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미래로] 가축 3200마리 원조…‘노아의 방주’ 작전

입력 2023.12.16 (08:17) 수정 2023.12.16 (09:41)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앵커]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발발한 6.25 전쟁.

미국은 전쟁이 끝나기 전인 1952년에 ‘노아의 방주’라는 작전을 시작했습니다.

전시에 이뤄진 작전이라 군사 작전이 아닌가 생각하실 수 있는데, 실은 축산업 지원 사업이었습니다.

당시 비행기에 실려, 또 배로 수송돼 먼 길을 온 가축들은 우리 축산업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는데요,

이 원조를 받아 성장한 우리 축산 농가가 이제는 다른 나라 축산업에 도움을 주고 있다고 합니다.

당시 원조를 받아 3대째 농장을 운영 중인 곳을 최효은 리포터가 취재 했습니다.

함께 가보시죠.

[리포트]

KBS가 최근 미국 의회도서관에서 입수한 영상입니다.

전쟁 직후인 1954년, 작전명 ‘한국을 위한 노아의 방주’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대한민국, 한국으로 향하는 특별한 승객들이 항공기에 실립니다.

150만 마리에 달하는 꿀벌과 염소를 비롯한 가축들입니다.

전쟁 이후 지구상 최빈국 가운데 하나였던 대한민국에는 소나 돼지, 닭과 같은 가축들은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그런 와중에 미국의 한 국제기구에서 수천 마리의 가축을 지원한 것입니다.

[이혜원/헤퍼코리아 대표 : "그때 사실은 많은 사람이 죽고 그리고 가축도 사실은 씨가 말랐던 그때예요. 그래서 1952년부터 1976년까지 44회에 걸쳐서 수송기와 수송선에 태워서 가축 3,200마리가 한국에 오게 됐죠."]

이 가운데는 천 마리에 가까운 젖소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 젖소를 무탈하게 한반도까지 인도한 목동들의 헌신에 대한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귀중한 선물이 한국에 안전하게 도착하도록 하는 임무를 맡았던 목동들은 젖소를 돌보고 먹이는 고된 일과 뱃멀미에도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그 젖소는 빈곤을 극복하고 농민을 일으켜 세운 마중물이었습니다.

[1963년 리버티 뉴스/주한 미 공보원 : "우리나라에서의 기아와 영양실조를 근절하기 위하여 수많은 미국산 젖소들이 지난 몇 해 동안 각 구호단체를 통하여 우리나라에 들어왔습니다."]

이러한 가축 원조는 대한민국 축산업의 밑거름이 됐습니다.

전쟁으로 모든 것들이 무너졌던 이 땅에 미국의 한 비영리 단체가 보낸 가축들은 대한민국 재건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전국으로 보내진 가축들은 많은 농가의 삶의 기반이 됐다고 하는데요.

이곳 여주에서 3대째 농장을 운영 중인 최충희 씨의 성공담도 할아버지가 받은 소 두 마리에서 시작됐다고 합니다.

함께 만나보실까요.

["(안녕하세요. 지금 뭐 하고 계신 거예요?) 소들 밥 주고 있었습니다. 리포터님도 사료 줘보실래요? (저도 한번 해볼까요?)"]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부지런히 소들을 돌보는 최충희 대표는 21살부터 20년 넘게 농장을 운영한 베테랑 축산인입니다.

[리포터 : "어렸을 때 꿈이 이런 쪽(축산업)이셨나요?"]

[최충희/OO농장 대표 : "초등학교 1~6학년 내내 낙농업, 축산업이더라고요. 어려서부터 아버님 일하시는 거보고 그때부터 축산을 해야겠다, 소를 키워야겠다, 어려서부터 그렇게 (생각해) 왔던 것 같아요."]

축산인이 되겠다는 최 대표의 꿈은 할아버지로부터 큰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최충희/OO농장 대표 : "처음 시작은 1963년도에 할아버지께서 NGO 단체로부터 들여온 소를 분양받는 걸로 시작이 됐어요. 그래서 그걸로 해서 고모, 삼촌들도 다 학업하고..."]

