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동 살던 꼬마가 하와이 부지사로…“고국은 자부심”

입력 2023.11.15 (08:00) 수정 2023.11.15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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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 12월 22일, 인천 제물포항에서 게릭호가 출항했습니다.

배에 오른 100여 명의 조선인은 낯선 땅에 대한 설렘과 두려움을 안고 1903년 1월 13일 하와이 호놀룰루에 도착했는데, 이들이 바로 한국 역사상 첫 단체 이민자들입니다.

그로부터 120년이 흐른 올해,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미국, 캐나다 등 전 세계 각국의 한인 정치인들이 '제9차 세계한인정치인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에 모였습니다.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에 대한 자부심과 연대의식으로 뭉친 이들은 저마다의 성공 사례와 이민자로 사는 삶을 공유했습니다.

 실비아 루크 하와이 주정부 부지사 실비아 루크 하와이 주정부 부지사

■ 한인 이민 역사 출발지 하와이서 '첫 한인 출신 최고위 선출직' 배출

포럼 참석자 중 눈에 띄는 인물은 지난해 하와이 주정부 부지사로 선출된 실비아 루크입니다.

하와이 최초의 한인 부지사라는 상징성에 더해, 한인 출신 첫 최고위 선출직이라는 점에서 한인 정치역사에 중요한 의미를 남겼습니다.

그는 9살 때인 1977년 부모님을 따라 하와이에 정착한 뒤 지금까지 46년간 재미교포로 살아왔습니다.

한국에서 살던 곳은 신당동이었는데, 루크 부지사의 기억 속 신당동은 ' 차가 다니는 길이 많지 않은, 번데기 냄새가 많이 나던 동네'였습니다.

그랬던 한국이 지난 여름 하와이에 최악의 산불이 발생했을 때, 제일 먼저 나서서 인도적 지원을 제공하는 나라로 성장한 것을 보며 루크 부지사는 "한국의 변화에 놀랐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하와이는 다수 인종의 개념이 없어 인종 차별이 적지만, 1998년 처음 정치에 입문했을 때 사람들은 한국인에 대해 잘 몰랐다"며 "하지만 지금은 한국 문화와 여행, 드라마의 인기와 함께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과 정체성이 높아졌다"고 전했습니다.

이어 "선거운동을 하며 나는 우리 가족이 하와이에 이민을 오게 된 이야기를 알렸다"며 "그 경험 덕분에 하와이 사람들이 제가 자랑스러운 한국인임을 모두 알게 됐다"고 강조했습니다.

루크 부지사는 " 하와이에 처음 도착한 이민자들은 사탕수수 농장에서 열심히 일해 받은 돈을 한국으로 보냈다. 한국 정부가 어려움을 겪는 시기에 도움을 주고 싶었던 것"이라며 의미를 짚기도 했습니다.

 제9차 세계한인정치인포럼 개회식 출처/연합뉴스 제9차 세계한인정치인포럼 개회식 출처/연합뉴스

■ "너는 영어 할 줄 아는구나"… '다양성에 대한 포용'이 해결책

각국 정계에서 분투하며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지만, 소수인종으로서 차별을 받은 기억도 저마다 하나씩 갖고 있습니다.

배혁수 호주 빅토리아주정부 다문화정책 자문위원은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데도 ' 너는 영어를 할 줄 아는구나'라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있다"며 " 아시아인이라서 영어를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라고 회상했습니다.

한인 정치인들이 찾은 해결책은 다양성에 대한 포용입니다.

백진훈 전 일본 참의원은 "재일동포에 대한 차별이 일본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내가 당선돼 정치인으로서 활동할 수 있었던 건 나를 뽑아준 일본인 유권자들 덕분"이라며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들의 경험은 한국 사회 내부의 다양성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연아 마틴 캐나다 연방 상원의원은 "한국이 아직 미래를 준비할 시간이 있다"며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이 많은 만큼 차별을 없애기 위한 법적 기반을 마련하거나, 교육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습니다.

이어 "한국 내에서도 우리가 각국에서 하는 것처럼 대표성을 가진 의원들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다문화 사회로 넘어가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제9차 세계한인정치인포럼 제9차 세계한인정치인포럼

■ "이민 3·4세대에 정체성 찾아줘야...모국 발전에 기여할 것"

이번 포럼은 각국 한인 정치인들의 연대의식을 확인하는 자리였지만, 미래 세대와 한국 간 연결고리를 고민할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미국 재외교포 출신인 김영근 재외동포센터장은 "이민 세대가 2세대, 3세대, 4세대로 이어지며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것은 사실"이라며 "자신들의 정체성을 느낄 수 있도록 서울 초청 연수 등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사는 곳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개인의 뿌리와 정체성을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며 "(차세대 재외동포들이) 앞으로 대한민국의 발전에도 이바지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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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 12월 22일, 인천 제물포항에서 게릭호가 출항했습니다.

