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 요청 받고도 “CCTV 녹화 안 됐다”…8살 아들 떠나보낸 부모는 울었다 [취재후]

입력 2024.01.10 (14:08) 수정 2024.01.10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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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얗고 투명한 피부에 애교가 많아 가족들에게 '아기'라고 불렸던 8살 임 모 군.

놀이터에서 땀에 흠뻑 젖을 만큼 활기차게 뛰어놀곤 했던 이 아이는 결국 가족과 함께 새해를 맞이하지 못하고 지난해 12월 세상을 떠났습니다.

서울 강남의 한 안과에서 안검하수 수술을 받다가 응급실로 실려 간 뒤 불과 나흘 만이었습니다.

■ 전신마취 후 안검하수 수술…사전에 '촬영 요청'

임 군은 태어날 때부터 상대적으로 눈꺼풀이 처져 있었다고 합니다. 아이가 자라면서 일상생활에서 TV나 책을 볼 때 불편해하는 모습, 그리고 결국 시력에도 안 좋은 영향이 생긴 걸 보며 수술에 대한 결심을 굳혔다고 합니다.

지난해 12월 22일로 수술 날짜를 잡은 건 약 1년 전, 수술 2주 전쯤 사전 검사를 진행했고 특이한 이상 소견 없이 그대로 수술을 진행해도 된다는 이야기를 전달받았습니다. 전신마취에 대한 우려는 있었지만, 수술 상담을 할 때부터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고 했습니다.

임 군 수술 2주 전 사전 검사 당시 병원 측으로부터 제공받은 수술 장면 촬영 요청서 사본임 군 수술 2주 전 사전 검사 당시 병원 측으로부터 제공받은 수술 장면 촬영 요청서 사본

사전 검사 당일 의료진으로부터 안내받았던 것 중 하나는 '수술 장면 촬영 요청서' 였습니다.

지난해 9월부터 시행된 의료법 개정안에 따라 전신마취 등의 수술을 하는 경우엔 수술실 내 CCTV를 반드시 설치해야 하고, 환자 요청이 있다면 수술 장면을 촬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위 법에 따라 병원 측이 먼저 임 군 가족에게 CCTV 촬영 요청서를 제시했고, 임 군의 아빠는 여기에 서명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 요청서, 그리고 수술실 CCTV 영상이 그렇게 중요해질 줄은 차마 몰랐습니다.

■마취 부작용 앓다가…수술 나흘 만에 사망

수술 당일 무서워하는 아이를 달래며 수술실로 들여보낸 뒤, 수술 약 1시간여가 지났을 때쯤 의료진으로부터 예상치 못한 연락이 왔습니다. '응급상황이 발생해 수술 대기실 쪽으로 와달라'는 거였습니다.

임 군 가족들이 달려가 본 현장엔 의식을 잃은 것처럼 보이는 아이, 그리고 들것에 아이를 태우고 이동하는 구급대원들이 있었습니다. 상황 파악조차 되지 않은 채 함께 구급차를 타고 대형병원 응급실로 이동했고 그곳에서 아이의 정확한 상태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처음 들은 소견이 '악성 고열증이라고 굉장히 희귀하게 발생하는 마취 부작용이다. 아이의 특이 체질 때문에 발생이 된 거다'였는데, (안과) 마취의가 '마취를 하는 과정에서 그런 일이 생겼고 최선의 조치를 취해서 겨우 살았다'고 해서 저희는 그때 너무 감사했어요.
- 임 군 아버지

지난해 12월 26일 수술 전신마취 부작용으로 세상을 떠난 임 군지난해 12월 26일 수술 전신마취 부작용으로 세상을 떠난 임 군

일차적인 응급처치 후 임 군은 중환자실로 옮겨졌지만, 상태는 쉽게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크리스마스 다음 날인 지난해 12월 26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 확인 요청에 그제야 "CCTV 녹화가 안 됐다"

임 군 부모는 사망 소식을 병원 측에 알리면서 장례를 치르러 본가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기 전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아이에 대한 의무기록과 수술실 CCTV 등 자료 제공도 함께 요청했습니다. 아이를 보내기 전 혹시 모를 사고가 있었던 건 아닌지 정확한 상황 파악을 하고 싶었던 겁니다.

하지만 이튿날 병원 측과 나눈 긴 시간의 면담 끝에 병원 관계자는 그제 서야 '당시 수술실 CCTV가 녹화되지 않았다'고 털어놨습니다.


임 군 유족들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앞서 병원 측이 먼저 제시했던 '수술 장면 촬영 요청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수술 당일 전신마취 과정을 설명할 때 임 군 부모가 '아이에게 마취 과정이 부담되진 않을까' 하는 우려를 표하자, 의료진은 '수술실에 CCTV가 돌아가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며 안심시키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같은 자리에서 병원장은 반복되는 CCTV 영상 요청에 '수사를 받겠다'는 말로 일관했습니다.

