 할지 의문이라고 했습니다. 즉 핵확산금지조약(NPT) 가입국인 한국이 국제사회의 제재를 감수하고 핵 무장을 선택해 원전 수출 등을 포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의미로 보입니다.

"세 번의 '변곡점'… 워싱턴, 잘못된 선택 반복"

헤커 박사는 북한 핵 개발의 역사를 돌아보면, 역대 미국 행정부마다 잘못된 선택이 반복됐고 이것이 일종의 '변곡점(hinge point)'이 됐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총 세 번의 변곡점이 있었는데 첫 번째는 2002년 조지 부시 전 대통령(43대) 당시"라며 "당시 부시 대통령의 집권으로 북핵에 대한 입장은 더욱 강경해졌고, 그 결과 북미 제네바 합의가 파기됐다"고 주장했습니다.

1994년 체결된 제네바 합의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 사찰을 받아들이면, 미국은 북한에 대한 핵무기 불사용을 보장하고 경수로 발전소 2기를 지어주겠다는 약속 등을 담았습니다.


이어 헤커 박사는 "오바마 전 대통령 시기에도 북한이 로켓 발사(2012년 4월 13일 '광명성 3호' 발사)에 나섰다가 실패했지만, 이로 인해 (오바마 정부는) '북한과는 함께할 수 없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며 "이것이 두 번째 변곡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트럼프 전 대통령 당시로, 헤커 박사는 "당시 김정은은 (2018년 신년사에서) '핵 단추가 내 사무실 책상 위에 항상 놓여있다'고까지 언급했다"며 "완전히 위험한 때"였다고 회고했습니다.

그러면서 "결국 북미 정상회담까지 이어지긴 했지만, 김정은의 패착은 미국에 존 볼턴이 있다는 걸 인식하지 못한 것"이라며 "(강경파인) 볼턴이 트럼프에게 회담에서 돌아서는 게 낫다고 했던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헤커 박사는 미 행정부의 잘못된 선택으로 오히려 북한 핵 능력이 고도화됐다며, 이는 "위기와 관련된 결정을 할 때 기술적 부분을 고려하지 않은 정치적 결정만 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북, 차츰 중·러와 밀착…러시아, 더이상 '책임 있는 핵보유국' 아냐"

그리고 그 결과는 지금껏 이어져, 북한이 점점 미국과 멀어지고 중국·러시아와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이 헤커 박사의 분석입니다.

헤커 박사는 "북한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포탄 등 무기를) 지원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것은 매우 안 좋은 뉴스"라며 "특히 러시아가 북한에 무엇을 대가로 주고 있는지가 우려되는 부분"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지난 3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핵무기 병기화 사업’ 지도할 당시 사진. 당시 전술핵탄두 ‘화산-31’을 최초 공개했다. / @조선중앙TV지난 3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핵무기 병기화 사업’ 지도할 당시 사진. 당시 전술핵탄두 ‘화산-31’을 최초 공개했다. / @조선중앙TV

이어 "북한이 스스로 자신들의 핵 무기고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리긴 어렵지만 러시아의 지원이 있다면 가능하다"며 "5년 전, 2년 전만 하더라도 이러한 걱정을 하지 않았겠지만 지금의 러시아는 '책임 있는 핵보유국'이 아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앞서 러시아가 지난 2일, 모든 핵실험을 금지하는 포괄적 핵실험 금지 조약(CTBT) 비준을 취소하며 1990년 이후 30여 년 만의 핵실험 가능성을 열어두는 등 최근 러시아가 보이고 있는 핵 관련 행보에 대한 비판으로 풀이됩니다.

다만 헤커 박사는 "지금까지 구소련이나 러시아가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을 직접 지원한 바는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 "북, 외교 실패 대비해 '이중경로 전략' 추진"

헤커 박사는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이 있었다고 보는지에 대해서는 "(북한이) 나름 진지하게 대화를 통해 미국과 관계 정상화를 하려고 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북한이 "외교가 실패했을 때를 대비해 핵개발을 추구하는 이중경로 전략(dual-track strategy)을 추진했던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북핵 문제에 해결에 대한 전망을 묻는 질문에 그는 미국에 '네버 세이 네버(Never say never·절대 안 된다는 말은 하지 마라)'라는 말이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과거 독일이 통일될 거라고 한번도 생각하지 않았지만 결국 통일됐듯 결국 지금의 상황은 현재의 비관론이며 상황은 늘 우리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간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김정은이 (비핵화와는) 다른 방향으로 나가기로 했고, 더 이상 책임있게 행동하지 않는 러시아, 푸틴과 결합하면 이것은 또 비관론"이라며 "그러나 우리는 준비돼있어야 한다. 장기적으로 희망을 버린 적이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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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커 헤커 박사 / @이화여대 홍보실 제공
영화 '오펜하이머'로 잘 알려진 세계적인 기술과학 연구소인 미국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의 5대 소장이자, 북핵에 관해 손꼽히는 전문가로 알려진 시그프리드 헤커 박사가 한국을 찾았습니다.

과거 북한 당국의 초청으로 영변 핵시설 내부까지 직접 들어가 보기도 한 헤커 박사가, 점차 고도화되는 북핵 위기에 대해 어떤 진단을 내놨을까요?

