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채록5·18] ‘죽음의 행진’으로 계엄군 막아선 이기홍 변호사
입력 2023.11.23 (19:44)
수정 2023.11.23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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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5·18 당시 계엄군의 진압이 임박했을 때 시민대책위 주요 인사들이 이른바 '죽음의 행진'을 통해 이를 막기 위해 나섰었죠.
영상채록 5·18, 오늘은 당시 수습위원을 지내며, '정당 방위'를 주장하고, 기념재단 2대 이사장을 지낸 이기홍 변호사를 기록합니다.
[리포트]
[이기홍/제2대 5·18기념재단 이사장 : "(신군부)자기들 시나리오대로 그렇게 하는 게 그것이 저희들이 착오를 한 것이 한 가지가 있어. 이 광주가 어떤 곳이라는 것을 몰랐어. 여기는 누르면 누를수록 강하다는 것을 몰랐다고. 그러니까 여기 정신은 말이여. 강압하면 강압할수록 또 오히려 더 강해져."]
[이기홍/제2대 5·18기념재단 이사장 : "(당시) 상황이 아주 심각해지니까 남동성당에서 김성용 신부하고 모두 다 엠네스티 회원이니까 그리 모여가지고 이제 거기서 (시민대책)수습위원회를 만들어가지고 우리가 이제 도청으로 들어가 버렸지. (법조인으로서) 부정한 공격에 대해서 우리가 대항을 한 것이다. 광주 시민이 권리 행사를 위해서 정당하게 대항을 한 것인데 우리는 정당방위를 한 것이다. 이런 주장을 한 거예요."]
[이기홍/제2대 5·18기념재단 이사장 : "지금 계엄군이 들어온다고 그러니까 못 들어오게 하기 위해서 우리들이 이제 막자. 그래가지고 우리들이 이제 나서가지고 전차 못 들어오게 행진을 한 거여. 그러니까 죽기 살기로 한 것이지. 그 누구든 거기서 전차로 밀어버리면 죽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그러니까 생사의 길을 이제 우리가 걷고 간 것이지."]
[이기홍/제2대 5·18기념재단 이사장 : "우리들이 행정부하고 이렇게 합의해서 다 수습을 할 것이니까 염려 말라고 들어오지 못하게 우리는 막은 것이여. 그랬더니 대번에 거절해버려. 도저히 안 된다고 오늘이 D-데이다 이 말이여. 자기들이 오늘 저녁에 들어오니까 더 이상 할 얘기가 없다고 그래서 그냥 대번에 거절해버리더라고."]
[이기홍/제2대 5·18기념재단 이사장 : "기가 막히죠. 그것이 차마 사람으로서 견디기 어려운 그런 감정이잖아. 그렇게 많은 사람이 희생을 당했으니. 전부 내가 무료 변론하고 다 그런 학생들이지. 정말 마음이 아프지 우리들이 살려내지 못하고 말이여."]
[이기홍/제2대 5·18기념재단 이사장 : "결국 광주가 없었으면 오늘날 대한민국이 없었어. 여기서 그렇게 버텨냈기 때문에 오늘날 이렇게 민주국가가 된 것이여. 그만치 우리 국민들이 민주 역량이 있어서 또 우리나라의 독재를 할 수가 없어요. 어떻게 독재가 돼요. 국민들이 말이여. 아주 위대한 국민이여. 이제 해볼 수가 없어."]
5·18 당시 계엄군의 진압이 임박했을 때 시민대책위 주요 인사들이 이른바 '죽음의 행진'을 통해 이를 막기 위해 나섰었죠.
영상채록 5·18, 오늘은 당시 수습위원을 지내며, '정당 방위'를 주장하고, 기념재단 2대 이사장을 지낸 이기홍 변호사를 기록합니다.
[리포트]
[이기홍/제2대 5·18기념재단 이사장 : "(신군부)자기들 시나리오대로 그렇게 하는 게 그것이 저희들이 착오를 한 것이 한 가지가 있어. 이 광주가 어떤 곳이라는 것을 몰랐어. 여기는 누르면 누를수록 강하다는 것을 몰랐다고. 그러니까 여기 정신은 말이여. 강압하면 강압할수록 또 오히려 더 강해져."]
