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사상 첫 한국-유엔사 회의에 ‘발끈’…왜? [특파원 리포트]

입력 2023.11.14 (19:23) 수정 2023.11.14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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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서울에서 사상 처음으로 한국과 유엔사 회원국 국방장관회의가 열렸다. (사진: 국방부)14일 서울에서 사상 처음으로 한국과 유엔사 회원국 국방장관회의가 열렸다. (사진: 국방부)

중국 외교부는 평일 오후 3시(현지 시각) 정례 브리핑을 엽니다. 국제사회를 향한 중국의 입이 열리는 순간입니다. 화춘잉, 왕원빈, 마오닝 세명의 대변인이 돌아가며 브리핑을 하는데, 가장 마지막으로 대변인단에 합류한 마오닝 대변인이 발언하는 날이 많습니다.

■ 중국, 한국-유엔사 국방장관회의에 ‘발끈’

그런데 오늘(14일) 브리핑에서 마오닝 대변인이 처음으로 열린 한국-유엔군사령부 국방장관 회의에 대해 작심한 듯 비판했습니다. “이른바 유엔군이라는 것은 냉전의 산물로 법적 근거가 없고 일찌감치 시대에 맞지 않는 것이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관련 국가가 유엔군 간판을 내걸고 회의를 여는 것은 대결을 야기하고 긴장을 조성하며 한반도 형세에서 불에 기름을 붓는 것”이라고도 말했습니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유엔군은 냉전의 산물로 법적 근거가 없다 주장하며 서울에서 열린 한국과 유엔사 국방장관회의를 비판했다. (사진: 중국 외교부)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유엔군은 냉전의 산물로 법적 근거가 없다 주장하며 서울에서 열린 한국과 유엔사 국방장관회의를 비판했다. (사진: 중국 외교부)

마오 대변인은 나아가 “중국은 관련 국가가 유엔의 이름을 도용해 사적 이익을 얻는 행동을 중단하고 실제 행동으로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지키기를 촉구한다”고 덧붙였습니다.

마오 대변인이 지적한 한국-유엔사 국방장관 회의에는 17개 유엔사 회원국 대표가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서울에서 열린 이번 회의에 한국의 신원식 국방장관과 미국 오스틴 국방장관도 등이 참석했습니다.

■ 17개 유엔사 회원국 한자리에...중국이 반발하는 이유는?

유엔사 회원국은 6.25 전쟁 때 전투병을 파병한 14개국과 의료지원단을 보낸 3개국을 포함합니다. 전투병을 파병한 국가는 미국과 영국, 캐나다, 튀르키예, 호주, 필리핀, 태국, 네덜란드, 콜롬비아, 그리스, 뉴질랜드, 벨기에, 프랑스, 남아공 등 14개국입니다. 노르웨이와 덴마크, 이탈리아 3개국은 의료지원단을 보냈습니다.

이처럼 역사적 실체가 분명한 조직에 대해 중국이 이렇게 흥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를 분석하기 전에 먼저 짚어야할 사실이 있습니다. 마오닝 대변인은 유엔군이 법적 근거가 없다고 했지만, 6.25 전쟁 당시 유엔군의 한반도 파병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이뤄졌습니다. 한반도에 파병된 유엔군은 1950년 7월 7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따라 창설됐습니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소련이 기권하며 파병은 기적적으로 성사됐습니다.

당시 중국 수뇌부는 중국 정부의 군대가 아니라 자원한 사람들로 구성된 ‘의용군’을 파병하는 형식을 갖췄습니다. 그렇다해도 중국 군대가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라 파병된 유엔군에 맞섰다는 역사적 사실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마오닝 대변인이 말하듯 ‘도용’한 것이 아니라 엄연한 역사적, 제도적 근거가 있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4만 명이 넘는 6.25 참전 유엔군 사망자의 피는 법적 논의 이상의 무게를 유엔사에 부여합니다.


중국 관영 CCTV가 제작 방송한 드라마 ‘압록강을 건너다’ 포스터. 드라마는 중국의 6.25 전쟁 참전을 정당화하는데 주력했다.중국 관영 CCTV가 제작 방송한 드라마 ‘압록강을 건너다’ 포스터. 드라마는 중국의 6.25 전쟁 참전을 정당화하는데 주력했다.

중국이 유엔사를 경계하는 배경으로 몇 가지 이유를 들 수 있습니다. 우선 중국은 최근 북한과의 관계 개선, 나아가 국제 사회에서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며 미국을 견제하려는 전략적 의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유엔 안보리 결의에 배치되는 북한의 잇따른 핵 개발과 미사일 도발에 대해서도 이를 비난하기보다 북핵 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강조하며 미국과 한국 쪽에도 책임이 있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유엔사 회원국들이 공동으로 북한을 비판하고 나아가 행동에 나선다면 불편할 수밖에 없습니다.

