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촬영 가해 학생을 ‘급식실’에서 마주쳤다

입력 2023.11.0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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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학원 여자 화장실에서 휴대전화를 발견한 부산의 한 중학교 1학년 여학생. 휴대전화를 봤더니 동영상이 찍히고 있었습니다.

학원 교사와 여학생은 휴대전화기에 적혀있는 전화번호부 등을 확인했습니다. 같은 반 남학생이 휴대전화 공기계를 화장실에 몰래 놓아두고 불법 촬영을 한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아버지를 통해 피해 여학생은 심적 고통을 호소했습니다.

"학교에서도 화장실이 너무 급했는데 못 가겠대요. (참다가) 친한 친구랑 같이 화장실을 갔는데, 칸에 같이 들어가서 앉자마자 울었대요…."
-불법촬영 피해 학생 아버지

남학생은 10살 이상에서 14살 미만에 해당하는 '촉법소년'. 경찰은 남학생을 불법촬영 혐의로 송치했습니다. 그렇다면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의 처분은 어땠을까요? '학급 교체'를 지시했습니다.

■ 다른 '반'으로 간 불법촬영 가해 학생을 '급식실'에서 마주쳤다


남학생은 다른 반으로 옮겨졌습니다. 이 사건 학폭위를 열고 '학급 교체' 처분을 내렸던 부산 북부교육지원청은 '분리'를 자신했습니다.

"마주치지 않는 동선의 학급에 아이를 배치했고요. 등하교 시나 급식 시간도 겹치지 않도록 학급 시간대를 조정할 수 있거든요…가해 남학생만 다른 쪽 출입구를 이용해서…"
-부산 북부교육지원청 관계자(지난달 18일)

처벌 수위를 지적한 KBS의 첫 보도가 나간 뒤 피해 학생 학부모가 취재진에게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가해 학생이 학교로 돌아온 날, 피해 학생이 '급식실'에서 가해 학생과 마주쳤다는 겁니다.

"밥을 못 먹고 한참 엎드려서 울었다 하더라고요…그날뿐만 아니고 그다음 날도 바로 또 운동장에서 마주쳤다고 하더라고요. 그다음 날 세 번째 날은 복도에서…화가 너무 나더라고요."
-불법촬영 피해 학생 아버지

교육지원청은 '분리'를 자신했지만, 말뿐인 효과 없는 대책이었음이 드러난 순간이었습니다.

■ 성폭력 가해 학생 7%만 '전학'…퇴학은 3년째 '0'


취재진은 2020년부터 올해 8월까지 부산 학교 성폭력 가해 학생 조치 현황을 살펴봤습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분리'되는 8호 처분(전학)을 받은 학생은 전체 초.중.고 가해 학생 555명 중 41명에 불과했고, 퇴학 조치는 3년 반 동안 단 한 건도 없었습니다.

이번 사건 학폭위 회의록에서도 "성 사안인 만큼 3년간 같은 학교에서 지내는 건 피해 학생에게 가혹하다"며 전학 처분을 내려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지만, "가해 학생 선도와 피해 학생 보호가 충분하다"는 의견 우세로 '학급 교체' 처분이 내려졌습니다.

소수 의견이 반영됐다면, 불법 촬영 가해자와 피해자가 '급식실'에서 만나는 '2차 피해'는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 만나는 것만으로도 '2차 가해'인데…'피해자'가 전학 가는 분위기


전문가들은 학교에서 일어난 성범죄는 대부분 '피해자'가 전학을 간다고 합니다. 만나는 것만으로도 '2차 가해'인 성범죄에서 가장 중요한 가해자와 피해자 분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피로를 호소하던 피해자가 결국, 떠난다는 겁니다.

"성범죄와 관련된 문제에서도 학폭위에서 16점 이상의 점수가 부여되지 않는 경우, 전학조치가 내려질 수 없기에 오히려 대부분의 경우 피해 학생이 가해 학생을 피해 전학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김지훈 변호사

그래서 성 관련 학교폭력 문제는 특수한 유형의 형태로 보고, 성범죄임이 분명한 경우에는 가해 학생에게 전학 조치 등이 필수적으로 내려지도록 하는 등의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부산 북부교육지원청은 "접근 금지 조처를 내렸지만, 우연히 마주치는 경우에 대한 대응이 미흡했다"며, 앞으로는 학폭위 심의위원들에게 성범죄의 특수성을 살핀 심의를 당부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서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피해 학생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았고, 피해 학생 학부모는 "아이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성범죄 학폭위 처분, 이대로 괜찮은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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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법촬영 가해 학생을 ‘급식실’에서 마주쳤다
    • 입력 2023-11-09 07: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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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학원 여자 화장실에서 휴대전화를 발견한 부산의 한 중학교 1학년 여학생. 휴대전화를 봤더니 동영상이 찍히고 있었습니다.

