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마약 수사 돕고 ‘팽’ 당했어요”…경찰 “일방 주장”

입력 2023.11.17 (07:00) 수정 2023.11.17 (07:02)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경찰이 경기 김포의 한 마약 재배시설을 덮쳐 관계자 5명을 검거했습니다.

마약 재배와 투약·거래까지 같은 장소에서 '원스톱'으로 이뤄지는 곳을 적발한, 이른바 '김포 마약 파티룸' 사건입니다.

경찰은 이 사건을 '마약사범 집중단속' 성과 발표에도 넣으며 홍보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 뒤엔 수사 착수와 검거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 있었습니다.

경찰이 아니라, 일반 시민이었습니다.

한 명은 마약 사건 핵심 피의자 황 모 씨로부터 성범죄에 시달리던 20대 여성 A 씨, 다른 한 명은 황 씨의 7년 지기 B 씨입니다.

평범한 일상을 살던 두 사람이 어쩌다가 '마약 수사'에 뛰어들었는지, 그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 성범죄 피해로 경찰 찾았더니...

"왜 지워야 돼?" "나랑 다시 만나면 지울 필요가 없잖아."

A 씨는 전 연인인 황 씨가 찍은 '불법 촬영물'을 지워달라고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촬영물을 지우긴커녕 SNS에 유포하며, '다시 만나달라'는 대답만 돌아왔습니다.

A 씨는 결국 경찰서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트위터는 외국 SNS라 수사 협조가 어렵다'는 말에,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자신도 모르는 영상이 유포됐을까 봐 매일 밤 울며 트위터를 뒤졌습니다. 어떻게 하면 전 연인에게서 휴대전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 고민하다, 다시 경찰을 찾았습니다.

이번엔 마약수사대였습니다.



■ 경찰, '마약 수사 협조'를 제안하다

A 씨는 교제 이후에야 황 씨가 마약 거래에 관여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합니다. 이를 경찰에 알리기로 했습니다.

지난해 9월 초, A 씨는 경기북부경찰청 마약수사대 소속 경찰을 만났습니다. 황 씨의 마약 거래 정황과, 주로 가는 장소 등을 전달했습니다. 그러면서 황 씨의 불법촬영 문제도 털어놨습니다.

"나쁜 놈이네요." 경찰은 이렇게 말하며, 마약은 물론 성범죄도 함께 수사하겠다고 했습니다.

단, 조건이 붙었다고 A 씨는 말합니다. '마약 수사 협조'였습니다.

■ 성사된 '수사 공조'...두 가지 조건

하지만 A 씨 혼자 황 씨에게서 마약 '첩보'를 캐내는 건 쉽지 않았습니다. A 씨는 황 씨의 7년 지기인 B 씨에게 부탁했습니다. 함께 협조하자고요.

B 씨는 처음엔 거부했습니다. "황 씨가 용의주도한 데다, '깡패' 출신이라 언제 어떻게 당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경찰의 말이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경찰이 '나라 살리고 사람 살리는 일이다'라면서, '표창장 무조건 드립니다. 이 정도 사건 해결하면 표창장 드려야죠'라고 하더라고요."

내 이름 앞으로 된 표창장 하나 정돈 남기고 싶단 생각에, B 씨는 수사에 협조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A 씨를 위한 성범죄 수사, 그리고 B 씨를 위한 표창장. 두 가지 조건과 함께, 수사 협조가 시작됐다고 제보자들은 말합니다.

 경찰이 '필요한 정보'라고 적어준 메모. 경찰이 '필요한 정보'라고 적어준 메모.

■ 마약밭 찾고 체포 돕고...'현실판 수리남'

이렇게 시작된 수사 협조, 처음엔 '가벼운' 일이었습니다. '마약 거래하는 걸 봤다'는 정도의 진술만 하면 될 줄 알았다는 겁니다.

그런데 경찰, 이들에게 '필요한 정보'가 적힌 메모를 건넸습니다. 대마밭 위치, 대마와 필로폰을 사고 파는 일시와 장소 등을 알아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거래된 실제 마약 실물'을 가져오라거나, 마약 거래 정황이 담긴 '대화'를 유도해 녹취하라는 요구도 받았다고 합니다.

