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미래로] 카메라에 담은 6.25…3대가 찍은 ‘서울’

입력 2024.01.13 (08:20) 수정 2024.01.13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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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오늘도 지구촌 곳곳에서는 참혹한 전쟁이 이어지고 있고, 이들 전장에는 목숨을 걸고 현장을 취재하는 종군기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의 취재 기록은 역사 자료가 되기도 하는데요.

6.25 전쟁에서도 많은 종군기자들이 활약을 했죠.

오늘은 6.25 전쟁 당시 종군기자로 활약하다가, 전쟁 이후에는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로 이름을 날린 고 임인식 작가의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전쟁과 전후 복구 등 격동기 서울의 모습이 오롯이 담긴 그의 사진들이 전시회에 나왔습니다.

현장을 최효은 리포터가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1950년 6월 28일.

북한군의 진격을 막기 위해 한강 다리를 폭파하는 순간입니다.

포탄으로 폐허가 된 서울 시내와 잔해 더미 위 불에 탄 보신각종은 전쟁의 참담함을 느끼게 합니다.

모두 종군기자 임인식 선생이 6.25 전쟁 당시 카메라로 담아낸 모습입니다.

나이 30세에 6.25전쟁이 발발하자 임인식 선생은 종군 기자로 총 대신 카메라를 들고 전장을 누볐습니다.

이곳 서울역사박물관에선 한국 현대사의 격변기에 촬영된 희귀 사진 140여 점을 선보이고 있는데요.

전쟁의 참혹함과 전후 재건의 희망의 순간이 잘 포착되었다는 평가입니다.

‘그때 그 서울’이란 이번 특별전은 전쟁의 시간을 버틴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된 주제입니다.

[김재경/서울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 : "1950년부터 1952년까지 전쟁을 통해서 폐허로 된 서울 시내 모습들 하고요. 폐허를 딛고 재건하는 과정을 가진 시민들의 노력하는 모습들이 담겨 있는 전시입니다."]

피란민들의 행렬에서는 전쟁으로 인한 고난의 무게가 느껴지는 듯합니다.

초토화된 서울을 촬영한 항공사진은 전쟁의 치열함을 찬찬히 조망하고 있습니다.

포성이 멈춘 뒤, 그의 카메라는 일상을 재건하는 삶의 모습에 초점을 맞춥니다.

골목 곳곳을 누비며 촬영한 아이들의 모습에서는 한강의 기적을 일군 대한민국의 미래가 엿보입니다.

[김재경/서울역사박물관 학예사 : "그 당시에 상황은 너무 처참했지만 (아이들이) 해맑게 웃는 모습이라든지 아니면 정답게 뛰노는 모습들 같은 것이 우리 미래를 준비하는 모습이 아니었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전시장을 찾은 어린 관객들에게 과거 서울의 모습은 다소 낯설기도 합니다.

[손주완/경기도 구리시 : "(이 사진이 왜 인상 깊었을까요?) 발전이 아주 크게 나타난 것 같아서 재밌었어요.(어떤 부분이 그랬을까요?) 지금은 건물이 이렇게 높게 있는데 옛날에는 (건물이) 낮은 게 발전이 많이 된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제작진은 임인식 선생의 작품 세계를 더 알아보기 위해 아들 정의 씨와 손자 준영 씨를 만났습니다.

[임정의/아들/사진작가 : "이게 저예요. 내가 여기 세 번째, 키가 좀 컸어요, 옛날에도."]

1920년 평북 정주에서 태어난 임인식 작가는 1948년 육사 8기로 입교했고,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한 뒤에는 사진대 대장으로 종군기자의 길을 걷습니다.

예편한 뒤에도 기록 사진을 남기며 카메라를 놓지 않았다고 합니다.

[임정의/사진작가 : "(아버님이) 과도기적인 그런 대한민국 정부수립부터 시작해서 6.25 전쟁 발발 과정에서 많은 기록을 남기신 것을 보고, 제가 많은 걸 공부하고 연구하고 이어가고 있습니다."]