■ 중국, 유엔 안보리 결의로 참전한 유엔군과 싸워

역사적 이유도 있습니다. 중국은 6.25 전쟁 파병을 ‘항미원조(抗美援朝)’ 즉 미국의 위협에 맞서 북한을 돕기 위해 치른 전쟁이라고 정당화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시진핑 주석이 직접 나서 이 같은 입장을 거듭 확인했습니다. 특히 지난 몇 년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되는 과정에서 중국군의 참전을 미화하고 정당화하는 영화와 TV 드라마를 잇달아 공개하며 여론전을 펴기도 했습니다.

더욱이 현재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 입장에서는 과거 유엔군과 싸웠다는 기록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중국은 1970년대 들어서야 타이완으로 넘어간 국민당 정부를 대신해 안보리 상임이사국 지위를 차지했습니다.

폴 라카메라 주한미군사령관(오른쪽) 한미연합군사령관과 유엔군 사령관을 겸직하고 있다.(사진: 연합뉴스)폴 라카메라 주한미군사령관(오른쪽) 한미연합군사령관과 유엔군 사령관을 겸직하고 있다.(사진: 연합뉴스)

중국이 한반도에서 멀지 않은 타이완, 남중국해 등을 둘러싸고 미국과 역내 치열한 전략 경쟁을 하는 상황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미군 장성인 주한미군사령관 겸 한미연합군사령관이 유엔군사령관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유엔사는 유사시 한미연합군사령부 전력 지원 임무도 맡고 있습니다. 가뜩이나 한미 군사 동맹과 한미 연합 훈련을 견제해온 중국 입장에서는 이를 더 큰 국제적 틀에서 뒷받침하는 유엔사가 부담스러울 것입니다.

■ 유엔사 회원국 대표, 북한의 불법 행위 중단 촉구...한미동맹과의 협력도 강조

하지만 유엔사 회원국들은 유엔사의 목적이 북한의 위협을 저지하는 것이란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17개 회원국 대표들은 공동성명에서 “참석자들은 다수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위반한 북한의 불법적인 핵·미사일 프로그램에 대해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의 불법 행위 중단과 이를 위한 국제사회의 역할을 촉구했습니다.

신원식 국방장관은 14일 서울에서 열린 한국과 유엔군사령부 국방장관회의에서 북한에 대해 “유엔 회원국이 유엔군 사령부를 공격하면 자기모순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진: 연합뉴스)신원식 국방장관은 14일 서울에서 열린 한국과 유엔군사령부 국방장관회의에서 북한에 대해 “유엔 회원국이 유엔군 사령부를 공격하면 자기모순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진: 연합뉴스)

회원국 대표들은 안보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한미 동맹과 유엔사 회원국 사이의 연합 연습과 훈련을 활성화해 상호 교류와 협력을 지속적으로 증대하자고도 합의했습니다. 북한발 위협이 미국의 역내 전략적 역량과 입지 강화로 이어지는 분위기입니다.

유엔사 회원국들의 이 같은 움직임은 북한의 핵위협 증대를 방치할수록 중국의 전략적 이익이 훼손될 수 있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또 하나의 사례가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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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사상 첫 한국-유엔사 회의에 ‘발끈’…왜? [특파원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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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23-11-14 19:2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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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서울에서 사상 처음으로 한국과 유엔사 회원국 국방장관회의가 열렸다. (사진: 국방부)
중국 외교부는 평일 오후 3시(현지 시각) 정례 브리핑을 엽니다. 국제사회를 향한 중국의 입이 열리는 순간입니다. 화춘잉, 왕원빈, 마오닝 세명의 대변인이 돌아가며 브리핑을 하는데, 가장 마지막으로 대변인단에 합류한 마오닝 대변인이 발언하는 날이 많습니다.

■ 중국, 한국-유엔사 국방장관회의에 ‘발끈’

그런데 오늘(14일) 브리핑에서 마오닝 대변인이 처음으로 열린 한국-유엔군사령부 국방장관 회의에 대해 작심한 듯 비판했습니다. “이른바 유엔군이라는 것은 냉전의 산물로 법적 근거가 없고 일찌감치 시대에 맞지 않는 것이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관련 국가가 유엔군 간판을 내걸고 회의를 여는 것은 대결을 야기하고 긴장을 조성하며 한반도 형세에서 불에 기름을 붓는 것”이라고도 말했습니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유엔군은 냉전의 산물로 법적 근거가 없다 주장하며 서울에서 열린 한국과 유엔사 국방장관회의를 비판했다. (사진: 중국 외교부)
마오 대변인은 나아가 “중국은 관련 국가가 유엔의 이름을 도용해 사적 이익을 얻는 행동을 중단하고 실제 행동으로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지키기를 촉구한다”고 덧붙였습니다.

마오 대변인이 지적한 한국-유엔사 국방장관 회의에는 17개 유엔사 회원국 대표가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서울에서 열린 이번 회의에 한국의 신원식 국방장관과 미국 오스틴 국방장관도 등이 참석했습니다.

■ 17개 유엔사 회원국 한자리에...중국이 반발하는 이유는?

