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주심이 감독에게 내린 퇴장 선언, 야구협회 심판팀장 “없던 걸로 하자”

입력 2023.11.22 (16:36) 수정 2023.11.23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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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경기 도중 심판 고유 권한인 '스트라이크-볼 판정'에 항의한 감독이 퇴장당했다. 그런데 규정을 준수해야 할 심판팀장이 개입해 퇴장을 무효로 하고, 경기를 진행시킨 일이 벌어졌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가 주최한 공식 경기에서 일어난 일이다.

심판 퇴장 선언을 없던 걸로 처리한 협회 심판팀장

지난 9월 20일 부산광역시 기장군에서 열린 15세 이하 전국유소년야구대회 수원북중(경기)과 원베이스볼클럽(대구)의 경기. 경기 초반부터 원베이스볼클럽 W감독이 주심의 볼 판정에 불만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주심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W감독은 급기야 덕아웃에서 나와 거칠게 항의했다.

주심은 즉각 "규정 상 스트라이크-볼 판정은 항의 대상이 아니며, 계속 항의하면 퇴장시키겠다"고 경고했다. 다른 심판들도 홈 플레이트로 모여 만류했지만 항의는 이어졌고, 결국 주심은 W감독을 퇴장시켰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경기를 지켜보던 P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야구심판부 팀장이 그라운드로 들어왔다. P팀장은 주심에게 "원만한 진행을 위해 퇴장을 없던 것으로 하고 경기하자"고 상황을 정리했다. 이에 W감독이 덕아웃으로 돌아갔고, 속개된 경기는 정규이닝 7회까지 정상적으로 마쳤다.

지난 9월 20일 수원북중과 원베이스볼클럽의 경기 공식 기록지. 감독 항의로 경기가 십 분 안팎 지연됐지만 기록지에는 그런 내용이 적혀있지 않다.지난 9월 20일 수원북중과 원베이스볼클럽의 경기 공식 기록지. 감독 항의로 경기가 십 분 안팎 지연됐지만 기록지에는 그런 내용이 적혀있지 않다.

심판팀장 "퇴장 번복은 잘못이지만 상대 감독도 동의했다!"

W감독의 항의로 경기가 십 분 안팎 지연됐지만, 공식 기록지에는 이에 대한 기록이 없다. 해당 경기 기록원은 "감독이 퇴장당하면 기록지에 적어야 하는 것은 맞다. 당시 주심이 W감독에게 퇴장 선언한 것까지는 봤다. 그런데, P심판팀장이 그라운드로 나갔고, W감독이 덕아웃으로 돌아가고 경기가 속개됐다. 주심도 퇴장과 관련한 별도의 얘기를 기록실에 전달하지 않아 기록하지 않았다."고 KBS에 밝혔다.

지난 9월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가 주최한 이 대회에는 전국 147개팀이 참가했다. 고교 야구부 감독들이 지켜보는 만큼 학생들에게는 매 경기가 고교 진학을 위한 시험이나 다름 없다. 현장에는 경기 감독관이 배치됐고, 학부모들도 지켜보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심판팀장이 협회가 주최하는 초-중-고교 대회에 심판을 배정하고 파견하는 전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P심판팀장은 KBS와의 전화통화에서 "퇴장 번복은 규정상 잘못이 맞다. 하지만 상대팀 감독에게 물어보고 동의도 받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한 야구인은 "P팀장과 W감독은 출신 지역이 같은 선후배 사이로 알고 있다."며 두 사람의 친분관계가 작용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또, W감독의 아들은 현재 프로야구 모 팀에서 1군 주전 투수로 뛰고 있는 국가대표 선수이기도 하다.

입시 비리 전력자 심판팀장을 위한 조직 개편?