B 씨는 "대마밭 위치까지 알아내는 건 너무 위험하다"고 했지만, 경찰은 "위험한 걸 알지만 부탁드릴 사람이 없다"고 설득했다고 합니다.

결국 B 씨는 어딘지도 모르는 '대마밭'에 갈 방법을 궁리해야 했습니다. 황 씨에게 대놓고 '대마밭에 가자'고 하면 의심을 살까봐, 단계적으로 신뢰를 쌓았습니다.

갑자기 마약에 관심을 보이면 오히려 수상하게 여길까봐, '난 마약은 절대 안 한다'고 하면서 황 씨의 경계를 풀었습니다.

고도의 심리전이 계속됐습니다. B 씨는 황 씨에게, "요즘 좀 힘든 일이 있어서 사람들 없는 곳에 가고 싶다"는 푸념을 계속 했습니다. 일주일 넘게 이어진 줄다리기 끝에 황 씨가 드디어 제안했습니다. "좋은 곳에 바람 쐬러 가자"

그 '좋은 곳', 대마밭이었습니다.

황 씨를 따라간 B 씨는 위험을 무릅쓰고 몰래 휴대전화에 위치를 기록했습니다. 화장실에 숨어, 경찰에 이 위치를 넘겼습니다.

 김포 마약밭 김포 마약밭

■ 속타들어가는데...'연예인은 없냐'

이후 B 씨는 황 씨가 행여나 수사 협조 사실을 눈치챌까, 두려움 속에 지내야 했습니다. 하루빨리 황 씨가 검거되길 바랐지만, 경찰은 움직여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경찰에 빨리 검거해달라 재촉하자, 또 다른 정보를 요구해왔습니다. "마약 파티룸에 연예인은 안 오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대마밭 위치를 전달하고도, 경찰 급습까지 걸린 시간은 3주.

B 씨의 조마조마한 생활이 끝나는가 했지만, 급습 때 황 씨가 없어 검거는 또 미뤄졌습니다. 결국 B 씨가 직접 황 씨를 불러내, 경찰의 체포를 도왔습니다.



■ 경찰은 말했다..."기다려라"

이렇게 황 씨가 검거되기까지 한 달가량, 제보자들은 고통의 시간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최초 제보자인 A 씨는, 스토킹과 강제추행 등 또 다른 범죄에 노출됐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황 씨는 '다시 만나자'며 전화와 문자를 해왔습니다. 낮엔 A 씨가 일하는 곳으로 와 원치 않는 신체 접촉을 했고, 밤엔 집 앞으로 몰래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A 씨는 황 씨를 차단하거나, 밀어낼 수 없었습니다. "(성범죄를) 경찰에 신고한 걸 눈치채지 못하게 하라"는 경찰의 말 때문이었습니다.

도무지 견딜 수 없어 112에 스토킹 신고까지 했지만, '마약 수사'에 방해가 될까봐 '당장은 처벌하지 말아달라'고 번복해야 하기도 했습니다.

A 씨는 경찰에게 "너무 불안해 미칠 것 같다"는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곧 해결해주겠다'는 답만 돌아왔습니다. 수차례 호소가 이어졌지만, 경찰은 '기다리라'고 하거나 아예 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경찰은 B 씨에게, 'A 씨가 피해를 호소하는 연락을 되도록 하지 않도록' 부탁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A 씨는 황 씨의 스토킹을 견디지 못하고 112에 신고했지만, 마약 수사에 방해가 될까봐 A 씨는 황 씨의 스토킹을 견디지 못하고 112에 신고했지만, 마약 수사에 방해가 될까봐

■ 기다렸지만 '성범죄는 혐의없음'

황 씨가 마약 혐의로 구속 송치되면, 모든 게 해결될 줄 알았지만 상황은 더 꼬였습니다.

경찰이 황 씨의 성범죄를 '혐의 없음'으로 종결시켜 버린 겁니다.

