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조직에 팔아넘긴 통장, 주인은 ‘노숙자’였다

입력 2023.11.13 (14:27) 수정 2023.11.13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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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자들 명의로 유령 법인을 세우고 대포통장을 만들어 유통시킨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경기남부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는 오늘(13일)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및 범죄단체조직 등의 혐의로 30대 총책 고 모 씨를 포함한 32명을 검거했다고 밝혔습니다.

총책을 포함한 9명은 유사한 범죄로 실형을 선고받아 교도소에 수감 중이었고, 새로 체포된 이들 가운데 조직 간부 역할을 한 20대 백 모 씨와 30대 박 모 씨는 지난달 구속됐습니다.

이들은 지난 2020년 9월부터 전국에서 노숙자 22명을 유인해 이들 명의로 유령법인 38개를 세워 법인통장 125개를 개설한 뒤 이를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 등 범죄조직에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 노숙인에 "100만 원 줄게" 접근해 법인통장 개설

이 조직은 총책을 중심으로 실장-팀장-대리 직급이 있었고, '통장개설팀'과 'A/S팀'으로 나뉘어 팀당 4~5명의 조직원이 활동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노숙자들에게 다가간 건 '통장개설팀'이었습니다.

이들은 노숙인・신용불량자 등에게 100~200만 원 상당의 현금을 주겠다며 접근해 법인설립에 필요한 서류를 받아냈고, 실제 법무사를 통해 법인을 설립한 뒤 금융기관에 대리인으로 방문해 통장을 개설했습니다.

이들이 설립한 38개 법인은 '쇼핑몰' 등을 명목으로 내세웠지만, 실체가 없는 '유령법인' 이었습니다.

경찰은 법인 명의로 대포통장을 만들면 개인 명의일 때보다 인출 한도나 이체 한도가 훨씬 더 높다는 점을 노린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구속된 조직원 박 모 씨의 차량 압수수색 중 발견한 휴대전화 3대.구속된 조직원 박 모 씨의 차량 압수수색 중 발견한 휴대전화 3대.

■ "보이스피싱은 250만 원, 불법도박은 100만 원"...통장 대여비로 수익 창출

이렇게 만들어진 125개의 대포통장은 총책 고 씨가 월 80~300만 원을 받고 범죄조직에 대여해줬습니다.

유통된 통장들은 보이스피싱 또는 불법도박 사이트 운영 조직이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1차 계좌로 사용된 건 54개로, 총 5,501억 원이 입금됐습니다. 이로 인해 발생한 보이스피싱 피해자는 확인된 것만 101명, 피해 금액은 68억 원 상당입니다.

나머지 계좌들은 1차 계좌에 입금된 돈을 나눠서 이체하는 2~3차 세탁계좌로 사용됐습니다.

2~3차 계좌들은 모두 입금 직후 또 다른 계좌로 송금되거나 출금됐고, 총 입출금 거래내역은 1조 8,200억 원에 달했습니다.

■ 조직간 철저한 비밀 유지...'고수익 알바' 허위 진술 강요도

이들은 조직 전체가 드러나는 걸 막기 위해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대포 차량・대포폰을 쓰고 사무실 위치도 서로 공유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또 조직원이 수사기관 조사를 받을 땐 '고수익 알바 광고를 보고 지원했다'고 허위 진술을 하라는 구체적인 행동강령까지 있었습니다.


■ 노숙자는 "10원짜리 하나 못 받았다"…900여 개 계좌 추가 조사

하지만 노숙자들이 법인명의 개설을 대가로 실제 돈을 받았는지는 미지수입니다.

경찰이 실제로 만난 노숙자 한 명은 "10원짜리 하나 못 받았다"고 경찰에 전했습니다.

노숙자들에게 돈을 줬다는 총책의 진술과 다른 부분입니다.

여기에 더해, 구속된 간부 백 모 씨의 집을 수색하던 중 나온 USB에서 대포통장으로 추정되는 900여 개의 법인계좌 정보가 추가로 발견됐습니다.

경찰은 해당 계좌들로 수사를 확대하며 추가 가담자를 추적해 검거할 방침입니다.

지난달, 경찰에 체포되는 조직원 백 모 씨.지난달, 경찰에 체포되는 조직원 백 모 씨.