이번 사태의 원인을 제공한 P심판팀장에 대한 또 다른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2019년 협회는 이사회를 열고 야구와 무관한 정형외과 의사를 심판위원장으로 선임했다. 권한이 막강한 심판위원장의 비위 행위를 막기 위해 외부인사가 심판위원장을 맡고, 심판들은 본연의 임무에 집중토록 한다는 명분이다.

이는 한 해 앞선 2018년, H심판위원장이 권한 오남용으로 물의를 일의킨 영향이 크다. 당시 H심판위원장은 특정 심판 2명을 운전기사로 부려 갑질논란을 낳았고, 고교야구 대회에서 경기 전날 감독과 술자리나 심판실에서 만나고 퇴장당한 감독을 더그아웃에서 다독이는 등 직무규정을 어겨 직무정지 처분을 받았다. 이때 P씨는 심판위원장 직무대행을 맡았다가 2019년 조직개편 당시 '심판팀장'에 취임했다.

주목할 점은 심판팀장이 심판 배정 등 심판진 운영을 총괄해 종전 심판위원장과 똑같은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다. 이 같은 조직 개편에 대해 내부에서는 협회 실세인 사무처장의 '자기 사람 챙기기'라는 불만이 끊이지 않고 있다. 협회 한 관계자는 "P씨를 심판위원장으로 승진시킬 경우, 입시 비리 전력이 부각돼 외부로 부터 지적받을 것을 우려한 협회 실세 인사의 꼼수"라고 지적했다.

P심판팀장은 과거 지방 모 고교 야구부 감독 시절, 입시 비리 혐의로 처벌 받은 전력이 있다. 대학특기생 선발을 위해 학부모로부터 돈을 받아 대학 측에 전달하려한 사실이 적발된 것이다. 이에 대해 P심판팀장은 "학생이 해당 대학에 진학하지 않아 학부모에게 돈을 돌려줬고, 그래서 실형을 살지 않고 집행유예 처분을 받았다"고 사실을 인정했다.

심판팀장이 규정에 어긋난 비위 행위를 시인했지만, 김용균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사무처장은 "그 전에 해당 내용을 보고받은 바가 없으며 과실이 파악될 경우 스포츠공정위원회를 열어 징계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이어서 '자기 사람 봐주기'라는 의혹을 부채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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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1-22 16:36:21
    • 수정2023-11-23 15:5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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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경기 도중 심판 고유 권한인 '스트라이크-볼 판정'에 항의한 감독이 퇴장당했다. 그런데 규정을 준수해야 할 심판팀장이 개입해 퇴장을 무효로 하고, 경기를 진행시킨 일이 벌어졌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가 주최한 공식 경기에서 일어난 일이다.

심판 퇴장 선언을 없던 걸로 처리한 협회 심판팀장

지난 9월 20일 부산광역시 기장군에서 열린 15세 이하 전국유소년야구대회 수원북중(경기)과 원베이스볼클럽(대구)의 경기. 경기 초반부터 원베이스볼클럽 W감독이 주심의 볼 판정에 불만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주심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W감독은 급기야 덕아웃에서 나와 거칠게 항의했다.

주심은 즉각 "규정 상 스트라이크-볼 판정은 항의 대상이 아니며, 계속 항의하면 퇴장시키겠다"고 경고했다. 다른 심판들도 홈 플레이트로 모여 만류했지만 항의는 이어졌고, 결국 주심은 W감독을 퇴장시켰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경기를 지켜보던 P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야구심판부 팀장이 그라운드로 들어왔다. P팀장은 주심에게 "원만한 진행을 위해 퇴장을 없던 것으로 하고 경기하자"고 상황을 정리했다. 이에 W감독이 덕아웃으로 돌아갔고, 속개된 경기는 정규이닝 7회까지 정상적으로 마쳤다.

지난 9월 20일 수원북중과 원베이스볼클럽의 경기 공식 기록지. 감독 항의로 경기가 십 분 안팎 지연됐지만 기록지에는 그런 내용이 적혀있지 않다.
심판팀장 "퇴장 번복은 잘못이지만 상대 감독도 동의했다!"

