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과 삼성은 스마트폰 특허권과 관련해 전 세계 여러 국가에서 소송을 진행했습니다.
여러 나라에서 법적 분쟁을 경험한 애플 본사 임원이 한국 법원을 보고 간단한 평을 남겼다고 합니다.
지난 4일 오후 2시, 대법원 대강당에서 열린 '재판 장기화와 그 해법'을 주제로 열린 학술대회에서 한 일화가 소개됐습니다.
"애플 본사 담당 임원이 특허권 소송 9개 국가의 재판을 보고, 한국 법원에 대한 소감을 세 가지로 답했다고 합니다. '첫째, 한국 법관들은 어려운 쟁점을 잘 파악하고 예리한 질문을 하는 등 유능하고 성실합니다. 둘째, 법정에서 사진 등 자료를 띄워놓고 공방을 벌이는 전자 소송이 인상적입니다. 셋째, 아무도 이 재판이 언제 끝날지, 서면을 몇 번 더 낼지 알 수 없습니다. 심지어 중간에 재판장이 바뀔 수도 있다고 하는데 다른 나라에선 보지 못했습니다.' 예측 가능성을 확보하지 않고 소송이 쭉 진행하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전휴재 /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 사법부 최대 현안 '재판 지연'…1년 넘게 재판 시작도 못 한 경우도
재판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경우도 있지만, 재판 시작조차 못 하고 기다리는 문제도 있습니다.
전라북도의 한 건설 시행사는 지역은행으로부터 아파트 공사와 관련해 PF(프로젝트파이낸싱) 대출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은행이 이자 외에도 컨설팅 명목으로 과다한 수수료를 가져간다고 판단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9부에 '부당이득반환 청구 소송'을 했습니다.
지난 10월 26일에 시행사의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았지만, 첫 재판이 열리기까지 1년 넘게 의뢰인은 불안해하며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습니다.
소장 접수는 지난해 5월 4일에 했지만, 첫 재판은 올해 8월 17일에서야 열린 겁니다. 소장 접수 후 첫 재판까지 1년 3개월이 걸렸습니다.
시행사 변호를 담당했던 변호사는 이럴수록 의뢰인은 불안하고 의심한다고 털어놓습니다.
"왜 늦어지는지 알 수 없어요. '재판부 마음'인데 사실 이런 경우가 많아요." "재판이 시작도 전에 이렇게 시간이 길어지면, 일단 의뢰인 쪽에서 뭔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불안해하세요. '왜 안 열리지? 지게 하려고 하나?' 등의 생각을 품더라고요." -김슬아 변호사 (법무법인 영민) / 원고 시행사 소송 대리인 |
'재판 지연' 문제는 한 두 변호사의 생각이 아니었습니다.
대한변호사협회가 지난해 시행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 변호사 666명 가운데 89%인 592명이 최근 5년간 재판 지연 문제를 겪은 적 있다고 밝혔습니다.
■ '재판 지연' 첫 대법원 학술대회…'원인'도 '해법'도 제각각
재판 시작도 선고도 늦어지는 '재판지연' 문제와 관련해 법원에서 첫 학술대회가 열렸습니다.
주제발표에 나선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현직 판사, 변호사들은 여러 데이터를 근거로 재판 지연 문제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민사본안 1심 합의부 사건 평균처리 기간은 2013년 245.3일에서 지난해 420.1일로, 같은 기간 형사재판 불구속 1심 합의부 사건 평균처리 기간은 151.8일에서 223.7일로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민사 본안 접수 건수가 2013년 116만 4,395건에서 지난해 82만 9,897건으로, 형사공판 접수 인원은 같은 기간 35만 8,213명에서 31만 502명으로 각각 28.7%, 13.3% 감소한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사건은 날로 복잡해지고 소송에 참여하는 변호사 수는 늘었지만, 이를 처리할 법관의 증가는 미비하다는 기본적인 문제부터 고등부장 승진제 폐지와 법원장 후보 추천제 등 사법행정 변화까지 원인에 대한 여러 지적이 나왔습니다.