학원 교사와 여학생은 휴대전화기에 적혀있는 전화번호부 등을 확인했습니다. 같은 반 남학생이 휴대전화 공기계를 화장실에 몰래 놓아두고 불법 촬영을 한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아버지를 통해 피해 여학생은 심적 고통을 호소했습니다.

"학교에서도 화장실이 너무 급했는데 못 가겠대요. (참다가) 친한 친구랑 같이 화장실을 갔는데, 칸에 같이 들어가서 앉자마자 울었대요…."
-불법촬영 피해 학생 아버지

남학생은 10살 이상에서 14살 미만에 해당하는 '촉법소년'. 경찰은 남학생을 불법촬영 혐의로 송치했습니다. 그렇다면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의 처분은 어땠을까요? '학급 교체'를 지시했습니다.

■ 다른 '반'으로 간 불법촬영 가해 학생을 '급식실'에서 마주쳤다


남학생은 다른 반으로 옮겨졌습니다. 이 사건 학폭위를 열고 '학급 교체' 처분을 내렸던 부산 북부교육지원청은 '분리'를 자신했습니다.

"마주치지 않는 동선의 학급에 아이를 배치했고요. 등하교 시나 급식 시간도 겹치지 않도록 학급 시간대를 조정할 수 있거든요…가해 남학생만 다른 쪽 출입구를 이용해서…"
-부산 북부교육지원청 관계자(지난달 18일)

처벌 수위를 지적한 KBS의 첫 보도가 나간 뒤 피해 학생 학부모가 취재진에게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가해 학생이 학교로 돌아온 날, 피해 학생이 '급식실'에서 가해 학생과 마주쳤다는 겁니다.

"밥을 못 먹고 한참 엎드려서 울었다 하더라고요…그날뿐만 아니고 그다음 날도 바로 또 운동장에서 마주쳤다고 하더라고요. 그다음 날 세 번째 날은 복도에서…화가 너무 나더라고요."
-불법촬영 피해 학생 아버지

교육지원청은 '분리'를 자신했지만, 말뿐인 효과 없는 대책이었음이 드러난 순간이었습니다.

■ 성폭력 가해 학생 7%만 '전학'…퇴학은 3년째 '0'


취재진은 2020년부터 올해 8월까지 부산 학교 성폭력 가해 학생 조치 현황을 살펴봤습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분리'되는 8호 처분(전학)을 받은 학생은 전체 초.중.고 가해 학생 555명 중 41명에 불과했고, 퇴학 조치는 3년 반 동안 단 한 건도 없었습니다.

이번 사건 학폭위 회의록에서도 "성 사안인 만큼 3년간 같은 학교에서 지내는 건 피해 학생에게 가혹하다"며 전학 처분을 내려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지만, "가해 학생 선도와 피해 학생 보호가 충분하다"는 의견 우세로 '학급 교체' 처분이 내려졌습니다.

소수 의견이 반영됐다면, 불법 촬영 가해자와 피해자가 '급식실'에서 만나는 '2차 피해'는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 만나는 것만으로도 '2차 가해'인데…'피해자'가 전학 가는 분위기


전문가들은 학교에서 일어난 성범죄는 대부분 '피해자'가 전학을 간다고 합니다. 만나는 것만으로도 '2차 가해'인 성범죄에서 가장 중요한 가해자와 피해자 분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피로를 호소하던 피해자가 결국, 떠난다는 겁니다.

"성범죄와 관련된 문제에서도 학폭위에서 16점 이상의 점수가 부여되지 않는 경우, 전학조치가 내려질 수 없기에 오히려 대부분의 경우 피해 학생이 가해 학생을 피해 전학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김지훈 변호사

그래서 성 관련 학교폭력 문제는 특수한 유형의 형태로 보고, 성범죄임이 분명한 경우에는 가해 학생에게 전학 조치 등이 필수적으로 내려지도록 하는 등의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부산 북부교육지원청은 "접근 금지 조처를 내렸지만, 우연히 마주치는 경우에 대한 대응이 미흡했다"며, 앞으로는 학폭위 심의위원들에게 성범죄의 특수성을 살핀 심의를 당부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서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피해 학생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았고, 피해 학생 학부모는 "아이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성범죄 학폭위 처분, 이대로 괜찮은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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