A 씨는 불법 촬영물, 강제추행, 스토킹 등 여러 성범죄를 당했다고 호소해왔지만 경찰이 수사한 건 '불법 촬영물'에 그쳤습니다. A 씨는 "불법 촬영과 유포 건수만 10건이 넘는데, 경찰은 촬영물 단 한 건만 수사했고 추가 조사도 없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결국, A 씨는 다시 고소장을 접수했는데 이번엔 검찰에서 스토킹과 강제추행 등 대부분 혐의를 '불기소' 처분했습니다.

그 이유, A 씨가 황 씨와 연락을 '주고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검찰은 황 씨의 연락이 A 씨의 공포감을 일으키는 '일방적인 스토킹'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경찰 마약 수사에 협조하느라 황 씨의 연락을 차단하지 못한 게 오히려 발목을 잡은 겁니다.

A 씨는 검찰 수사를 바로 잡기 위해 경찰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마약 수사에 도움을 주려고 황 씨와 연락을 유지한 것이었다는 탄원서를 부탁했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답이 없었습니다.
 A 씨가 경찰에게 '탄원서'를 부탁한 문자 메시지 A 씨가 경찰에게 '탄원서'를 부탁한 문자 메시지

■ 표창장도 물거품...마약 수사팀원은 '경찰청장 표창'

B 씨도 '마약 수사 협조' 이후, 실망만 컸습니다. 표창장도 없었습니다.

B 씨는 경찰이 '단속'을 벌일 수 있는 업종에 종사하는데, 알고 보니 경찰 내규상 단속 대상 업종 종사자에겐 표창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표창장 관련 국민신문고 문의 결과 표창장 관련 국민신문고 문의 결과
표창장이 아니면 감사장이라도 달라고 했지만, 경찰은 "감사장도 같은 내규에 의해 지급할 수 없다는 사실을 최근에 확인했다"고 했습니다.

경찰은 B 씨에게 또 다른 마약 정보를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B 씨는 "마약 거래 정황을 확인하려고 업소 쓰레기통까지 뒤졌다"면서 "계속 요구가 이어져, 해도 해도 너무하단 생각에 경찰에게 전화해 화를 냈다. 그 이후로는 연락이 없었다"고 합니다.

이런 A 씨와 B 씨의 희생으로, 해당 수사팀은 '실적'을 올렸습니다.

경찰청이 더불어민주당 김의겸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수사팀의 일원은 경찰청장 표창장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 경찰, 수사감찰 절차 착수..."성폭력 피해 소홀히 대하지 않았다"

경기북부경찰청 수사심의계는 KBS 보도 이후, 수사감찰 절차에 들어갔습니다.

경찰 관계자는 "사실관계를 전반적으로 확인한 뒤 감찰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며 "수사 전반 및 인권침해 등 부족한 부분을 발견할 시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도 경찰은 몇 가지 입장을 밝혀왔습니다.

"A 씨가 마약 범죄 제보를 하면서, 추가로 성폭력 피해를 진술해 함께 접수한 것"이라며 "해당 성폭력 범죄는 검찰에 송치했으나, 검찰에서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다면서 보완수사를 요구해 불송치 결정했다"는 겁니다.

A 씨의 피해 호소에 경찰이 답한 내용에 대해서도 '황 씨와 관계를 유지하라'는 뜻이 아니었다고 해명했습니다. 'A 씨를 안심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기다려달라'는 문자 메시지도 체포영장을 반드시 발부받을 테니 기다리라고 한 것"이라며 "'성폭력 피해를 참으라'고 한 것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B 씨에 대해선, '위험을 무릅쓰고 정보를 수집하라고 한 사실은 없다'는 게 경찰 입장입니다.

또 '표창장 약속'을 '먼저' 한 적은 없다고 경찰은 밝혔습니다. B 씨가 '표창을 받을 수 있냐'고 물어 '알아보겠다고'라고 답변했단 겁니다. 경찰은 "대신 경찰 신고 보상금 100만 원을 각각 지급했다"고 했습니다.

