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년생 총리’ 택한 마크롱, 국정 동력 되찾을까? [특파원 리포트]

입력 2024.01.10 (09:11) 수정 2024.01.10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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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시각 9일 프랑스에서 역대 최연소 총리가 나왔습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새 총리로 가브리엘 아탈 교육부 장관을 임명했습니다.

1989년생으로 올해 만 34살인 아탈은 1984년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이 임명했을 당시 37세였던 로랑 파비우스 총리의 기록을 깨고 제5공화국 최연소 총리가 됐습니다. 공화국 역사상 최초로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공개한 총리이기도 합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소셜미디어 엑스(X)에 "제가 추진하는 국가 재무장 프로젝트를 실행할 수 있는 당신의 에너지와 헌신을 믿는다"고 밝혔습니다.

아탈 총리는 취임사에서 "저의 목표는 마크롱 대통령과 함께 프랑스의 잠재력을 발휘하도록 하는 것"이라며 "일 처리에 있어 명확한 진단을 내리고 강력하고 구체적인 조치들을 취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외신들은 마크롱 대통령이 국정 동력을 되찾기 위해 자신과 유사한 이미지의 총리를 내세웠다고 평가했습니다. 아탈은 그동안 의회와 라디오, TV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해 화려한 언변을 선보여 '마크롱 주니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습니다.

■ 중도 좌파 사회당서 정치 시작…보수 진영서도 높이 평가

아탈 총리는 프랑스 명문 파리 정치대학(시앙스포) 출신으로 2006년 중도 좌파 사회당에 가입, 정치에 입문했습니다. 2007년 대선 당시 사회당 세골렌 루아얄 후보 캠프에서 일했으며, 2014년엔 지역 시의원에 당선됐습니다.

이후 2016년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한 전진하는공화국(LREM)에 합류한 뒤 화려한 정치 경력을 쌓게 됩니다.

2017년 첫 하원의원에 당선된 그는 2018년에 당 대변인, 2020년에는 정부 대변인으로 활동했습니다. 마크롱 대통령의 재선 성공 뒤엔 공공회계 장관과 교육부 장관에 임명되는 등 탄탄대로를 걸어왔습니다.

현지시각 9일 총리 이임식에 참석한 가브리엘 아탈 프랑스 신임 총리와 전날 사임한 엘리자베트 보른 전 총리.현지시각 9일 총리 이임식에 참석한 가브리엘 아탈 프랑스 신임 총리와 전날 사임한 엘리자베트 보른 전 총리.

아탈은 교육부 장관 시절인 지난해 정교 분리 원칙을 강조하며 이슬람 의상인 '아바야(긴 드레스)' 교내 착용을 금지하고, 프랑스 학생들의 기초 학력 증진 방안을 추진하는 등 교육 개혁에 매진했습니다. 이 같은 정책에 보수 진영에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여론의 반응도 호의적입니다. 최근 공개된 한 설문조사 결과에서 현 각료 중 가장 인기 있는 장관으로 꼽히기도 했습니다. 일부 현지 언론에선 아탈이 2027년 대선에 도전할 가능성도 거론합니다.

■ 연금개혁·이민법으로 위기 맞은 마크롱, 돌파구 모색

이번 총리 인사는 연금 개혁과 이민법 등으로 정치적 위기에 직면한 마크롱 대통령이 국면 전환을 위해 단행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앞서 마크롱 대통령의 집권 2기 초반 정부를 이끈 엘리자브테 보른 전 총리는 현지시각 8일 마크롱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했습니다.

보른 전 총리는 지난해 3월 정년을 기존 62세에서 64세로 올리는 연금개혁안을 강행했습니다. 여소야대 상황 속 법안 처리가 불투명해지자 하원 표결을 생략한 채 법안을 통과시켜 의회를 무시했다는 강한 반발에 직면했습니다.

최근엔 이민 문호를 좁히고 미등록 체류자의 사회복지 혜택을 축소하는 이민법 개정안 처리 과정에서 극우 진영과 타협해 법안을 처리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현직 보건부 장관이 사퇴하는 등 파장이 이어졌고, 마크롱 대통령은 결국 총리 교체 카드를 꺼내 들었습니다.

