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복지시설에 일하는데 십일조를?”…법인은 후원금으로 정기예금 [취재후]

입력 2024.01.08 (13:51) 수정 2024.01.08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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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보를 받았습니다. 일터에서 종교활동을 강요받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겁니다.

원하지 않더라도 매주 정기적으로 주중 근무시간에 열리는 예배에 참석해야 하고, 월급을 받으면 십일조나 감사 헌금을 내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종교시설에서 일어난 일일까, 이런 황당한 일이 벌어진 곳은 도대체 어디일까요? 다름 아닌 설립 30주년이 훌쩍 넘어가는 서울 송파구의 한 장애인 복지시설이었습니다.

지난해 초, 문제의 장애인복지시설의 입구에 교회 현판이 걸려있는 모습. 현재 현판은 제거된 상태다.지난해 초, 문제의 장애인복지시설의 입구에 교회 현판이 걸려있는 모습. 현재 현판은 제거된 상태다.

■ 목사인 시설장이 설교…"장애인 돌봐야 하는 시간에 예배?"

이 장애인 복지시설의 시설장은 A 목사로 30년 넘게 이 시설을 운영하며 그 공로로 국민훈장을 수여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제보자들은 장애인들을 돌봐야 할 평일에 시설 3층 강당에서 열리는 예배에 참석해야 했다고 말했습니다.

예배를 듣는 시설 직원들과 장애인들의 모습.예배를 듣는 시설 직원들과 장애인들의 모습.

예배 시간은 화요일 오전, 수요일 오후, 목요일 오전.

수요일 오후에는 시설 장애인들도 다 함께 예배를 들었지만, 엄연한 근무시간에 예배가 이뤄진 겁니다. 직원들만 듣는 예배 시간에는 장애인들이 충분한 돌봄을 받지 못했다고 제보자들은 주장했습니다.

제보자들은 장애인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예배가 이뤄졌다는 점도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는 우리 장애인분들을 보면 95% 정도가 의사 표현을 잘 못 해요. 예배를 거부하거나, 이분들이 헌금을 낸다?
장애인분들이 스스로 예배를 드리는 행위, 그 마음은 한 번도 0.1%도 본 적은 없어요."
- 제보자 B 씨

예배가 이뤄진 장소도 문제였습니다. 시설 등기부등본상 용도를 보면, 예배가 이뤄진 3층 강당은 노약자나 장애인 등을 위한 복지시설, 즉 '노유자시설'로 등록돼 있습니다. 종교시설로 사용할 수 없는 겁니다.

예배가 이뤄진 장애인복지시설 3층 강당. 십자가가 새겨진 단상과 후원함이 눈에 띈다.예배가 이뤄진 장애인복지시설 3층 강당. 십자가가 새겨진 단상과 후원함이 눈에 띈다.

무엇보다 이런 사회복지시설 운영에는 지방자치단체의 보조금이 들어갑니다. 장애인들을 위해 보조금을 받으며 운영되는 곳에서 종교시설이 운영된 셈이죠.

지난해 중순 서울시 감사위원회에서도 해당 시설을 현장 조사하고 감사 결과를 내놨는데요. 사회복지시설과 무관한 교회를 설립해 운영한 점을 지적하고, 시설과 교회를 명확히 분리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게다가 강당에 사용한다는 명목으로 2천여만 원의 보조금을 타내서 목적과 다르게 사용한 사실도 적발해 환수 조치했습니다.


■ 국가보조금으로 받는 월급서 십일조 강요…"소액 대출까지 받아"

예배만 본 걸까요? 아닙니다. 제보자들은 직원들이 십일조나 감사헌금을 강요당했다고 호소했습니다. 시설 직원들의 월급은 국가보조금으로 지급되는데, 월급 일부를 헌금으로 내야했다고 토로했습니다.

"급여 날 딱 봉투를 전날이나, 며칠 전에 나눠줘요. 많이 하는 사람은 20만 원도 하고, 적게 하는 사람은 2~3만 원.
그런 돈을 내다보면 정말 미치는 거죠. 힘들 때는 소액대출을 받아서 내고 그랬습니다."
- 제보자 B 씨

십일조 봉투 사진. 제보자들은 직원별로 이런 봉투가 있어, 십일조나 감사헌금을 거뒀다고 설명했다.십일조 봉투 사진. 제보자들은 직원별로 이런 봉투가 있어, 십일조나 감사헌금을 거뒀다고 설명했다.