진짜 전문가들한테 제대로 된 수사를 받겠습니다. CCTV가 없어졌다면 거기에 대한 페널티도 또 받을 거고 제대로 된 수사를 하여튼 받을 겁니다.
- A 안과 병원장 (2023년 12월 27일 면담 중)

이후에도 병원 측에 계속 연락을 취해봤지만 '녹화가 안 됐다'는 같은 답변만 돌아올 뿐이었습니다.

■병원 측 "의도적 미녹화 아냐"…경찰 수사 착수

병원 측은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당시 임 군 수술장면이 녹화되지 않은 점을 인정하면서 임 군의 사망에 애도를 표했습니다. 다만 의도적으로 CCTV 녹화를 하지 않거나 녹화된 영상을 삭제한 건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전신마취와 국소마취를 혼용하는 특정 수술방에 대해 녹화옵션을 자동 녹화에서 수동 녹화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부서 간 소통 오류로 인해 해당 수술실이 녹화되지 못했습니다.
해당 기간의 CCTV 서버 데이터는 모두 수사기관에 제출했으며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습니다.
- A 안과 측 입장

KBS 취재진과 인터뷰를 진행한 임 군 부모KBS 취재진과 인터뷰를 진행한 임 군 부모

임 군 부모는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소중한 막내아들을 너무 갑작스럽게 떠나보냈다는 생각만 하면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의사 선생님들이 얘기하신 대로 최선의 조치를 다 하셨다면 저는 이건 우리 아이의 운명이라고 생각을 하고 마음의 짐을 덜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모두가 최선을 다해서 이만큼 했는데 네가 이렇게 떠나는 거는 이게 너의 운명이고 어쩔 수 없는 상황이구나' 그런 마음으로 애를 마지막에 보내주고 싶어서...
- 임 군 아버지

병원 측의 입장을 그대로 따르고만 있을 순 없었던 임 군 부모는 병원 관계자들을 경찰에 고소한 상태입니다.

현행법에 따라 수술실 CCTV 설치 의무 혹은 환자 요청에 따른 촬영 의무를 어기면 '5백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집니다. 다만 수술실 CCTV 영상을 누출하거나 변조·훼손한 경우라면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그 수위를 더 높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경찰은 병원 수술실 CCTV 하드디스크를 확보해 포렌식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임 군 수술 장면의 CCTV 녹화 여부, 그리고 병원 측 주장의 사실 여부가 가려질 거로 보입니다.

[연관 기사] [단독] 수술 후 숨진 8살 아들…“CCTV 영상은 녹화 안 됐다”? (2024. 01. 09.)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862071

(그래픽: 권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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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촬영 요청 받고도 “CCTV 녹화 안 됐다”…8살 아들 떠나보낸 부모는 울었다 [취재후]
    • 입력 2024-01-10 14:08:47
    • 수정2024-01-10 17:50:47
    취재후·사건후

하얗고 투명한 피부에 애교가 많아 가족들에게 '아기'라고 불렸던 8살 임 모 군.

놀이터에서 땀에 흠뻑 젖을 만큼 활기차게 뛰어놀곤 했던 이 아이는 결국 가족과 함께 새해를 맞이하지 못하고 지난해 12월 세상을 떠났습니다.

서울 강남의 한 안과에서 안검하수 수술을 받다가 응급실로 실려 간 뒤 불과 나흘 만이었습니다.

■ 전신마취 후 안검하수 수술…사전에 '촬영 요청'

임 군은 태어날 때부터 상대적으로 눈꺼풀이 처져 있었다고 합니다. 아이가 자라면서 일상생활에서 TV나 책을 볼 때 불편해하는 모습, 그리고 결국 시력에도 안 좋은 영향이 생긴 걸 보며 수술에 대한 결심을 굳혔다고 합니다.

지난해 12월 22일로 수술 날짜를 잡은 건 약 1년 전, 수술 2주 전쯤 사전 검사를 진행했고 특이한 이상 소견 없이 그대로 수술을 진행해도 된다는 이야기를 전달받았습니다. 전신마취에 대한 우려는 있었지만, 수술 상담을 할 때부터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고 했습니다.

임 군 수술 2주 전 사전 검사 당시 병원 측으로부터 제공받은 수술 장면 촬영 요청서 사본
사전 검사 당일 의료진으로부터 안내받았던 것 중 하나는 '수술 장면 촬영 요청서' 였습니다.

지난해 9월부터 시행된 의료법 개정안에 따라 전신마취 등의 수술을 하는 경우엔 수술실 내 CCTV를 반드시 설치해야 하고, 환자 요청이 있다면 수술 장면을 촬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위 법에 따라 병원 측이 먼저 임 군 가족에게 CCTV 촬영 요청서를 제시했고, 임 군의 아빠는 여기에 서명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 요청서, 그리고 수술실 CCTV 영상이 그렇게 중요해질 줄은 차마 몰랐습니다.

