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에 휘말린 현실 쓰고 싶었다”…조정래 새 장편 ‘황금종이’

입력 2023.11.21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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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로 살고 싶다, 잘 살고 싶다는 모든 인간의 공통된 욕망이 있죠. 그것은 곧 돈과 직결됩니다.
지금 우리는 지폐를 쓰면서 그것이 우리의 삶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무시무시한, 그러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것이 돈이라는 존재이고, 우리 인간사의 비극의 8~90%, 법정 소송의 8~90% 이상
다 돈 때문에 야기되는 문제입니다.

이 돈이 인간을 어떻게 구속하고 어떻게 지배하는가, 인간은 어떻게 해서 돈에 그렇게 매달릴 수밖에 없는가 하는 문제를 소설로 쓰고자 했습니다."

<천년의 질문>(2019년) 이후 4년여 만에 돌아온 조정래 작가의 새 장편소설 <황금종이>는 '돈' 문제를 다룹니다. '작가의 말'에 썼듯이, 우리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날마다 써야 하는 것, 지니면 힘이 나고 없으면 힘이 빠지는 것, 우리의 행복과 불행을 좌지우지하는 것, 우리의 삶에서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하는 것, 우리가 전혀 갖지 못하면 곧바로 죽음과 맞닥뜨리게 하는 것, 그리하여 5,000여 년에 걸쳐서 줄기차게 우리를 지배해 온 것, 그것이 바로 '돈'입니다.


조정래 작가는 자신의 평생 집필 계획에 따라 이 소설을 3기 작품으로 소개했습니다. 1기는 단편과 중편으로 시작해 <아리랑> 이후에 쓴 작품들, 2기는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그리고 작가 스스로 3기의 출발점으로 삼은 작품이 바로 이번에 새롭게 선보인 <황금종이>입니다.

그렇다면 소설의 제목을 '황금종이'라 붙인 이유는 뭘까.

"'돈' 그러면 너무 직설적이고 야비하고 천박하죠. 문학이니까 그것을 문학적 상징과 은유를 통해서 전달해야 한다고 해서 '황금종이'라고 제목을 붙인 것입니다.

독자들에게 두 가지의 퀴즈를 이번 소설에서 냈습니다. 작가의 말을 통해서 제가 말하고 있는 여러 가지의 대답은 다 돈입니다. 그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무엇일까 하고 열 번 가까이 되풀이하는 그 말의 대답은 돈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어디에 속하는 거야? 하고 저는 묻고 싶었습니다."

소설은 운동권 출신의 인권 변호사 이태하라는 인물이 돈에 얽힌 갖가지 사건들을 맡는 과정을 통해 돈 때문에 벌어지는 추악하고 비극적인 사회 현실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아버지가 어머니 몫으로 남긴 유산마저 빼앗으려 소송을 건 딸,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아버지의 금고를 습격한 형제들의 아귀다툼, 하루아침에 월세 4배 인상을 요구하는 건물주를 폭행해 체포된 식당 주인, 청소년들에게 편의점에서 담배와 술을 사와 배달하며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독거노인….


돈 때문에 살고 돈 때문에 죽는 노예 같은 인간의 현실은 써도 써도 끝이 없습니다. 혈육도, 종교도, 권력도, 도덕도 그 앞에선 허무하게 무력화돼버리는 마법의 종이죠. 조정래 작가는 이런 현실을 타개할 문학적 대안으로 주인공의 대학 선배인 한지섭이라는 또 다른 인물을 보여줍니다. 그 또한 한때 운동권이었지만, 초심을 잃고 권력에 야합하는 세태에 환멸을 느껴 귀농을 선택하죠. 과학 영농을 통해 애플 망고 등을 재배해서 가족을 부양하고, 두 아이도 건강하게 키워냅니다.

"이 소설에서는 수십 가지의 돈이 얽힌 사례들을 적으면서 우리 모양이 어떤 꼴인가, 얼마나 짐승 같은 삶인가, 오히려 짐승에 대한 모독이 아닌가 할 정도로 우리는 야비하게 돈에 휘말려 있는데, 그걸 보여주고, 그리고 그러한 세상에서 바람직하게 살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그 인물을 창조해서 독자들에게 최소한이나마 소설적 구원을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운동권 출신의 이태하 변호사, 그리고 운동권 출신의 한지섭, 과학적 영농을 하는 사람을 만들어서 독자들에게 삶의 탈출구를 제시하고 싶었습니다."

