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상징’ 학전 폐관…‘아침이슬’ 김민기에게 묻다

입력 2023.12.18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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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설경구·황정민·조승우, 가수 박학기·윤도현.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대학로 소극장 '학전' 출신입니다.

학전은 32년간 그야말로 유명 스타들의 산실이었습니다. 그런 학전이 내년 3월 문을 닫습니다. 경영난과 김민기 대표의 암 투병 때문입니다.


"문화의 상징, 학전을 닫는 이유가 뭘까?"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학전의 대표이자 '아침이슬' 등을 부른 가수 김민기 씨를 인터뷰했습니다.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했습니다. 김 대표는 현재, 위암 투병 중입니다.

■ "폐관, 무척 아쉽다."

[Q1.] 학전 폐관에 대한 심경을 물었습니다.

[A.] 마무리 짓지 못한 작품들이 여럿 있는데 무척 아쉽습니다.
하지만 '이제 다시 시작이다'라는 느낌으로 하루하루를 맞고 있습니다.

학전의 경영난은 비단 코로나19 시기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 어려움은 김민기의 '고집' 혹은 '신념' 때문이었습니다.

학전의 대표작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은 소위 '대박'을 쳤습니다. 170석 남짓한 소극장에서 하루 한 번 공연으로 15년 동안 관객 71만 명을 몰고 왔습니다.

돈 되는 뮤지컬을 하루 한 번 한 이유는 '공연의 질'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마저도 김 대표는 2008년 돌연 이 뮤지컬을 중단했습니다.

"돈만 벌면 돈이 안 되는 일을 못 하게 될 것 같아서"가 이유였습니다. 그리고 김 대표는 '돈 안 된다'는 아동극을 무대에 올렸습니다.

▲ 학전 아동극 <고추장 떡볶이>▲ 학전 아동극 <고추장 떡볶이>

■ 왜?, "모를 키우는 마음"

[Q2.] 아동극 관람권 값은 비싸야 1장에 2만 원. 배우들 월급에 임대료를 내고 나면 응당 남는 게 없었습니다. 경영난은 뻔한 결과였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학전을 포기하지 않은 이유를 물었습니다.

[A.] 씨앗과 완성품 사이에는 모를 키우는 '못자리'라는 과정이 있습니다.
이 과정을 중시했던 거 같습니다.

모를 키워내겠다는 마음. 김민기 대표는 진정한 예술인과 예술 작품을 세상에 내놓는 걸 '사명'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배우들에게 월급을 줬습니다. 흔치 않은 일이었습니다. 보통 뮤지컬은 공연 이후 정산을 해주는 게 문화예술계의 관행이었습니다. 후배 예술인들을 생각하는 그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대목입니다.

배우 이일진 인터뷰

"지하철 1호선에 들어가면 먹고 사는 데에 지장이 없을 것처럼 됐어요. 왜냐면 여기서는 월급을 줬거든요. 다른 데서는 공연 끝나고 받든지 못 받은 경우도 있고... 근데 여기서는 월급을 주고, 관객이 많이 들면 그만큼 저희가 더 받아요."

"저한테는 신세계였고 먹고 살기가 막 나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너무너무 좋았죠. 그 시절 그렇게 하는 곳이 없었거든요. 지금도 많지 않을 거예요."

예술에 진심이었던 김 대표, 이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연극이나 뮤지컬 같은 공연을 쉽게 접하지 못하는 '서울 밖 아이들'을 생각했습니다. 서울이 아닌 전국 폐교 등을 돌며 아동극을 이어나간 이유입니다.

가수 박학기 인터뷰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이 되게 잘 됐잖아요. 원래대로 하면 극장 운영하는 사람이 잘 되는 거 계속해야죠. 돈이 벌리니까. 그런데 그 형(김민기)은 그거 한참 잘 되고 할 때 가차 없이 그거를 내려요. 왜 그러냐 그러면 '나는 어린이극을 해야 하는 게 내 사명 중 하나다'라고..."

