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키신저 100세 일기로 타계…“전후 세계질서 조정자”

입력 2023.11.30 (10:45) 수정 2023.11.30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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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이 미국 코네티컷 자택에서 100세를 일기로 타계했습니다.

키신저 전 장관의 국제외교정치 컨설팅사 '키신저 어소시어츠'는 이날 "존경받은 미국인 학자이자 정치인 헨리 키신저가 11월 29일 코네티컷 자택에서 별세했다"고 발표했습니다.

키신저 전 장관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의 세계 질서를 바꾼 미국 외교의 거목으로 평가됩니다.

독일 출생으로 유대인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이주한 키신저 전 장관은 1969년 닉슨 행정부 출범과 함께 국가안보담당 대통령보좌관에 임명됐습니다.

1971년 7월 중국을 비밀리에 두 번 방문해, 이듬해인 1972년 닉슨 미국 대통령과 마오쩌둥 중국 주석간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는 등 미·중 수교의 토대를 닦았습니다.

이는 당시 국경분쟁으로 구 소련과 갈등을 빚던 중국에게 다가선, 이른바 '삼각관계'를 이용한 외교전략이었습니다. 키신저 전 장관은 이후 "미국과 소련, 중국의 삼각관계는 그 자체로 각자에게 압력을 가하는 형태였다"고 회고한 바 있습니다.

소련과는 1972년 전략무기제한조약(SALT I)과 탄도미사일방지조약을 이끌어냄으로써 냉전시대 데탕트(긴장완화)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1973년 국무장관에 취임한 키신저 전 장관은 중동평화조정 노력과 베트남 평화협정 체결의 공로로 그해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4차 중동전쟁으로 국제유가가 폭등하자 1974년 사우디로 간 키신저 장관은 석유의 달러 결제를 이끌어냈는데, 이는 기축통화로서의 달러 패권을 공고히 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1977년 국무장관에서 물러난 키신저 전 장관은 레이건과 조지 H.W. 부시 대통령 시절 자문위원을 역임하는 등 조야에서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

최근에는 100세 고령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이 결국 3차 세계대전을 부를 것이라며, 미중 양국의 대화를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7월에는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주석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당시 시 주석은 "키신저 박사가 중국을 방문한 횟수가 100번을 넘어간다"며 "당신의 역사적 공헌을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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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이 미국 코네티컷 자택에서 100세를 일기로 타계했습니다.

키신저 전 장관의 국제외교정치 컨설팅사 '키신저 어소시어츠'는 이날 "존경받은 미국인 학자이자 정치인 헨리 키신저가 11월 29일 코네티컷 자택에서 별세했다"고 발표했습니다.

키신저 전 장관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의 세계 질서를 바꾼 미국 외교의 거목으로 평가됩니다.

독일 출생으로 유대인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이주한 키신저 전 장관은 1969년 닉슨 행정부 출범과 함께 국가안보담당 대통령보좌관에 임명됐습니다.

1971년 7월 중국을 비밀리에 두 번 방문해, 이듬해인 1972년 닉슨 미국 대통령과 마오쩌둥 중국 주석간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는 등 미·중 수교의 토대를 닦았습니다.

이는 당시 국경분쟁으로 구 소련과 갈등을 빚던 중국에게 다가선, 이른바 '삼각관계'를 이용한 외교전략이었습니다. 키신저 전 장관은 이후 "미국과 소련, 중국의 삼각관계는 그 자체로 각자에게 압력을 가하는 형태였다"고 회고한 바 있습니다.

소련과는 1972년 전략무기제한조약(SALT I)과 탄도미사일방지조약을 이끌어냄으로써 냉전시대 데탕트(긴장완화)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1973년 국무장관에 취임한 키신저 전 장관은 중동평화조정 노력과 베트남 평화협정 체결의 공로로 그해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4차 중동전쟁으로 국제유가가 폭등하자 1974년 사우디로 간 키신저 장관은 석유의 달러 결제를 이끌어냈는데, 이는 기축통화로서의 달러 패권을 공고히 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1977년 국무장관에서 물러난 키신저 전 장관은 레이건과 조지 H.W. 부시 대통령 시절 자문위원을 역임하는 등 조야에서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

최근에는 100세 고령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이 결국 3차 세계대전을 부를 것이라며, 미중 양국의 대화를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7월에는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주석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당시 시 주석은 "키신저 박사가 중국을 방문한 횟수가 100번을 넘어간다"며 "당신의 역사적 공헌을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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