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미래로] 탈북 예술인 첫 표창…분단 상처 승화

입력 2024.01.06 (08:17) 수정 2024.01.06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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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전시관 벽면을 가득 메운 이 그림들에는 분단으로 헤어진 가족들과 떠나온 고향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이 표현돼 있습니다.

이런 아픔과 그리움을 예술 작품으로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야 탈북민이라고 다를 게 없겠죠.

최근 우리 문화 예술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탈북 예술인들이 정부 표창을 받았습니다.

오늘 통일로 미래로는 탈북 예술인들의 이야기입니다.

[리포트]

지난해 12월 16일.

‘북한 이탈주민 문화예술 유공자’로 선정된 탈북 예술인들이 통일부 장관 표창을 받았습니다.

문학과 미술, 공연 분야에서 예술적 성과를 거둔 9명이 선정된 겁니다.

[김영호/통일부 장관 : "탈북 문화예술인들께서 우리나라 문화예술 발전에 널리 기여해오고 계셨는데 올해 처음으로 표창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지난달 표창을 받은 ‘탈북민 문화예술인’들은 북한의 실상을 알리고 작품을 통해 남과 북의 문화적 동질성을 꾸준히 알려온 공을 인정받았습니다. 특히 이들의 장점은 북한에서 펼쳐온 예술적 원형을 그대로 답습하는데 그치지 않고 남한의 예술적 가치를 발전시킨 확장성에 있습니다.

2019년 통일로 미래로가 만났던 최신아 씨도 그 가운데 한 명입니다.

전설적인 무희 최승희 춤의 명맥을 이으며, 같은 듯 다른 남과 북의 춤을 하나로 접목한 창작 무용을 선보인 공로를 인정받은 건데요.

[최신아/예술단장 : "이번에 통일부에서 준 유공자 상이에요."]

최 단장은 그간 다양한 공연 활동으로 통일 단체와 문화예술계에서 여러 상을 받아 왔지만 이번 유공자 표창은 더욱 각별하다고 합니다.

[최신아/예술단장 : "남과 북의 무용을 우리 국내와 전 세계인들에게 홍보 차원에서 공연했기 때문에 이런 상을 주지 않았을까 합니다. 너무나도 고맙고 감사한 일이죠, 저한테는."]

함경북도 예술단에서 26년간 무용가와 무용감독으로 활동하다 탈북한 최신아 단장은 2011년 남한에 정착한 이후 꾸준히 남북한 춤의 차이점을 분석하고, 융합해 나갔습니다.

[최신아/예술단장 : "한국 무용은 단아하면서도 부드럽고 ‘쓱’ 이렇게 추는 게 한국 무용이고요. 그런데 북한 춤 같은 경우는 뭐라고 할까요. 발레 같은 느낌, 상체가 확 펴 있어요. 그런데 부드러운 춤을 출 때는 남쪽 춤이랑 비슷한 형태도 있고요."]

그렇게 남한의 유려함과 북한의 역동성을 담아낸 창작 무용, ‘산조 부채춤’입니다.

이른바 남북이 하나 된 ‘통일 춤’이라고 합니다.

[최신아/예술단장 : "남북한이 통일됐을 때, 하나가 됐을 때 정말 누구나가 환희하는 그런 마음에서 창작한 춤입니다. 춤으로써 평화의 메시지를 서로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통일로 미래로 팀은 또 다른 탈북민 예술 유공자를 만나러 충북 옥천으로 향했습니다.

컨테이너 건물에 마련된 아틀리에에서 미술 작가 심수진 씨를 만났습니다.

["여기 제가 미술관에 온 것 같은데. (아니에요. 공방이에요. 둘러보세요.)"]

33제곱미터 남짓한 공간에 작품들이 빼곡히 걸려 있는데요.

통일에 대한 염원과 이산의 아픔을 녹여낸 그림들이 눈에 띕니다.

[심수진/미술 작가 : "통일이 돼서 고향 가는 길이 너무 좋아서 반가워서 그래서 (고향) 가는 길을 상상 속에 그려봤어요. (보니까, 구름이 한반도예요.) 한반도를 그림에 집어넣었어요. 구름을 그렇게 표현했어요."]

