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장판 쓰다 화마에 숨진 노부부…기름 보일러는 왜 못 땠나

입력 2024.01.08 (14:15) 수정 2024.01.08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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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 현장에서 발견된 그을린 기름 보일러화재 현장에서 발견된 그을린 기름 보일러

하루 아침에 시골집이 잿더미로 변했습니다. 화염이 치솟고 샌드위치 패널로 만든 벽체에 불꽃이 옮겨 붙으면서 순식간에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무너져 내렸습니다.

80대 남편과 60대 아내가 오순도순 살던 곳, 현장에서 만난 주민들은 모두 이들 부부의 참변을 안타까워했습니다.

부부는 40년 넘게 이 마을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젊어서는 농사를 지었지만, 나이가 들고 몸이 쇠약해지면서 교류가 거의 끊겼고 자녀가 자주 찾아와 약과 음식을 전달했다고 합니다.

주민들 말에 따르면, 부부에게 안방은 단순히 잠을 자는 공간만이 아니었습니다. 방 안에선 전기밥솥과 휴대용 가스버너도 나왔습니다.

지난 3일 전북 남원시 산동면의 한 단독주택 화재 현장 (화면 제공: 전북소방본부)지난 3일 전북 남원시 산동면의 한 단독주택 화재 현장 (화면 제공: 전북소방본부)

부부의 이 아담한 보금자리이자 생활 공간은 한순간 참변의 장소로 변했습니다.

지난 3일 새벽 안방에서 잠자던 부부가 화마에 모두 숨진 겁니다. 경찰은 거동이 불편한 부부가 안방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해 참변을 당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현장에서 발견한 전기장판과 온수 매트가 불에 타 너덜너덜한 모습은 화재가 얼마나 처참했는지 보여줍니다.

소방 당국은 부부가 온수 매트 위에 전기 장판까지 올려놓았다가 과열로 불이 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엄동설한 , 따뜻한 온기를 전하던 고마운 물건이 순식간에 가정의 온기를 빼앗아 버린 겁니다.

숨진 부부가 사용하던 전기장판과 온수 매트숨진 부부가 사용하던 전기장판과 온수 매트

■난방비 지원 대상이던 부부…기름 보일러 못 땐 사연은?

숨진 부부가 살던 집에는 기름 보일러가 설치돼 있었지만 소방당국 조사 결과 노부부는 기름 보일러를 때지 않았습니다. 대신 화재 원인으로 추정되는 전기장판과 온수 매트로 겨울을 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주변 통해서 들었는데 최근 몇 년 동안 기름 보일러는 사용 안 하셨다고…."
-전북소방본부 화재조사관

화재 현장에서 발견된 기름 보일러 연통화재 현장에서 발견된 기름 보일러 연통

그런데 부부는 참변 전인 지난해 등유 지원 대상에 선정돼 난방비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정부가 난방비 사각지대를 줄이겠다며 등유와 LP가스를 사용하는 취약계층에게 최대 59만 2천 원의 난방비 구매권을 주는 사업입니다.

하지만 주민센터에는 부부가 가져가지 않은 등유 구매권이 아직 보관돼 있습니다.

주민센터는 전화도 하고 집에도 찾아갔지만, 연락이 닿지 않아 반년 넘게 전달하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전화해서 찾아가라고 연락을 드리고, 가니까 집에 아무도 안 계셔서 못 만나고 그냥 와서 현재 상태는 미수령 상태로…"
-해당 주민센터 관계자

부부에게 전달되지 못한 등유 구매권. 주민센터에 아직도 보관돼 있다부부에게 전달되지 못한 등유 구매권. 주민센터에 아직도 보관돼 있다

정부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이들 부부처럼 해당 사업 지원 대상자가 쓰지 못한 금액은 백억여 원이라고 밝혔습니다.

여러 정책적 보완을 통해 미사용 금액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지만, 지난해 말 기준으로만 보면 전체 지원 금액의 20%가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20%에는 부부의 구매권도 포함돼 있습니다.

난방비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한 정책, 그 대상이었던 부부는 여전히 사각지대에 있었습니다.

■전기장판 화재 잇따라…"인명 피해 커 주의해야!"