A 목사가 2022년 7월 십일조 관련 지시를 하는 정황도 확인됐습니다. 새로 입사하는 직원이 십일조를 내게끔 하라고 기존 직원에게 전화로 지시한 겁니다.

A 목사 (2022년 7월 전화녹취)
"이제 첫 월급 받으니까 하나님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십일조도 드리고, 감사헌금도 드리고 그렇게 한다고….
OO 형제(신입 직원)도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잘 우리 같이 드리자고"

장애인들의 연금통장에서도 임의로 매달 5천 원씩을 빼내, 헌금으로 거뒀다는 주장도 제기됐습니다. 직원들에게는 통상적인 범위 외의 기념일에도 돈을 걷었다고도 합니다.

"(장애인 통장에서) 매달 5천 원씩을 꺼내서, 현금으로. 매주 예배 볼 때, 일요일에 천 원씩 내는 거로 알고 있어요….
(목사) 본인 생일, 사모 생일, 스승의 날, 어버이날, 본인 무슨 박사 학위 받았다. 아들 결혼했다, 아들 아이 낳는데 백일이다, 돌이다."
- 제보자 C 씨

서울시 감사위원회에서는 시설 직원 43명 가운데 약 25%가 예배 참석과 헌금 등 종교활동을 강요당한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또, 헌법에서 규정하는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고 직원의 생활권과 인격권을 훼손했다며 이를 시정하라고 요구했습니다.

한편, 시설 측은 십일조나 헌금을 강제로 거둔 적 없고, 예배도 자유롭게 하도록 했다고 해명했습니다. 부활절이나 성탄절, 결혼기념일 등 때도 돈을 내라고 하거나 받은 적도 없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경찰은 이러한 의혹에 대해 강제수사에 착수했습니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지난 10월 해당 시설을 압수수색하고, A 목사를 사회복지사업법 위반과 장애인복지법상 업무상횡령 등 혐의로 입건하고 수사 중입니다.


■ "법인 후원금으로는 이자 수익?"…후원금 57억 원 정기예금 16개에 쪼개

이 복지시설 을 운영하는 법인에도 후원금 관리 문제가 드러났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문제의 시설을 운영하는 사회복지법인에 대한 서울시 감사위원회의 감사결과 자료를 확보했는데, 다수의 후원금 문제가 지적된 겁니다.

이 법인은 해마다 2억 원이 넘는 후원금을 기탁받고 있는데, 이런 후원금을 쌓아 이율이 높은 정기예금에 맡긴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법인 후원금으로 가입된 정기예금은 모두 16개, 원금 총액은 58억 원에 달했습니다.

서울시 감사위원회의 감사 결과 일부. 후원금으로 총 16개의 정기예금에 가입한 사실이 확인됐다.서울시 감사위원회의 감사 결과 일부. 후원금으로 총 16개의 정기예금에 가입한 사실이 확인됐다.



이렇게 후원금을 쌓아 두며 금융상품에 투자하는 게 바람직한 일일까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후원금의 성격과 취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후원금을 낸 이유는 장애인들이나 산하 시설을 위한 사업에 제때 쓰라는 취지였을 것인데, 이를 제때 사용하지 않고 금융상품에 가입해 불리기만 한다면 그 취지가 무색해질 겁니다.

그래서 사회복지법인 관리안내 지침에서 ' 후원금을 될 수 있으면 적립하거나 이월하지 않고, 회계연도 내에 집행하라' 정해둔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법인에서 이렇게 얻는 이자 수익을 '후원금 세입'이 아닌 '법인 자부담금'으로 처리한 점입니다. 법인 후원금 계좌로 처리해야 하는 것을 법인의 사업으로 얻은 수익을 처리하는 계좌에 넣은 겁니다. 장애인들에게 쓰라고 모인 후원금을 제때 쓰지 않고 쌓아 이자 이익을 얻고, 사적인 이익을 축적한 게 아니냐 는 의혹이 제기 되는 이유입니다.


