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앞두고 프랑스인들이 벨기에 국경 넘는 이유 [특파원 리포트]

입력 2023.12.12 (08:02) 수정 2023.12.12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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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북부 지역 주민들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이웃 나라 벨기에를 찾는 일이 잦아지고 있습니다. 벨기에와 가까운 프랑스 북부 지역 주민들에게 벨기에는 광역생활권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만, 크리스마스 시즌에 유독 이들이 국경을 자주 넘는 이유, 크리스마스 트리 때문입니다.

■ "20만 원짜리 트리, 단돈 2만 원에"

프랑스 공영방송인 '프랑스 앵포'는 최근 프랑스인들이 훨씬 저렴한 가격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사기 위해 벨기에 국경을 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 지역에서 벨기에로 '트리 원정 구매'를 온 한 프랑스인 부부는 "프랑스에서 평균 150~200유로(한화 약 21만~28만 원)하는 트리가 벨기에에서는 14유로(한화 약 1만 9천 원) 정도 한다"며, "싸게 트리도 사고, 여행도 할 겸 왔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가격 차이는 식물에 매기는 벨기에의 낮은 부가가치세율 때문입니다. 부가가치세율이 10~12% 정도인 프랑스와 달리 벨기에는 절반인 6%에 불과해 더 싼 값에 트리를 살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실제 국경에서 가까운 한 꽃 재배단지는 고객 4분의 3이 프랑스인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 치솟는 물가에 "크리스마스 선물도 고민"

이런 현상의 배경에는 최근 프랑스의 치솟는 물가 탓도 있습니다. 프랑스인에게 크리스마스는 연중 최대 행사이지만, 주머니 사정을 생각하면 다가오는 크리스마스가 즐겁지만은 않다고 합니다.

프랑스 장바구니 물가상승률은 지난 1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5.6% 올랐고, 3월 17.7%로 최고점을 찍었다가, 이후 10월 10.2%까지 떨어졌습니다. 10%대까지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프랑스인들의 체감 물가상승률은 여전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런 영향 탓에 한 리서치 기관이 프랑스 일간지 '르 파리지앵'의 의뢰를 받아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면, 프랑스인의 56%는 경제 상황이 연말연시 준비에 미칠 영향을 걱정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90%는 오른 식품 가격을 크게 걱정했습니다. 지난해 프랑스인 1명이 음식과 장식, 교통비, 선물 등 크리스마스 예산으로 책정한 비용은 568유로(한화 약 80만 원)입니다. 하지만 올해 설문에 참여한 프랑스인들은 지난해보다 20유로 정도 줄인 549유로(한화 약 77만 원)를 지출할 계획이라고 답했습니다.

프랑스 전자상거래협회 의뢰로 또 다른 리서치 기관이 실시한 조사에서는 프랑스인 10명 중 8명 이상이 지속적인 물가 상승이 크리스마스 쇼핑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한 시민단체가 발표한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의 37%, 셋 중 한 명꼴로 인플레이션을 이유로 올해 크리스마스 선물 구매를 포기해야 할지 고민 중이라고 답했습니다. 이 비율은 2021년에는 30%, 지난해 34%로 해마다 오르고 있습니다.

■ 중고 사고, 할부로 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가깝고 소중한 사람을 위한 선물은 계속하자." 이대로 우울한 연말을 맞을 수는 없다며, 많은 프랑스인이 고민 끝에 찾은 절충안이라고 합니다. 대신 금액을 줄이고, 주머니 사정에 부담을 덜 주는 방법을 찾는 분위기라고 현지 언론들은 전합니다.

한 시장조사업체의 설문조사를 보면 프랑스인들은 크리스마스 선물로 올해 평균 223유로(한화 약 31만 원)를 지출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작년보다 8% 감소한 수치입니다.

또 응답자의 38%는 중고품 구매를 고려하고 있다고 했고, 블랙프라이데이에 미리 선물을 사뒀다는 응답자도 62% 정도 됐습니다.

중고물품점에서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용 공을 5개에 1유로(한화 약 1,400원)에 판다고 쓰여 있다. 새 제품 가격의 10분의 1 정도이다.중고물품점에서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용 공을 5개에 1유로(한화 약 1,400원)에 판다고 쓰여 있다. 새 제품 가격의 10분의 1 정도이다.

실제 파리 시내의 한 중고물품 가게에는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두고 트리 장식용품을 비롯해 중고 장난감 등을 사려는 손님들이 늘고 있습니다. AFP통신과 인터뷰한 한 남성은 올해 크리스마스에는 두 아이 선물로 중고 장난감을 사기로 결심했다고 말합니다. 또 다른 손님은 중고물품을 재활용하면 환경에 도움이 되고, 자신은 장식품을 싸게 사서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 수 있으니 여러 장점이 있다며, 중고물품점을 찾은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프랑스인들이 인플레이션에 크리스마스 시즌을 버티는 또 다른 방법은 할부 결제로 나타났습니다. 한국과 달리 프랑스에서는 할부 결제가 흔하지는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할부 결제 비율은 온라인 구매의 7%에 불과한데, 20~25%인 이웃 나라 독일과 비교해도 매우 낮은 수치입니다.