한 마리의 젖소로 시작한 농장은 최 대표까지 3대째 이어졌고 현재는 사육 두수가 100마리가 넘을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얘는 태어난 지 얼마나 된 거예요?) 이제 3일 됐습니다. 3일 뿐이 안 돼서 안하무인입니다. 지금 어떻게 먹어야 될지 뭣도(방법도) 없고 그냥 고집만 부리는 거예요."]

60년 동안 부침도 있었지만 건실하게 발전한 이 농장에 아주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대표님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오래간만입니다.)"]

[리포터 : "대표님, 이 분은 누구신가요?"]

[최충희/OO농장 대표 : "헤퍼인터내셔널 코리아의 이혜원 대표입니다. 70년 전에 한국에서 노아의 방주 작전을 했던 그 단체고요. 저희 할아버님이 기부 받은 송아지로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된 단체가 헤퍼고요. 미국의 비영리 단체 ‘헤퍼 인터내셔널’은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국에 가축을 보내고 사육 방법 등을 교육하며 자립을 도왔는데요."]

특히 받은 도움을 다시 나누는 이른바 ‘패싱 온 더 기프트’ 철학(Passing on the Gift: 가축을 무상으로 증여받은 뒤, 새끼를 낳으면 반드시 암컷1마리를 상환)을 실천함으로써 젖소가 전국으로 빠르게 보급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혜원/헤퍼코리아 대표 : "그때 받으셨던 농민분들은 첫 번째 새끼가 태어나면 꼭 이웃에게 전달해야 하는 철학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눔을 실천하셨던 것이죠."]

70년 전 노아의 방주는 전후 한반도에는 희망의 불빛이었습니다.

그리고 70년이 지난 지금 노아의 방주는 새로운 항해를 시작했는데요.

원조를 받던 대한민국이 또 다른 나라에 가축을 원조하며 나눔의 정신을 실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 대표 일가도 그 도움을 되갚기 위한 노력을 펼치고 있습니다.

돌아가신 최 대표의 아버지는 이미 1988년에 기금 7천 3백 달러를 모아 미국에서 진행하는 젖소 기부에 동참했습니다.

[이혜원/헤퍼코리아 대표 : "우리도 젖소를 받았으니 다른 나라에 젖소를 보내겠습니다’하고 기금을 모으셔서 방문하셨던 건 유일무이한 사례라고 하시더라고요."]

나눔의 정신은 3대째인 최 대표에게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재단에서 진행한 ‘네팔에 젖소 101마리 보내기 프로젝트’에 4마리의 송아지를 기증하며 힘을 보탠 겁니다.

살아있는 젖소가 해외로 나가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고 하는데요.

[이혜원/헤퍼코리아 대표 : "그런데 소도 대한민국 소들은 다 이력제가 있습니다. 행정적으로 (해외 송출이) 불가능했던거예요. 그래서 그런 행정 처리도 (농림축산식품부에서) 해 주시고..."]

정부와 농가, 비영리 단체 등의 협력으로 소들은 네팔의 51개 농가로 보내졌습니다.

최 대표는 이 일이 축산인으로서 자부심을 맘껏 느꼈던 흔치 않은 경험이라고 말합니다.

[최충희/OO농장 대표 : "받을 사람들의 마음을 알잖아요. 그 사람들에게 그 한 마리는 어떻게 보면 전부예요. 그 사람들한테는. 앞으로 그 사람이 10년, 20년 삶의 전부가 될 걸 알기 때문에 너무 애절함이 저한테도 오더라고요."]

[이혜원/헤퍼코리아 대표 : "미국에서 한국으로, 한국에서 네팔로. 저는 네팔은 향후 몇 년 후엔 또 다른 나라로 보낼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패싱 온 더 기프트’ 국가 간 나눔의 선순환을 이어가는 그런 여정이었습니다."]

이들은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피어나는 새로운 생명의 풀처럼 가축으로 원조 받고 또 원조 해주는 이 모든 과정과 경험이 소중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최충희/OO농장 대표 : "(목장은) 제 삶 자체인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 뿌리로 지금까지 왔는데 앞으로도 좀 더 좋은 발전을 하고 좋은 일 하는 데 열심히 도움이 될 수 있는 데까지 도와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원조 이후 70년이 흐른 지금 새로운 메이드 인 코리아 ‘노아의 방주’가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제3세계로 힘차게 나아가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해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통일로 미래로] 가축 3200마리 원조…‘노아의 방주’ 작전
    • 입력 2023-12-16 08:17:54
    • 수정2023-12-16 09:41:54
    남북의 창
[앵커]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발발한 6.25 전쟁.