임 선생이 남긴 수많은 사진기록들은 자손들에 의해 아카이브로 구축돼 있습니다.

그리고 급변하는 서울의 모습을 담고자 하는 그의 열정은 아들과 손자까지 3대에 거쳐 이어져 오고 있는데요.

그들이 바라본 서울의 모습은 과연 어떨까요?

임 선생에 이어 정의 씨와 준영 씨도 전문 사진작가로 활동하면서, 자연스럽게 삼대에 걸친 작품 기록관이 만들어졌습니다.

[임정의/사진작가 : "옛날에 6.25 전쟁 중에 (이 카메라로) 보는 거예요.(이걸로 진짜 촬영하신 거예요.) 네, 사진 보여줄까요? (네.)"]

오래된 카메라를 타임머신 삼아 시간 여행을 떠나봅니다.

[임정의/사진작가 : "(여기, 가지고 계시네요.) 인민군 병사하고 환담하는 거예요. 개성회담 할 때. "]

작은 박물관 같은 이 아카이브에는 임인식 작가의 기록들도 고스란히 보관돼 있습니다.

[임정의/사진작가 : "다부동 전투에서 영국의 윈스턴 처칠 수상의 아들 랜돌프 처칠이 한국에 와서 취재를 하던 당시의 모습입니다. (똑같이 종군기자였던 거죠?) 네."]

통일로 미래로 취재진에게 최초로 공개하는 6.25 전쟁 사진도 있었는데요.

[임정의/사진작가 : "중앙청이 (서울 수복) 당시에는 이렇게 화염에 휩싸였어요. 서울 수복 작전 당시에 한국 해병대하고 같이 들어왔고 1950년 9월 28일 서울 수복하고 나서 북진하게 됐어요. 북진하는 과정에서 아군 탱크들이 북한 주민들이 보는 옆에서 북진하고 있는 광경을 찍은 거예요."]

최전방을 누빈 임인식 작가가 해외 언론사에 타전한 이 사진.

손이 뒤로 묶인 채 학살된 미군의 모습은 미국을 분노로 들끓게 했다고 합니다.

[임정의/사진작가 : "(세종시) 전의 부근에서 미군 병사가 학살된 장면을 찍어서 AP통신에 보내서 미국 신문에 나게 됐는데, (병사의) 어머니가 자기 아들이라고 눈물겨운 편지를 보내온 거를 보관한 겁니다."]

한 장의 사진이 주는 울림은 또 다른 세대에게도 전해졌습니다.

[임준영/손자/사진작가 : "이 사진을 보면 지금도 전쟁은 계속 일어나고 있지만 이때 당시에도 이렇게 참혹한 이런 현장의 모습이 그대로 전달이 돼 오니까 저도 굉장히 놀랍고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계속 들더라고요."]

손자 준영 씨는 주로 건축과 공간 사진을 촬영하고 있는데요.

할아버지가 남긴 ‘기록’의 가치를 하나의 ‘사명’으로 여기며 새로운 작업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임준영/사진작가 : "동대문 운동장의 과거 모습과 현재의 모습인데요. 과거 할아버님이 촬영하신 1950년대 사진, 그리고 아버님이 촬영하신 (1997년) 사진, 그리고 제가 지금 DDP로 바뀌었는데, 바뀌고나서 (2010년에) 제가 촬영한 모습입니다."]

1950년대와 80년대 그리고 2016년에, 3대가 바라본 남대문로의 모습도 있습니다.

같은 공간 다른 시간대가 주는 생경함이 매력적입니다.

전쟁의 참상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았던 임인식 작가의 염원이 이루어진 듯합니다.

[임정의/사진작가 : "평화롭게 남북이 합쳐서 좋은 세상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희망 사항인데 과거에 이런 기록 사진들을 보면서 두 번 다시 이런 비극이 생기지 않아야 되지 않나 이렇게 생각합니다."]