소설은 있었던 일, 있는 일, 있을 수 있는 일을 자유롭게 왔다 갔다 하며 쓰기 마련이라, 중요한 건 작가가 창조해낸 인물이 꼭 내 옆에 있는 사람처럼 생동감이 있어야 한다고 작가는 강조했습니다. 독자가 감정을 이입할 수 있게 해줘야 좋은 소설로 평가될 수 있다는 거죠. 소설의 두 주인공인 이태하, 한지섭을 통해 그동안 봐왔던 특정 인물을 떠올리는 건 독자들의 자유로운 생각에 맡기겠다고 했습니다. 특별한 모델이 있는 건 아니라고요.


조정래 작가는 꽤 오래전부터 이 소설을 구상했다고 합니다. 하나의 소재를 수십 년 되풀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가 완벽하다 싶으면 집필에 착수한다고 했습니다. 돈이 삶을 괴롭힐 때마다 작가 또한 돈 문제를 수없이 생각하고 고민해야 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어떤 계기가 불쑥 나타난 것이 아니라 그동안 숱하게 봐온 사건들을 모으고 모아서 쓰게 된 것이 바로 이 소설이었습니다. 그것은 작가로서의 소명이기도 했죠.

"쓰고 나서도 허탈한 게 내가 이렇게 쓴들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종교가 아무리 강조해도 실패했는데, 나 또한 실패하리라. 그러나 실패가 두려워 안 쓸 수는 없다. 쓰는 데까지 써보자, 하면서 쓴 것이 이것입니다."


올해 나이 여든둘. 팔십을 넘기면서는 세월의 힘을 이길 수 없다는 걸 나날의 삶에서 실감한다는 조정래 작가. 그래서 오래 보관해온 책도 차근차근 버리거나 기증하거나 한지가 어느덧 2년이 됐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건강이 허락하는 한 쓰는 일을 멈추지 않겠다는 신념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조정래 작가가 인생 마지막 작품으로 구상하는 것은 우리의 영혼과 내세입니다. 불교적 세계관을 가지고 작품을 쓰면서 문학 인생을 마칠까 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군요. 그래서 지금 이 시각에도 작가는 책상 앞에서 원고지와 씨름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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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돈에 휘말린 현실 쓰고 싶었다”…조정래 새 장편 ‘황금종이’
    • 입력 2023-11-21 14:5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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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로 살고 싶다, 잘 살고 싶다는 모든 인간의 공통된 욕망이 있죠. 그것은 곧 돈과 직결됩니다.
지금 우리는 지폐를 쓰면서 그것이 우리의 삶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무시무시한, 그러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것이 돈이라는 존재이고, 우리 인간사의 비극의 8~90%, 법정 소송의 8~90% 이상
다 돈 때문에 야기되는 문제입니다.

이 돈이 인간을 어떻게 구속하고 어떻게 지배하는가, 인간은 어떻게 해서 돈에 그렇게 매달릴 수밖에 없는가 하는 문제를 소설로 쓰고자 했습니다."

<천년의 질문>(2019년) 이후 4년여 만에 돌아온 조정래 작가의 새 장편소설 <황금종이>는 '돈' 문제를 다룹니다. '작가의 말'에 썼듯이, 우리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날마다 써야 하는 것, 지니면 힘이 나고 없으면 힘이 빠지는 것, 우리의 행복과 불행을 좌지우지하는 것, 우리의 삶에서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하는 것, 우리가 전혀 갖지 못하면 곧바로 죽음과 맞닥뜨리게 하는 것, 그리하여 5,000여 년에 걸쳐서 줄기차게 우리를 지배해 온 것, 그것이 바로 '돈'입니다.


조정래 작가는 자신의 평생 집필 계획에 따라 이 소설을 3기 작품으로 소개했습니다. 1기는 단편과 중편으로 시작해 <아리랑> 이후에 쓴 작품들, 2기는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그리고 작가 스스로 3기의 출발점으로 삼은 작품이 바로 이번에 새롭게 선보인 <황금종이>입니다.

그렇다면 소설의 제목을 '황금종이'라 붙인 이유는 뭘까.

"'돈' 그러면 너무 직설적이고 야비하고 천박하죠. 문학이니까 그것을 문학적 상징과 은유를 통해서 전달해야 한다고 해서 '황금종이'라고 제목을 붙인 것입니다.