A 씨와 B 씨는 최근 인권위와 권익위에 이 문제를 신고하고, 경찰청에도 진정을 접수했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경찰 마약 수사 돕고 ‘팽’ 당했어요”…경찰 “일방 주장”
    • 입력 2023-11-17 07:00:32
    • 수정2023-11-17 07:02:03
    심층K

지난해 10월, 경찰이 경기 김포의 한 마약 재배시설을 덮쳐 관계자 5명을 검거했습니다.

마약 재배와 투약·거래까지 같은 장소에서 '원스톱'으로 이뤄지는 곳을 적발한, 이른바 '김포 마약 파티룸' 사건입니다.

경찰은 이 사건을 '마약사범 집중단속' 성과 발표에도 넣으며 홍보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 뒤엔 수사 착수와 검거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 있었습니다.

경찰이 아니라, 일반 시민이었습니다.

한 명은 마약 사건 핵심 피의자 황 모 씨로부터 성범죄에 시달리던 20대 여성 A 씨, 다른 한 명은 황 씨의 7년 지기 B 씨입니다.

평범한 일상을 살던 두 사람이 어쩌다가 '마약 수사'에 뛰어들었는지, 그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 성범죄 피해로 경찰 찾았더니...

"왜 지워야 돼?" "나랑 다시 만나면 지울 필요가 없잖아."

A 씨는 전 연인인 황 씨가 찍은 '불법 촬영물'을 지워달라고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촬영물을 지우긴커녕 SNS에 유포하며, '다시 만나달라'는 대답만 돌아왔습니다.

A 씨는 결국 경찰서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트위터는 외국 SNS라 수사 협조가 어렵다'는 말에,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자신도 모르는 영상이 유포됐을까 봐 매일 밤 울며 트위터를 뒤졌습니다. 어떻게 하면 전 연인에게서 휴대전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 고민하다, 다시 경찰을 찾았습니다.

이번엔 마약수사대였습니다.



■ 경찰, '마약 수사 협조'를 제안하다

A 씨는 교제 이후에야 황 씨가 마약 거래에 관여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합니다. 이를 경찰에 알리기로 했습니다.

지난해 9월 초, A 씨는 경기북부경찰청 마약수사대 소속 경찰을 만났습니다. 황 씨의 마약 거래 정황과, 주로 가는 장소 등을 전달했습니다. 그러면서 황 씨의 불법촬영 문제도 털어놨습니다.

"나쁜 놈이네요." 경찰은 이렇게 말하며, 마약은 물론 성범죄도 함께 수사하겠다고 했습니다.

단, 조건이 붙었다고 A 씨는 말합니다. '마약 수사 협조'였습니다.

■ 성사된 '수사 공조'...두 가지 조건

하지만 A 씨 혼자 황 씨에게서 마약 '첩보'를 캐내는 건 쉽지 않았습니다. A 씨는 황 씨의 7년 지기인 B 씨에게 부탁했습니다. 함께 협조하자고요.

B 씨는 처음엔 거부했습니다. "황 씨가 용의주도한 데다, '깡패' 출신이라 언제 어떻게 당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경찰의 말이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경찰이 '나라 살리고 사람 살리는 일이다'라면서, '표창장 무조건 드립니다. 이 정도 사건 해결하면 표창장 드려야죠'라고 하더라고요."

내 이름 앞으로 된 표창장 하나 정돈 남기고 싶단 생각에, B 씨는 수사에 협조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A 씨를 위한 성범죄 수사, 그리고 B 씨를 위한 표창장. 두 가지 조건과 함께, 수사 협조가 시작됐다고 제보자들은 말합니다.

 경찰이 '필요한 정보'라고 적어준 메모.
■ 마약밭 찾고 체포 돕고...'현실판 수리남'

이렇게 시작된 수사 협조, 처음엔 '가벼운' 일이었습니다. '마약 거래하는 걸 봤다'는 정도의 진술만 하면 될 줄 알았다는 겁니다.

그런데 경찰, 이들에게 '필요한 정보'가 적힌 메모를 건넸습니다. 대마밭 위치, 대마와 필로폰을 사고 파는 일시와 장소 등을 알아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거래된 실제 마약 실물'을 가져오라거나, 마약 거래 정황이 담긴 '대화'를 유도해 녹취하라는 요구도 받았다고 합니다.

