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공연 하루 앞두고 돌연 ‘취소’…막을 방법 없나?

입력 2023.11.09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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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운명의 힘’ 연습 장면 [지난 1일, 대전예술의전당]오페라 ‘운명의 힘’ 연습 장면 [지난 1일, 대전예술의전당]

주세페 베르디의 오페라 '운명의 힘'. 베르디의 작품 중에서도 관현악의 조화가 아름답고, 극의 전개가 흥미로워 현재까지도 전 세계 오페라 무대에 자주 오르는 작품입니다.

대전예술의전당이 개관 20주년을 맞아 야심차게 자체 제작하기로 한 오페라로, 국내에서 손꼽히는 유명 연출가와 유럽 극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지휘자, 그리고 검증된 무대 디자이너와 의상 디자이너가 협업한다는 소식에 이번 가을 막이 오를 무대에 대한 기대감은 한껏 상승했습니다.

개막을 일주일 앞두고 지난 1일, 막바지 예행연습을 하는 현장 취재를 갔을 때만 해도 이러한 기대감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국제 무대에 서도 손색없을 출연자들의 열창과 대규모 합창 인원의 참여를 지켜보면서, 고대 이탈리아어로 된 언어의 장벽쯤은 음악이 전달하는 이야기와 분위기를 따라가다 보면 별문제가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작품으로 다가왔습니다.

대전예술의전당 누리집 공지 갈무리대전예술의전당 누리집 공지 갈무리

하지만 공연을 하루 앞둔 지난 7일 저녁, 돌연 '운명의 힘' 공연이 취소됐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지난주 오페라 공연 관련 뉴스를 전하고 관심 있게 지켜보던 터라 설마하는 대전예술의전당 관계자에게 문의했더니 '공연 취소'는 사실이었습니다.

취소 이유는 다음 아닌 무대 세트의 미완성. 무대 미술은 오페라의 주요 구성 요소로 꼽힐 정도로 관객에게 시각적인 경험을 통해 오페라의 이야기를 더욱 명확하게 전달하는 장치입니다. 배경 화면을 통해 시대나 공간적 배경을 나타내 줌으로써 관객들이 더욱 작품에 몰입할 수 있게 하는 거죠. 그런데 이 무대 설치를 맡은 업체에서 공연 전날까지도 무대를 설치하지 못한 것입니다. 20개 세트를 납품하는 것으로 계약됐지만, 공연 직전까지 완성된 것은 6개뿐이고 이마저도 규격이나 재질, 방염처리 면에서 예당에서 발주한 설명서의 규격과 맞지 않는 것들이었습니다.

모처럼 오페라를 즐길 기대감에 차 있던 예매객 천 5백여 명에게는 긴급히 취소 안내 문자가 전달됐습니다. '취소 수수료' 없이 전액 환불 하겠다는 내용이었는데 공연 관람 기회를 박탈한 것치고는 너무 무책임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대전예술의전당 측도 개관 20년 만에 처음 겪는 일이라며 사태 수습에 크게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대전예술의전당의 공연 취소 안내문 일부대전예술의전당의 공연 취소 안내문 일부

그런데 이런 일이 왜 발생한 걸까요? 이번 공연의 총 예산은 6억 5천만 원입니다. 이 가운데 무대 설치 사업 금액은 1억 천 4백여만 원. 2천만 원 이상의 예산이 들기 때문에 대전시의 사업소인 대전예당에서 수의계약은 불가능하고, 대전시의 입찰 용역을 거쳐야 했습니다. 그런데 나라장터를 통해 진행된 대전시의 입찰 용역아 일반 용역 적격 심사이다보니 예술성이나 전문성 관련 항목은 고려되지 않았습니다.

2억 원 미만의 용역이다 보니 심사 배점이 업체의 경영 상태와 신인도, 입찰 가격 등을 중심으로 평가돼 이번 무대 세트 제작을 받은 업체는 적격심사에서 무려 95점을 받기도 했습니다.

특히 용역 발주 과정에서 '예술 전문 무대 설치 업체'와 '천 석 이상 대규모 공연장에서의 무대설치 경험' 등의 당연한 입찰 조건이 누락 된 사실도 이번 공연 취소 사태로 확인됐습니다. 대전예당 측은 손해배상 청구 등 법적 조치에 나설 준비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지역을 대표하는 공연장으로서 신뢰도에 큰 타격을 입은 만큼 재발 방지 대책 마련도 필요해 보입니다.

기존 적격 심사 방식에서 전문성이나 기술성, 창의성 등을 요구하는 '협상에 의한 계약'으로 변경하는 제도적 개편과 지자체 산하기관의 용역 발주시, 특정 사안에 예외를 두도록 하는 조례 개정은 물론, 공연 주최자인 대전예술의전당도 만약 중간 확인 과정에서라도 무대 준비에 차질이 생길 경우 '플랜 B' 를 준비해 유연하게 대처하는 자세가 필요해 보입니다.