■ 3년 전 지자체 지적에도 반복됐던 후원금 문제

이번 감사에서는 2020년에도 법인이 비슷한 문제를 송파구청으로부터 지적받았지만, 시정하지 않은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후원금 과다이월과 예탁 문제를 지적받은 건데, 당시 재단에서는 '후원금을 쌓지 않고 취지대로 사업에 쓰겠다'며 중장기 사용계획을 제출했습니다. 그런데 이후 이 계획을 지키지 않고, 또다시 추가로 후원금 3억 원을 정기 예금에 맡긴 사실이 확인된 겁니다.

법인에 대한 행정처분명령서법인에 대한 행정처분명령서
이에 따라, 재단은 올해 10월 행정처분을 받았습니다.

법인 측은 "서울시 감사위원회 시정 요구에 따라, 정기예금을 해지하고 관련 원금과 이자를 후원금 계좌로 넣었다"며, "다만, 코로나19로 인해 송파구청에 제출했던 후원금 사용계획을 지키지 못했다"고 해명했습니다.


■ "문제 제기 어려워"…지자체 점검도 형식적으로 그칠 가능성 커

제보자들은 큰 용기를 가지고 제보를 결심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신분 노출을 극도로 꺼렸습니다.

문제를 제기하다가 사회복지업계에서 매장당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재단이 여러 곳의 복지시설을 운영하기도 하고, 업계가 좁아 문제를 제기하면 일을 이어가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사회복지시설과 재단에 대한 지자체의 점검이라도 제대로 이뤄져야겠지만, 역시 쉽지 않습니다. 법으로 지자체 등이 시설에 대해 지도감독을 할 수 있도록 권한은 보장해뒀지만, 몇 년마다 점검할지 등 구체적인 점검방식은 정해두지 않았습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지자체 입장에서도 매년 점검하라 하면 인력이 없어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조사 인력이 별도로 있으면 촘촘히 점검할 수 있을 테지만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현실적으로 점검이 매년 이뤄지기 어렵고 형식적으로 끝날 가능성이 큰 셈입니다.

보도가 나간 뒤, 방송을 보고 15년 전에 해당 시설에서 일했다는 분이 연락을 해오기도 했습니다. '본인이 일했을 당시와 변한 게 없다'고 말입니다. 얼마나 이런 문제를 쉬쉬해온 건지, 잠시 아득해졌습니다. 이번에야말로 이렇게 '사각지대'에 있는 사회복지법인과 시설의 비리 문제가 바로잡혀야 할 겁니다.


[연관 기사] 예배 강요·강제 헌금 의혹까지…장애인 복지시설에 무슨 일이? (2024년 1월 5일)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859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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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애인 복지시설에 일하는데 십일조를?”…법인은 후원금으로 정기예금 [취재후]
    • 입력 2024-01-08 13:51:06
    • 수정2024-01-08 13:51:17
    취재후·사건후

제보를 받았습니다. 일터에서 종교활동을 강요받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겁니다.

원하지 않더라도 매주 정기적으로 주중 근무시간에 열리는 예배에 참석해야 하고, 월급을 받으면 십일조나 감사 헌금을 내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종교시설에서 일어난 일일까, 이런 황당한 일이 벌어진 곳은 도대체 어디일까요? 다름 아닌 설립 30주년이 훌쩍 넘어가는 서울 송파구의 한 장애인 복지시설이었습니다.

지난해 초, 문제의 장애인복지시설의 입구에 교회 현판이 걸려있는 모습. 현재 현판은 제거된 상태다.
■ 목사인 시설장이 설교…"장애인 돌봐야 하는 시간에 예배?"

이 장애인 복지시설의 시설장은 A 목사로 30년 넘게 이 시설을 운영하며 그 공로로 국민훈장을 수여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제보자들은 장애인들을 돌봐야 할 평일에 시설 3층 강당에서 열리는 예배에 참석해야 했다고 말했습니다.

예배를 듣는 시설 직원들과 장애인들의 모습.
예배 시간은 화요일 오전, 수요일 오후, 목요일 오전.

수요일 오후에는 시설 장애인들도 다 함께 예배를 들었지만, 엄연한 근무시간에 예배가 이뤄진 겁니다. 직원들만 듣는 예배 시간에는 장애인들이 충분한 돌봄을 받지 못했다고 제보자들은 주장했습니다.

