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르담성당 이번엔 ‘스테인드글라스’?…마크롱, 미련 못 버렸나 [특파원 리포트]

입력 2023.12.14 (10:01) 수정 2023.12.14 (10:04)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프랑스 파리의 대표적 명소 중 하나인 노트르담 대성당. 2019년 4월 화재 이후, 복원 공사가 진행 중입니다. 대성당의 상징인, 높이 96m 첨탑이 화재로 소실된 지 4년 7개월여 만에 윤곽을 드러냈습니다.

아직은 비계(건축 공사 때 높은 곳에서 일할 수 있도록 설치한 임시 가설물)에 둘러싸여 있지만, 납 장식 등 추가 작업이 끝나는 내년 초쯤엔 비계를 철거하고, 예전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 첨탑 복원까지…전통 방식 vs 재창조 논쟁

왼쪽/2019년 화재 당시 무너지는 첨탑                                        오른쪽/최근 윤곽 드러낸 새 첨탑왼쪽/2019년 화재 당시 무너지는 첨탑 오른쪽/최근 윤곽 드러낸 새 첨탑

새로운 첨탑이 세워지기까지 곡절도 있었습니다. 화재 후 복원 방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전통 방식대로 복원할지, 현대적으로 재창조할지를 놓고 거센 논쟁이 있었습니다.

전통 방식을 고수하는 쪽은 1859년 노트르담의 보수 공사를 맡았던 건축가 외젠 비올레 르 뒤크가 세운 고딕 양식 그대로 원형을 복원하자고 주장했습니다. 참나무와 납 등 원형에 사용된 재료를 동일하게 쓰고, 똑같은 모양으로 만들자는 의견이었습니다.

반면 재창조를 선호하는 쪽은 철강과 티타늄, 탄소섬유 등 현대적 재료로 내부 구조물을 만들자고 주장했습니다. 디자인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복구하자고 했습니다.

이는 노트르담 대성당 재건자문위원장인 예비역 육군 대장 장루이 조르줄랭 등 일부 자문위원들의 주장이었고, 조르줄랭을 재건 자문위원장으로 임명한 마크롱 대통령의 의견이기도 했습니다.

내년 12월 일반 공개를 목표로 노르트담 대성당 복원 공사가 진행 중이다.내년 12월 일반 공개를 목표로 노르트담 대성당 복원 공사가 진행 중이다.

마크롱 정부는 화재 직후 특별법을 발의하고, 유리 첨탑을 만드는 방안과 하늘로 조명을 쏴 빛 기둥을 세우는 방안, 대성당 지붕을 숲으로 만드는 방안 등 다양한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새로운 디자인을 위한 국제 건축 공모전을 기획하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논쟁은 정치권으로 확산했습니다. 야당은 원형과 다른 재료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정당한 이유가 필요하다고 비판하며, 860년 역사의 성당을 전통 방식 그대로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전통과 현대를 결합하자는 '창의적 복원파'는 전통 방식대로 복원하면 참나무 3천 그루 이상이 필요해 자연훼손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화재에 노출될 위험, 복원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점을 들어 전통 복원에 반대했습니다.

1년여 간의 논쟁 끝에 내린 결론은 원형 그대로 복원. 국가건축문화재위원회가 만장일치로 전통방식 복원을 결정하고 승인을 요청하자, 마크롱 대통령이 이를 곧바로 수락했습니다. 이번에 공개된 첨탑이 바로 그렇게, 전통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 이번엔 스테인드글라스…또 '현대적 창조 ' 논쟁

그런데 비슷한 논란이 또 일고 있습니다. 논란은 지난 8일 마크롱 대통령이 노트르담 대성당 복구 현장을 시찰하면서 한 발언에서 비롯됐습니다.

마크롱 대통령은 성당 남쪽 통로의 7개 예배당 중 6개 예배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현대식 스테인드글라스로 새롭게 교체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교체 대상인 스테인드글라스는 건축가 외젠 비올레 르 뒤크(앞서 언급한, 19세기 노트르담 보수 공사를 맡았던)가 만든 것으로, 2019년 화재에도 버텼던 것입니다.