[이기홍/제2대 5·18기념재단 이사장 : "(당시) 상황이 아주 심각해지니까 남동성당에서 김성용 신부하고 모두 다 엠네스티 회원이니까 그리 모여가지고 이제 거기서 (시민대책)수습위원회를 만들어가지고 우리가 이제 도청으로 들어가 버렸지. (법조인으로서) 부정한 공격에 대해서 우리가 대항을 한 것이다. 광주 시민이 권리 행사를 위해서 정당하게 대항을 한 것인데 우리는 정당방위를 한 것이다. 이런 주장을 한 거예요."]
[이기홍/제2대 5·18기념재단 이사장 : "지금 계엄군이 들어온다고 그러니까 못 들어오게 하기 위해서 우리들이 이제 막자. 그래가지고 우리들이 이제 나서가지고 전차 못 들어오게 행진을 한 거여. 그러니까 죽기 살기로 한 것이지. 그 누구든 거기서 전차로 밀어버리면 죽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그러니까 생사의 길을 이제 우리가 걷고 간 것이지."]
[이기홍/제2대 5·18기념재단 이사장 : "우리들이 행정부하고 이렇게 합의해서 다 수습을 할 것이니까 염려 말라고 들어오지 못하게 우리는 막은 것이여. 그랬더니 대번에 거절해버려. 도저히 안 된다고 오늘이 D-데이다 이 말이여. 자기들이 오늘 저녁에 들어오니까 더 이상 할 얘기가 없다고 그래서 그냥 대번에 거절해버리더라고."]
[이기홍/제2대 5·18기념재단 이사장 : "기가 막히죠. 그것이 차마 사람으로서 견디기 어려운 그런 감정이잖아. 그렇게 많은 사람이 희생을 당했으니. 전부 내가 무료 변론하고 다 그런 학생들이지. 정말 마음이 아프지 우리들이 살려내지 못하고 말이여."]
[이기홍/제2대 5·18기념재단 이사장 : "결국 광주가 없었으면 오늘날 대한민국이 없었어. 여기서 그렇게 버텨냈기 때문에 오늘날 이렇게 민주국가가 된 것이여. 그만치 우리 국민들이 민주 역량이 있어서 또 우리나라의 독재를 할 수가 없어요. 어떻게 독재가 돼요. 국민들이 말이여. 아주 위대한 국민이여. 이제 해볼 수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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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3-11-23 19:44:12
- 수정2023-11-23 22:0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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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당시 계엄군의 진압이 임박했을 때 시민대책위 주요 인사들이 이른바 '죽음의 행진'을 통해 이를 막기 위해 나섰었죠.
영상채록 5·18, 오늘은 당시 수습위원을 지내며, '정당 방위'를 주장하고, 기념재단 2대 이사장을 지낸 이기홍 변호사를 기록합니다.
[리포트]
[이기홍/제2대 5·18기념재단 이사장 : "(신군부)자기들 시나리오대로 그렇게 하는 게 그것이 저희들이 착오를 한 것이 한 가지가 있어. 이 광주가 어떤 곳이라는 것을 몰랐어. 여기는 누르면 누를수록 강하다는 것을 몰랐다고. 그러니까 여기 정신은 말이여. 강압하면 강압할수록 또 오히려 더 강해져."]
[이기홍/제2대 5·18기념재단 이사장 : "(당시) 상황이 아주 심각해지니까 남동성당에서 김성용 신부하고 모두 다 엠네스티 회원이니까 그리 모여가지고 이제 거기서 (시민대책)수습위원회를 만들어가지고 우리가 이제 도청으로 들어가 버렸지. (법조인으로서) 부정한 공격에 대해서 우리가 대항을 한 것이다. 광주 시민이 권리 행사를 위해서 정당하게 대항을 한 것인데 우리는 정당방위를 한 것이다. 이런 주장을 한 거예요."]
[이기홍/제2대 5·18기념재단 이사장 : "지금 계엄군이 들어온다고 그러니까 못 들어오게 하기 위해서 우리들이 이제 막자. 그래가지고 우리들이 이제 나서가지고 전차 못 들어오게 행진을 한 거여. 그러니까 죽기 살기로 한 것이지. 그 누구든 거기서 전차로 밀어버리면 죽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그러니까 생사의 길을 이제 우리가 걷고 간 것이지."]
