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서 사라진 프로포폴 행방은?…마약 실태 추적기 [취재후]

입력 2024.01.12 (15:09) 수정 2024.01.12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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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청정국이란 말은 옛말이 된 지 오랩니다.
"구매까지 10분이 채 안 걸려요." 마약 사건을 주로 다뤘던 지인 변호사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불법 시장에 유통되는 마약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취재 과정에서 만난 수많은 마약 관련 피의자들을 보며 들었던 의문이었습니다.

'의료용 마약류 174만 개가 국가 감시망에서 사라졌다.'
지난해 11월 감사원은 이 같은 식약처 정기감사 결과를 공개했습니다.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르면, 의료기관의 '폐업'이 문제였습니다.
의료기관이 폐업할 때 남은 마약이 국가 감시망에서 벗어난 겁니다.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마약 출처에 대한 의문에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 920곳 보고 누락…의료인 범죄 피의자 추적

의료기관은 폐업 시 보유했던 마약류를 어떻게 처리했는지 식약처장에게 보고해야 합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절차는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감사원에 따르면, 매년 평균 의료기관 1,700여 개가 폐업하고, 이 가운데 14%가량이 남아있는 마약류를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국가 추적망에서 사라진 마약류는 174만 개, 의료기관 920곳이 보고를 누락했습니다.

9시 뉴스 방송화면9시 뉴스 방송화면

920곳을 취재 기준점으로 삼았습니다.
이들 가운데 문제가 될 만한 병·의원들을 추렸습니다.
4년간 상습적으로 개·폐업을 하면서 반복적으로 보고를 누락한 의원들, 스스로 '셀프' 마약 처방을 한 의료기관들을 순차적으로 뽑아냈습니다.
이와 동시에 불법 마약 유통에 관여한 혐의로 경찰에 입건된 병원장들을 취재했습니다.
그렇게 2달여 간 경찰, 식약처,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복지부, 감사원에 질문과 대답을 반복하며 실태를 추적했습니다.

염○○ /  ‘롤스로이스 사건’ 관련 프로포폴 불법 처방 혐의 피의자염○○ / ‘롤스로이스 사건’ 관련 프로포폴 불법 처방 혐의 피의자

그 결과 프로포폴을 브로커에 판 혐의로 실형 1년 6개월을 선고받은 의사, 개·폐원을 반복하면서 셀프 마약 처방을 한 성형외과 원장, 이른바 '롤스로이스 사건'으로 구속된 의사 등이 감사원에서 지적한 의료기관에 포함된 것을 확인했습니다.
국가 감시망에서 벗어난 마약이 불법 시장으로 유통됐을 개연성이 높단 게 취재로 증명됐습니다. 최종적으로 추려낸 의료기관은 직접 찾아다니며, 현장 취재를 더했습니다.


■ 잔여 마약 처리 확인 없었던 식약처...관련 법에도 '공백'

'의료용 마약류' 감시의 1차적인 책임은 식약처에 있습니다.
식약처는 마약류관리통합시스템을 통해 시중에 있는 모든 '의료용 마약'을 추적 관리합니다.
취재하면서 확인된 건, 그간 식약처는 의료기관이 폐업할 때 잔여 마약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별도의 보고를 받지 않았을뿐더러, 확인 절차도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의료기관이 폐업할 때 남아있는 마약류를 관리하는 국가 감시망은 작동하지 않았던 겁니다.

기사에 미처 담진 못했지만, 관련 법에도 공백이 있는 걸 확인했습니다.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제8조에 따르면 마약류 취급자가 폐업할 경우에는 총리령에 따라 해당 허가관청(식약처)에 신고해야 합니다.
다만 단서 조항이 있습니다. 의료기관 개설자가 '의료법 40조에 따라 의료업의 폐업 등을 신고한 경우'에는 위 신고를 따로 하지 않아도 됩니다.
다시 말해 의사가 의료기관 폐업 신고를 하면, 굳이 식약처에 따로 관련 신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겁니다.
이 때문에 '의료용 마약류'를 총괄 감독하는 식약처가 정작 현장 의료기관의 폐업 여부를 모르는 공백이 생겼던 겁니다.


KBS 취재가 시작되자 식약처는 "의료기관 폐업 시 보유한 마약류 관리 등에 대한 사항이 명확히 규정되어 있지 않았다"며 "관계 부처와 협력을 통해 폐업 전 의료기관 등에서 보유·관리하고 있는 의료용 마약류에 대한 처분계획을 허가 관청에서 확인하는 절차를 마련하겠다"고 답했습니다.

감시 공백을 만든 법에 대한 수정 작업도 곧 시작됩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식약처 신고 의무를 면제해주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제8조에 담긴 단서 조항을 삭제하는 개정안을 조만간 발의할 예정입니다.