심 작가는 2007년 남한에 정착한 이후 미술가의 꿈을 키웠다고 합니다.

미술 재료로는 다소 낯선 낙엽과 보릿대, 모래와 같은 자연물을 활용해 독보적인 질감을 표현합니다.

[심수진/미술 작가 : "남들이 안 하는 그런 작품을 해보려고 연구를 많이 했어요. 옥수수껍질을 벗겨서 잘라서 붙인 거잖아요."]

한 달 넘게, 나뭇잎에 칼질해 완성한 낙엽 판화입니다.

칼끝의 섬세함이 생생하게 느껴지는데요.

심수진 작가는 떨어지는 낙엽에 희망을 담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심수진/미술 작가 : "나랑 인생이 똑같은 거예요. 죽어가는 낙엽의 인생 같고, 그리고 다시 살아날 것 같지 않은. 얘네들(낙엽)한테 소원을 빌었어요. 나뭇잎 백 개를 파면서 나에게 희망이 있기를..."]

지난했던 탈북 과정에다, 지난 2020년에는 간경화로 투병하며 아들의 간을 이식받기도 했는데요.

북과 남에서 겪었던 이러한 경험은 생명에 대한 소망이라는 주제로 수많은 작품을 관통하고 있습니다.

[심수진/미술 작가 : "간절함 그다음에 살고자 하는 욕망. 어쨌든 그 고통과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 이런 작품들이 나오지 않았나 이런 생각도 들어요."]

심수진 작가는 목숨을 걸고 탈북한 뒤 낯선 남한에 정착한 경험 하나하나가 오롯이 예술적 영감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 모든 이야기를 화폭에 풀어내 조국 분단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는 데 일조하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함경남도 단천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심 작가는 남달리 글씨를 잘 쓰고 그림을 잘 그리는 학생이었다고 합니다.

[심수진/미술 작가 : "14살 때부터인가 각 학급에서 3명씩 글씨를 잘쓰는 애들을 뽑은 거예요. 김일성, 김정일한테 올리는 편지라든지 서류 업무 이런 것들을 다 폴더(서류철) 같은 데다가 써서 제출하는 것이에요."]

굶주림에서 벗어나고자 19살에 탈북했고 중국에선 북송 위기도 겪었습니다.

[심수진/미술 작가 : "북송이 됐는데 그때 나는 가면 안 된다는 느낌이 든 거예요. 그래서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렸어요."]

2007년, 가까스로 한국에 온 뒤에는 여러 조력자의 도움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작가님 이 분들은 다 누구세요?) 여기는 17년 된 친구, 여기는 대학 후배, 여기는 남북하나재단 담당 선생님입니다."]

심수진 작가의 유공자 표창을 축하하는 조촐한 자리가 마련됐습니다.

이들의 도움 덕분에 한국에서 미술가로서의 꿈을 펼칠 수 있었습니다.

[김소망/남북하나재단 전문상담사 : "(탈북민의) 정체성을 숨길 게 아니라 조금 더 꺼내고 오픈한다면 작가로서의 입지를 다질 수 있지 않을까..."]

각자가 응원의 마음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석경애/탈북민 친구 : "우리처럼 넘어오는 북한 탈북자들 북한 사람들한테 좋은 영향력을 주는 선생님이 되길 저는 응원하고 싶습니다."]

모임을 마치고, 다시 작업실로 돌아가는 길, 작가의 손길이 길가의 낙엽으로 향합니다.

이렇게 일상에서 작품 재료를 구하는 것도 작품 활동의 일환이라는 설명입니다.

[심수진/미술 작가 : "얘네들(낙엽)에게도 작품을 집어넣으면 새로운 작품이 되고 또 새롭게 보이고 하니까 사람들이 이런 낙엽을 잘 보지 않잖아요. 그런데 이런 사소한 것도 제가 사랑한다고 해야 되나, 그런 게 있어요."]

생명을 다한 낙엽도 예술 작품으로 다시 탄생할 수 있듯이.

