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명 살리고 떠난 예비 신부…“장기기증자를 기억해 주세요” [주말엔]

입력 2023.11.1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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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정 씨는 지난 8월 강원도의 한 해수욕장에서 스노클링을 하던 딸 김건혜 씨가 사고를 당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병원에 도착한 김 씨가 마주한 건 호흡기를 찬 딸의 모습.

결국 딸 건혜 씨는 일어나지 못했고, 가족들은 상의 끝에 그녀를 보내주기로 했습니다.

심장, 간, 양쪽 신장을 기증하고 4명을 살린 김건혜 씨.

2023년 9월 6일, 故 김건혜 씨가 누군가를 살리고 떠난 날입니다.


■ 꿈 많던 예비 신부


2녀 1남 중 둘째로 태어난 김 씨는 유학을 떠난 첫째를 대신해 남동생을 살뜰히 살피던 누나였습니다.

밝은 모습으로 가족들 사이에서 구심점 역할을 했던 김 씨는 동시에 결혼을 준비하던 예비신부이기도 했습니다.

어머니 김보정 씨는 "결혼식에서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딸을 축복해주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결혼식장과 신혼집을 알아보며 누구보다 행복한 미래를 그리던 건혜 씨.

하지만 이제 건혜 씨의 방엔 주인을 잃은 결혼 반지만이 남아있습니다.


"내년 4월에 결혼할 예정이었어요. 앞으로 못하는 것보다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이 참 많은 아이였어요."


■ "세상에서 가장 숭고한 선택"

사랑하는 딸의 장기를 기증하겠다고 결정하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무섭고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어머니 김보정 씨.

하지만 딸이 세상을 떠나더라도 그 흔적이 남아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아마 장기기증을 생각했던 가족들은 그런 생각 하실 거예요. 내 아이의 장기가 어느 분에게 가서 살아 있다면 내 아이도 같이 사는 거다……. 저도 그랬던 것 같아요."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후회는 없다고, 딸인 건혜 씨도 당연히 동의했을 거라고 어머니 김보정 씨는 말합니다.

"아이를 보내고 나서는 한 번도 후회한 적 없어요. 우리 아이가 누군가를 살렸다는 거에 대한 자부심이 엄청 많아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요. 분명 세상에서 가장 숭고한 선택이 될 거라 믿습니다."


■ 장기기증자들이 주고 간 "천사의 선물"

2022년 장기이식 대기자 수는 41,706명. 그 숫자는 매년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 2022년 장기기증자는 405명으로 최근 조금씩 줄었습니다.

또, 작년 한 해에만 장기 기증을 받지 못해 돌아가신 분이 3,000여 명에 달할 정도로 장기 이식을 받는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2018년에 '기적에 가까운 확률'로 폐 이식을 받고 제2의 인생을 살게 된 성악가 손기동 씨는 "다시 숨 쉬고, 걷고, 노래하게 된 것만으로 감사하고 행복하다"며 "천사의 선물"이라 표현했습니다.


"저에게 이식해주신 분이 누군지는 알 수 없지만, 항상 제 안에 함께 있는 것 같습니다. 운동하다가 힘들거나 마음이 우울해지면 '우리 같이 힘내요'라고 말하곤 해요. 너무 감사할 뿐입니다. 남은 인생을 유가족들을 위해 봉사하려고 해요."


■ 곧 잊힐 이름이라도

남은 가족들은 사람들이 건혜 씨를 이렇게 기억하길 바랍니다.

"대한민국에서 누구보다 긍정적이고 밝은 사람", "좋은 사람, 그리고 용기 있는 사람".

"다음 달이면 다들 이 이야기를 잊어버릴 수도 있어요. '김건혜'라는 이름 석 자가 잊혀지더라도 나의 모든 걸 포기하면서 누군가를 살렸으니 그 사람은 참 좋은 사람이고 참 값진 사람이다, 이렇게만 제 딸을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대가도 없이 장기를 나눠준 수많은 기증자와 그의 가족들.