노트르담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창. 19세기에 만들어진 작품이다.노트르담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창. 19세기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현대식 스테인드글라스가 '21세기의 표식'이 될 거라고 말했는데, 첨탑 복원 당시 마크롱 대통령이 밀었던 '현대식 재창조' 논쟁을 다시 떠올리게 합니다.

문화유산 보호론자들은 거세게 반발했습니다. 문화 전문 잡지 '라 트리뷴 드 라르' 웹사이트에, 기존 스테인드글라스를 보존하자며 올라온 청원에는 현지시각 13일 현재, 6만 명 가까운 이들이 서명했습니다.

청원을 시작한 이 잡지의 창간자, 디디에 키크너는 "르뒤크가 디자인한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은 건축적 통일성과 공간의 계층 구조를 고려해 일관성 있는 전체의 작품으로 만들어졌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기존 스테인드글라스를 박물관에 전시하는 데 대해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은 대성당의 필수 부분으로, 대성당을 벗어나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에, 전시는 터무니없는 일"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유적·기념물 협회장인 줄리앙 라카즈도 "첨탑과 지붕 구조를 원래대로 복원하면서 19세기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을 없애는 건 터무니없는 일"이라며 "스테인드글라스가 화마로부터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면 우린 이를 철거하거나 교체해선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공식적으로 현대 스테인드글라스에 대한 아이디어는 로랑 울리히 파리 대주교로부터 나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대주교는 대통령 시찰 전날 보낸 서한에서, '국가가 성당 남측 예배당에 6개의 스테인드글라스 창을 설치하는 게 자신의 소원'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에 마크롱 대통령은 복구 현장 시찰 당시 "이를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화답하며, 현대 예술가들이 새로운 작품을 제출할 공모전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12월 8일,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노트르담 대성당 복구 현장을 시찰하고 있다.12월 8일,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노트르담 대성당 복구 현장을 시찰하고 있다.

국가건축문화재위원회의 한 위원은 "노트르담 복원이 이제 화합과 성공의 상징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에 대한 대통령의 발표는 유용하지도 긴급하지도, 필요하지도 않다"고 한탄했습니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1년 뒤인 내년 12월 복원을 완료하고, 5년여 만에 일반에 공개될 예정입니다. 또 새 스테인드글라스는 계획대로라면 이듬해 2025년 설치될 것으로 보이는데, 험난한 여정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노트르담성당 이번엔 ‘스테인드글라스’?…마크롱, 미련 못 버렸나 [특파원 리포트]
    • 입력 2023-12-14 10:01:06
    • 수정2023-12-14 10:04:09
    글로벌K

프랑스 파리의 대표적 명소 중 하나인 노트르담 대성당. 2019년 4월 화재 이후, 복원 공사가 진행 중입니다. 대성당의 상징인, 높이 96m 첨탑이 화재로 소실된 지 4년 7개월여 만에 윤곽을 드러냈습니다.

아직은 비계(건축 공사 때 높은 곳에서 일할 수 있도록 설치한 임시 가설물)에 둘러싸여 있지만, 납 장식 등 추가 작업이 끝나는 내년 초쯤엔 비계를 철거하고, 예전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 첨탑 복원까지…전통 방식 vs 재창조 논쟁

왼쪽/2019년 화재 당시 무너지는 첨탑                                        오른쪽/최근 윤곽 드러낸 새 첨탑
새로운 첨탑이 세워지기까지 곡절도 있었습니다. 화재 후 복원 방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전통 방식대로 복원할지, 현대적으로 재창조할지를 놓고 거센 논쟁이 있었습니다.

전통 방식을 고수하는 쪽은 1859년 노트르담의 보수 공사를 맡았던 건축가 외젠 비올레 르 뒤크가 세운 고딕 양식 그대로 원형을 복원하자고 주장했습니다. 참나무와 납 등 원형에 사용된 재료를 동일하게 쓰고, 똑같은 모양으로 만들자는 의견이었습니다.

반면 재창조를 선호하는 쪽은 철강과 티타늄, 탄소섬유 등 현대적 재료로 내부 구조물을 만들자고 주장했습니다. 디자인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복구하자고 했습니다.

이는 노트르담 대성당 재건자문위원장인 예비역 육군 대장 장루이 조르줄랭 등 일부 자문위원들의 주장이었고, 조르줄랭을 재건 자문위원장으로 임명한 마크롱 대통령의 의견이기도 했습니다.