영상편집 : 강동원 / 그래픽 : 권세라 / 화면제공 : 경기남부경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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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이스피싱 조직에 팔아넘긴 통장, 주인은 ‘노숙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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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23-11-13 15:5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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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자들 명의로 유령 법인을 세우고 대포통장을 만들어 유통시킨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경기남부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는 오늘(13일)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및 범죄단체조직 등의 혐의로 30대 총책 고 모 씨를 포함한 32명을 검거했다고 밝혔습니다.

총책을 포함한 9명은 유사한 범죄로 실형을 선고받아 교도소에 수감 중이었고, 새로 체포된 이들 가운데 조직 간부 역할을 한 20대 백 모 씨와 30대 박 모 씨는 지난달 구속됐습니다.

이들은 지난 2020년 9월부터 전국에서 노숙자 22명을 유인해 이들 명의로 유령법인 38개를 세워 법인통장 125개를 개설한 뒤 이를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 등 범죄조직에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 노숙인에 "100만 원 줄게" 접근해 법인통장 개설

이 조직은 총책을 중심으로 실장-팀장-대리 직급이 있었고, '통장개설팀'과 'A/S팀'으로 나뉘어 팀당 4~5명의 조직원이 활동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노숙자들에게 다가간 건 '통장개설팀'이었습니다.

이들은 노숙인・신용불량자 등에게 100~200만 원 상당의 현금을 주겠다며 접근해 법인설립에 필요한 서류를 받아냈고, 실제 법무사를 통해 법인을 설립한 뒤 금융기관에 대리인으로 방문해 통장을 개설했습니다.

이들이 설립한 38개 법인은 '쇼핑몰' 등을 명목으로 내세웠지만, 실체가 없는 '유령법인' 이었습니다.

경찰은 법인 명의로 대포통장을 만들면 개인 명의일 때보다 인출 한도나 이체 한도가 훨씬 더 높다는 점을 노린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구속된 조직원 박 모 씨의 차량 압수수색 중 발견한 휴대전화 3대.
■ "보이스피싱은 250만 원, 불법도박은 100만 원"...통장 대여비로 수익 창출

이렇게 만들어진 125개의 대포통장은 총책 고 씨가 월 80~300만 원을 받고 범죄조직에 대여해줬습니다.

유통된 통장들은 보이스피싱 또는 불법도박 사이트 운영 조직이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1차 계좌로 사용된 건 54개로, 총 5,501억 원이 입금됐습니다. 이로 인해 발생한 보이스피싱 피해자는 확인된 것만 101명, 피해 금액은 68억 원 상당입니다.

나머지 계좌들은 1차 계좌에 입금된 돈을 나눠서 이체하는 2~3차 세탁계좌로 사용됐습니다.

2~3차 계좌들은 모두 입금 직후 또 다른 계좌로 송금되거나 출금됐고, 총 입출금 거래내역은 1조 8,200억 원에 달했습니다.

■ 조직간 철저한 비밀 유지...'고수익 알바' 허위 진술 강요도

이들은 조직 전체가 드러나는 걸 막기 위해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대포 차량・대포폰을 쓰고 사무실 위치도 서로 공유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또 조직원이 수사기관 조사를 받을 땐 '고수익 알바 광고를 보고 지원했다'고 허위 진술을 하라는 구체적인 행동강령까지 있었습니다.


■ 노숙자는 "10원짜리 하나 못 받았다"…900여 개 계좌 추가 조사

하지만 노숙자들이 법인명의 개설을 대가로 실제 돈을 받았는지는 미지수입니다.

경찰이 실제로 만난 노숙자 한 명은 "10원짜리 하나 못 받았다"고 경찰에 전했습니다.

노숙자들에게 돈을 줬다는 총책의 진술과 다른 부분입니다.

여기에 더해, 구속된 간부 백 모 씨의 집을 수색하던 중 나온 USB에서 대포통장으로 추정되는 900여 개의 법인계좌 정보가 추가로 발견됐습니다.

경찰은 해당 계좌들로 수사를 확대하며 추가 가담자를 추적해 검거할 방침입니다.

지난달, 경찰에 체포되는 조직원 백 모 씨.
영상편집 : 강동원 / 그래픽 : 권세라 / 화면제공 : 경기남부경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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