"한국의 '자체 핵무장론', 한반도 더욱더 위험에 빠뜨릴 것"

7일 이화여대의 초청으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헤커 박사는 최근 들어 한국에서 '자체 핵무장론'이 제기되는 것에 대해 단호하게 '나쁜 생각(bad idea)'이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대량의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과의 균형을 위해 핵무기를 갖는다는 차원이라면, 한국도 핵무기 1, 2기를 보유하는 선에서 그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게 헤커 박사의 설명입니다.

헤커 박사는 "한국은 경제 발전을 위해 힘써 왔고, 북한은 (핵 개발에 몰두하는)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이라며 "(한국이 자체 핵무장에 나선다면) 경제 발전 등에 쏟아붓는 자원을 돌려 핵무장에 쏟아부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한반도에서 (남북의) 두 명의 지도자가 핵 발사 권한을 갖고 있다는 것은 "한반도를 분명히 더 위험하게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무엇보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헤커 박사는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원자력 발전 역량을 갖춘 한국이 이러한 역량과 기회를 모두 핵무장만을 위해 버리려 할지 의문이라고 했습니다. 즉 핵확산금지조약(NPT) 가입국인 한국이 국제사회의 제재를 감수하고 핵 무장을 선택해 원전 수출 등을 포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의미로 보입니다.

"세 번의 '변곡점'… 워싱턴, 잘못된 선택 반복"

헤커 박사는 북한 핵 개발의 역사를 돌아보면, 역대 미국 행정부마다 잘못된 선택이 반복됐고 이것이 일종의 '변곡점(hinge point)'이 됐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총 세 번의 변곡점이 있었는데 첫 번째는 2002년 조지 부시 전 대통령(43대) 당시"라며 "당시 부시 대통령의 집권으로 북핵에 대한 입장은 더욱 강경해졌고, 그 결과 북미 제네바 합의가 파기됐다"고 주장했습니다.

1994년 체결된 제네바 합의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 사찰을 받아들이면, 미국은 북한에 대한 핵무기 불사용을 보장하고 경수로 발전소 2기를 지어주겠다는 약속 등을 담았습니다.


이어 헤커 박사는 "오바마 전 대통령 시기에도 북한이 로켓 발사(2012년 4월 13일 '광명성 3호' 발사)에 나섰다가 실패했지만, 이로 인해 (오바마 정부는) '북한과는 함께할 수 없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며 "이것이 두 번째 변곡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트럼프 전 대통령 당시로, 헤커 박사는 "당시 김정은은 (2018년 신년사에서) '핵 단추가 내 사무실 책상 위에 항상 놓여있다'고까지 언급했다"며 "완전히 위험한 때"였다고 회고했습니다.

그러면서 "결국 북미 정상회담까지 이어지긴 했지만, 김정은의 패착은 미국에 존 볼턴이 있다는 걸 인식하지 못한 것"이라며 "(강경파인) 볼턴이 트럼프에게 회담에서 돌아서는 게 낫다고 했던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헤커 박사는 미 행정부의 잘못된 선택으로 오히려 북한 핵 능력이 고도화됐다며, 이는 "위기와 관련된 결정을 할 때 기술적 부분을 고려하지 않은 정치적 결정만 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북, 차츰 중·러와 밀착…러시아, 더이상 '책임 있는 핵보유국' 아냐"

그리고 그 결과는 지금껏 이어져, 북한이 점점 미국과 멀어지고 중국·러시아와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이 헤커 박사의 분석입니다.

헤커 박사는 "북한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포탄 등 무기를) 지원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것은 매우 안 좋은 뉴스"라며 "특히 러시아가 북한에 무엇을 대가로 주고 있는지가 우려되는 부분"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지난 3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핵무기 병기화 사업’ 지도할 당시 사진. 당시 전술핵탄두 ‘화산-31’을 최초 공개했다. / @조선중앙TV
이어 "북한이 스스로 자신들의 핵 무기고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리긴 어렵지만 러시아의 지원이 있다면 가능하다"며 "5년 전, 2년 전만 하더라도 이러한 걱정을 하지 않았겠지만 지금의 러시아는 '책임 있는 핵보유국'이 아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앞서 러시아가 지난 2일, 모든 핵실험을 금지하는 포괄적 핵실험 금지 조약(CTBT) 비준을 취소하며 1990년 이후 30여 년 만의 핵실험 가능성을 열어두는 등 최근 러시아가 보이고 있는 핵 관련 행보에 대한 비판으로 풀이됩니다.

다만 헤커 박사는 "지금까지 구소련이나 러시아가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을 직접 지원한 바는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 "북, 외교 실패 대비해 '이중경로 전략' 추진"

헤커 박사는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이 있었다고 보는지에 대해서는 "(북한이) 나름 진지하게 대화를 통해 미국과 관계 정상화를 하려고 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북한이 "외교가 실패했을 때를 대비해 핵개발을 추구하는 이중경로 전략(dual-track strategy)을 추진했던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북핵 문제에 해결에 대한 전망을 묻는 질문에 그는 미국에 '네버 세이 네버(Never say never·절대 안 된다는 말은 하지 마라)'라는 말이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과거 독일이 통일될 거라고 한번도 생각하지 않았지만 결국 통일됐듯 결국 지금의 상황은 현재의 비관론이며 상황은 늘 우리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간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김정은이 (비핵화와는) 다른 방향으로 나가기로 했고, 더 이상 책임있게 행동하지 않는 러시아, 푸틴과 결합하면 이것은 또 비관론"이라며 "그러나 우리는 준비돼있어야 한다. 장기적으로 희망을 버린 적이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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