미국은 전쟁이 끝나기 전인 1952년에 ‘노아의 방주’라는 작전을 시작했습니다.

전시에 이뤄진 작전이라 군사 작전이 아닌가 생각하실 수 있는데, 실은 축산업 지원 사업이었습니다.

당시 비행기에 실려, 또 배로 수송돼 먼 길을 온 가축들은 우리 축산업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는데요,

이 원조를 받아 성장한 우리 축산 농가가 이제는 다른 나라 축산업에 도움을 주고 있다고 합니다.

당시 원조를 받아 3대째 농장을 운영 중인 곳을 최효은 리포터가 취재 했습니다.

함께 가보시죠.

[리포트]

KBS가 최근 미국 의회도서관에서 입수한 영상입니다.

전쟁 직후인 1954년, 작전명 ‘한국을 위한 노아의 방주’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대한민국, 한국으로 향하는 특별한 승객들이 항공기에 실립니다.

150만 마리에 달하는 꿀벌과 염소를 비롯한 가축들입니다.

전쟁 이후 지구상 최빈국 가운데 하나였던 대한민국에는 소나 돼지, 닭과 같은 가축들은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그런 와중에 미국의 한 국제기구에서 수천 마리의 가축을 지원한 것입니다.

[이혜원/헤퍼코리아 대표 : "그때 사실은 많은 사람이 죽고 그리고 가축도 사실은 씨가 말랐던 그때예요. 그래서 1952년부터 1976년까지 44회에 걸쳐서 수송기와 수송선에 태워서 가축 3,200마리가 한국에 오게 됐죠."]

이 가운데는 천 마리에 가까운 젖소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 젖소를 무탈하게 한반도까지 인도한 목동들의 헌신에 대한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귀중한 선물이 한국에 안전하게 도착하도록 하는 임무를 맡았던 목동들은 젖소를 돌보고 먹이는 고된 일과 뱃멀미에도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그 젖소는 빈곤을 극복하고 농민을 일으켜 세운 마중물이었습니다.

[1963년 리버티 뉴스/주한 미 공보원 : "우리나라에서의 기아와 영양실조를 근절하기 위하여 수많은 미국산 젖소들이 지난 몇 해 동안 각 구호단체를 통하여 우리나라에 들어왔습니다."]

이러한 가축 원조는 대한민국 축산업의 밑거름이 됐습니다.

전쟁으로 모든 것들이 무너졌던 이 땅에 미국의 한 비영리 단체가 보낸 가축들은 대한민국 재건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전국으로 보내진 가축들은 많은 농가의 삶의 기반이 됐다고 하는데요.

이곳 여주에서 3대째 농장을 운영 중인 최충희 씨의 성공담도 할아버지가 받은 소 두 마리에서 시작됐다고 합니다.

함께 만나보실까요.

["(안녕하세요. 지금 뭐 하고 계신 거예요?) 소들 밥 주고 있었습니다. 리포터님도 사료 줘보실래요? (저도 한번 해볼까요?)"]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부지런히 소들을 돌보는 최충희 대표는 21살부터 20년 넘게 농장을 운영한 베테랑 축산인입니다.

[리포터 : "어렸을 때 꿈이 이런 쪽(축산업)이셨나요?"]

[최충희/OO농장 대표 : "초등학교 1~6학년 내내 낙농업, 축산업이더라고요. 어려서부터 아버님 일하시는 거보고 그때부터 축산을 해야겠다, 소를 키워야겠다, 어려서부터 그렇게 (생각해) 왔던 것 같아요."]

축산인이 되겠다는 최 대표의 꿈은 할아버지로부터 큰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최충희/OO농장 대표 : "처음 시작은 1963년도에 할아버지께서 NGO 단체로부터 들여온 소를 분양받는 걸로 시작이 됐어요. 그래서 그걸로 해서 고모, 삼촌들도 다 학업하고..."]