W감독의 항의로 경기가 십 분 안팎 지연됐지만, 공식 기록지에는 이에 대한 기록이 없다. 해당 경기 기록원은 "감독이 퇴장당하면 기록지에 적어야 하는 것은 맞다. 당시 주심이 W감독에게 퇴장 선언한 것까지는 봤다. 그런데, P심판팀장이 그라운드로 나갔고, W감독이 덕아웃으로 돌아가고 경기가 속개됐다. 주심도 퇴장과 관련한 별도의 얘기를 기록실에 전달하지 않아 기록하지 않았다."고 KBS에 밝혔다.

지난 9월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가 주최한 이 대회에는 전국 147개팀이 참가했다. 고교 야구부 감독들이 지켜보는 만큼 학생들에게는 매 경기가 고교 진학을 위한 시험이나 다름 없다. 현장에는 경기 감독관이 배치됐고, 학부모들도 지켜보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심판팀장이 협회가 주최하는 초-중-고교 대회에 심판을 배정하고 파견하는 전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P심판팀장은 KBS와의 전화통화에서 "퇴장 번복은 규정상 잘못이 맞다. 하지만 상대팀 감독에게 물어보고 동의도 받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한 야구인은 "P팀장과 W감독은 출신 지역이 같은 선후배 사이로 알고 있다."며 두 사람의 친분관계가 작용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또, W감독의 아들은 현재 프로야구 모 팀에서 1군 주전 투수로 뛰고 있는 국가대표 선수이기도 하다.

입시 비리 전력자 심판팀장을 위한 조직 개편?

이번 사태의 원인을 제공한 P심판팀장에 대한 또 다른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2019년 협회는 이사회를 열고 야구와 무관한 정형외과 의사를 심판위원장으로 선임했다. 권한이 막강한 심판위원장의 비위 행위를 막기 위해 외부인사가 심판위원장을 맡고, 심판들은 본연의 임무에 집중토록 한다는 명분이다.

이는 한 해 앞선 2018년, H심판위원장이 권한 오남용으로 물의를 일의킨 영향이 크다. 당시 H심판위원장은 특정 심판 2명을 운전기사로 부려 갑질논란을 낳았고, 고교야구 대회에서 경기 전날 감독과 술자리나 심판실에서 만나고 퇴장당한 감독을 더그아웃에서 다독이는 등 직무규정을 어겨 직무정지 처분을 받았다. 이때 P씨는 심판위원장 직무대행을 맡았다가 2019년 조직개편 당시 '심판팀장'에 취임했다.

주목할 점은 심판팀장이 심판 배정 등 심판진 운영을 총괄해 종전 심판위원장과 똑같은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다. 이 같은 조직 개편에 대해 내부에서는 협회 실세인 사무처장의 '자기 사람 챙기기'라는 불만이 끊이지 않고 있다. 협회 한 관계자는 "P씨를 심판위원장으로 승진시킬 경우, 입시 비리 전력이 부각돼 외부로 부터 지적받을 것을 우려한 협회 실세 인사의 꼼수"라고 지적했다.

P심판팀장은 과거 지방 모 고교 야구부 감독 시절, 입시 비리 혐의로 처벌 받은 전력이 있다. 대학특기생 선발을 위해 학부모로부터 돈을 받아 대학 측에 전달하려한 사실이 적발된 것이다. 이에 대해 P심판팀장은 "학생이 해당 대학에 진학하지 않아 학부모에게 돈을 돌려줬고, 그래서 실형을 살지 않고 집행유예 처분을 받았다"고 사실을 인정했다.

심판팀장이 규정에 어긋난 비위 행위를 시인했지만, 김용균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사무처장은 "그 전에 해당 내용을 보고받은 바가 없으며 과실이 파악될 경우 스포츠공정위원회를 열어 징계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이어서 '자기 사람 봐주기'라는 의혹을 부채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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