■마취 부작용 앓다가…수술 나흘 만에 사망

수술 당일 무서워하는 아이를 달래며 수술실로 들여보낸 뒤, 수술 약 1시간여가 지났을 때쯤 의료진으로부터 예상치 못한 연락이 왔습니다. '응급상황이 발생해 수술 대기실 쪽으로 와달라'는 거였습니다.

임 군 가족들이 달려가 본 현장엔 의식을 잃은 것처럼 보이는 아이, 그리고 들것에 아이를 태우고 이동하는 구급대원들이 있었습니다. 상황 파악조차 되지 않은 채 함께 구급차를 타고 대형병원 응급실로 이동했고 그곳에서 아이의 정확한 상태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처음 들은 소견이 '악성 고열증이라고 굉장히 희귀하게 발생하는 마취 부작용이다. 아이의 특이 체질 때문에 발생이 된 거다'였는데, (안과) 마취의가 '마취를 하는 과정에서 그런 일이 생겼고 최선의 조치를 취해서 겨우 살았다'고 해서 저희는 그때 너무 감사했어요.
- 임 군 아버지

지난해 12월 26일 수술 전신마취 부작용으로 세상을 떠난 임 군
일차적인 응급처치 후 임 군은 중환자실로 옮겨졌지만, 상태는 쉽게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크리스마스 다음 날인 지난해 12월 26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 확인 요청에 그제야 "CCTV 녹화가 안 됐다"

임 군 부모는 사망 소식을 병원 측에 알리면서 장례를 치르러 본가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기 전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아이에 대한 의무기록과 수술실 CCTV 등 자료 제공도 함께 요청했습니다. 아이를 보내기 전 혹시 모를 사고가 있었던 건 아닌지 정확한 상황 파악을 하고 싶었던 겁니다.

하지만 이튿날 병원 측과 나눈 긴 시간의 면담 끝에 병원 관계자는 그제 서야 '당시 수술실 CCTV가 녹화되지 않았다'고 털어놨습니다.


임 군 유족들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앞서 병원 측이 먼저 제시했던 '수술 장면 촬영 요청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수술 당일 전신마취 과정을 설명할 때 임 군 부모가 '아이에게 마취 과정이 부담되진 않을까' 하는 우려를 표하자, 의료진은 '수술실에 CCTV가 돌아가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며 안심시키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같은 자리에서 병원장은 반복되는 CCTV 영상 요청에 '수사를 받겠다'는 말로 일관했습니다.

진짜 전문가들한테 제대로 된 수사를 받겠습니다. CCTV가 없어졌다면 거기에 대한 페널티도 또 받을 거고 제대로 된 수사를 하여튼 받을 겁니다.
- A 안과 병원장 (2023년 12월 27일 면담 중)

이후에도 병원 측에 계속 연락을 취해봤지만 '녹화가 안 됐다'는 같은 답변만 돌아올 뿐이었습니다.

■병원 측 "의도적 미녹화 아냐"…경찰 수사 착수

병원 측은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당시 임 군 수술장면이 녹화되지 않은 점을 인정하면서 임 군의 사망에 애도를 표했습니다. 다만 의도적으로 CCTV 녹화를 하지 않거나 녹화된 영상을 삭제한 건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전신마취와 국소마취를 혼용하는 특정 수술방에 대해 녹화옵션을 자동 녹화에서 수동 녹화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부서 간 소통 오류로 인해 해당 수술실이 녹화되지 못했습니다.
해당 기간의 CCTV 서버 데이터는 모두 수사기관에 제출했으며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습니다.
- A 안과 측 입장

KBS 취재진과 인터뷰를 진행한 임 군 부모
임 군 부모는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소중한 막내아들을 너무 갑작스럽게 떠나보냈다는 생각만 하면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의사 선생님들이 얘기하신 대로 최선의 조치를 다 하셨다면 저는 이건 우리 아이의 운명이라고 생각을 하고 마음의 짐을 덜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모두가 최선을 다해서 이만큼 했는데 네가 이렇게 떠나는 거는 이게 너의 운명이고 어쩔 수 없는 상황이구나' 그런 마음으로 애를 마지막에 보내주고 싶어서...
- 임 군 아버지

병원 측의 입장을 그대로 따르고만 있을 순 없었던 임 군 부모는 병원 관계자들을 경찰에 고소한 상태입니다.

현행법에 따라 수술실 CCTV 설치 의무 혹은 환자 요청에 따른 촬영 의무를 어기면 '5백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집니다. 다만 수술실 CCTV 영상을 누출하거나 변조·훼손한 경우라면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그 수위를 더 높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경찰은 병원 수술실 CCTV 하드디스크를 확보해 포렌식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임 군 수술 장면의 CCTV 녹화 여부, 그리고 병원 측 주장의 사실 여부가 가려질 거로 보입니다.

[연관 기사] [단독] 수술 후 숨진 8살 아들…“CCTV 영상은 녹화 안 됐다”? (2024. 01. 09.)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862071

(그래픽: 권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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