B 씨는 "대마밭 위치까지 알아내는 건 너무 위험하다"고 했지만, 경찰은 "위험한 걸 알지만 부탁드릴 사람이 없다"고 설득했다고 합니다.

결국 B 씨는 어딘지도 모르는 '대마밭'에 갈 방법을 궁리해야 했습니다. 황 씨에게 대놓고 '대마밭에 가자'고 하면 의심을 살까봐, 단계적으로 신뢰를 쌓았습니다.

갑자기 마약에 관심을 보이면 오히려 수상하게 여길까봐, '난 마약은 절대 안 한다'고 하면서 황 씨의 경계를 풀었습니다.

고도의 심리전이 계속됐습니다. B 씨는 황 씨에게, "요즘 좀 힘든 일이 있어서 사람들 없는 곳에 가고 싶다"는 푸념을 계속 했습니다. 일주일 넘게 이어진 줄다리기 끝에 황 씨가 드디어 제안했습니다. "좋은 곳에 바람 쐬러 가자"

그 '좋은 곳', 대마밭이었습니다.

황 씨를 따라간 B 씨는 위험을 무릅쓰고 몰래 휴대전화에 위치를 기록했습니다. 화장실에 숨어, 경찰에 이 위치를 넘겼습니다.

 김포 마약밭
■ 속타들어가는데...'연예인은 없냐'

이후 B 씨는 황 씨가 행여나 수사 협조 사실을 눈치챌까, 두려움 속에 지내야 했습니다. 하루빨리 황 씨가 검거되길 바랐지만, 경찰은 움직여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경찰에 빨리 검거해달라 재촉하자, 또 다른 정보를 요구해왔습니다. "마약 파티룸에 연예인은 안 오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대마밭 위치를 전달하고도, 경찰 급습까지 걸린 시간은 3주.

B 씨의 조마조마한 생활이 끝나는가 했지만, 급습 때 황 씨가 없어 검거는 또 미뤄졌습니다. 결국 B 씨가 직접 황 씨를 불러내, 경찰의 체포를 도왔습니다.



■ 경찰은 말했다..."기다려라"

이렇게 황 씨가 검거되기까지 한 달가량, 제보자들은 고통의 시간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최초 제보자인 A 씨는, 스토킹과 강제추행 등 또 다른 범죄에 노출됐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황 씨는 '다시 만나자'며 전화와 문자를 해왔습니다. 낮엔 A 씨가 일하는 곳으로 와 원치 않는 신체 접촉을 했고, 밤엔 집 앞으로 몰래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A 씨는 황 씨를 차단하거나, 밀어낼 수 없었습니다. "(성범죄를) 경찰에 신고한 걸 눈치채지 못하게 하라"는 경찰의 말 때문이었습니다.

도무지 견딜 수 없어 112에 스토킹 신고까지 했지만, '마약 수사'에 방해가 될까봐 '당장은 처벌하지 말아달라'고 번복해야 하기도 했습니다.

A 씨는 경찰에게 "너무 불안해 미칠 것 같다"는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곧 해결해주겠다'는 답만 돌아왔습니다. 수차례 호소가 이어졌지만, 경찰은 '기다리라'고 하거나 아예 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경찰은 B 씨에게, 'A 씨가 피해를 호소하는 연락을 되도록 하지 않도록' 부탁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A 씨는 황 씨의 스토킹을 견디지 못하고 112에 신고했지만, 마약 수사에 방해가 될까봐
■ 기다렸지만 '성범죄는 혐의없음'

황 씨가 마약 혐의로 구속 송치되면, 모든 게 해결될 줄 알았지만 상황은 더 꼬였습니다.

경찰이 황 씨의 성범죄를 '혐의 없음'으로 종결시켜 버린 겁니다.