[연관 기사]
[단독] 10배 부풀려 팔고 셀프처방하고…“폐업하고 빼돌려”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864208&ref=A
[단독] “폐기량 없다” ‘롤스로이스 사건’ 의사도 허위보고 의심 정황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864209&re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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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병원서 사라진 프로포폴 행방은?…마약 실태 추적기 [취재후]
    • 입력 2024-01-12 15:09:45
    • 수정2024-01-12 15:57:48
    취재후·사건후

마약 청정국이란 말은 옛말이 된 지 오랩니다.
"구매까지 10분이 채 안 걸려요." 마약 사건을 주로 다뤘던 지인 변호사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불법 시장에 유통되는 마약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취재 과정에서 만난 수많은 마약 관련 피의자들을 보며 들었던 의문이었습니다.

'의료용 마약류 174만 개가 국가 감시망에서 사라졌다.'
지난해 11월 감사원은 이 같은 식약처 정기감사 결과를 공개했습니다.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르면, 의료기관의 '폐업'이 문제였습니다.
의료기관이 폐업할 때 남은 마약이 국가 감시망에서 벗어난 겁니다.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마약 출처에 대한 의문에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 920곳 보고 누락…의료인 범죄 피의자 추적

의료기관은 폐업 시 보유했던 마약류를 어떻게 처리했는지 식약처장에게 보고해야 합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절차는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감사원에 따르면, 매년 평균 의료기관 1,700여 개가 폐업하고, 이 가운데 14%가량이 남아있는 마약류를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국가 추적망에서 사라진 마약류는 174만 개, 의료기관 920곳이 보고를 누락했습니다.

9시 뉴스 방송화면
920곳을 취재 기준점으로 삼았습니다.
이들 가운데 문제가 될 만한 병·의원들을 추렸습니다.
4년간 상습적으로 개·폐업을 하면서 반복적으로 보고를 누락한 의원들, 스스로 '셀프' 마약 처방을 한 의료기관들을 순차적으로 뽑아냈습니다.
이와 동시에 불법 마약 유통에 관여한 혐의로 경찰에 입건된 병원장들을 취재했습니다.
그렇게 2달여 간 경찰, 식약처,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복지부, 감사원에 질문과 대답을 반복하며 실태를 추적했습니다.

염○○ /  ‘롤스로이스 사건’ 관련 프로포폴 불법 처방 혐의 피의자
그 결과 프로포폴을 브로커에 판 혐의로 실형 1년 6개월을 선고받은 의사, 개·폐원을 반복하면서 셀프 마약 처방을 한 성형외과 원장, 이른바 '롤스로이스 사건'으로 구속된 의사 등이 감사원에서 지적한 의료기관에 포함된 것을 확인했습니다.
국가 감시망에서 벗어난 마약이 불법 시장으로 유통됐을 개연성이 높단 게 취재로 증명됐습니다. 최종적으로 추려낸 의료기관은 직접 찾아다니며, 현장 취재를 더했습니다.


■ 잔여 마약 처리 확인 없었던 식약처...관련 법에도 '공백'

'의료용 마약류' 감시의 1차적인 책임은 식약처에 있습니다.
식약처는 마약류관리통합시스템을 통해 시중에 있는 모든 '의료용 마약'을 추적 관리합니다.
취재하면서 확인된 건, 그간 식약처는 의료기관이 폐업할 때 잔여 마약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별도의 보고를 받지 않았을뿐더러, 확인 절차도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의료기관이 폐업할 때 남아있는 마약류를 관리하는 국가 감시망은 작동하지 않았던 겁니다.

기사에 미처 담진 못했지만, 관련 법에도 공백이 있는 걸 확인했습니다.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제8조에 따르면 마약류 취급자가 폐업할 경우에는 총리령에 따라 해당 허가관청(식약처)에 신고해야 합니다.
다만 단서 조항이 있습니다. 의료기관 개설자가 '의료법 40조에 따라 의료업의 폐업 등을 신고한 경우'에는 위 신고를 따로 하지 않아도 됩니다.
다시 말해 의사가 의료기관 폐업 신고를 하면, 굳이 식약처에 따로 관련 신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겁니다.
이 때문에 '의료용 마약류'를 총괄 감독하는 식약처가 정작 현장 의료기관의 폐업 여부를 모르는 공백이 생겼던 겁니다.


KBS 취재가 시작되자 식약처는 "의료기관 폐업 시 보유한 마약류 관리 등에 대한 사항이 명확히 규정되어 있지 않았다"며 "관계 부처와 협력을 통해 폐업 전 의료기관 등에서 보유·관리하고 있는 의료용 마약류에 대한 처분계획을 허가 관청에서 확인하는 절차를 마련하겠다"고 답했습니다.

감시 공백을 만든 법에 대한 수정 작업도 곧 시작됩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식약처 신고 의무를 면제해주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제8조에 담긴 단서 조항을 삭제하는 개정안을 조만간 발의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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