유엔사 회원국은 6.25 전쟁 때 전투병을 파병한 14개국과 의료지원단을 보낸 3개국을 포함합니다. 전투병을 파병한 국가는 미국과 영국, 캐나다, 튀르키예, 호주, 필리핀, 태국, 네덜란드, 콜롬비아, 그리스, 뉴질랜드, 벨기에, 프랑스, 남아공 등 14개국입니다. 노르웨이와 덴마크, 이탈리아 3개국은 의료지원단을 보냈습니다.

이처럼 역사적 실체가 분명한 조직에 대해 중국이 이렇게 흥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를 분석하기 전에 먼저 짚어야할 사실이 있습니다. 마오닝 대변인은 유엔군이 법적 근거가 없다고 했지만, 6.25 전쟁 당시 유엔군의 한반도 파병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이뤄졌습니다. 한반도에 파병된 유엔군은 1950년 7월 7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따라 창설됐습니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소련이 기권하며 파병은 기적적으로 성사됐습니다.

당시 중국 수뇌부는 중국 정부의 군대가 아니라 자원한 사람들로 구성된 ‘의용군’을 파병하는 형식을 갖췄습니다. 그렇다해도 중국 군대가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라 파병된 유엔군에 맞섰다는 역사적 사실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마오닝 대변인이 말하듯 ‘도용’한 것이 아니라 엄연한 역사적, 제도적 근거가 있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4만 명이 넘는 6.25 참전 유엔군 사망자의 피는 법적 논의 이상의 무게를 유엔사에 부여합니다.


중국 관영 CCTV가 제작 방송한 드라마 ‘압록강을 건너다’ 포스터. 드라마는 중국의 6.25 전쟁 참전을 정당화하는데 주력했다.
중국이 유엔사를 경계하는 배경으로 몇 가지 이유를 들 수 있습니다. 우선 중국은 최근 북한과의 관계 개선, 나아가 국제 사회에서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며 미국을 견제하려는 전략적 의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유엔 안보리 결의에 배치되는 북한의 잇따른 핵 개발과 미사일 도발에 대해서도 이를 비난하기보다 북핵 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강조하며 미국과 한국 쪽에도 책임이 있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유엔사 회원국들이 공동으로 북한을 비판하고 나아가 행동에 나선다면 불편할 수밖에 없습니다.

■ 중국, 유엔 안보리 결의로 참전한 유엔군과 싸워

역사적 이유도 있습니다. 중국은 6.25 전쟁 파병을 ‘항미원조(抗美援朝)’ 즉 미국의 위협에 맞서 북한을 돕기 위해 치른 전쟁이라고 정당화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시진핑 주석이 직접 나서 이 같은 입장을 거듭 확인했습니다. 특히 지난 몇 년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되는 과정에서 중국군의 참전을 미화하고 정당화하는 영화와 TV 드라마를 잇달아 공개하며 여론전을 펴기도 했습니다.

더욱이 현재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 입장에서는 과거 유엔군과 싸웠다는 기록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중국은 1970년대 들어서야 타이완으로 넘어간 국민당 정부를 대신해 안보리 상임이사국 지위를 차지했습니다.

폴 라카메라 주한미군사령관(오른쪽) 한미연합군사령관과 유엔군 사령관을 겸직하고 있다.(사진: 연합뉴스)
중국이 한반도에서 멀지 않은 타이완, 남중국해 등을 둘러싸고 미국과 역내 치열한 전략 경쟁을 하는 상황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미군 장성인 주한미군사령관 겸 한미연합군사령관이 유엔군사령관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유엔사는 유사시 한미연합군사령부 전력 지원 임무도 맡고 있습니다. 가뜩이나 한미 군사 동맹과 한미 연합 훈련을 견제해온 중국 입장에서는 이를 더 큰 국제적 틀에서 뒷받침하는 유엔사가 부담스러울 것입니다.

■ 유엔사 회원국 대표, 북한의 불법 행위 중단 촉구...한미동맹과의 협력도 강조

하지만 유엔사 회원국들은 유엔사의 목적이 북한의 위협을 저지하는 것이란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17개 회원국 대표들은 공동성명에서 “참석자들은 다수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위반한 북한의 불법적인 핵·미사일 프로그램에 대해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의 불법 행위 중단과 이를 위한 국제사회의 역할을 촉구했습니다.

신원식 국방장관은 14일 서울에서 열린 한국과 유엔군사령부 국방장관회의에서 북한에 대해 “유엔 회원국이 유엔군 사령부를 공격하면 자기모순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진: 연합뉴스)
회원국 대표들은 안보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한미 동맹과 유엔사 회원국 사이의 연합 연습과 훈련을 활성화해 상호 교류와 협력을 지속적으로 증대하자고도 합의했습니다. 북한발 위협이 미국의 역내 전략적 역량과 입지 강화로 이어지는 분위기입니다.

유엔사 회원국들의 이 같은 움직임은 북한의 핵위협 증대를 방치할수록 중국의 전략적 이익이 훼손될 수 있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또 하나의 사례가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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