[이기홍/제2대 5·18기념재단 이사장 : "우리들이 행정부하고 이렇게 합의해서 다 수습을 할 것이니까 염려 말라고 들어오지 못하게 우리는 막은 것이여. 그랬더니 대번에 거절해버려. 도저히 안 된다고 오늘이 D-데이다 이 말이여. 자기들이 오늘 저녁에 들어오니까 더 이상 할 얘기가 없다고 그래서 그냥 대번에 거절해버리더라고."]
[이기홍/제2대 5·18기념재단 이사장 : "기가 막히죠. 그것이 차마 사람으로서 견디기 어려운 그런 감정이잖아. 그렇게 많은 사람이 희생을 당했으니. 전부 내가 무료 변론하고 다 그런 학생들이지. 정말 마음이 아프지 우리들이 살려내지 못하고 말이여."]
[이기홍/제2대 5·18기념재단 이사장 : "결국 광주가 없었으면 오늘날 대한민국이 없었어. 여기서 그렇게 버텨냈기 때문에 오늘날 이렇게 민주국가가 된 것이여. 그만치 우리 국민들이 민주 역량이 있어서 또 우리나라의 독재를 할 수가 없어요. 어떻게 독재가 돼요. 국민들이 말이여. 아주 위대한 국민이여. 이제 해볼 수가 없어."]
5·18 당시 계엄군의 진압이 임박했을 때 시민대책위 주요 인사들이 이른바 '죽음의 행진'을 통해 이를 막기 위해 나섰었죠.
영상채록 5·18, 오늘은 당시 수습위원을 지내며, '정당 방위'를 주장하고, 기념재단 2대 이사장을 지낸 이기홍 변호사를 기록합니다.
[리포트]
[이기홍/제2대 5·18기념재단 이사장 : "(신군부)자기들 시나리오대로 그렇게 하는 게 그것이 저희들이 착오를 한 것이 한 가지가 있어. 이 광주가 어떤 곳이라는 것을 몰랐어. 여기는 누르면 누를수록 강하다는 것을 몰랐다고. 그러니까 여기 정신은 말이여. 강압하면 강압할수록 또 오히려 더 강해져."]
[이기홍/제2대 5·18기념재단 이사장 : "(당시) 상황이 아주 심각해지니까 남동성당에서 김성용 신부하고 모두 다 엠네스티 회원이니까 그리 모여가지고 이제 거기서 (시민대책)수습위원회를 만들어가지고 우리가 이제 도청으로 들어가 버렸지. (법조인으로서) 부정한 공격에 대해서 우리가 대항을 한 것이다. 광주 시민이 권리 행사를 위해서 정당하게 대항을 한 것인데 우리는 정당방위를 한 것이다. 이런 주장을 한 거예요."]
[이기홍/제2대 5·18기념재단 이사장 : "지금 계엄군이 들어온다고 그러니까 못 들어오게 하기 위해서 우리들이 이제 막자. 그래가지고 우리들이 이제 나서가지고 전차 못 들어오게 행진을 한 거여. 그러니까 죽기 살기로 한 것이지. 그 누구든 거기서 전차로 밀어버리면 죽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그러니까 생사의 길을 이제 우리가 걷고 간 것이지."]
[이기홍/제2대 5·18기념재단 이사장 : "우리들이 행정부하고 이렇게 합의해서 다 수습을 할 것이니까 염려 말라고 들어오지 못하게 우리는 막은 것이여. 그랬더니 대번에 거절해버려. 도저히 안 된다고 오늘이 D-데이다 이 말이여. 자기들이 오늘 저녁에 들어오니까 더 이상 할 얘기가 없다고 그래서 그냥 대번에 거절해버리더라고."]
[이기홍/제2대 5·18기념재단 이사장 : "기가 막히죠. 그것이 차마 사람으로서 견디기 어려운 그런 감정이잖아. 그렇게 많은 사람이 희생을 당했으니. 전부 내가 무료 변론하고 다 그런 학생들이지. 정말 마음이 아프지 우리들이 살려내지 못하고 말이여."]
[이기홍/제2대 5·18기념재단 이사장 : "결국 광주가 없었으면 오늘날 대한민국이 없었어. 여기서 그렇게 버텨냈기 때문에 오늘날 이렇게 민주국가가 된 것이여. 그만치 우리 국민들이 민주 역량이 있어서 또 우리나라의 독재를 할 수가 없어요. 어떻게 독재가 돼요. 국민들이 말이여. 아주 위대한 국민이여. 이제 해볼 수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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