대전예술의전당은 이번에 취소된 오페라 '운명의 힘'을 이르면 내년 봄 다시 무대에 올릴 예정이라고 하는데요. 기획부터 제작까지 1년 가까운 시간과 거액의 지방 재정이 투입됐고, 무대에 서기만을 고대했던 2백 명이 넘는 출연자들의 염원 해소를 위해서라도 빈틈없는 준비와 대처가 따라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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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운명의 힘’ 연습 장면 [지난 1일, 대전예술의전당]
주세페 베르디의 오페라 '운명의 힘'. 베르디의 작품 중에서도 관현악의 조화가 아름답고, 극의 전개가 흥미로워 현재까지도 전 세계 오페라 무대에 자주 오르는 작품입니다.

대전예술의전당이 개관 20주년을 맞아 야심차게 자체 제작하기로 한 오페라로, 국내에서 손꼽히는 유명 연출가와 유럽 극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지휘자, 그리고 검증된 무대 디자이너와 의상 디자이너가 협업한다는 소식에 이번 가을 막이 오를 무대에 대한 기대감은 한껏 상승했습니다.

개막을 일주일 앞두고 지난 1일, 막바지 예행연습을 하는 현장 취재를 갔을 때만 해도 이러한 기대감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국제 무대에 서도 손색없을 출연자들의 열창과 대규모 합창 인원의 참여를 지켜보면서, 고대 이탈리아어로 된 언어의 장벽쯤은 음악이 전달하는 이야기와 분위기를 따라가다 보면 별문제가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작품으로 다가왔습니다.

대전예술의전당 누리집 공지 갈무리
하지만 공연을 하루 앞둔 지난 7일 저녁, 돌연 '운명의 힘' 공연이 취소됐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지난주 오페라 공연 관련 뉴스를 전하고 관심 있게 지켜보던 터라 설마하는 대전예술의전당 관계자에게 문의했더니 '공연 취소'는 사실이었습니다.

취소 이유는 다음 아닌 무대 세트의 미완성. 무대 미술은 오페라의 주요 구성 요소로 꼽힐 정도로 관객에게 시각적인 경험을 통해 오페라의 이야기를 더욱 명확하게 전달하는 장치입니다. 배경 화면을 통해 시대나 공간적 배경을 나타내 줌으로써 관객들이 더욱 작품에 몰입할 수 있게 하는 거죠. 그런데 이 무대 설치를 맡은 업체에서 공연 전날까지도 무대를 설치하지 못한 것입니다. 20개 세트를 납품하는 것으로 계약됐지만, 공연 직전까지 완성된 것은 6개뿐이고 이마저도 규격이나 재질, 방염처리 면에서 예당에서 발주한 설명서의 규격과 맞지 않는 것들이었습니다.

모처럼 오페라를 즐길 기대감에 차 있던 예매객 천 5백여 명에게는 긴급히 취소 안내 문자가 전달됐습니다. '취소 수수료' 없이 전액 환불 하겠다는 내용이었는데 공연 관람 기회를 박탈한 것치고는 너무 무책임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대전예술의전당 측도 개관 20년 만에 처음 겪는 일이라며 사태 수습에 크게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대전예술의전당의 공연 취소 안내문 일부
그런데 이런 일이 왜 발생한 걸까요? 이번 공연의 총 예산은 6억 5천만 원입니다. 이 가운데 무대 설치 사업 금액은 1억 천 4백여만 원. 2천만 원 이상의 예산이 들기 때문에 대전시의 사업소인 대전예당에서 수의계약은 불가능하고, 대전시의 입찰 용역을 거쳐야 했습니다. 그런데 나라장터를 통해 진행된 대전시의 입찰 용역아 일반 용역 적격 심사이다보니 예술성이나 전문성 관련 항목은 고려되지 않았습니다.

2억 원 미만의 용역이다 보니 심사 배점이 업체의 경영 상태와 신인도, 입찰 가격 등을 중심으로 평가돼 이번 무대 세트 제작을 받은 업체는 적격심사에서 무려 95점을 받기도 했습니다.

특히 용역 발주 과정에서 '예술 전문 무대 설치 업체'와 '천 석 이상 대규모 공연장에서의 무대설치 경험' 등의 당연한 입찰 조건이 누락 된 사실도 이번 공연 취소 사태로 확인됐습니다. 대전예당 측은 손해배상 청구 등 법적 조치에 나설 준비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지역을 대표하는 공연장으로서 신뢰도에 큰 타격을 입은 만큼 재발 방지 대책 마련도 필요해 보입니다.

기존 적격 심사 방식에서 전문성이나 기술성, 창의성 등을 요구하는 '협상에 의한 계약'으로 변경하는 제도적 개편과 지자체 산하기관의 용역 발주시, 특정 사안에 예외를 두도록 하는 조례 개정은 물론, 공연 주최자인 대전예술의전당도 만약 중간 확인 과정에서라도 무대 준비에 차질이 생길 경우 '플랜 B' 를 준비해 유연하게 대처하는 자세가 필요해 보입니다.

대전예술의전당은 이번에 취소된 오페라 '운명의 힘'을 이르면 내년 봄 다시 무대에 올릴 예정이라고 하는데요. 기획부터 제작까지 1년 가까운 시간과 거액의 지방 재정이 투입됐고, 무대에 서기만을 고대했던 2백 명이 넘는 출연자들의 염원 해소를 위해서라도 빈틈없는 준비와 대처가 따라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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