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문 ‘988건’ 보니…“공탁금 많을수록 감형 폭 커져”

입력 2023.11.17 (21:38) 수정 2023.11.17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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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방금 보신 피해자들의 분노 이해가 가실텐데요.

지난해 12월, 형사공탁 특례가 도입된 이후, 법정 주변에서 피해자들이 억울함과 분하다는 울분을 토해냈습니다.

KBS는 국내 언론 최초로 형사공탁 특례와 관련한 판결문 천 건에 이르는, 만 천여 쪽을 심층 분석했습니다.

이형관 기자가 자세히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KBS는 피고인의 일방적인 공탁이 이뤄진 법원 판결 988건을 심층 분석했습니다.

선고 2주 이내 공탁이 이뤄진 판결은 558건, 심지어 선고 사흘 이내 공탁도 130건입니다.

피해자가 재판부에 거절 의사를 말할 수 없도록 이른바 '기습 공탁'을 한 겁니다.

'기습 공탁'의 80.2%는 감형 사유로 그대로 고려됐습니다.

피해자 입장을 고려해 '기습 공탁'을 받아들이지 않거나, 일부만 감경 사유로 참작한 판결은 19.8%에 그쳤습니다.

[김슬아/변호사·새로운 미래를 위한 청년변호사 모임 : "피해 회복에 대한 결정권을 (피해자) 스스로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피해 회복) 대상자를 완전히 배제시키는 것과 같은 결과를 낳게 (됐습니다)."]

공탁금 액수에 따라 형량은 얼마나 줄었을까.

다른 변수 없이 오직 공탁만으로 형량이 바뀐 2심 판결문만 살폈습니다.

전체 334건 가운데 55.7%가 형량이 줄었습니다.

500만 원 이하일 때는 평균 7.8개월, 1,500만 원에서 2천만 원 사이는 평균 11.5개월이 줄었습니다.

공탁금이 많을수록 감형 폭이 더 커졌습니다.

[이탄희/국회 법제사법위원/더불어민주당 : "피해자도 공탁하게 되면 형량을 올릴 수 있게 되느냐…. 결국 형량이라고 하는 것을 '사고, 팔 수 있다'는 관념이 형성돼 가는 초입이다."]

KBS 분석에 대해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지적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형사공탁 관련 정비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KBS 뉴스 이형관입니다.

촬영기자:김대현/그래픽:박수홍/데이터분석:정한진/영상제공:동물과 아름다운 이야기

[앵커]

이번 문제 취재한 KBS 이형관 기자와 더 자세한 내용 짚어보겠습니다.

피해자 동의 없이 형사공탁을 할 수 있게 된 게 지난해 말부터라고요.

왜 이렇게 바꾼 겁니까?

[기자]

취지 자체는 좋은 겁니다.

피해자 보호를 위한 건데요.

과거에는 형사공탁을 하려면 피해자 개인정보를 알아야 가능했습니다.

그래서 피고인이 수사기관이나 재판부에 피해자 정보 열람을 신청하곤 했는데요.

이러다 보니 특히 성범죄나 강력범죄 같은 경우 피해자 정보 노출로 인한 2차 가해 우려가 제기된 겁니다.

그래서 지난해 12월 법 개정으로 제도를 바꾸면서 피해자 인적사항을 몰라도 공탁을 할 수 있게 된 거죠.

[앵커]

그런데 정작 시행을 했더니, 피해자 의사와 상관 없는 공탁이 남발되는 거군요?

[기자]

네, 그렇습니다.

전체 형사공탁 건수는 급증하는 추셉니다.

공개된 판결문으로 분석해보니 분석 대상 56%가 피해자 동의 없는 이른바 '기습 공탁'이었습니다.

사실, 형사공탁 자체를 문제 삼긴 어려울 수 있는데요.

문제는 이렇게 남발되는 형사공탁이 양형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는 겁니다.

[앵커]

그러면, 형사공탁을 꼭 감형사유로 반영해야 한다, 이런 게 있는 겁니까?

[기자]

대법원 양형기준을 보면요,

형사재판에서 공탁이 양형상 감경 인자로 돼있긴 합니다.

하지만 감형할 수 있다는 거지, 의무적으로 반영해야 하는 건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감형을 할지 말지는 재판부 재량인 겁니다.

실제로 취재진이 분석해보니 '기습 공탁' 사건 중 적지만 1.4%는 아예 감형 사유로 인정해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재판에선 그대로 감형이 이뤄진 겁니다.

[앵커]

피해자의 눈물 보다 가해자의 돈이 법정에서 더 무게감이 있다면 누가 사법 정의를 신뢰하겠습니까?

법원은 뭐라고 합니까?

[기자]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KBS에 답변을 통해 "공탁 관련 감경 인자가 일선 재판에서 너무 쉽게 적용된다는 비판, 무겁게 받아들인다"고 밝혔습니다.

"공탁 양형 인자의 추가 정비 방안을 심의·반영하겠다"고도 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선고 전 피해자 의사를 직접 묻고 확인하는 절차가 보완돼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앵커]

네, 잘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이형관 기자였습니다.

