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한 미래’에 영국·프랑스도 아이 덜 낳는다 [특파원 리포트]

입력 2024.01.1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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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저출생 얘기입니다. 영국, 프랑스도 최근 출생률 하락으로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저출생 문제를 언급할 때마다 비교적 출생률이 높은 사례로 꼽히던 나라들입니다.

물론 한국보다는 사정이 훨씬 낫습니다.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 수)이 한국은 2022년 기준 0.78명인데 비해, 프랑스는 1.8명이고, 영국은 2021년 기준 1.61명입니다. 문제는 프랑스와 영국 모두 출생률이 뚜렷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상당수 다른 유럽 국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탈리아 역시 출생률이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이를 두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저출생 문제는 서구사회가 직면한 가장 큰 위기 중 하나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최저

프랑스에서는 지난해 1월~11월, 62만 1천 691명이 태어났습니다. 전년도 같은 기간보다 4만 5천여 명(6.8%)이 덜 태어난 겁니다.

프랑스 통계청이 발표한 마지막 달인 지난해 11월 한 달만 놓고 보면 5만 6천297명이 태어나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1%가 줄었습니다. 17개월 연속 감소세입니다.

2022년 출생아 수는 72만 6천 명으로, 2021년보다 2.2% 줄었는데, 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최저치입니다. 2022년에는 프랑스령 마요트와 코르시카를 제외한 프랑스 전역에서 출생아 수가 감소했습니다.

아직 발표되지 않은 지난해 12월 출생아 수까지 합산하면 지난해 전체 출생아 수는 다시 사상 최저치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코로나19 봉쇄 조치 이후 2021년 출생아 수가 소폭 반등했던 것을 제외하면 2011년 이후 10년 넘게 내림세가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영국에서는 2022년 60만 5천 479명이 태어났습니다. 2021년보다 출생아 수가 3.1% 줄었습니다. 영국 출생아는 2002년부터 꾸준히 감소해서 20년 만에 최저 수준이 됐습니다.

합계출산율도 2010년 1.94 명에서 2021년 1.61 명으로 줄었습니다.

■ "아이 가지기도 전에 돈 걱정부터"

프랑스 통계청은 인구통계학적 요인으로 가임기 여성의 수가 감소한 영향이 크다고 분석합니다. 사회적 요인도 있습니다.

나라마다 복합적인 원인이 있긴 하지만 프랑스와 영국, 양국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불확실한 미래를 저출생의 주요 원인으로 꼽습니다.

프랑스 엑상 마르세유 대학교의 사회학 및 인구학 강사인 캐서린 스코넷은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 가족을 꾸리려면 희망을 가져야 하는데, 젊은 세대는 미래에 대해 더 걱정할 수 있다" 말합니다.

특히 불확실한 경제 환경이 아이를 낳고 싶은 욕구를 약화 시킬 수 있는 '불확실성의 기후'를 조성하고 있다고 스코넷은 설명합니다. 또 여기에는 높은 인플레이션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전쟁, 지구 온난화 등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영국 중도우파 싱크탱크인 온워드의 세바스천 페인 소장은 '더 타임스' 기고문에서, 아이를 가지는 데 드는 비용으로 인해 영국인들이 아이 갖기를 미루거나 적게 갖는다고 지적했습니다. 아이를 가지기도 전에 돈 걱정부터 시작된다는 겁니다.

페인은 한 연구 결과를 인용해, 영국 여성의 약 절반이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아이 갖기를 미루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영국 여성들이 평생 원하는 아기 수가 평균 2.32명인데, 경제적 문제가 이를 가로막고 있는 것으로도 조사됐습니다. 구체적으로는 한 번에 7천 파운드, 우리 돈 1천173만 원 정도가 드는 난임 치료비와 보육비, 주거비 등에 대한 걱정이 큰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영국에서 2세 미만 아동의 주 25시간 보육시설 이용 비용은 주당 평균 140파운드, 우리 돈 23만 원 이상입니다. 임차료가 유독 높은 영국에서 주거비 부담도 출산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 "자유로운 삶 추구도 영향"

단지 돈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결혼과 출산, 보육에 대한 가치관 변화, 달라진 사회적 분위기 영향도 있습니다.

프랑스 엑상 마르세유 대학교 강사인 캐서린 스코넷은 '개인의 해방', '자유로운 삶' 등의 이유로 자녀를 적게 낳거나 아예 낳지 않기로 결정한 사람들도 있다고 말합니다. 이들은 다른 일들에 우선 순위를 둬 자유로운 상태를 선호한다는 겁니다.