한 마리의 젖소로 시작한 농장은 최 대표까지 3대째 이어졌고 현재는 사육 두수가 100마리가 넘을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얘는 태어난 지 얼마나 된 거예요?) 이제 3일 됐습니다. 3일 뿐이 안 돼서 안하무인입니다. 지금 어떻게 먹어야 될지 뭣도(방법도) 없고 그냥 고집만 부리는 거예요."]

60년 동안 부침도 있었지만 건실하게 발전한 이 농장에 아주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대표님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오래간만입니다.)"]

[리포터 : "대표님, 이 분은 누구신가요?"]

[최충희/OO농장 대표 : "헤퍼인터내셔널 코리아의 이혜원 대표입니다. 70년 전에 한국에서 노아의 방주 작전을 했던 그 단체고요. 저희 할아버님이 기부 받은 송아지로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된 단체가 헤퍼고요. 미국의 비영리 단체 ‘헤퍼 인터내셔널’은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국에 가축을 보내고 사육 방법 등을 교육하며 자립을 도왔는데요."]

특히 받은 도움을 다시 나누는 이른바 ‘패싱 온 더 기프트’ 철학(Passing on the Gift: 가축을 무상으로 증여받은 뒤, 새끼를 낳으면 반드시 암컷1마리를 상환)을 실천함으로써 젖소가 전국으로 빠르게 보급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혜원/헤퍼코리아 대표 : "그때 받으셨던 농민분들은 첫 번째 새끼가 태어나면 꼭 이웃에게 전달해야 하는 철학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눔을 실천하셨던 것이죠."]

70년 전 노아의 방주는 전후 한반도에는 희망의 불빛이었습니다.

그리고 70년이 지난 지금 노아의 방주는 새로운 항해를 시작했는데요.

원조를 받던 대한민국이 또 다른 나라에 가축을 원조하며 나눔의 정신을 실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 대표 일가도 그 도움을 되갚기 위한 노력을 펼치고 있습니다.

돌아가신 최 대표의 아버지는 이미 1988년에 기금 7천 3백 달러를 모아 미국에서 진행하는 젖소 기부에 동참했습니다.

[이혜원/헤퍼코리아 대표 : "우리도 젖소를 받았으니 다른 나라에 젖소를 보내겠습니다’하고 기금을 모으셔서 방문하셨던 건 유일무이한 사례라고 하시더라고요."]

나눔의 정신은 3대째인 최 대표에게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재단에서 진행한 ‘네팔에 젖소 101마리 보내기 프로젝트’에 4마리의 송아지를 기증하며 힘을 보탠 겁니다.

살아있는 젖소가 해외로 나가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고 하는데요.

[이혜원/헤퍼코리아 대표 : "그런데 소도 대한민국 소들은 다 이력제가 있습니다. 행정적으로 (해외 송출이) 불가능했던거예요. 그래서 그런 행정 처리도 (농림축산식품부에서) 해 주시고..."]

정부와 농가, 비영리 단체 등의 협력으로 소들은 네팔의 51개 농가로 보내졌습니다.

최 대표는 이 일이 축산인으로서 자부심을 맘껏 느꼈던 흔치 않은 경험이라고 말합니다.

[최충희/OO농장 대표 : "받을 사람들의 마음을 알잖아요. 그 사람들에게 그 한 마리는 어떻게 보면 전부예요. 그 사람들한테는. 앞으로 그 사람이 10년, 20년 삶의 전부가 될 걸 알기 때문에 너무 애절함이 저한테도 오더라고요."]

[이혜원/헤퍼코리아 대표 : "미국에서 한국으로, 한국에서 네팔로. 저는 네팔은 향후 몇 년 후엔 또 다른 나라로 보낼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패싱 온 더 기프트’ 국가 간 나눔의 선순환을 이어가는 그런 여정이었습니다."]

이들은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피어나는 새로운 생명의 풀처럼 가축으로 원조 받고 또 원조 해주는 이 모든 과정과 경험이 소중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최충희/OO농장 대표 : "(목장은) 제 삶 자체인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 뿌리로 지금까지 왔는데 앞으로도 좀 더 좋은 발전을 하고 좋은 일 하는 데 열심히 도움이 될 수 있는 데까지 도와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원조 이후 70년이 흐른 지금 새로운 메이드 인 코리아 ‘노아의 방주’가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제3세계로 힘차게 나아가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해봅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