개선 방안도 다양했습니다. 전휴재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당사자 합의에 기반을 둔 신속 중재절차를 도입하고, 온라인을 통한 민사소송을 진행하는 '온라인 법원'으로 전환이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법관 승진 제도와 관련해 이영창 사법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고등법원판사)은 "(고등부장 승진제 등)경쟁 시스템을 도입하면 사건 처리에 효과가 있을 거로 생각한다"면서 "승진하기 위해서 눈치를 보는 이른바 '재판 독립 침해'를 막을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정찬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는 고등부장 승진제 폐지와 관련해 "아직 검증되지 않은 가설에 불과하다"면서 "2019년에 고등부장 승진제도가 폐지됐지만, 지방법원과 고등법원의 법관인사 이원화는 2011년부터 이뤄져 이때부터 '재판지연'이 일어나야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고 맞섰습니다.
이른바 'MZ판사'들의 일과 삶 균형(워라벨) 추구가 원인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도 박형남 사법정책연구원장은 "법관의 소명의식 부족과 게으름을 탓하는 일각의 주장엔 동의하기 어렵다"며 "성급한 조치만 취하면 오히려 졸속 재판과 법관의 사기 저하를 초래할 뿐"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재판지연' 문제가 사법부 안팎의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인식만큼, 해법 제시도 각양각색의 방법들이 열거됐습니다.
■ 조희대 대법원장 후보자 "재판 지연, 가장 심각한 문제"
'재판지연' 문제와 관련해 조희대 대법원장 후보자는 "가장 시급한 현안"이라고 답했습니다.
조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특별위원회 서면 답변에서 "법원에 사건이 적체되고 재판이 지연되고 있는 현상을 해결하는 게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다"면서 "대법원장이 된다면 가장 우선으로 재판지연 원인을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고대 로마법에도 '법적 보장의 지연은 그것의 거절과 같다'는 법언이 있고, 19세기 초 영미법계에선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격언을 사용했습니다.
모두 재판 결과가 너무 늦게 나오면 그 결과의 의미가 없어지거나 퇴색된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올바름에 있어서 성급함은 범죄와도 같다"는 말도 있습니다. 재판에 있어 신속함만을 강조할 수는 없지만 판사, 검사, 변호사, 법학자, 그리고 소송 당사자 모두 '재판 지연'은 문제라는 인식을 같이한 만큼 이제는 빠르게 해법을 찾아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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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법원은 왜 그래요?”…9개국서 소송했던 애플 임원이 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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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3-12-05 17:00:08
애플과 삼성은 스마트폰 특허권과 관련해 전 세계 여러 국가에서 소송을 진행했습니다.
여러 나라에서 법적 분쟁을 경험한 애플 본사 임원이 한국 법원을 보고 간단한 평을 남겼다고 합니다.
지난 4일 오후 2시, 대법원 대강당에서 열린 '재판 장기화와 그 해법'을 주제로 열린 학술대회에서 한 일화가 소개됐습니다.
"애플 본사 담당 임원이 특허권 소송 9개 국가의 재판을 보고, 한국 법원에 대한 소감을 세 가지로 답했다고 합니다. '첫째, 한국 법관들은 어려운 쟁점을 잘 파악하고 예리한 질문을 하는 등 유능하고 성실합니다. 둘째, 법정에서 사진 등 자료를 띄워놓고 공방을 벌이는 전자 소송이 인상적입니다. 셋째, 아무도 이 재판이 언제 끝날지, 서면을 몇 번 더 낼지 알 수 없습니다. 심지어 중간에 재판장이 바뀔 수도 있다고 하는데 다른 나라에선 보지 못했습니다.' 예측 가능성을 확보하지 않고 소송이 쭉 진행하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전휴재 /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 사법부 최대 현안 '재판 지연'…1년 넘게 재판 시작도 못 한 경우도
재판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경우도 있지만, 재판 시작조차 못 하고 기다리는 문제도 있습니다.
전라북도의 한 건설 시행사는 지역은행으로부터 아파트 공사와 관련해 PF(프로젝트파이낸싱) 대출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은행이 이자 외에도 컨설팅 명목으로 과다한 수수료를 가져간다고 판단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9부에 '부당이득반환 청구 소송'을 했습니다.
지난 10월 26일에 시행사의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았지만, 첫 재판이 열리기까지 1년 넘게 의뢰인은 불안해하며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습니다.
소장 접수는 지난해 5월 4일에 했지만, 첫 재판은 올해 8월 17일에서야 열린 겁니다. 소장 접수 후 첫 재판까지 1년 3개월이 걸렸습니다.