이들이 남긴 소중한 생명에 감사하기 위해서라도 누군가는 그들을 기억해나가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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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명 살리고 떠난 예비 신부…“장기기증자를 기억해 주세요” [주말엔]
    • 입력 2023-11-12 10:00:18
    주말엔

김보정 씨는 지난 8월 강원도의 한 해수욕장에서 스노클링을 하던 딸 김건혜 씨가 사고를 당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병원에 도착한 김 씨가 마주한 건 호흡기를 찬 딸의 모습.

결국 딸 건혜 씨는 일어나지 못했고, 가족들은 상의 끝에 그녀를 보내주기로 했습니다.

심장, 간, 양쪽 신장을 기증하고 4명을 살린 김건혜 씨.

2023년 9월 6일, 故 김건혜 씨가 누군가를 살리고 떠난 날입니다.


■ 꿈 많던 예비 신부


2녀 1남 중 둘째로 태어난 김 씨는 유학을 떠난 첫째를 대신해 남동생을 살뜰히 살피던 누나였습니다.

밝은 모습으로 가족들 사이에서 구심점 역할을 했던 김 씨는 동시에 결혼을 준비하던 예비신부이기도 했습니다.

어머니 김보정 씨는 "결혼식에서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딸을 축복해주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결혼식장과 신혼집을 알아보며 누구보다 행복한 미래를 그리던 건혜 씨.

하지만 이제 건혜 씨의 방엔 주인을 잃은 결혼 반지만이 남아있습니다.


"내년 4월에 결혼할 예정이었어요. 앞으로 못하는 것보다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이 참 많은 아이였어요."


■ "세상에서 가장 숭고한 선택"

사랑하는 딸의 장기를 기증하겠다고 결정하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무섭고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어머니 김보정 씨.

하지만 딸이 세상을 떠나더라도 그 흔적이 남아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아마 장기기증을 생각했던 가족들은 그런 생각 하실 거예요. 내 아이의 장기가 어느 분에게 가서 살아 있다면 내 아이도 같이 사는 거다……. 저도 그랬던 것 같아요."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후회는 없다고, 딸인 건혜 씨도 당연히 동의했을 거라고 어머니 김보정 씨는 말합니다.

"아이를 보내고 나서는 한 번도 후회한 적 없어요. 우리 아이가 누군가를 살렸다는 거에 대한 자부심이 엄청 많아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요. 분명 세상에서 가장 숭고한 선택이 될 거라 믿습니다."


■ 장기기증자들이 주고 간 "천사의 선물"

2022년 장기이식 대기자 수는 41,706명. 그 숫자는 매년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 2022년 장기기증자는 405명으로 최근 조금씩 줄었습니다.

또, 작년 한 해에만 장기 기증을 받지 못해 돌아가신 분이 3,000여 명에 달할 정도로 장기 이식을 받는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2018년에 '기적에 가까운 확률'로 폐 이식을 받고 제2의 인생을 살게 된 성악가 손기동 씨는 "다시 숨 쉬고, 걷고, 노래하게 된 것만으로 감사하고 행복하다"며 "천사의 선물"이라 표현했습니다.


"저에게 이식해주신 분이 누군지는 알 수 없지만, 항상 제 안에 함께 있는 것 같습니다. 운동하다가 힘들거나 마음이 우울해지면 '우리 같이 힘내요'라고 말하곤 해요. 너무 감사할 뿐입니다. 남은 인생을 유가족들을 위해 봉사하려고 해요."


■ 곧 잊힐 이름이라도

남은 가족들은 사람들이 건혜 씨를 이렇게 기억하길 바랍니다.

"대한민국에서 누구보다 긍정적이고 밝은 사람", "좋은 사람, 그리고 용기 있는 사람".

"다음 달이면 다들 이 이야기를 잊어버릴 수도 있어요. '김건혜'라는 이름 석 자가 잊혀지더라도 나의 모든 걸 포기하면서 누군가를 살렸으니 그 사람은 참 좋은 사람이고 참 값진 사람이다, 이렇게만 제 딸을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대가도 없이 장기를 나눠준 수많은 기증자와 그의 가족들.

이들이 남긴 소중한 생명에 감사하기 위해서라도 누군가는 그들을 기억해나가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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