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0만 원에 내 집 마련?”…협동조합주택 피해 주의보

입력 2023.11.29 (10:30) 수정 2023.11.29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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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0만 원으로 10년 살아보고 '내 집 마련'"
가능할까요?

대구 북구 대현동 협동조합형 민간 임대아파트 광고대구 북구 대현동 협동조합형 민간 임대아파트 광고

2년전, 대구의 한 시행사가 대구 북구 대현동에 35층짜리 아파트를 짓겠다며 내놓은 광고입니다.

아파트를 저렴한 가격에 내세운 이유는 바로 '협동조합형 민간 임대아파트'.

'협동조합형 민간 임대아파트'란 개인이 협동조합에 가입해서 출자금을 내면, 그 돈으로 사업에 나서 아파트를 짓는 겁니다.

주택 소유권은 협동조합이 가지고, 조합원은 주택을 전세로 거주할 수 있는 권리를 갖습니다.

그러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조합이 가지고 있는 주택을 조합원들에게 저렴한 가격에 분양 전환해주는 방식입니다.

대구의 해당 시행사는, 조합원이 10년 동안 저렴한 가격의 임대료만 내면서 거주하고, 10년이 지나면 감정평가액의 80%로 분양권을 우선 매수할 수 있는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분양 전환을 위해 잔금까지 다 치르면 약 3억 5천만 원이지만, 이조차도 당시 주변 시세와 비교하면 2억 원 가까이 저렴한 금액이었습니다.

"임대아파트니까 좋은 조건으로 10년 살다가 내 집 마련 조건이고. 그때 당시 시세보다 굉장히 좋은 조건으로 내 집 마련 기회라고 하니까 참여를 하게 되었고…."
- 피해 조합원

피해 조합원들.피해 조합원들.

협동조합에 가입한 사람만 270여 명. 이들이 낸 금액은 180억 원 가까이 됩니다.

시행사는 사업이 잘 진행되지 않자 신용 대출을 받아 3, 4차 계약금을 선납하라고 권유하기도 했습니다.

시행사가 토지를 확보해야 한다며 내세운 신용대출 현황시행사가 토지를 확보해야 한다며 내세운 신용대출 현황

"(시행사가) 사업 진행이 잘 안 되는 거 같은데 3차, 4차 계약금이 좀 더 들어오면, 토지매입을 완료하면 사업승인을 받아서 아파트를 지을 수 있다…."
- 피해 조합원

그런데 협동조합 이사장이 바뀐 뒤, 회계 내역을 들여다보니 180억 원 대부분이 사라진 상태였습니다.

광고비가 59억 원, 토지매입 용역대행비로도 30억 원이 쓰였고, 시행사가 사업 초기 비용을 대기 위해 끌어다 쓴 개인 사채까지 조합비로 쓰였습니다.

그런데도 사업 대상지의 토지 매입은 한 건도 이뤄지지 않았고, 대부분 계약금만 걸어놓은 상태였습니다.

사업 계획 대상지. 2년이 넘도록 그대로인 모습이다.사업 계획 대상지. 2년이 넘도록 그대로인 모습이다.

협동조합이 사업계획 승인을 받기 위해서는 대상지의 95% 이상을 매입해야 하는데, 시행사는 이를 지키지 못해 구청에 사업계획 승인 신청조차 하 못했습니다.

270여 명의 조합원은 그대로 돈을 날릴 위기에 처한 겁니다.

'협동조합형 민간임대 아파트' 피해는 이곳뿐만이 아닙니다.

대구 중구의 협동조합형 민간임대 아파트 광고.대구 중구의 협동조합형 민간임대 아파트 광고.

대구 중구에서도 40여 명이 협동조합형 민간임대아파트 납입금 16억 원을 날렸다며 시행사를 고소했습니다.

이처럼 협동조합형 민간임대 아파트 피해가 잇따르자, 주의하라고 당부한 지자체도 천안, 창원, 여수, 강릉 등 여러 곳에 달합니다.

■협동조합형 민간주택 무엇이 문제인가?

협동조합형 민간임대주택은 겉보기에는 이상적이지만, 여러 차례 문제가 된 '지역주택조합사업'과 큰 틀에서 비슷한 위험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업 구조상 토지 소유권이 확보되지 않으면 사업이 이어질 수 없어 돈을 날리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입니다.

또, 조합과 시행사가 모인 돈을 어디에다, 어떻게 쓰는지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그런데 협동조합형 민간임대주택 사업은 개별 조합원이 소비자가 아니라 사업 주체로 참여하다 보니 사업이 수포가 되더라도 납입금을 반환받을 명확한 근거도 없습니다.

조합을 상대로 민사 소송을 내 납입금 반환 결정을 받아내도, 돌려받을 돈이 남아 있지 않으면 못 받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전문가들은 개인이 협동조합형 민간임대주택 사업에 참여하려면 신중하고 꼼꼼하게 사업 단계를 잘 살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또, 협동조합과 시행사에 자금집행내용을 조합원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강제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조합원들이 낸 돈이) 어디 어떻게 쓰여졌는지에 대한 정보 공시를 정기적으로 정확하게 조합원들한테 알리도록 하는 의무 규정을 좀 둬야 해요."
- 이병홍 대구과학대 부동산금융학과 교수

피해 조합원들은 "'전세 임대주택을 살다 내 집 마련도 할 수 있다'는 광고를 보고 계약했고, 협동조합형 민간임대주택 사업이 정확히 무엇인지 안내를 받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그냥 조금 저렴한 아파트인 줄 알고 계약했다는 겁니다.