배에 오른 100여 명의 조선인은 낯선 땅에 대한 설렘과 두려움을 안고 1903년 1월 13일 하와이 호놀룰루에 도착했는데, 이들이 바로 한국 역사상 첫 단체 이민자들입니다.

그로부터 120년이 흐른 올해,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미국, 캐나다 등 전 세계 각국의 한인 정치인들이 '제9차 세계한인정치인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에 모였습니다.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에 대한 자부심과 연대의식으로 뭉친 이들은 저마다의 성공 사례와 이민자로 사는 삶을 공유했습니다.

 실비아 루크 하와이 주정부 부지사
■ 한인 이민 역사 출발지 하와이서 '첫 한인 출신 최고위 선출직' 배출

포럼 참석자 중 눈에 띄는 인물은 지난해 하와이 주정부 부지사로 선출된 실비아 루크입니다.

하와이 최초의 한인 부지사라는 상징성에 더해, 한인 출신 첫 최고위 선출직이라는 점에서 한인 정치역사에 중요한 의미를 남겼습니다.

그는 9살 때인 1977년 부모님을 따라 하와이에 정착한 뒤 지금까지 46년간 재미교포로 살아왔습니다.

한국에서 살던 곳은 신당동이었는데, 루크 부지사의 기억 속 신당동은 ' 차가 다니는 길이 많지 않은, 번데기 냄새가 많이 나던 동네'였습니다.

그랬던 한국이 지난 여름 하와이에 최악의 산불이 발생했을 때, 제일 먼저 나서서 인도적 지원을 제공하는 나라로 성장한 것을 보며 루크 부지사는 "한국의 변화에 놀랐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하와이는 다수 인종의 개념이 없어 인종 차별이 적지만, 1998년 처음 정치에 입문했을 때 사람들은 한국인에 대해 잘 몰랐다"며 "하지만 지금은 한국 문화와 여행, 드라마의 인기와 함께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과 정체성이 높아졌다"고 전했습니다.

이어 "선거운동을 하며 나는 우리 가족이 하와이에 이민을 오게 된 이야기를 알렸다"며 "그 경험 덕분에 하와이 사람들이 제가 자랑스러운 한국인임을 모두 알게 됐다"고 강조했습니다.

루크 부지사는 " 하와이에 처음 도착한 이민자들은 사탕수수 농장에서 열심히 일해 받은 돈을 한국으로 보냈다. 한국 정부가 어려움을 겪는 시기에 도움을 주고 싶었던 것"이라며 의미를 짚기도 했습니다.

 제9차 세계한인정치인포럼 개회식 출처/연합뉴스
■ "너는 영어 할 줄 아는구나"… '다양성에 대한 포용'이 해결책

각국 정계에서 분투하며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지만, 소수인종으로서 차별을 받은 기억도 저마다 하나씩 갖고 있습니다.

배혁수 호주 빅토리아주정부 다문화정책 자문위원은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데도 ' 너는 영어를 할 줄 아는구나'라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있다"며 " 아시아인이라서 영어를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라고 회상했습니다.

한인 정치인들이 찾은 해결책은 다양성에 대한 포용입니다.

백진훈 전 일본 참의원은 "재일동포에 대한 차별이 일본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내가 당선돼 정치인으로서 활동할 수 있었던 건 나를 뽑아준 일본인 유권자들 덕분"이라며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들의 경험은 한국 사회 내부의 다양성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연아 마틴 캐나다 연방 상원의원은 "한국이 아직 미래를 준비할 시간이 있다"며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이 많은 만큼 차별을 없애기 위한 법적 기반을 마련하거나, 교육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습니다.

이어 "한국 내에서도 우리가 각국에서 하는 것처럼 대표성을 가진 의원들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다문화 사회로 넘어가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제9차 세계한인정치인포럼
■ "이민 3·4세대에 정체성 찾아줘야...모국 발전에 기여할 것"

이번 포럼은 각국 한인 정치인들의 연대의식을 확인하는 자리였지만, 미래 세대와 한국 간 연결고리를 고민할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미국 재외교포 출신인 김영근 재외동포센터장은 "이민 세대가 2세대, 3세대, 4세대로 이어지며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것은 사실"이라며 "자신들의 정체성을 느낄 수 있도록 서울 초청 연수 등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사는 곳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개인의 뿌리와 정체성을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며 "(차세대 재외동포들이) 앞으로 대한민국의 발전에도 이바지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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