제보자들은 장애인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예배가 이뤄졌다는 점도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는 우리 장애인분들을 보면 95% 정도가 의사 표현을 잘 못 해요. 예배를 거부하거나, 이분들이 헌금을 낸다?
장애인분들이 스스로 예배를 드리는 행위, 그 마음은 한 번도 0.1%도 본 적은 없어요."
- 제보자 B 씨

예배가 이뤄진 장소도 문제였습니다. 시설 등기부등본상 용도를 보면, 예배가 이뤄진 3층 강당은 노약자나 장애인 등을 위한 복지시설, 즉 '노유자시설'로 등록돼 있습니다. 종교시설로 사용할 수 없는 겁니다.

예배가 이뤄진 장애인복지시설 3층 강당. 십자가가 새겨진 단상과 후원함이 눈에 띈다.
무엇보다 이런 사회복지시설 운영에는 지방자치단체의 보조금이 들어갑니다. 장애인들을 위해 보조금을 받으며 운영되는 곳에서 종교시설이 운영된 셈이죠.

지난해 중순 서울시 감사위원회에서도 해당 시설을 현장 조사하고 감사 결과를 내놨는데요. 사회복지시설과 무관한 교회를 설립해 운영한 점을 지적하고, 시설과 교회를 명확히 분리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게다가 강당에 사용한다는 명목으로 2천여만 원의 보조금을 타내서 목적과 다르게 사용한 사실도 적발해 환수 조치했습니다.


■ 국가보조금으로 받는 월급서 십일조 강요…"소액 대출까지 받아"

예배만 본 걸까요? 아닙니다. 제보자들은 직원들이 십일조나 감사헌금을 강요당했다고 호소했습니다. 시설 직원들의 월급은 국가보조금으로 지급되는데, 월급 일부를 헌금으로 내야했다고 토로했습니다.

"급여 날 딱 봉투를 전날이나, 며칠 전에 나눠줘요. 많이 하는 사람은 20만 원도 하고, 적게 하는 사람은 2~3만 원.
그런 돈을 내다보면 정말 미치는 거죠. 힘들 때는 소액대출을 받아서 내고 그랬습니다."
- 제보자 B 씨

십일조 봉투 사진. 제보자들은 직원별로 이런 봉투가 있어, 십일조나 감사헌금을 거뒀다고 설명했다.
A 목사가 2022년 7월 십일조 관련 지시를 하는 정황도 확인됐습니다. 새로 입사하는 직원이 십일조를 내게끔 하라고 기존 직원에게 전화로 지시한 겁니다.

A 목사 (2022년 7월 전화녹취)
"이제 첫 월급 받으니까 하나님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십일조도 드리고, 감사헌금도 드리고 그렇게 한다고….
OO 형제(신입 직원)도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잘 우리 같이 드리자고"

장애인들의 연금통장에서도 임의로 매달 5천 원씩을 빼내, 헌금으로 거뒀다는 주장도 제기됐습니다. 직원들에게는 통상적인 범위 외의 기념일에도 돈을 걷었다고도 합니다.

"(장애인 통장에서) 매달 5천 원씩을 꺼내서, 현금으로. 매주 예배 볼 때, 일요일에 천 원씩 내는 거로 알고 있어요….
(목사) 본인 생일, 사모 생일, 스승의 날, 어버이날, 본인 무슨 박사 학위 받았다. 아들 결혼했다, 아들 아이 낳는데 백일이다, 돌이다."
- 제보자 C 씨

서울시 감사위원회에서는 시설 직원 43명 가운데 약 25%가 예배 참석과 헌금 등 종교활동을 강요당한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또, 헌법에서 규정하는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고 직원의 생활권과 인격권을 훼손했다며 이를 시정하라고 요구했습니다.

한편, 시설 측은 십일조나 헌금을 강제로 거둔 적 없고, 예배도 자유롭게 하도록 했다고 해명했습니다. 부활절이나 성탄절, 결혼기념일 등 때도 돈을 내라고 하거나 받은 적도 없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경찰은 이러한 의혹에 대해 강제수사에 착수했습니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지난 10월 해당 시설을 압수수색하고, A 목사를 사회복지사업법 위반과 장애인복지법상 업무상횡령 등 혐의로 입건하고 수사 중입니다.


■ "법인 후원금으로는 이자 수익?"…후원금 57억 원 정기예금 16개에 쪼개

이 복지시설 을 운영하는 법인에도 후원금 관리 문제가 드러났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문제의 시설을 운영하는 사회복지법인에 대한 서울시 감사위원회의 감사결과 자료를 확보했는데, 다수의 후원금 문제가 지적된 겁니다.