전국에서 비슷한 피해가 이어지고 있는 만큼, 정부가 허위·과장 광고를 단속하는 등 근본적인 예방에 나서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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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00만 원에 내 집 마련?”…협동조합주택 피해 주의보
    • 입력 2023-11-29 10:30:30
    • 수정2023-11-29 14:10:31
    심층K
"3,500만 원으로 10년 살아보고 '내 집 마련'"
가능할까요?

대구 북구 대현동 협동조합형 민간 임대아파트 광고
2년전, 대구의 한 시행사가 대구 북구 대현동에 35층짜리 아파트를 짓겠다며 내놓은 광고입니다.

아파트를 저렴한 가격에 내세운 이유는 바로 '협동조합형 민간 임대아파트'.

'협동조합형 민간 임대아파트'란 개인이 협동조합에 가입해서 출자금을 내면, 그 돈으로 사업에 나서 아파트를 짓는 겁니다.

주택 소유권은 협동조합이 가지고, 조합원은 주택을 전세로 거주할 수 있는 권리를 갖습니다.

그러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조합이 가지고 있는 주택을 조합원들에게 저렴한 가격에 분양 전환해주는 방식입니다.

대구의 해당 시행사는, 조합원이 10년 동안 저렴한 가격의 임대료만 내면서 거주하고, 10년이 지나면 감정평가액의 80%로 분양권을 우선 매수할 수 있는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분양 전환을 위해 잔금까지 다 치르면 약 3억 5천만 원이지만, 이조차도 당시 주변 시세와 비교하면 2억 원 가까이 저렴한 금액이었습니다.

"임대아파트니까 좋은 조건으로 10년 살다가 내 집 마련 조건이고. 그때 당시 시세보다 굉장히 좋은 조건으로 내 집 마련 기회라고 하니까 참여를 하게 되었고…."
- 피해 조합원

피해 조합원들.
협동조합에 가입한 사람만 270여 명. 이들이 낸 금액은 180억 원 가까이 됩니다.

시행사는 사업이 잘 진행되지 않자 신용 대출을 받아 3, 4차 계약금을 선납하라고 권유하기도 했습니다.

시행사가 토지를 확보해야 한다며 내세운 신용대출 현황
"(시행사가) 사업 진행이 잘 안 되는 거 같은데 3차, 4차 계약금이 좀 더 들어오면, 토지매입을 완료하면 사업승인을 받아서 아파트를 지을 수 있다…."
- 피해 조합원

그런데 협동조합 이사장이 바뀐 뒤, 회계 내역을 들여다보니 180억 원 대부분이 사라진 상태였습니다.

광고비가 59억 원, 토지매입 용역대행비로도 30억 원이 쓰였고, 시행사가 사업 초기 비용을 대기 위해 끌어다 쓴 개인 사채까지 조합비로 쓰였습니다.

그런데도 사업 대상지의 토지 매입은 한 건도 이뤄지지 않았고, 대부분 계약금만 걸어놓은 상태였습니다.

사업 계획 대상지. 2년이 넘도록 그대로인 모습이다.
협동조합이 사업계획 승인을 받기 위해서는 대상지의 95% 이상을 매입해야 하는데, 시행사는 이를 지키지 못해 구청에 사업계획 승인 신청조차 하 못했습니다.

270여 명의 조합원은 그대로 돈을 날릴 위기에 처한 겁니다.

'협동조합형 민간임대 아파트' 피해는 이곳뿐만이 아닙니다.

대구 중구의 협동조합형 민간임대 아파트 광고.
대구 중구에서도 40여 명이 협동조합형 민간임대아파트 납입금 16억 원을 날렸다며 시행사를 고소했습니다.

이처럼 협동조합형 민간임대 아파트 피해가 잇따르자, 주의하라고 당부한 지자체도 천안, 창원, 여수, 강릉 등 여러 곳에 달합니다.

■협동조합형 민간주택 무엇이 문제인가?

협동조합형 민간임대주택은 겉보기에는 이상적이지만, 여러 차례 문제가 된 '지역주택조합사업'과 큰 틀에서 비슷한 위험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업 구조상 토지 소유권이 확보되지 않으면 사업이 이어질 수 없어 돈을 날리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입니다.

또, 조합과 시행사가 모인 돈을 어디에다, 어떻게 쓰는지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그런데 협동조합형 민간임대주택 사업은 개별 조합원이 소비자가 아니라 사업 주체로 참여하다 보니 사업이 수포가 되더라도 납입금을 반환받을 명확한 근거도 없습니다.

조합을 상대로 민사 소송을 내 납입금 반환 결정을 받아내도, 돌려받을 돈이 남아 있지 않으면 못 받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전문가들은 개인이 협동조합형 민간임대주택 사업에 참여하려면 신중하고 꼼꼼하게 사업 단계를 잘 살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또, 협동조합과 시행사에 자금집행내용을 조합원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강제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조합원들이 낸 돈이) 어디 어떻게 쓰여졌는지에 대한 정보 공시를 정기적으로 정확하게 조합원들한테 알리도록 하는 의무 규정을 좀 둬야 해요."
- 이병홍 대구과학대 부동산금융학과 교수

피해 조합원들은 "'전세 임대주택을 살다 내 집 마련도 할 수 있다'는 광고를 보고 계약했고, 협동조합형 민간임대주택 사업이 정확히 무엇인지 안내를 받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그냥 조금 저렴한 아파트인 줄 알고 계약했다는 겁니다.

전국에서 비슷한 피해가 이어지고 있는 만큼, 정부가 허위·과장 광고를 단속하는 등 근본적인 예방에 나서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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