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게 남의 집 인터넷 개통…실제 명의 도용 피해 음성 공개

입력 2024.01.16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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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이름으로 인터넷이 개통된다면 얼마나 당황스러울까요?
허황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졸지에 쓰지도 않은 인터넷 사용료를 떠안게 된 피해자들은 전국에 40명이 넘습니다.
이들은 개인 정보를 취득한 누군가가 통신사에 전화를 걸어 인터넷을 개통한 것으로 보인다며 고소에 나섰습니다.
경찰은 피의자를 명의 도용 혐의로 입건하고 추적하는 등 수사를 시작했습니다.
피해자들은 특히 통신사의 허술한 본인 인증 절차 탓에 문제가 생긴 거라며 분통을 터뜨립니다.


■ 해지된 줄 알았던 내 집 인터넷 계약 '3년 연장'…남의 집 설치까지

10년 넘게 한 통신사만 사용한 서 모 씨. 인터넷 계약 기간이 끝나가던 지난해 8월 통신사를 바꾸기로 마음먹습니다. 아는 사람이 소개해준 통신사 상담사를 통해 계약을 맺으면 90만 원 상당의 백화점 상품권을 사은품으로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상담사는 상품권을 받으려면 서 씨 명의 인터넷 계약을 해지하고 아내인 박 모 씨 명의로 새로 계약을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서 씨와 박 씨는 해당 상담사에게 이름과 주소, 주민등록번호, 신분증 발급 날짜 등 개인 정보를 넘겼습니다.

그런데 3개월이 지나도 상품권은 오지 않았습니다. 해당 상담사는 연락이 끊겼습니다. 수상하게 여긴 이들 부부는 통신사 고객센터에 직접 전화를 걸었습니다.

박 씨가 통신사에 제출한 명의 도용 신고서박 씨가 통신사에 제출한 명의 도용 신고서

알고 보니 서 씨 명의 인터넷 계약은 3년이나 연장돼 있었습니다. 아내 명의 인터넷도 이들 부부 집, 심지어는 가보지도 않은 인천광역시 한 아파트에도 설치돼 있었습니다.

계약 연장 뒤 통신사는 인터넷 요금 고지서를 전혀 관계없는 경기도 성남시 한 아파트에 우편으로 보내왔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뒤늦게 피해 사실을 알게 된 부부는 쓰지도 않은 석 달 치 인터넷과 TV 사용료, 위약금 등 200여만 원을 떠안게 됐습니다.

부부는 명의 도용 혐의로 해당 상담사를 경찰에 고소했습니다. 경찰은 해당 상담사가 통신사 직원이 아닌 사실을 확인하고 명의 도용 혐의로 형사 입건했습니다. 또 피의자 신병 확보를 위해 소재 파악 등 수사에 나섰습니다.

경찰은 서 씨 같은 피해자가 수도권과 영호남에 걸쳐 전국적으로 40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서 씨 통신사 고객센터 앱 캡처 화면. 인터넷 요금 고지서는 경기도 성남시 한 아파트에 우편으로 보내지고 있었다.서 씨 통신사 고객센터 앱 캡처 화면. 인터넷 요금 고지서는 경기도 성남시 한 아파트에 우편으로 보내지고 있었다.

■ 주민등록번호 묻고 인터넷 개통…"허술한 본인 인증"

나도 모르는 사이 어떻게 인터넷 계약이 연장된 걸까. 알고 보니 통신사의 허술한 본인 인증 방식이 원인이었습니다.

서 씨 개인 정보를 취득한 누군가가 서 씨인 것처럼 속여 통신사 고객센터에 계약 연장을 신청한 겁니다. 통신사는 주민등록증 발급 날짜와 주민등록 번호만 전화로 묻고 본인 인증을 끝냈습니다.

<실제 피해 음성 녹취>

-상담사: 서00 고객님 맞으실까요?
-사칭인: 예.
-상담사: 아 네. 고객님. 그러시면 제가 이거 인터넷이랑 TV 재약정을 할 거예요. 주민등록증 발급 일자로 진행할 거예요. 고객님 혹시 그 주민번호 뒷자리만 좀 말씀 부탁드릴게요.
-사칭인: ******
-상담사: 발급 일자 있죠? 신분증 밑에?
-사칭인: 200*년 *월 *일
-상담사: 잠시만요. 제가 이거 인증 좀 할게요.

통신사 고객센터와 서 씨 사칭인이 실제 나눈 대화.통신사 고객센터와 서 씨 사칭인이 실제 나눈 대화.

전문가들은 주민등록 번호 등 개인 정보를 묻고 답하는 것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설명합니다. ARS나 문자, 앱을 통한 인증번호 확인 방식이 더욱 안전하다고 강조합니다.

"쉽게 취득할 수 있는 정보를 물어보는 건 당연히 상대적으로 위험한 거고….
실시간으로 생성되는 어떤 고유 번호 아니면 어떤 문구 이런 걸 가지고 인증하는 게 더욱 안전하죠."
-김은성/한국인터넷진흥원 탐지대응팀장


■ 취재 시작되자…통신사 "명의 도용 피해 인정"

해당 통신사는 취재가 시작되자 서 씨 사례가 명의 도용 피해 사례로 인정된다며 사용료 등을 면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명의 도용 피해로 인정한 이유는 서 씨 실제 목소리와 명의 도용 당시 사칭인 목소리가 너무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경찰 수사 결과 명의 도용 사건으로 인정되면, 다른 피해자들도 사용료나 위약금 등을 물지 않아도 된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기회에 주민등록증 발급 날짜와 주민등록 번호만 묻고 본인 인증을 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도 검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 자료를 보면, 지난 한 해 우리나라 3대 통신업체가 접수한 명의 도용 피해 사례는 모두 580건이 넘습니다.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통신사 차원의 안전한 본인 인증 방식 마련이 필요해 보입니다.