폐허 속에 움트는 희망을 담은 임인식 작가의 사진들은, 전쟁의 비극이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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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일로 미래로] 카메라에 담은 6.25…3대가 찍은 ‘서울’
    • 입력 2024-01-13 08:20:27
    • 수정2024-01-13 09:4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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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오늘도 지구촌 곳곳에서는 참혹한 전쟁이 이어지고 있고, 이들 전장에는 목숨을 걸고 현장을 취재하는 종군기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의 취재 기록은 역사 자료가 되기도 하는데요.

6.25 전쟁에서도 많은 종군기자들이 활약을 했죠.

오늘은 6.25 전쟁 당시 종군기자로 활약하다가, 전쟁 이후에는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로 이름을 날린 고 임인식 작가의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전쟁과 전후 복구 등 격동기 서울의 모습이 오롯이 담긴 그의 사진들이 전시회에 나왔습니다.

현장을 최효은 리포터가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1950년 6월 28일.

북한군의 진격을 막기 위해 한강 다리를 폭파하는 순간입니다.

포탄으로 폐허가 된 서울 시내와 잔해 더미 위 불에 탄 보신각종은 전쟁의 참담함을 느끼게 합니다.

모두 종군기자 임인식 선생이 6.25 전쟁 당시 카메라로 담아낸 모습입니다.

나이 30세에 6.25전쟁이 발발하자 임인식 선생은 종군 기자로 총 대신 카메라를 들고 전장을 누볐습니다.

이곳 서울역사박물관에선 한국 현대사의 격변기에 촬영된 희귀 사진 140여 점을 선보이고 있는데요.

전쟁의 참혹함과 전후 재건의 희망의 순간이 잘 포착되었다는 평가입니다.

‘그때 그 서울’이란 이번 특별전은 전쟁의 시간을 버틴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된 주제입니다.

[김재경/서울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 : "1950년부터 1952년까지 전쟁을 통해서 폐허로 된 서울 시내 모습들 하고요. 폐허를 딛고 재건하는 과정을 가진 시민들의 노력하는 모습들이 담겨 있는 전시입니다."]

피란민들의 행렬에서는 전쟁으로 인한 고난의 무게가 느껴지는 듯합니다.

초토화된 서울을 촬영한 항공사진은 전쟁의 치열함을 찬찬히 조망하고 있습니다.

포성이 멈춘 뒤, 그의 카메라는 일상을 재건하는 삶의 모습에 초점을 맞춥니다.

골목 곳곳을 누비며 촬영한 아이들의 모습에서는 한강의 기적을 일군 대한민국의 미래가 엿보입니다.

[김재경/서울역사박물관 학예사 : "그 당시에 상황은 너무 처참했지만 (아이들이) 해맑게 웃는 모습이라든지 아니면 정답게 뛰노는 모습들 같은 것이 우리 미래를 준비하는 모습이 아니었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전시장을 찾은 어린 관객들에게 과거 서울의 모습은 다소 낯설기도 합니다.

[손주완/경기도 구리시 : "(이 사진이 왜 인상 깊었을까요?) 발전이 아주 크게 나타난 것 같아서 재밌었어요.(어떤 부분이 그랬을까요?) 지금은 건물이 이렇게 높게 있는데 옛날에는 (건물이) 낮은 게 발전이 많이 된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제작진은 임인식 선생의 작품 세계를 더 알아보기 위해 아들 정의 씨와 손자 준영 씨를 만났습니다.

[임정의/아들/사진작가 : "이게 저예요. 내가 여기 세 번째, 키가 좀 컸어요, 옛날에도."]

1920년 평북 정주에서 태어난 임인식 작가는 1948년 육사 8기로 입교했고,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한 뒤에는 사진대 대장으로 종군기자의 길을 걷습니다.

예편한 뒤에도 기록 사진을 남기며 카메라를 놓지 않았다고 합니다.

[임정의/사진작가 : "(아버님이) 과도기적인 그런 대한민국 정부수립부터 시작해서 6.25 전쟁 발발 과정에서 많은 기록을 남기신 것을 보고, 제가 많은 걸 공부하고 연구하고 이어가고 있습니다."]