내년 12월 일반 공개를 목표로 노르트담 대성당 복원 공사가 진행 중이다.
마크롱 정부는 화재 직후 특별법을 발의하고, 유리 첨탑을 만드는 방안과 하늘로 조명을 쏴 빛 기둥을 세우는 방안, 대성당 지붕을 숲으로 만드는 방안 등 다양한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새로운 디자인을 위한 국제 건축 공모전을 기획하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논쟁은 정치권으로 확산했습니다. 야당은 원형과 다른 재료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정당한 이유가 필요하다고 비판하며, 860년 역사의 성당을 전통 방식 그대로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전통과 현대를 결합하자는 '창의적 복원파'는 전통 방식대로 복원하면 참나무 3천 그루 이상이 필요해 자연훼손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화재에 노출될 위험, 복원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점을 들어 전통 복원에 반대했습니다.

1년여 간의 논쟁 끝에 내린 결론은 원형 그대로 복원. 국가건축문화재위원회가 만장일치로 전통방식 복원을 결정하고 승인을 요청하자, 마크롱 대통령이 이를 곧바로 수락했습니다. 이번에 공개된 첨탑이 바로 그렇게, 전통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 이번엔 스테인드글라스…또 '현대적 창조 ' 논쟁

그런데 비슷한 논란이 또 일고 있습니다. 논란은 지난 8일 마크롱 대통령이 노트르담 대성당 복구 현장을 시찰하면서 한 발언에서 비롯됐습니다.

마크롱 대통령은 성당 남쪽 통로의 7개 예배당 중 6개 예배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현대식 스테인드글라스로 새롭게 교체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교체 대상인 스테인드글라스는 건축가 외젠 비올레 르 뒤크(앞서 언급한, 19세기 노트르담 보수 공사를 맡았던)가 만든 것으로, 2019년 화재에도 버텼던 것입니다.

노트르담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창. 19세기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현대식 스테인드글라스가 '21세기의 표식'이 될 거라고 말했는데, 첨탑 복원 당시 마크롱 대통령이 밀었던 '현대식 재창조' 논쟁을 다시 떠올리게 합니다.

문화유산 보호론자들은 거세게 반발했습니다. 문화 전문 잡지 '라 트리뷴 드 라르' 웹사이트에, 기존 스테인드글라스를 보존하자며 올라온 청원에는 현지시각 13일 현재, 6만 명 가까운 이들이 서명했습니다.

청원을 시작한 이 잡지의 창간자, 디디에 키크너는 "르뒤크가 디자인한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은 건축적 통일성과 공간의 계층 구조를 고려해 일관성 있는 전체의 작품으로 만들어졌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기존 스테인드글라스를 박물관에 전시하는 데 대해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은 대성당의 필수 부분으로, 대성당을 벗어나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에, 전시는 터무니없는 일"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유적·기념물 협회장인 줄리앙 라카즈도 "첨탑과 지붕 구조를 원래대로 복원하면서 19세기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을 없애는 건 터무니없는 일"이라며 "스테인드글라스가 화마로부터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면 우린 이를 철거하거나 교체해선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공식적으로 현대 스테인드글라스에 대한 아이디어는 로랑 울리히 파리 대주교로부터 나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대주교는 대통령 시찰 전날 보낸 서한에서, '국가가 성당 남측 예배당에 6개의 스테인드글라스 창을 설치하는 게 자신의 소원'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에 마크롱 대통령은 복구 현장 시찰 당시 "이를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화답하며, 현대 예술가들이 새로운 작품을 제출할 공모전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12월 8일,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노트르담 대성당 복구 현장을 시찰하고 있다.
국가건축문화재위원회의 한 위원은 "노트르담 복원이 이제 화합과 성공의 상징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에 대한 대통령의 발표는 유용하지도 긴급하지도, 필요하지도 않다"고 한탄했습니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1년 뒤인 내년 12월 복원을 완료하고, 5년여 만에 일반에 공개될 예정입니다. 또 새 스테인드글라스는 계획대로라면 이듬해 2025년 설치될 것으로 보이는데, 험난한 여정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