분단 현실로 인한 자신의 경험이 누군가에게 위안과 영감이 되기를 바란다는 작가의 열정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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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일로 미래로] 탈북 예술인 첫 표창…분단 상처 승화
    • 입력 2024-01-06 08:17:38
    • 수정2024-01-06 09:37:46
    남북의 창
[앵커]

전시관 벽면을 가득 메운 이 그림들에는 분단으로 헤어진 가족들과 떠나온 고향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이 표현돼 있습니다.

이런 아픔과 그리움을 예술 작품으로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야 탈북민이라고 다를 게 없겠죠.

최근 우리 문화 예술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탈북 예술인들이 정부 표창을 받았습니다.

오늘 통일로 미래로는 탈북 예술인들의 이야기입니다.

[리포트]

지난해 12월 16일.

‘북한 이탈주민 문화예술 유공자’로 선정된 탈북 예술인들이 통일부 장관 표창을 받았습니다.

문학과 미술, 공연 분야에서 예술적 성과를 거둔 9명이 선정된 겁니다.

[김영호/통일부 장관 : "탈북 문화예술인들께서 우리나라 문화예술 발전에 널리 기여해오고 계셨는데 올해 처음으로 표창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지난달 표창을 받은 ‘탈북민 문화예술인’들은 북한의 실상을 알리고 작품을 통해 남과 북의 문화적 동질성을 꾸준히 알려온 공을 인정받았습니다. 특히 이들의 장점은 북한에서 펼쳐온 예술적 원형을 그대로 답습하는데 그치지 않고 남한의 예술적 가치를 발전시킨 확장성에 있습니다.

2019년 통일로 미래로가 만났던 최신아 씨도 그 가운데 한 명입니다.

전설적인 무희 최승희 춤의 명맥을 이으며, 같은 듯 다른 남과 북의 춤을 하나로 접목한 창작 무용을 선보인 공로를 인정받은 건데요.

[최신아/예술단장 : "이번에 통일부에서 준 유공자 상이에요."]

최 단장은 그간 다양한 공연 활동으로 통일 단체와 문화예술계에서 여러 상을 받아 왔지만 이번 유공자 표창은 더욱 각별하다고 합니다.

[최신아/예술단장 : "남과 북의 무용을 우리 국내와 전 세계인들에게 홍보 차원에서 공연했기 때문에 이런 상을 주지 않았을까 합니다. 너무나도 고맙고 감사한 일이죠, 저한테는."]

함경북도 예술단에서 26년간 무용가와 무용감독으로 활동하다 탈북한 최신아 단장은 2011년 남한에 정착한 이후 꾸준히 남북한 춤의 차이점을 분석하고, 융합해 나갔습니다.

[최신아/예술단장 : "한국 무용은 단아하면서도 부드럽고 ‘쓱’ 이렇게 추는 게 한국 무용이고요. 그런데 북한 춤 같은 경우는 뭐라고 할까요. 발레 같은 느낌, 상체가 확 펴 있어요. 그런데 부드러운 춤을 출 때는 남쪽 춤이랑 비슷한 형태도 있고요."]

그렇게 남한의 유려함과 북한의 역동성을 담아낸 창작 무용, ‘산조 부채춤’입니다.

이른바 남북이 하나 된 ‘통일 춤’이라고 합니다.

[최신아/예술단장 : "남북한이 통일됐을 때, 하나가 됐을 때 정말 누구나가 환희하는 그런 마음에서 창작한 춤입니다. 춤으로써 평화의 메시지를 서로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통일로 미래로 팀은 또 다른 탈북민 예술 유공자를 만나러 충북 옥천으로 향했습니다.

컨테이너 건물에 마련된 아틀리에에서 미술 작가 심수진 씨를 만났습니다.

["여기 제가 미술관에 온 것 같은데. (아니에요. 공방이에요. 둘러보세요.)"]

33제곱미터 남짓한 공간에 작품들이 빼곡히 걸려 있는데요.

통일에 대한 염원과 이산의 아픔을 녹여낸 그림들이 눈에 띕니다.

[심수진/미술 작가 : "통일이 돼서 고향 가는 길이 너무 좋아서 반가워서 그래서 (고향) 가는 길을 상상 속에 그려봤어요. (보니까, 구름이 한반도예요.) 한반도를 그림에 집어넣었어요. 구름을 그렇게 표현했어요."]