시행사 변호를 담당했던 변호사는 이럴수록 의뢰인은 불안하고 의심한다고 털어놓습니다.
"왜 늦어지는지 알 수 없어요. '재판부 마음'인데 사실 이런 경우가 많아요." "재판이 시작도 전에 이렇게 시간이 길어지면, 일단 의뢰인 쪽에서 뭔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불안해하세요. '왜 안 열리지? 지게 하려고 하나?' 등의 생각을 품더라고요." -김슬아 변호사 (법무법인 영민) / 원고 시행사 소송 대리인 |
'재판 지연' 문제는 한 두 변호사의 생각이 아니었습니다.
대한변호사협회가 지난해 시행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 변호사 666명 가운데 89%인 592명이 최근 5년간 재판 지연 문제를 겪은 적 있다고 밝혔습니다.
■ '재판 지연' 첫 대법원 학술대회…'원인'도 '해법'도 제각각
재판 시작도 선고도 늦어지는 '재판지연' 문제와 관련해 법원에서 첫 학술대회가 열렸습니다.
주제발표에 나선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현직 판사, 변호사들은 여러 데이터를 근거로 재판 지연 문제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민사본안 1심 합의부 사건 평균처리 기간은 2013년 245.3일에서 지난해 420.1일로, 같은 기간 형사재판 불구속 1심 합의부 사건 평균처리 기간은 151.8일에서 223.7일로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민사 본안 접수 건수가 2013년 116만 4,395건에서 지난해 82만 9,897건으로, 형사공판 접수 인원은 같은 기간 35만 8,213명에서 31만 502명으로 각각 28.7%, 13.3% 감소한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사건은 날로 복잡해지고 소송에 참여하는 변호사 수는 늘었지만, 이를 처리할 법관의 증가는 미비하다는 기본적인 문제부터 고등부장 승진제 폐지와 법원장 후보 추천제 등 사법행정 변화까지 원인에 대한 여러 지적이 나왔습니다.
개선 방안도 다양했습니다. 전휴재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당사자 합의에 기반을 둔 신속 중재절차를 도입하고, 온라인을 통한 민사소송을 진행하는 '온라인 법원'으로 전환이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법관 승진 제도와 관련해 이영창 사법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고등법원판사)은 "(고등부장 승진제 등)경쟁 시스템을 도입하면 사건 처리에 효과가 있을 거로 생각한다"면서 "승진하기 위해서 눈치를 보는 이른바 '재판 독립 침해'를 막을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정찬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는 고등부장 승진제 폐지와 관련해 "아직 검증되지 않은 가설에 불과하다"면서 "2019년에 고등부장 승진제도가 폐지됐지만, 지방법원과 고등법원의 법관인사 이원화는 2011년부터 이뤄져 이때부터 '재판지연'이 일어나야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고 맞섰습니다.
이른바 'MZ판사'들의 일과 삶 균형(워라벨) 추구가 원인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도 박형남 사법정책연구원장은 "법관의 소명의식 부족과 게으름을 탓하는 일각의 주장엔 동의하기 어렵다"며 "성급한 조치만 취하면 오히려 졸속 재판과 법관의 사기 저하를 초래할 뿐"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재판지연' 문제가 사법부 안팎의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인식만큼, 해법 제시도 각양각색의 방법들이 열거됐습니다.
■ 조희대 대법원장 후보자 "재판 지연, 가장 심각한 문제"
'재판지연' 문제와 관련해 조희대 대법원장 후보자는 "가장 시급한 현안"이라고 답했습니다.
조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특별위원회 서면 답변에서 "법원에 사건이 적체되고 재판이 지연되고 있는 현상을 해결하는 게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다"면서 "대법원장이 된다면 가장 우선으로 재판지연 원인을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고대 로마법에도 '법적 보장의 지연은 그것의 거절과 같다'는 법언이 있고, 19세기 초 영미법계에선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격언을 사용했습니다.
모두 재판 결과가 너무 늦게 나오면 그 결과의 의미가 없어지거나 퇴색된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올바름에 있어서 성급함은 범죄와도 같다"는 말도 있습니다. 재판에 있어 신속함만을 강조할 수는 없지만 판사, 검사, 변호사, 법학자, 그리고 소송 당사자 모두 '재판 지연'은 문제라는 인식을 같이한 만큼 이제는 빠르게 해법을 찾아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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