이 법인은 해마다 2억 원이 넘는 후원금을 기탁받고 있는데, 이런 후원금을 쌓아 이율이 높은 정기예금에 맡긴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법인 후원금으로 가입된 정기예금은 모두 16개, 원금 총액은 58억 원에 달했습니다.

서울시 감사위원회의 감사 결과 일부. 후원금으로 총 16개의 정기예금에 가입한 사실이 확인됐다.


이렇게 후원금을 쌓아 두며 금융상품에 투자하는 게 바람직한 일일까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후원금의 성격과 취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후원금을 낸 이유는 장애인들이나 산하 시설을 위한 사업에 제때 쓰라는 취지였을 것인데, 이를 제때 사용하지 않고 금융상품에 가입해 불리기만 한다면 그 취지가 무색해질 겁니다.

그래서 사회복지법인 관리안내 지침에서 ' 후원금을 될 수 있으면 적립하거나 이월하지 않고, 회계연도 내에 집행하라' 정해둔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법인에서 이렇게 얻는 이자 수익을 '후원금 세입'이 아닌 '법인 자부담금'으로 처리한 점입니다. 법인 후원금 계좌로 처리해야 하는 것을 법인의 사업으로 얻은 수익을 처리하는 계좌에 넣은 겁니다. 장애인들에게 쓰라고 모인 후원금을 제때 쓰지 않고 쌓아 이자 이익을 얻고, 사적인 이익을 축적한 게 아니냐 는 의혹이 제기 되는 이유입니다.


■ 3년 전 지자체 지적에도 반복됐던 후원금 문제

이번 감사에서는 2020년에도 법인이 비슷한 문제를 송파구청으로부터 지적받았지만, 시정하지 않은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후원금 과다이월과 예탁 문제를 지적받은 건데, 당시 재단에서는 '후원금을 쌓지 않고 취지대로 사업에 쓰겠다'며 중장기 사용계획을 제출했습니다. 그런데 이후 이 계획을 지키지 않고, 또다시 추가로 후원금 3억 원을 정기 예금에 맡긴 사실이 확인된 겁니다.

법인에 대한 행정처분명령서이에 따라, 재단은 올해 10월 행정처분을 받았습니다.

법인 측은 "서울시 감사위원회 시정 요구에 따라, 정기예금을 해지하고 관련 원금과 이자를 후원금 계좌로 넣었다"며, "다만, 코로나19로 인해 송파구청에 제출했던 후원금 사용계획을 지키지 못했다"고 해명했습니다.


■ "문제 제기 어려워"…지자체 점검도 형식적으로 그칠 가능성 커

제보자들은 큰 용기를 가지고 제보를 결심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신분 노출을 극도로 꺼렸습니다.

문제를 제기하다가 사회복지업계에서 매장당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재단이 여러 곳의 복지시설을 운영하기도 하고, 업계가 좁아 문제를 제기하면 일을 이어가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사회복지시설과 재단에 대한 지자체의 점검이라도 제대로 이뤄져야겠지만, 역시 쉽지 않습니다. 법으로 지자체 등이 시설에 대해 지도감독을 할 수 있도록 권한은 보장해뒀지만, 몇 년마다 점검할지 등 구체적인 점검방식은 정해두지 않았습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지자체 입장에서도 매년 점검하라 하면 인력이 없어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조사 인력이 별도로 있으면 촘촘히 점검할 수 있을 테지만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현실적으로 점검이 매년 이뤄지기 어렵고 형식적으로 끝날 가능성이 큰 셈입니다.

보도가 나간 뒤, 방송을 보고 15년 전에 해당 시설에서 일했다는 분이 연락을 해오기도 했습니다. '본인이 일했을 당시와 변한 게 없다'고 말입니다. 얼마나 이런 문제를 쉬쉬해온 건지, 잠시 아득해졌습니다. 이번에야말로 이렇게 '사각지대'에 있는 사회복지법인과 시설의 비리 문제가 바로잡혀야 할 겁니다.


[연관 기사] 예배 강요·강제 헌금 의혹까지…장애인 복지시설에 무슨 일이? (2024년 1월 5일)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859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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