A 씨는 불법 촬영물, 강제추행, 스토킹 등 여러 성범죄를 당했다고 호소해왔지만 경찰이 수사한 건 '불법 촬영물'에 그쳤습니다. A 씨는 "불법 촬영과 유포 건수만 10건이 넘는데, 경찰은 촬영물 단 한 건만 수사했고 추가 조사도 없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결국, A 씨는 다시 고소장을 접수했는데 이번엔 검찰에서 스토킹과 강제추행 등 대부분 혐의를 '불기소' 처분했습니다.

그 이유, A 씨가 황 씨와 연락을 '주고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검찰은 황 씨의 연락이 A 씨의 공포감을 일으키는 '일방적인 스토킹'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경찰 마약 수사에 협조하느라 황 씨의 연락을 차단하지 못한 게 오히려 발목을 잡은 겁니다.

A 씨는 검찰 수사를 바로 잡기 위해 경찰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마약 수사에 도움을 주려고 황 씨와 연락을 유지한 것이었다는 탄원서를 부탁했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답이 없었습니다.
 A 씨가 경찰에게 '탄원서'를 부탁한 문자 메시지
■ 표창장도 물거품...마약 수사팀원은 '경찰청장 표창'

B 씨도 '마약 수사 협조' 이후, 실망만 컸습니다. 표창장도 없었습니다.

B 씨는 경찰이 '단속'을 벌일 수 있는 업종에 종사하는데, 알고 보니 경찰 내규상 단속 대상 업종 종사자에겐 표창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표창장 관련 국민신문고 문의 결과표창장이 아니면 감사장이라도 달라고 했지만, 경찰은 "감사장도 같은 내규에 의해 지급할 수 없다는 사실을 최근에 확인했다"고 했습니다.

경찰은 B 씨에게 또 다른 마약 정보를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B 씨는 "마약 거래 정황을 확인하려고 업소 쓰레기통까지 뒤졌다"면서 "계속 요구가 이어져, 해도 해도 너무하단 생각에 경찰에게 전화해 화를 냈다. 그 이후로는 연락이 없었다"고 합니다.

이런 A 씨와 B 씨의 희생으로, 해당 수사팀은 '실적'을 올렸습니다.

경찰청이 더불어민주당 김의겸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수사팀의 일원은 경찰청장 표창장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 경찰, 수사감찰 절차 착수..."성폭력 피해 소홀히 대하지 않았다"

경기북부경찰청 수사심의계는 KBS 보도 이후, 수사감찰 절차에 들어갔습니다.

경찰 관계자는 "사실관계를 전반적으로 확인한 뒤 감찰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며 "수사 전반 및 인권침해 등 부족한 부분을 발견할 시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도 경찰은 몇 가지 입장을 밝혀왔습니다.

"A 씨가 마약 범죄 제보를 하면서, 추가로 성폭력 피해를 진술해 함께 접수한 것"이라며 "해당 성폭력 범죄는 검찰에 송치했으나, 검찰에서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다면서 보완수사를 요구해 불송치 결정했다"는 겁니다.

A 씨의 피해 호소에 경찰이 답한 내용에 대해서도 '황 씨와 관계를 유지하라'는 뜻이 아니었다고 해명했습니다. 'A 씨를 안심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기다려달라'는 문자 메시지도 체포영장을 반드시 발부받을 테니 기다리라고 한 것"이라며 "'성폭력 피해를 참으라'고 한 것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B 씨에 대해선, '위험을 무릅쓰고 정보를 수집하라고 한 사실은 없다'는 게 경찰 입장입니다.

또 '표창장 약속'을 '먼저' 한 적은 없다고 경찰은 밝혔습니다. B 씨가 '표창을 받을 수 있냐'고 물어 '알아보겠다고'라고 답변했단 겁니다. 경찰은 "대신 경찰 신고 보상금 100만 원을 각각 지급했다"고 했습니다.

A 씨와 B 씨는 최근 인권위와 권익위에 이 문제를 신고하고, 경찰청에도 진정을 접수했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KBS는 올바른 여론 형성을 위해 자유로운 댓글 작성을 지지합니다.
다만 이 기사는 일부 댓글에 모욕・명예훼손 등 현행법에 저촉될 우려가 발견돼 건전한 댓글 문화 정착을 위해 댓글 사용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양해를 바랍니다.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