심 작가는 2007년 남한에 정착한 이후 미술가의 꿈을 키웠다고 합니다.

미술 재료로는 다소 낯선 낙엽과 보릿대, 모래와 같은 자연물을 활용해 독보적인 질감을 표현합니다.

[심수진/미술 작가 : "남들이 안 하는 그런 작품을 해보려고 연구를 많이 했어요. 옥수수껍질을 벗겨서 잘라서 붙인 거잖아요."]

한 달 넘게, 나뭇잎에 칼질해 완성한 낙엽 판화입니다.

칼끝의 섬세함이 생생하게 느껴지는데요.

심수진 작가는 떨어지는 낙엽에 희망을 담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심수진/미술 작가 : "나랑 인생이 똑같은 거예요. 죽어가는 낙엽의 인생 같고, 그리고 다시 살아날 것 같지 않은. 얘네들(낙엽)한테 소원을 빌었어요. 나뭇잎 백 개를 파면서 나에게 희망이 있기를..."]

지난했던 탈북 과정에다, 지난 2020년에는 간경화로 투병하며 아들의 간을 이식받기도 했는데요.

북과 남에서 겪었던 이러한 경험은 생명에 대한 소망이라는 주제로 수많은 작품을 관통하고 있습니다.

[심수진/미술 작가 : "간절함 그다음에 살고자 하는 욕망. 어쨌든 그 고통과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 이런 작품들이 나오지 않았나 이런 생각도 들어요."]

심수진 작가는 목숨을 걸고 탈북한 뒤 낯선 남한에 정착한 경험 하나하나가 오롯이 예술적 영감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 모든 이야기를 화폭에 풀어내 조국 분단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는 데 일조하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함경남도 단천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심 작가는 남달리 글씨를 잘 쓰고 그림을 잘 그리는 학생이었다고 합니다.

[심수진/미술 작가 : "14살 때부터인가 각 학급에서 3명씩 글씨를 잘쓰는 애들을 뽑은 거예요. 김일성, 김정일한테 올리는 편지라든지 서류 업무 이런 것들을 다 폴더(서류철) 같은 데다가 써서 제출하는 것이에요."]

굶주림에서 벗어나고자 19살에 탈북했고 중국에선 북송 위기도 겪었습니다.

[심수진/미술 작가 : "북송이 됐는데 그때 나는 가면 안 된다는 느낌이 든 거예요. 그래서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렸어요."]

2007년, 가까스로 한국에 온 뒤에는 여러 조력자의 도움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작가님 이 분들은 다 누구세요?) 여기는 17년 된 친구, 여기는 대학 후배, 여기는 남북하나재단 담당 선생님입니다."]

심수진 작가의 유공자 표창을 축하하는 조촐한 자리가 마련됐습니다.

이들의 도움 덕분에 한국에서 미술가로서의 꿈을 펼칠 수 있었습니다.

[김소망/남북하나재단 전문상담사 : "(탈북민의) 정체성을 숨길 게 아니라 조금 더 꺼내고 오픈한다면 작가로서의 입지를 다질 수 있지 않을까..."]

각자가 응원의 마음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석경애/탈북민 친구 : "우리처럼 넘어오는 북한 탈북자들 북한 사람들한테 좋은 영향력을 주는 선생님이 되길 저는 응원하고 싶습니다."]

모임을 마치고, 다시 작업실로 돌아가는 길, 작가의 손길이 길가의 낙엽으로 향합니다.

이렇게 일상에서 작품 재료를 구하는 것도 작품 활동의 일환이라는 설명입니다.

[심수진/미술 작가 : "얘네들(낙엽)에게도 작품을 집어넣으면 새로운 작품이 되고 또 새롭게 보이고 하니까 사람들이 이런 낙엽을 잘 보지 않잖아요. 그런데 이런 사소한 것도 제가 사랑한다고 해야 되나, 그런 게 있어요."]

생명을 다한 낙엽도 예술 작품으로 다시 탄생할 수 있듯이.

분단 현실로 인한 자신의 경험이 누군가에게 위안과 영감이 되기를 바란다는 작가의 열정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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