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하지 않는 의원님들…‘장애 비하 발언 소송’이 끝나지 않는 이유 [주말엔]

입력 2023.11.11 (09:01) 수정 2023.11.11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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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천적인 장애인은 어려서부터 장애를 갖고 나오니까 의지가 좀 약하다고 한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 2020년 1월, 민주당 공식 유튜브 채널 '씀')

"감독 나가신 분들이 눈 뜬 장님이었는지…"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 2023년 8월, 국회)

"회의도 개최되지 않고 꿀 먹은 벙어리 상태"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2021년 10월, 국회)

나쁜 의도는 아니었어도, 관습적으로 써왔어도, 누군가에게 비수로 꽂힐 수 있는 차별 언어를 개선하자는 목소리는 공허한 메아리에 그친 걸까요.

올해도 정치인들의 '장애 비하' 발언은 계속됐습니다.

몇 년 전 비슷한 표현을 썼다가 장애인 단체로부터 소송을 당한 의원들이 있는데요.

2심 선고를 앞두고 원고들은 "앞으로 노력하겠다는 약속만 해주면 모든 청구를 포기하겠다"며 화해적 해결을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피고 국회의장' 측 반응은 뜨뜻미지근합니다.

■ 외눈박이·절름발이·벙어리 '이제 그만' …소송당한 의원들

시청각·지체·정신장애가 있는 당사자 5명이 소송을 낸 건 2021년 4월.

장애인의 날을 맞아 1년간 장애인 비하 표현을 한 전·현직 의원 6명과 박병석 당시 국회의장을 상대로 차별 구제를 청구했습니다.


의원들에게는 위자료 각 100만 원씩, 국회의장에게는 문제 발언을 한 의원에 대한 징계권 행사와 국회규칙인 윤리실천규범에 '장애인 모욕 발언 금지' 규정을 신설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1심은 지난해 4월 의원들의 발언이 장애인을 비하하거나 혐오감을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는 매우 부적절한 표현이라고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장애인 개개인을 모욕·명예훼손 한 건 아니기 때문에 배상 책임은 없다며 원고 패소로 판결했습니다.

■ "화해적 해결방안 찾아보라" 선고 미룬 재판부

2심 첫 재판은 항소한 지 1년이 지나서야 간신히 열렸습니다.

그 사이 의원직을 그만둔 피고 3명(곽상도·김은혜·윤희숙 전 의원)에게 항소장이 전달되지 못했고, 국회사무처도 이들의 주소를 알려달라는 법원의 사실조회 신청에 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윤 전 의원에게는 끝까지 항소장 전달이 안 돼 항소가 각하됐고, 나머지 전·현직 의원 5명과 바뀐 김진표 국회의장을 상대로 2심 재판이 진행됐습니다.

원래라면 올해 8월 판결을 선고하기로 했지만, 재판부가 "화해적 해결방안을 모색하겠다"면서 변론을 재개하고 두 차례 변론준비절차를 열었습니다.

이에 원고 측은 "소송 제기의 취지와 공익적 필요성, 현행법상 한계를 감안해 화해권고 결정을 내려주실 것을 재판부에 요청드린다"고 밝혔습니다. 판결 선고 대신 당사자 간 화해적 해결로 소송을 마무리 짓는 데 공감한다는 취지입니다.

■ 원고 측 화해 조건 '노력'뿐인데…국회 측 "판결로 하자"

원고 측이 내건 화해 조건은 잘못 인정, 그리고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약속입니다.

원고들을 대리한 최정규 변호사는 "손해배상 청구는 금전 자체에 목적을 두었다기보다 청구가 인용됨으로써 피고 국회의원들의 발언이 '장애인 차별행위'임을 인정받는 것이 목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재판 과정에서 잘못을 겸허히 인정한 건 이광재 국회 사무총장뿐이었다며, "진정 어린 사과를 통해 조기에 화해적 해결이 가능했던 사건이 항소심까지 이른 건 법적 항변에 치중한 피고들의 책임이 크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피고 측 대리인단은 난색을 보였습니다.

김진표 국회의장의 대리인은 재판부에 낸 의견서에서 이번 소송이 당사자 적격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주장을 재차 폈습니다. 1심과 마찬가지로 의장에 대한 청구를 '각하'해 달라는 겁니다.

원고들의 화해 권고 요구에 대해서는 "이미 피고들에 의해 (사과와 노력의) 의견 표명이 이뤄졌다고 보여진다"면서 "화해 권고 결정을 통해 해결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고 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1심 판결 후 박병석 전 의장이 의원들에게 당부의 서한을 보냈고, 김진표 의장도 재판부에 낸 서면에서 노력하겠다는 뜻을 밝힌 적 있다는 점을 내세웠습니다.

지난 9일 열린 결심 재판, 양측은 결국 화해적 해결에 대한 합의를 이루지 못한 채 재판을 마쳤습니다.

원고 대리인은 "국회의장이 장애인 차별·혐오 발언이 중단되도록 노력하겠다는 선언적 차원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고, 피고 대리인은 "권력 분립의 원칙에 따라 국회에서 자체적으로 판단하도록 맡겨 달라"고 맞섰습니다.