겨울철 난방기구 사용이 늘면서 화재 발생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소방청 자료를 보면, 지난 5년 동안 발생한 전기장판 화재는 모두 1,170건. 24명이 숨지고, 184명이 다쳤습니다.

5년간 난방기구 화재는 열선과 화목 보일러에 이어 전기장판이 3번째였지만, 인명 피해는
200여 명으로 가장 많았고 사망자도 20명이 넘었습니다.

전기장판 내부 구조가 다른 온열 기구와 다르기 때문입니다.

"전기장판 특성상 열선이 바닥 전체에 깔려 있고 몸이 거의 밀착되는 구조이다 보니까 화재 발생 우려도 크고, 인명 피해 우려도…."
-공하성/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


전문가들은 온수 매트와 전기장판, 이불을 여러 겹 겹쳐 사용할 때는 열이 쌓여 화재 확률이 높아진다고 설명합니다.

취재진이 소방대원과 함께 열화상 카메라로 실험했습니다. 온수 매트와 전기장판 전원을 켜고, 이불을 겹친 채 1시간가량 지켜봤습니다.

직접 온도를 재봤더니 설정 온도인 60도보다 10도가량 더 높게 측정됐습니다.

열화상 카메라로 촬영한 온수 매트. 최대 71.1도까지 열이 오른 장면열화상 카메라로 촬영한 온수 매트. 최대 71.1도까지 열이 오른 장면

소방 당국은 전기장판은 장시간 사용을 자제하고 보관과 관리에 유의할 것을 당부합니다. 직각으로 접어두면 열선에서 화재가 발생할 수 있으니 말아서 보관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 라텍스 소재의 침구류도 열을 축적하는 특성이 있어 다른 온열 기구와 함께 쓰지 말아야 합니다.

취재진과 소방대원이 함께 전기장판, 온수 매트, 이불을 활용해 실험하고 있는 모습취재진과 소방대원이 함께 전기장판, 온수 매트, 이불을 활용해 실험하고 있는 모습

꽁꽁 언 몸을 녹여주는 난방기구가 때론 생명과 안전을 위협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합니다.

취약계층을 위한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도 늘려야 겠지만, 이웃에 대한 관심도 더 깊어져야 합니다. 우리 곁에는 여전히 노부부처럼 난방비가 없어 전기매트 하나로 겨울을 나는 이들이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불에 타 너덜너덜해진 전기장판과 온수 매트.불에 타 너덜너덜해진 전기장판과 온수 매트.

(촬영기자: 한문현·김동균 / 그래픽: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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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기장판 쓰다 화마에 숨진 노부부…기름 보일러는 왜 못 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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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24-01-08 19:2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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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 현장에서 발견된 그을린 기름 보일러
하루 아침에 시골집이 잿더미로 변했습니다. 화염이 치솟고 샌드위치 패널로 만든 벽체에 불꽃이 옮겨 붙으면서 순식간에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무너져 내렸습니다.

80대 남편과 60대 아내가 오순도순 살던 곳, 현장에서 만난 주민들은 모두 이들 부부의 참변을 안타까워했습니다.

부부는 40년 넘게 이 마을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젊어서는 농사를 지었지만, 나이가 들고 몸이 쇠약해지면서 교류가 거의 끊겼고 자녀가 자주 찾아와 약과 음식을 전달했다고 합니다.

주민들 말에 따르면, 부부에게 안방은 단순히 잠을 자는 공간만이 아니었습니다. 방 안에선 전기밥솥과 휴대용 가스버너도 나왔습니다.

지난 3일 전북 남원시 산동면의 한 단독주택 화재 현장 (화면 제공: 전북소방본부)
부부의 이 아담한 보금자리이자 생활 공간은 한순간 참변의 장소로 변했습니다.

지난 3일 새벽 안방에서 잠자던 부부가 화마에 모두 숨진 겁니다. 경찰은 거동이 불편한 부부가 안방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해 참변을 당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현장에서 발견한 전기장판과 온수 매트가 불에 타 너덜너덜한 모습은 화재가 얼마나 처참했는지 보여줍니다.

소방 당국은 부부가 온수 매트 위에 전기 장판까지 올려놓았다가 과열로 불이 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엄동설한 , 따뜻한 온기를 전하던 고마운 물건이 순식간에 가정의 온기를 빼앗아 버린 겁니다.