정부 지지율이 30%대로 내려앉으면서 국정 운영 동력을 잃을 위기에 처하자 새 인물을 전면에 내세워 분위기 쇄신에 나선 겁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헌법 제정 65주년을 기념해 파리 헌법위원회에서 연설하고 있다.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헌법 제정 65주년을 기념해 파리 헌법위원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 다가올 6월 유럽의회 선거·파리올림픽이 시험대

아탈의 첫 시험대는 6월 치러질 유럽의회 선거입니다.

당장 최근 여론조사에서 마린 르펜이 이끄는 극우 정당 국민연합의 지지율이 집권여당인 르네상스를 8~10%p 앞서 있어 쉽지 않은 선거가 될 전망입니다.

아탈이 분위기를 반전시키지 못한 채 유럽의회 선거에서 참패를 면치 못할 경우, 남은 임기 3년의 국정 동력은 더 악화될 가능성이 큽니다. 총리 교체를 단행한 마크롱 대통령에게 향후 달리 쓸 카드가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올여름 파리에서 열리는 하계 올림픽·패럴림픽도 사고 없이 무사히 치러내야 한다는 숙제도 있습니다.

■ 유럽에 부는 젊은 지도자 열풍…31세 총리 사례도

아탈은 34세 나이로 프랑스 현대 역사상 최연소 총리가 됐지만, 유럽 정치권에선 젊은 정치인들이 일찌감치 요직에 오르는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오스트리아에선 2017년 제바스티안 쿠르츠가 31세의 나이로 세계 최연소 총리 자리에 올랐습니다.

핀란드의 전 총리인 산나 마린도 2019년 아탈과 같은 34세 나이에 총리에 취임했습니다.

유럽에서는 2010년대부터 젊은 정치인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현상을 지각 변동에 빗대 '유스퀘이크(youthquake)'라는 정치적 용어로 지칭하기 시작했습니다. 2017년 영국 옥스포드 사전은 유스퀘이크를 올해의 단어로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유럽인들에게 젊은 지도자의 등장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아탈 총리는 마크롱 정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인사"라며 "마크롱 대통령이 레임덕에 빠지지 않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평가했습니다. 특히 그가 좌파 출신이지만, 보수 유권자들에게도 호응을 받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반면 영국 공영방송 BBC는 "대통령 후보로서 아탈은 매력적인 신동이지만, 그가 마크롱의 꼭두각시에 불과하다며 그 경이로움은 신기루에 불과할 수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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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9년생 총리’ 택한 마크롱, 국정 동력 되찾을까? [특파원 리포트]
    • 입력 2024-01-10 09:11:39
    • 수정2024-01-10 09: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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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시각 9일 프랑스에서 역대 최연소 총리가 나왔습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새 총리로 가브리엘 아탈 교육부 장관을 임명했습니다.

1989년생으로 올해 만 34살인 아탈은 1984년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이 임명했을 당시 37세였던 로랑 파비우스 총리의 기록을 깨고 제5공화국 최연소 총리가 됐습니다. 공화국 역사상 최초로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공개한 총리이기도 합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소셜미디어 엑스(X)에 "제가 추진하는 국가 재무장 프로젝트를 실행할 수 있는 당신의 에너지와 헌신을 믿는다"고 밝혔습니다.

아탈 총리는 취임사에서 "저의 목표는 마크롱 대통령과 함께 프랑스의 잠재력을 발휘하도록 하는 것"이라며 "일 처리에 있어 명확한 진단을 내리고 강력하고 구체적인 조치들을 취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외신들은 마크롱 대통령이 국정 동력을 되찾기 위해 자신과 유사한 이미지의 총리를 내세웠다고 평가했습니다. 아탈은 그동안 의회와 라디오, TV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해 화려한 언변을 선보여 '마크롱 주니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습니다.

■ 중도 좌파 사회당서 정치 시작…보수 진영서도 높이 평가

아탈 총리는 프랑스 명문 파리 정치대학(시앙스포) 출신으로 2006년 중도 좌파 사회당에 가입, 정치에 입문했습니다. 2007년 대선 당시 사회당 세골렌 루아얄 후보 캠프에서 일했으며, 2014년엔 지역 시의원에 당선됐습니다.

이후 2016년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한 전진하는공화국(LREM)에 합류한 뒤 화려한 정치 경력을 쌓게 됩니다.

2017년 첫 하원의원에 당선된 그는 2018년에 당 대변인, 2020년에는 정부 대변인으로 활동했습니다. 마크롱 대통령의 재선 성공 뒤엔 공공회계 장관과 교육부 장관에 임명되는 등 탄탄대로를 걸어왔습니다.