독자들에게 두 가지의 퀴즈를 이번 소설에서 냈습니다. 작가의 말을 통해서 제가 말하고 있는 여러 가지의 대답은 다 돈입니다. 그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무엇일까 하고 열 번 가까이 되풀이하는 그 말의 대답은 돈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어디에 속하는 거야? 하고 저는 묻고 싶었습니다."

소설은 운동권 출신의 인권 변호사 이태하라는 인물이 돈에 얽힌 갖가지 사건들을 맡는 과정을 통해 돈 때문에 벌어지는 추악하고 비극적인 사회 현실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아버지가 어머니 몫으로 남긴 유산마저 빼앗으려 소송을 건 딸,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아버지의 금고를 습격한 형제들의 아귀다툼, 하루아침에 월세 4배 인상을 요구하는 건물주를 폭행해 체포된 식당 주인, 청소년들에게 편의점에서 담배와 술을 사와 배달하며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독거노인….


돈 때문에 살고 돈 때문에 죽는 노예 같은 인간의 현실은 써도 써도 끝이 없습니다. 혈육도, 종교도, 권력도, 도덕도 그 앞에선 허무하게 무력화돼버리는 마법의 종이죠. 조정래 작가는 이런 현실을 타개할 문학적 대안으로 주인공의 대학 선배인 한지섭이라는 또 다른 인물을 보여줍니다. 그 또한 한때 운동권이었지만, 초심을 잃고 권력에 야합하는 세태에 환멸을 느껴 귀농을 선택하죠. 과학 영농을 통해 애플 망고 등을 재배해서 가족을 부양하고, 두 아이도 건강하게 키워냅니다.

"이 소설에서는 수십 가지의 돈이 얽힌 사례들을 적으면서 우리 모양이 어떤 꼴인가, 얼마나 짐승 같은 삶인가, 오히려 짐승에 대한 모독이 아닌가 할 정도로 우리는 야비하게 돈에 휘말려 있는데, 그걸 보여주고, 그리고 그러한 세상에서 바람직하게 살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그 인물을 창조해서 독자들에게 최소한이나마 소설적 구원을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운동권 출신의 이태하 변호사, 그리고 운동권 출신의 한지섭, 과학적 영농을 하는 사람을 만들어서 독자들에게 삶의 탈출구를 제시하고 싶었습니다."

소설은 있었던 일, 있는 일, 있을 수 있는 일을 자유롭게 왔다 갔다 하며 쓰기 마련이라, 중요한 건 작가가 창조해낸 인물이 꼭 내 옆에 있는 사람처럼 생동감이 있어야 한다고 작가는 강조했습니다. 독자가 감정을 이입할 수 있게 해줘야 좋은 소설로 평가될 수 있다는 거죠. 소설의 두 주인공인 이태하, 한지섭을 통해 그동안 봐왔던 특정 인물을 떠올리는 건 독자들의 자유로운 생각에 맡기겠다고 했습니다. 특별한 모델이 있는 건 아니라고요.


조정래 작가는 꽤 오래전부터 이 소설을 구상했다고 합니다. 하나의 소재를 수십 년 되풀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가 완벽하다 싶으면 집필에 착수한다고 했습니다. 돈이 삶을 괴롭힐 때마다 작가 또한 돈 문제를 수없이 생각하고 고민해야 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어떤 계기가 불쑥 나타난 것이 아니라 그동안 숱하게 봐온 사건들을 모으고 모아서 쓰게 된 것이 바로 이 소설이었습니다. 그것은 작가로서의 소명이기도 했죠.

"쓰고 나서도 허탈한 게 내가 이렇게 쓴들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종교가 아무리 강조해도 실패했는데, 나 또한 실패하리라. 그러나 실패가 두려워 안 쓸 수는 없다. 쓰는 데까지 써보자, 하면서 쓴 것이 이것입니다."


올해 나이 여든둘. 팔십을 넘기면서는 세월의 힘을 이길 수 없다는 걸 나날의 삶에서 실감한다는 조정래 작가. 그래서 오래 보관해온 책도 차근차근 버리거나 기증하거나 한지가 어느덧 2년이 됐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건강이 허락하는 한 쓰는 일을 멈추지 않겠다는 신념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조정래 작가가 인생 마지막 작품으로 구상하는 것은 우리의 영혼과 내세입니다. 불교적 세계관을 가지고 작품을 쓰면서 문학 인생을 마칠까 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군요. 그래서 지금 이 시각에도 작가는 책상 앞에서 원고지와 씨름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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