"전국에 있는 폐교, 안 간 데가 없죠. 폐교 같은 데 가서 거기 문화적 그런 걸 누릴 수 없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거기 가서 무대 만들어서 공연해요. 그게 무슨 돈을 벌 수가 있겠냐고요. 그건 개인이 할 일이 아니고, 국가에서 해야 하는 일이죠. 그런데 다 해왔잖아요."


■ 30년 달린 '지하철 1호선' 종점으로

▲ 30년 동안 공연된 스테디셀러 뮤지컬 <지하철 1호선>▲ 30년 동안 공연된 스테디셀러 뮤지컬 <지하철 1호선>

[Q3.] 32년, 적지 않은 세월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A.] 지하철 1호선입니다. 올해 말 4,257회로 막을 내리겠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한국 공연 예술사에 새 장을 연 작품이었습니다.

그의 답은 '지하철 1호선'이었습니다.

'지하철 1호선'은 김 대표가 독일 원작을 새롭게 번안·각색해 만들었습니다.

이미 2000년에 공연횟수 1,000회를 넘겼습니다. 당시 자신들의 작품이 한국에서 공연되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뮤지컬을 보러 온 원작자 폴커 로트비히와 작곡가 비르거 하이만. 그들은 김민기 대표의 공연을 보고 현장에서 '결단'을 했습니다.

"김민기의 '지하철 1호선'은 독립된 창작물입니다. 그래서 저작권료를 받지 않기로 했습니다."

1994년 초연 이후 지금까지 4,200번 넘게 오른 공연이지만, 이번 달을 끝으로 '지하철 1호선'은 멈출 예정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서둘러 예매하면서 이달 31일 마지막 공연까지 전석 매진됐습니다.

■ 문화의 상징, 역사의 뒤안길로…

▲ <학전> 김민기 대표 (사진 제공: 학전)▲ <학전> 김민기 대표 (사진 제공: 학전)

돈이 아닌 예술가를 꿈꾼 김민기, 그리고 그의 땀과 눈물이 고스란히 베인 학전.

학전은 출신 스타들이 이런 김민기에 대한 존경심을 담아 마지막 공연을 시작합니다. '학전 어게인 프로젝트'. 이 공연이 끝나면 학전의 커튼콜은 이제 영원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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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 상징’ 학전 폐관…‘아침이슬’ 김민기에게 묻다
    • 입력 2023-12-18 08:01:39
    심층K

배우 설경구·황정민·조승우, 가수 박학기·윤도현.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대학로 소극장 '학전' 출신입니다.

학전은 32년간 그야말로 유명 스타들의 산실이었습니다. 그런 학전이 내년 3월 문을 닫습니다. 경영난과 김민기 대표의 암 투병 때문입니다.


"문화의 상징, 학전을 닫는 이유가 뭘까?"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학전의 대표이자 '아침이슬' 등을 부른 가수 김민기 씨를 인터뷰했습니다.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했습니다. 김 대표는 현재, 위암 투병 중입니다.

■ "폐관, 무척 아쉽다."

[Q1.] 학전 폐관에 대한 심경을 물었습니다.

[A.] 마무리 짓지 못한 작품들이 여럿 있는데 무척 아쉽습니다.
하지만 '이제 다시 시작이다'라는 느낌으로 하루하루를 맞고 있습니다.

학전의 경영난은 비단 코로나19 시기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 어려움은 김민기의 '고집' 혹은 '신념' 때문이었습니다.

학전의 대표작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은 소위 '대박'을 쳤습니다. 170석 남짓한 소극장에서 하루 한 번 공연으로 15년 동안 관객 71만 명을 몰고 왔습니다.

돈 되는 뮤지컬을 하루 한 번 한 이유는 '공연의 질'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마저도 김 대표는 2008년 돌연 이 뮤지컬을 중단했습니다.

"돈만 벌면 돈이 안 되는 일을 못 하게 될 것 같아서"가 이유였습니다. 그리고 김 대표는 '돈 안 된다'는 아동극을 무대에 올렸습니다.

▲ 학전 아동극 <고추장 떡볶이>
■ 왜?, "모를 키우는 마음"

[Q2.] 아동극 관람권 값은 비싸야 1장에 2만 원. 배우들 월급에 임대료를 내고 나면 응당 남는 게 없었습니다. 경영난은 뻔한 결과였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학전을 포기하지 않은 이유를 물었습니다.