현지시각 9일 총리 이임식에 참석한 가브리엘 아탈 프랑스 신임 총리와 전날 사임한 엘리자베트 보른 전 총리.
아탈은 교육부 장관 시절인 지난해 정교 분리 원칙을 강조하며 이슬람 의상인 '아바야(긴 드레스)' 교내 착용을 금지하고, 프랑스 학생들의 기초 학력 증진 방안을 추진하는 등 교육 개혁에 매진했습니다. 이 같은 정책에 보수 진영에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여론의 반응도 호의적입니다. 최근 공개된 한 설문조사 결과에서 현 각료 중 가장 인기 있는 장관으로 꼽히기도 했습니다. 일부 현지 언론에선 아탈이 2027년 대선에 도전할 가능성도 거론합니다.

■ 연금개혁·이민법으로 위기 맞은 마크롱, 돌파구 모색

이번 총리 인사는 연금 개혁과 이민법 등으로 정치적 위기에 직면한 마크롱 대통령이 국면 전환을 위해 단행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앞서 마크롱 대통령의 집권 2기 초반 정부를 이끈 엘리자브테 보른 전 총리는 현지시각 8일 마크롱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했습니다.

보른 전 총리는 지난해 3월 정년을 기존 62세에서 64세로 올리는 연금개혁안을 강행했습니다. 여소야대 상황 속 법안 처리가 불투명해지자 하원 표결을 생략한 채 법안을 통과시켜 의회를 무시했다는 강한 반발에 직면했습니다.

최근엔 이민 문호를 좁히고 미등록 체류자의 사회복지 혜택을 축소하는 이민법 개정안 처리 과정에서 극우 진영과 타협해 법안을 처리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현직 보건부 장관이 사퇴하는 등 파장이 이어졌고, 마크롱 대통령은 결국 총리 교체 카드를 꺼내 들었습니다.

정부 지지율이 30%대로 내려앉으면서 국정 운영 동력을 잃을 위기에 처하자 새 인물을 전면에 내세워 분위기 쇄신에 나선 겁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헌법 제정 65주년을 기념해 파리 헌법위원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 다가올 6월 유럽의회 선거·파리올림픽이 시험대

아탈의 첫 시험대는 6월 치러질 유럽의회 선거입니다.

당장 최근 여론조사에서 마린 르펜이 이끄는 극우 정당 국민연합의 지지율이 집권여당인 르네상스를 8~10%p 앞서 있어 쉽지 않은 선거가 될 전망입니다.

아탈이 분위기를 반전시키지 못한 채 유럽의회 선거에서 참패를 면치 못할 경우, 남은 임기 3년의 국정 동력은 더 악화될 가능성이 큽니다. 총리 교체를 단행한 마크롱 대통령에게 향후 달리 쓸 카드가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올여름 파리에서 열리는 하계 올림픽·패럴림픽도 사고 없이 무사히 치러내야 한다는 숙제도 있습니다.

■ 유럽에 부는 젊은 지도자 열풍…31세 총리 사례도

아탈은 34세 나이로 프랑스 현대 역사상 최연소 총리가 됐지만, 유럽 정치권에선 젊은 정치인들이 일찌감치 요직에 오르는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오스트리아에선 2017년 제바스티안 쿠르츠가 31세의 나이로 세계 최연소 총리 자리에 올랐습니다.

핀란드의 전 총리인 산나 마린도 2019년 아탈과 같은 34세 나이에 총리에 취임했습니다.

유럽에서는 2010년대부터 젊은 정치인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현상을 지각 변동에 빗대 '유스퀘이크(youthquake)'라는 정치적 용어로 지칭하기 시작했습니다. 2017년 영국 옥스포드 사전은 유스퀘이크를 올해의 단어로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유럽인들에게 젊은 지도자의 등장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아탈 총리는 마크롱 정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인사"라며 "마크롱 대통령이 레임덕에 빠지지 않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평가했습니다. 특히 그가 좌파 출신이지만, 보수 유권자들에게도 호응을 받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반면 영국 공영방송 BBC는 "대통령 후보로서 아탈은 매력적인 신동이지만, 그가 마크롱의 꼭두각시에 불과하다며 그 경이로움은 신기루에 불과할 수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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