또 일부 여성들은 모성애 외에 다른 개인적 혹은 직업적 영역에 투자하고 성취감을 더 느끼고 있다고도 분석했습니다.

■ 하락세 멈추게 하려면?

출생률 하락세를 멈추게 하려면 현재로서는 일과 가정생활을 병행하도록 하는 게 핵심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영국 싱크탱크 온워드의 세바스천 페인 소장은 법정 남성 출산 휴가 기간에 대한 문제를 짚었습니다. 현재 2주뿐인 영국의 남성 출산 휴가를 더 늘려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현재 한국의 배우자 출산 휴가는 열흘입니다.

프랑스 국립인구통계연구소의 연구 책임자인 로랑 톨레몽은 부모의 삶과 출산 간 연관성에 대해서 주목했습니다.

프랑스 국립인구통계연구소 연구 책임자 로랑 톨레몽 (AFP와 인터뷰 중)

"출생률을 높이기 위한 효과적인 공공 정책은 부모들의 삶을 편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야 아이 낳기를 꺼리는 사람들이 아이를 낳는 데 극복할 수 없을 정도의 희생이 필요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반면 아이가 태어났을 때 금전적으로 지원해주는 장려책은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다고, 로랑 톨레몽은 지적합니다. 사람들이 아이를 갖게 되면 장기적인 지출이 뒤따른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톨레몽은 적극적인 정책에도 불구하고 출생률이 여전히 낮은 한국의 사례도 들었습니다. 툴레몽은 "여성들이 사회적 규범 때문에 아이를 키우기 위해 여전히 엄청난 희생을 치러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한국의 저출생 문제를 주제로 보고서를 낸 윌렘 아데마 OECD 수석 연구원 역시 KBS와의 인터뷰에서, 출산 문제에서 중요한 건 '배우자 간 신뢰'라고 말했습니다. 아이를 낳은 후에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이 아닌, 함께 잘 키울 수 있을 거라는 믿음과 확신이 저출생 문제를 해결할 핵심 열쇠라고 강조했습니다. 이는 비단 한국만이 아닌 저출생 문제로 고민하는 모든 나라에 해당한다고 아데마 연구원은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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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확실한 미래’에 영국·프랑스도 아이 덜 낳는다 [특파원 리포트]
    • 입력 2024-01-11 08: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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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저출생 얘기입니다. 영국, 프랑스도 최근 출생률 하락으로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저출생 문제를 언급할 때마다 비교적 출생률이 높은 사례로 꼽히던 나라들입니다.

물론 한국보다는 사정이 훨씬 낫습니다.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 수)이 한국은 2022년 기준 0.78명인데 비해, 프랑스는 1.8명이고, 영국은 2021년 기준 1.61명입니다. 문제는 프랑스와 영국 모두 출생률이 뚜렷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상당수 다른 유럽 국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탈리아 역시 출생률이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이를 두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저출생 문제는 서구사회가 직면한 가장 큰 위기 중 하나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최저

프랑스에서는 지난해 1월~11월, 62만 1천 691명이 태어났습니다. 전년도 같은 기간보다 4만 5천여 명(6.8%)이 덜 태어난 겁니다.

프랑스 통계청이 발표한 마지막 달인 지난해 11월 한 달만 놓고 보면 5만 6천297명이 태어나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1%가 줄었습니다. 17개월 연속 감소세입니다.

2022년 출생아 수는 72만 6천 명으로, 2021년보다 2.2% 줄었는데, 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최저치입니다. 2022년에는 프랑스령 마요트와 코르시카를 제외한 프랑스 전역에서 출생아 수가 감소했습니다.

아직 발표되지 않은 지난해 12월 출생아 수까지 합산하면 지난해 전체 출생아 수는 다시 사상 최저치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코로나19 봉쇄 조치 이후 2021년 출생아 수가 소폭 반등했던 것을 제외하면 2011년 이후 10년 넘게 내림세가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영국에서는 2022년 60만 5천 479명이 태어났습니다. 2021년보다 출생아 수가 3.1% 줄었습니다. 영국 출생아는 2002년부터 꾸준히 감소해서 20년 만에 최저 수준이 됐습니다.

합계출산율도 2010년 1.94 명에서 2021년 1.61 명으로 줄었습니다.

■ "아이 가지기도 전에 돈 걱정부터"

프랑스 통계청은 인구통계학적 요인으로 가임기 여성의 수가 감소한 영향이 크다고 분석합니다. 사회적 요인도 있습니다.