[A.] 씨앗과 완성품 사이에는 모를 키우는 '못자리'라는 과정이 있습니다.
이 과정을 중시했던 거 같습니다.

모를 키워내겠다는 마음. 김민기 대표는 진정한 예술인과 예술 작품을 세상에 내놓는 걸 '사명'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배우들에게 월급을 줬습니다. 흔치 않은 일이었습니다. 보통 뮤지컬은 공연 이후 정산을 해주는 게 문화예술계의 관행이었습니다. 후배 예술인들을 생각하는 그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대목입니다.

배우 이일진 인터뷰

"지하철 1호선에 들어가면 먹고 사는 데에 지장이 없을 것처럼 됐어요. 왜냐면 여기서는 월급을 줬거든요. 다른 데서는 공연 끝나고 받든지 못 받은 경우도 있고... 근데 여기서는 월급을 주고, 관객이 많이 들면 그만큼 저희가 더 받아요."

"저한테는 신세계였고 먹고 살기가 막 나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너무너무 좋았죠. 그 시절 그렇게 하는 곳이 없었거든요. 지금도 많지 않을 거예요."

예술에 진심이었던 김 대표, 이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연극이나 뮤지컬 같은 공연을 쉽게 접하지 못하는 '서울 밖 아이들'을 생각했습니다. 서울이 아닌 전국 폐교 등을 돌며 아동극을 이어나간 이유입니다.

가수 박학기 인터뷰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이 되게 잘 됐잖아요. 원래대로 하면 극장 운영하는 사람이 잘 되는 거 계속해야죠. 돈이 벌리니까. 그런데 그 형(김민기)은 그거 한참 잘 되고 할 때 가차 없이 그거를 내려요. 왜 그러냐 그러면 '나는 어린이극을 해야 하는 게 내 사명 중 하나다'라고..."

"전국에 있는 폐교, 안 간 데가 없죠. 폐교 같은 데 가서 거기 문화적 그런 걸 누릴 수 없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거기 가서 무대 만들어서 공연해요. 그게 무슨 돈을 벌 수가 있겠냐고요. 그건 개인이 할 일이 아니고, 국가에서 해야 하는 일이죠. 그런데 다 해왔잖아요."


■ 30년 달린 '지하철 1호선' 종점으로

▲ 30년 동안 공연된 스테디셀러 뮤지컬 <지하철 1호선>
[Q3.] 32년, 적지 않은 세월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A.] 지하철 1호선입니다. 올해 말 4,257회로 막을 내리겠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한국 공연 예술사에 새 장을 연 작품이었습니다.

그의 답은 '지하철 1호선'이었습니다.

'지하철 1호선'은 김 대표가 독일 원작을 새롭게 번안·각색해 만들었습니다.

이미 2000년에 공연횟수 1,000회를 넘겼습니다. 당시 자신들의 작품이 한국에서 공연되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뮤지컬을 보러 온 원작자 폴커 로트비히와 작곡가 비르거 하이만. 그들은 김민기 대표의 공연을 보고 현장에서 '결단'을 했습니다.

"김민기의 '지하철 1호선'은 독립된 창작물입니다. 그래서 저작권료를 받지 않기로 했습니다."

1994년 초연 이후 지금까지 4,200번 넘게 오른 공연이지만, 이번 달을 끝으로 '지하철 1호선'은 멈출 예정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서둘러 예매하면서 이달 31일 마지막 공연까지 전석 매진됐습니다.

■ 문화의 상징, 역사의 뒤안길로…

▲ <학전> 김민기 대표 (사진 제공: 학전)
돈이 아닌 예술가를 꿈꾼 김민기, 그리고 그의 땀과 눈물이 고스란히 베인 학전.

학전은 출신 스타들이 이런 김민기에 대한 존경심을 담아 마지막 공연을 시작합니다. '학전 어게인 프로젝트'. 이 공연이 끝나면 학전의 커튼콜은 이제 영원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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