재판부는 다음 달 21일을 선고기일로 잡고, "검토를 거쳐 (선고가 아닌) 화해 권고를 할 수도 있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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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해하지 않는 의원님들…‘장애 비하 발언 소송’이 끝나지 않는 이유 [주말엔]
    • 입력 2023-11-11 09:01:18
    • 수정2023-11-11 09:16:56
    주말엔

"선천적인 장애인은 어려서부터 장애를 갖고 나오니까 의지가 좀 약하다고 한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 2020년 1월, 민주당 공식 유튜브 채널 '씀')

"감독 나가신 분들이 눈 뜬 장님이었는지…"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 2023년 8월, 국회)

"회의도 개최되지 않고 꿀 먹은 벙어리 상태"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2021년 10월, 국회)

나쁜 의도는 아니었어도, 관습적으로 써왔어도, 누군가에게 비수로 꽂힐 수 있는 차별 언어를 개선하자는 목소리는 공허한 메아리에 그친 걸까요.

올해도 정치인들의 '장애 비하' 발언은 계속됐습니다.

몇 년 전 비슷한 표현을 썼다가 장애인 단체로부터 소송을 당한 의원들이 있는데요.

2심 선고를 앞두고 원고들은 "앞으로 노력하겠다는 약속만 해주면 모든 청구를 포기하겠다"며 화해적 해결을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피고 국회의장' 측 반응은 뜨뜻미지근합니다.

■ 외눈박이·절름발이·벙어리 '이제 그만' …소송당한 의원들

시청각·지체·정신장애가 있는 당사자 5명이 소송을 낸 건 2021년 4월.

장애인의 날을 맞아 1년간 장애인 비하 표현을 한 전·현직 의원 6명과 박병석 당시 국회의장을 상대로 차별 구제를 청구했습니다.


의원들에게는 위자료 각 100만 원씩, 국회의장에게는 문제 발언을 한 의원에 대한 징계권 행사와 국회규칙인 윤리실천규범에 '장애인 모욕 발언 금지' 규정을 신설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1심은 지난해 4월 의원들의 발언이 장애인을 비하하거나 혐오감을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는 매우 부적절한 표현이라고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장애인 개개인을 모욕·명예훼손 한 건 아니기 때문에 배상 책임은 없다며 원고 패소로 판결했습니다.

■ "화해적 해결방안 찾아보라" 선고 미룬 재판부

2심 첫 재판은 항소한 지 1년이 지나서야 간신히 열렸습니다.

그 사이 의원직을 그만둔 피고 3명(곽상도·김은혜·윤희숙 전 의원)에게 항소장이 전달되지 못했고, 국회사무처도 이들의 주소를 알려달라는 법원의 사실조회 신청에 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윤 전 의원에게는 끝까지 항소장 전달이 안 돼 항소가 각하됐고, 나머지 전·현직 의원 5명과 바뀐 김진표 국회의장을 상대로 2심 재판이 진행됐습니다.

원래라면 올해 8월 판결을 선고하기로 했지만, 재판부가 "화해적 해결방안을 모색하겠다"면서 변론을 재개하고 두 차례 변론준비절차를 열었습니다.

이에 원고 측은 "소송 제기의 취지와 공익적 필요성, 현행법상 한계를 감안해 화해권고 결정을 내려주실 것을 재판부에 요청드린다"고 밝혔습니다. 판결 선고 대신 당사자 간 화해적 해결로 소송을 마무리 짓는 데 공감한다는 취지입니다.

■ 원고 측 화해 조건 '노력'뿐인데…국회 측 "판결로 하자"

원고 측이 내건 화해 조건은 잘못 인정, 그리고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약속입니다.

원고들을 대리한 최정규 변호사는 "손해배상 청구는 금전 자체에 목적을 두었다기보다 청구가 인용됨으로써 피고 국회의원들의 발언이 '장애인 차별행위'임을 인정받는 것이 목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재판 과정에서 잘못을 겸허히 인정한 건 이광재 국회 사무총장뿐이었다며, "진정 어린 사과를 통해 조기에 화해적 해결이 가능했던 사건이 항소심까지 이른 건 법적 항변에 치중한 피고들의 책임이 크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피고 측 대리인단은 난색을 보였습니다.

김진표 국회의장의 대리인은 재판부에 낸 의견서에서 이번 소송이 당사자 적격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주장을 재차 폈습니다. 1심과 마찬가지로 의장에 대한 청구를 '각하'해 달라는 겁니다.

원고들의 화해 권고 요구에 대해서는 "이미 피고들에 의해 (사과와 노력의) 의견 표명이 이뤄졌다고 보여진다"면서 "화해 권고 결정을 통해 해결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고 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1심 판결 후 박병석 전 의장이 의원들에게 당부의 서한을 보냈고, 김진표 의장도 재판부에 낸 서면에서 노력하겠다는 뜻을 밝힌 적 있다는 점을 내세웠습니다.

지난 9일 열린 결심 재판, 양측은 결국 화해적 해결에 대한 합의를 이루지 못한 채 재판을 마쳤습니다.

원고 대리인은 "국회의장이 장애인 차별·혐오 발언이 중단되도록 노력하겠다는 선언적 차원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고, 피고 대리인은 "권력 분립의 원칙에 따라 국회에서 자체적으로 판단하도록 맡겨 달라"고 맞섰습니다.

재판부는 다음 달 21일을 선고기일로 잡고, "검토를 거쳐 (선고가 아닌) 화해 권고를 할 수도 있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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