나라마다 복합적인 원인이 있긴 하지만 프랑스와 영국, 양국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불확실한 미래를 저출생의 주요 원인으로 꼽습니다.

프랑스 엑상 마르세유 대학교의 사회학 및 인구학 강사인 캐서린 스코넷은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 가족을 꾸리려면 희망을 가져야 하는데, 젊은 세대는 미래에 대해 더 걱정할 수 있다" 말합니다.

특히 불확실한 경제 환경이 아이를 낳고 싶은 욕구를 약화 시킬 수 있는 '불확실성의 기후'를 조성하고 있다고 스코넷은 설명합니다. 또 여기에는 높은 인플레이션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전쟁, 지구 온난화 등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영국 중도우파 싱크탱크인 온워드의 세바스천 페인 소장은 '더 타임스' 기고문에서, 아이를 가지는 데 드는 비용으로 인해 영국인들이 아이 갖기를 미루거나 적게 갖는다고 지적했습니다. 아이를 가지기도 전에 돈 걱정부터 시작된다는 겁니다.

페인은 한 연구 결과를 인용해, 영국 여성의 약 절반이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아이 갖기를 미루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영국 여성들이 평생 원하는 아기 수가 평균 2.32명인데, 경제적 문제가 이를 가로막고 있는 것으로도 조사됐습니다. 구체적으로는 한 번에 7천 파운드, 우리 돈 1천173만 원 정도가 드는 난임 치료비와 보육비, 주거비 등에 대한 걱정이 큰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영국에서 2세 미만 아동의 주 25시간 보육시설 이용 비용은 주당 평균 140파운드, 우리 돈 23만 원 이상입니다. 임차료가 유독 높은 영국에서 주거비 부담도 출산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 "자유로운 삶 추구도 영향"

단지 돈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결혼과 출산, 보육에 대한 가치관 변화, 달라진 사회적 분위기 영향도 있습니다.

프랑스 엑상 마르세유 대학교 강사인 캐서린 스코넷은 '개인의 해방', '자유로운 삶' 등의 이유로 자녀를 적게 낳거나 아예 낳지 않기로 결정한 사람들도 있다고 말합니다. 이들은 다른 일들에 우선 순위를 둬 자유로운 상태를 선호한다는 겁니다.

또 일부 여성들은 모성애 외에 다른 개인적 혹은 직업적 영역에 투자하고 성취감을 더 느끼고 있다고도 분석했습니다.

■ 하락세 멈추게 하려면?

출생률 하락세를 멈추게 하려면 현재로서는 일과 가정생활을 병행하도록 하는 게 핵심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영국 싱크탱크 온워드의 세바스천 페인 소장은 법정 남성 출산 휴가 기간에 대한 문제를 짚었습니다. 현재 2주뿐인 영국의 남성 출산 휴가를 더 늘려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현재 한국의 배우자 출산 휴가는 열흘입니다.

프랑스 국립인구통계연구소의 연구 책임자인 로랑 톨레몽은 부모의 삶과 출산 간 연관성에 대해서 주목했습니다.

프랑스 국립인구통계연구소 연구 책임자 로랑 톨레몽 (AFP와 인터뷰 중)

"출생률을 높이기 위한 효과적인 공공 정책은 부모들의 삶을 편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야 아이 낳기를 꺼리는 사람들이 아이를 낳는 데 극복할 수 없을 정도의 희생이 필요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반면 아이가 태어났을 때 금전적으로 지원해주는 장려책은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다고, 로랑 톨레몽은 지적합니다. 사람들이 아이를 갖게 되면 장기적인 지출이 뒤따른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톨레몽은 적극적인 정책에도 불구하고 출생률이 여전히 낮은 한국의 사례도 들었습니다. 툴레몽은 "여성들이 사회적 규범 때문에 아이를 키우기 위해 여전히 엄청난 희생을 치러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한국의 저출생 문제를 주제로 보고서를 낸 윌렘 아데마 OECD 수석 연구원 역시 KBS와의 인터뷰에서, 출산 문제에서 중요한 건 '배우자 간 신뢰'라고 말했습니다. 아이를 낳은 후에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이 아닌, 함께 잘 키울 수 있을 거라는 믿음과 확신이 저출생 문제를 해결할 핵심 열쇠라고 강조했습니다. 이는 비단 한국만이 아닌 저출생 문제로 고민하는 모든 나라에 해당한다고 아데마 연구원은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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