하지만 올해 프랑스인의 28%는 크리스마스 선물 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 할부 결제할 계획이라고 답했습니다. 특히 35세 미만에서는 그 비율이 더 높아져, 응답자 중 43%가 할부 결제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화려한 크리스마스 장식 아래 다채로운 선물 꾸러미,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잘 차려진 음식을 나눠 먹는 서구 사회의 여유로운 풍경도 이제는 영화에서나 볼 법한 장면이 되고 있습니다. 전 세계 어디에서나 예외가 아닌 인플레이션이 빚어낸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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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리스마스 앞두고 프랑스인들이 벨기에 국경 넘는 이유 [특파원 리포트]
    • 입력 2023-12-12 08: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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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북부 지역 주민들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이웃 나라 벨기에를 찾는 일이 잦아지고 있습니다. 벨기에와 가까운 프랑스 북부 지역 주민들에게 벨기에는 광역생활권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만, 크리스마스 시즌에 유독 이들이 국경을 자주 넘는 이유, 크리스마스 트리 때문입니다.

■ "20만 원짜리 트리, 단돈 2만 원에"

프랑스 공영방송인 '프랑스 앵포'는 최근 프랑스인들이 훨씬 저렴한 가격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사기 위해 벨기에 국경을 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 지역에서 벨기에로 '트리 원정 구매'를 온 한 프랑스인 부부는 "프랑스에서 평균 150~200유로(한화 약 21만~28만 원)하는 트리가 벨기에에서는 14유로(한화 약 1만 9천 원) 정도 한다"며, "싸게 트리도 사고, 여행도 할 겸 왔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가격 차이는 식물에 매기는 벨기에의 낮은 부가가치세율 때문입니다. 부가가치세율이 10~12% 정도인 프랑스와 달리 벨기에는 절반인 6%에 불과해 더 싼 값에 트리를 살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실제 국경에서 가까운 한 꽃 재배단지는 고객 4분의 3이 프랑스인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 치솟는 물가에 "크리스마스 선물도 고민"

이런 현상의 배경에는 최근 프랑스의 치솟는 물가 탓도 있습니다. 프랑스인에게 크리스마스는 연중 최대 행사이지만, 주머니 사정을 생각하면 다가오는 크리스마스가 즐겁지만은 않다고 합니다.

프랑스 장바구니 물가상승률은 지난 1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5.6% 올랐고, 3월 17.7%로 최고점을 찍었다가, 이후 10월 10.2%까지 떨어졌습니다. 10%대까지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프랑스인들의 체감 물가상승률은 여전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런 영향 탓에 한 리서치 기관이 프랑스 일간지 '르 파리지앵'의 의뢰를 받아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면, 프랑스인의 56%는 경제 상황이 연말연시 준비에 미칠 영향을 걱정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90%는 오른 식품 가격을 크게 걱정했습니다. 지난해 프랑스인 1명이 음식과 장식, 교통비, 선물 등 크리스마스 예산으로 책정한 비용은 568유로(한화 약 80만 원)입니다. 하지만 올해 설문에 참여한 프랑스인들은 지난해보다 20유로 정도 줄인 549유로(한화 약 77만 원)를 지출할 계획이라고 답했습니다.

프랑스 전자상거래협회 의뢰로 또 다른 리서치 기관이 실시한 조사에서는 프랑스인 10명 중 8명 이상이 지속적인 물가 상승이 크리스마스 쇼핑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한 시민단체가 발표한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의 37%, 셋 중 한 명꼴로 인플레이션을 이유로 올해 크리스마스 선물 구매를 포기해야 할지 고민 중이라고 답했습니다. 이 비율은 2021년에는 30%, 지난해 34%로 해마다 오르고 있습니다.

■ 중고 사고, 할부로 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가깝고 소중한 사람을 위한 선물은 계속하자." 이대로 우울한 연말을 맞을 수는 없다며, 많은 프랑스인이 고민 끝에 찾은 절충안이라고 합니다. 대신 금액을 줄이고, 주머니 사정에 부담을 덜 주는 방법을 찾는 분위기라고 현지 언론들은 전합니다.

한 시장조사업체의 설문조사를 보면 프랑스인들은 크리스마스 선물로 올해 평균 223유로(한화 약 31만 원)를 지출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작년보다 8% 감소한 수치입니다.

또 응답자의 38%는 중고품 구매를 고려하고 있다고 했고, 블랙프라이데이에 미리 선물을 사뒀다는 응답자도 62% 정도 됐습니다.

중고물품점에서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용 공을 5개에 1유로(한화 약 1,400원)에 판다고 쓰여 있다. 새 제품 가격의 10분의 1 정도이다.
실제 파리 시내의 한 중고물품 가게에는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두고 트리 장식용품을 비롯해 중고 장난감 등을 사려는 손님들이 늘고 있습니다. AFP통신과 인터뷰한 한 남성은 올해 크리스마스에는 두 아이 선물로 중고 장난감을 사기로 결심했다고 말합니다. 또 다른 손님은 중고물품을 재활용하면 환경에 도움이 되고, 자신은 장식품을 싸게 사서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 수 있으니 여러 장점이 있다며, 중고물품점을 찾은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프랑스인들이 인플레이션에 크리스마스 시즌을 버티는 또 다른 방법은 할부 결제로 나타났습니다. 한국과 달리 프랑스에서는 할부 결제가 흔하지는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할부 결제 비율은 온라인 구매의 7%에 불과한데, 20~25%인 이웃 나라 독일과 비교해도 매우 낮은 수치입니다.

하지만 올해 프랑스인의 28%는 크리스마스 선물 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 할부 결제할 계획이라고 답했습니다. 특히 35세 미만에서는 그 비율이 더 높아져, 응답자 중 43%가 할부 결제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화려한 크리스마스 장식 아래 다채로운 선물 꾸러미,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잘 차려진 음식을 나눠 먹는 서구 사회의 여유로운 풍경도 이제는 영화에서나 볼 법한 장면이 되고 있습니다. 전 세계 어디에서나 예외가 아닌 인플레이션이 빚어낸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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