촬영기자:김대현/영상편집:정재숙/그래픽:박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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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결문 ‘988건’ 보니…“공탁금 많을수록 감형 폭 커져”
    • 입력 2023-11-17 21:38:53
    • 수정2023-11-17 21:47:26
    뉴스 9
[앵커]

방금 보신 피해자들의 분노 이해가 가실텐데요.

지난해 12월, 형사공탁 특례가 도입된 이후, 법정 주변에서 피해자들이 억울함과 분하다는 울분을 토해냈습니다.

KBS는 국내 언론 최초로 형사공탁 특례와 관련한 판결문 천 건에 이르는, 만 천여 쪽을 심층 분석했습니다.

이형관 기자가 자세히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KBS는 피고인의 일방적인 공탁이 이뤄진 법원 판결 988건을 심층 분석했습니다.

선고 2주 이내 공탁이 이뤄진 판결은 558건, 심지어 선고 사흘 이내 공탁도 130건입니다.

피해자가 재판부에 거절 의사를 말할 수 없도록 이른바 '기습 공탁'을 한 겁니다.

'기습 공탁'의 80.2%는 감형 사유로 그대로 고려됐습니다.

피해자 입장을 고려해 '기습 공탁'을 받아들이지 않거나, 일부만 감경 사유로 참작한 판결은 19.8%에 그쳤습니다.

[김슬아/변호사·새로운 미래를 위한 청년변호사 모임 : "피해 회복에 대한 결정권을 (피해자) 스스로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피해 회복) 대상자를 완전히 배제시키는 것과 같은 결과를 낳게 (됐습니다)."]

공탁금 액수에 따라 형량은 얼마나 줄었을까.

다른 변수 없이 오직 공탁만으로 형량이 바뀐 2심 판결문만 살폈습니다.

전체 334건 가운데 55.7%가 형량이 줄었습니다.

500만 원 이하일 때는 평균 7.8개월, 1,500만 원에서 2천만 원 사이는 평균 11.5개월이 줄었습니다.

공탁금이 많을수록 감형 폭이 더 커졌습니다.

[이탄희/국회 법제사법위원/더불어민주당 : "피해자도 공탁하게 되면 형량을 올릴 수 있게 되느냐…. 결국 형량이라고 하는 것을 '사고, 팔 수 있다'는 관념이 형성돼 가는 초입이다."]

KBS 분석에 대해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지적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형사공탁 관련 정비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KBS 뉴스 이형관입니다.

촬영기자:김대현/그래픽:박수홍/데이터분석:정한진/영상제공:동물과 아름다운 이야기

[앵커]

이번 문제 취재한 KBS 이형관 기자와 더 자세한 내용 짚어보겠습니다.

피해자 동의 없이 형사공탁을 할 수 있게 된 게 지난해 말부터라고요.

왜 이렇게 바꾼 겁니까?

[기자]

취지 자체는 좋은 겁니다.

피해자 보호를 위한 건데요.

과거에는 형사공탁을 하려면 피해자 개인정보를 알아야 가능했습니다.

그래서 피고인이 수사기관이나 재판부에 피해자 정보 열람을 신청하곤 했는데요.

이러다 보니 특히 성범죄나 강력범죄 같은 경우 피해자 정보 노출로 인한 2차 가해 우려가 제기된 겁니다.

그래서 지난해 12월 법 개정으로 제도를 바꾸면서 피해자 인적사항을 몰라도 공탁을 할 수 있게 된 거죠.

[앵커]

그런데 정작 시행을 했더니, 피해자 의사와 상관 없는 공탁이 남발되는 거군요?

[기자]

네, 그렇습니다.

전체 형사공탁 건수는 급증하는 추셉니다.

공개된 판결문으로 분석해보니 분석 대상 56%가 피해자 동의 없는 이른바 '기습 공탁'이었습니다.

사실, 형사공탁 자체를 문제 삼긴 어려울 수 있는데요.

문제는 이렇게 남발되는 형사공탁이 양형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는 겁니다.

[앵커]

그러면, 형사공탁을 꼭 감형사유로 반영해야 한다, 이런 게 있는 겁니까?

[기자]

대법원 양형기준을 보면요,

형사재판에서 공탁이 양형상 감경 인자로 돼있긴 합니다.

하지만 감형할 수 있다는 거지, 의무적으로 반영해야 하는 건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감형을 할지 말지는 재판부 재량인 겁니다.

실제로 취재진이 분석해보니 '기습 공탁' 사건 중 적지만 1.4%는 아예 감형 사유로 인정해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재판에선 그대로 감형이 이뤄진 겁니다.

[앵커]

피해자의 눈물 보다 가해자의 돈이 법정에서 더 무게감이 있다면 누가 사법 정의를 신뢰하겠습니까?

법원은 뭐라고 합니까?

[기자]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KBS에 답변을 통해 "공탁 관련 감경 인자가 일선 재판에서 너무 쉽게 적용된다는 비판, 무겁게 받아들인다"고 밝혔습니다.

"공탁 양형 인자의 추가 정비 방안을 심의·반영하겠다"고도 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선고 전 피해자 의사를 직접 묻고 확인하는 절차가 보완돼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앵커]

네, 잘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이형관 기자였습니다.

촬영기자:김대현/영상편집:정재숙/그래픽:박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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