임 선생이 남긴 수많은 사진기록들은 자손들에 의해 아카이브로 구축돼 있습니다.

그리고 급변하는 서울의 모습을 담고자 하는 그의 열정은 아들과 손자까지 3대에 거쳐 이어져 오고 있는데요.

그들이 바라본 서울의 모습은 과연 어떨까요?

임 선생에 이어 정의 씨와 준영 씨도 전문 사진작가로 활동하면서, 자연스럽게 삼대에 걸친 작품 기록관이 만들어졌습니다.

[임정의/사진작가 : "옛날에 6.25 전쟁 중에 (이 카메라로) 보는 거예요.(이걸로 진짜 촬영하신 거예요.) 네, 사진 보여줄까요? (네.)"]

오래된 카메라를 타임머신 삼아 시간 여행을 떠나봅니다.

[임정의/사진작가 : "(여기, 가지고 계시네요.) 인민군 병사하고 환담하는 거예요. 개성회담 할 때. "]

작은 박물관 같은 이 아카이브에는 임인식 작가의 기록들도 고스란히 보관돼 있습니다.

[임정의/사진작가 : "다부동 전투에서 영국의 윈스턴 처칠 수상의 아들 랜돌프 처칠이 한국에 와서 취재를 하던 당시의 모습입니다. (똑같이 종군기자였던 거죠?) 네."]

통일로 미래로 취재진에게 최초로 공개하는 6.25 전쟁 사진도 있었는데요.

[임정의/사진작가 : "중앙청이 (서울 수복) 당시에는 이렇게 화염에 휩싸였어요. 서울 수복 작전 당시에 한국 해병대하고 같이 들어왔고 1950년 9월 28일 서울 수복하고 나서 북진하게 됐어요. 북진하는 과정에서 아군 탱크들이 북한 주민들이 보는 옆에서 북진하고 있는 광경을 찍은 거예요."]

최전방을 누빈 임인식 작가가 해외 언론사에 타전한 이 사진.

손이 뒤로 묶인 채 학살된 미군의 모습은 미국을 분노로 들끓게 했다고 합니다.

[임정의/사진작가 : "(세종시) 전의 부근에서 미군 병사가 학살된 장면을 찍어서 AP통신에 보내서 미국 신문에 나게 됐는데, (병사의) 어머니가 자기 아들이라고 눈물겨운 편지를 보내온 거를 보관한 겁니다."]

한 장의 사진이 주는 울림은 또 다른 세대에게도 전해졌습니다.

[임준영/손자/사진작가 : "이 사진을 보면 지금도 전쟁은 계속 일어나고 있지만 이때 당시에도 이렇게 참혹한 이런 현장의 모습이 그대로 전달이 돼 오니까 저도 굉장히 놀랍고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계속 들더라고요."]

손자 준영 씨는 주로 건축과 공간 사진을 촬영하고 있는데요.

할아버지가 남긴 ‘기록’의 가치를 하나의 ‘사명’으로 여기며 새로운 작업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임준영/사진작가 : "동대문 운동장의 과거 모습과 현재의 모습인데요. 과거 할아버님이 촬영하신 1950년대 사진, 그리고 아버님이 촬영하신 (1997년) 사진, 그리고 제가 지금 DDP로 바뀌었는데, 바뀌고나서 (2010년에) 제가 촬영한 모습입니다."]

1950년대와 80년대 그리고 2016년에, 3대가 바라본 남대문로의 모습도 있습니다.

같은 공간 다른 시간대가 주는 생경함이 매력적입니다.

전쟁의 참상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았던 임인식 작가의 염원이 이루어진 듯합니다.

[임정의/사진작가 : "평화롭게 남북이 합쳐서 좋은 세상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희망 사항인데 과거에 이런 기록 사진들을 보면서 두 번 다시 이런 비극이 생기지 않아야 되지 않나 이렇게 생각합니다."]

폐허 속에 움트는 희망을 담은 임인식 작가의 사진들은, 전쟁의 비극이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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