숨진 부부가 사용하던 전기장판과 온수 매트
■난방비 지원 대상이던 부부…기름 보일러 못 땐 사연은?

숨진 부부가 살던 집에는 기름 보일러가 설치돼 있었지만 소방당국 조사 결과 노부부는 기름 보일러를 때지 않았습니다. 대신 화재 원인으로 추정되는 전기장판과 온수 매트로 겨울을 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주변 통해서 들었는데 최근 몇 년 동안 기름 보일러는 사용 안 하셨다고…."
-전북소방본부 화재조사관

화재 현장에서 발견된 기름 보일러 연통
그런데 부부는 참변 전인 지난해 등유 지원 대상에 선정돼 난방비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정부가 난방비 사각지대를 줄이겠다며 등유와 LP가스를 사용하는 취약계층에게 최대 59만 2천 원의 난방비 구매권을 주는 사업입니다.

하지만 주민센터에는 부부가 가져가지 않은 등유 구매권이 아직 보관돼 있습니다.

주민센터는 전화도 하고 집에도 찾아갔지만, 연락이 닿지 않아 반년 넘게 전달하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전화해서 찾아가라고 연락을 드리고, 가니까 집에 아무도 안 계셔서 못 만나고 그냥 와서 현재 상태는 미수령 상태로…"
-해당 주민센터 관계자

부부에게 전달되지 못한 등유 구매권. 주민센터에 아직도 보관돼 있다
정부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이들 부부처럼 해당 사업 지원 대상자가 쓰지 못한 금액은 백억여 원이라고 밝혔습니다.

여러 정책적 보완을 통해 미사용 금액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지만, 지난해 말 기준으로만 보면 전체 지원 금액의 20%가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20%에는 부부의 구매권도 포함돼 있습니다.

난방비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한 정책, 그 대상이었던 부부는 여전히 사각지대에 있었습니다.

■전기장판 화재 잇따라…"인명 피해 커 주의해야!"

겨울철 난방기구 사용이 늘면서 화재 발생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소방청 자료를 보면, 지난 5년 동안 발생한 전기장판 화재는 모두 1,170건. 24명이 숨지고, 184명이 다쳤습니다.

5년간 난방기구 화재는 열선과 화목 보일러에 이어 전기장판이 3번째였지만, 인명 피해는
200여 명으로 가장 많았고 사망자도 20명이 넘었습니다.

전기장판 내부 구조가 다른 온열 기구와 다르기 때문입니다.

"전기장판 특성상 열선이 바닥 전체에 깔려 있고 몸이 거의 밀착되는 구조이다 보니까 화재 발생 우려도 크고, 인명 피해 우려도…."
-공하성/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


전문가들은 온수 매트와 전기장판, 이불을 여러 겹 겹쳐 사용할 때는 열이 쌓여 화재 확률이 높아진다고 설명합니다.

취재진이 소방대원과 함께 열화상 카메라로 실험했습니다. 온수 매트와 전기장판 전원을 켜고, 이불을 겹친 채 1시간가량 지켜봤습니다.

직접 온도를 재봤더니 설정 온도인 60도보다 10도가량 더 높게 측정됐습니다.

열화상 카메라로 촬영한 온수 매트. 최대 71.1도까지 열이 오른 장면
소방 당국은 전기장판은 장시간 사용을 자제하고 보관과 관리에 유의할 것을 당부합니다. 직각으로 접어두면 열선에서 화재가 발생할 수 있으니 말아서 보관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 라텍스 소재의 침구류도 열을 축적하는 특성이 있어 다른 온열 기구와 함께 쓰지 말아야 합니다.

취재진과 소방대원이 함께 전기장판, 온수 매트, 이불을 활용해 실험하고 있는 모습
꽁꽁 언 몸을 녹여주는 난방기구가 때론 생명과 안전을 위협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합니다.

취약계층을 위한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도 늘려야 겠지만, 이웃에 대한 관심도 더 깊어져야 합니다. 우리 곁에는 여전히 노부부처럼 난방비가 없어 전기매트 하나로 겨울을 나는 이들이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불에 타 너덜너덜해진 전기장판과 온수 매트.
(촬영기자: 한문현·김동균 / 그래픽: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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