[관련 기사]
[자막뉴스] "그 아파트는 가본 적도 없어요"…통신사에 전화했다가 '헉' / KBS 2024.01.11.
https://youtu.be/iGmeJAJgVPg
“주민등록번호 전화로 묻고 개통!”…‘위험천만’ 통신사 본인 인증 / KBS 2024.01.15.
https://youtu.be/bWcci2b2Uj4

(촬영기자 : 김동균 / 그래픽 : 최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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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도 모르게 남의 집 인터넷 개통…실제 명의 도용 피해 음성 공개
    • 입력 2024-01-16 15:3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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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나도 모르는 사이 내 이름으로 인터넷이 개통</strong>된다면 얼마나 당황스러울까요?<br />허황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졸지에 <strong>쓰지도 않은 인터넷 사용료를 떠안게 된 피해자들은 전국에 40명이 넘습니다. </strong><br />이들은 개인 정보를 취득한 누군가가 통신사에 전화를 걸어 인터넷을 개통한 것으로 보인다며 고소에 나섰습니다.<br />경찰은 피의자를 명의 도용 혐의로 입건하고 추적하는 등 수사를 시작했습니다.<br />피해자들은 특히 <strong>통신사의 허술한 본인 인증 절차 </strong>탓에 문제가 생긴 거라며 분통을 터뜨립니다.

■ 해지된 줄 알았던 내 집 인터넷 계약 '3년 연장'…남의 집 설치까지

10년 넘게 한 통신사만 사용한 서 모 씨. 인터넷 계약 기간이 끝나가던 지난해 8월 통신사를 바꾸기로 마음먹습니다. 아는 사람이 소개해준 통신사 상담사를 통해 계약을 맺으면 90만 원 상당의 백화점 상품권을 사은품으로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상담사는 상품권을 받으려면 서 씨 명의 인터넷 계약을 해지하고 아내인 박 모 씨 명의로 새로 계약을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서 씨와 박 씨는 해당 상담사에게 이름과 주소, 주민등록번호, 신분증 발급 날짜 등 개인 정보를 넘겼습니다.

그런데 3개월이 지나도 상품권은 오지 않았습니다. 해당 상담사는 연락이 끊겼습니다. 수상하게 여긴 이들 부부는 통신사 고객센터에 직접 전화를 걸었습니다.

박 씨가 통신사에 제출한 명의 도용 신고서
알고 보니 서 씨 명의 인터넷 계약은 3년이나 연장돼 있었습니다. 아내 명의 인터넷도 이들 부부 집, 심지어는 가보지도 않은 인천광역시 한 아파트에도 설치돼 있었습니다.

계약 연장 뒤 통신사는 인터넷 요금 고지서를 전혀 관계없는 경기도 성남시 한 아파트에 우편으로 보내왔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뒤늦게 피해 사실을 알게 된 부부는 쓰지도 않은 석 달 치 인터넷과 TV 사용료, 위약금 등 200여만 원을 떠안게 됐습니다.

부부는 명의 도용 혐의로 해당 상담사를 경찰에 고소했습니다. 경찰은 해당 상담사가 통신사 직원이 아닌 사실을 확인하고 명의 도용 혐의로 형사 입건했습니다. 또 피의자 신병 확보를 위해 소재 파악 등 수사에 나섰습니다.

경찰은 서 씨 같은 피해자가 수도권과 영호남에 걸쳐 전국적으로 40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서 씨 통신사 고객센터 앱 캡처 화면. 인터넷 요금 고지서는 경기도 성남시 한 아파트에 우편으로 보내지고 있었다.
■ 주민등록번호 묻고 인터넷 개통…"허술한 본인 인증"

나도 모르는 사이 어떻게 인터넷 계약이 연장된 걸까. 알고 보니 통신사의 허술한 본인 인증 방식이 원인이었습니다.

서 씨 개인 정보를 취득한 누군가가 서 씨인 것처럼 속여 통신사 고객센터에 계약 연장을 신청한 겁니다. 통신사는 주민등록증 발급 날짜와 주민등록 번호만 전화로 묻고 본인 인증을 끝냈습니다.

<실제 피해 음성 녹취>

-상담사: 서00 고객님 맞으실까요?
-사칭인: 예.
-상담사: 아 네. 고객님. 그러시면 제가 이거 인터넷이랑 TV 재약정을 할 거예요. 주민등록증 발급 일자로 진행할 거예요. 고객님 혹시 그 주민번호 뒷자리만 좀 말씀 부탁드릴게요.
-사칭인: ******
-상담사: 발급 일자 있죠? 신분증 밑에?
-사칭인: 200*년 *월 *일
-상담사: 잠시만요. 제가 이거 인증 좀 할게요.

통신사 고객센터와 서 씨 사칭인이 실제 나눈 대화.
전문가들은 주민등록 번호 등 개인 정보를 묻고 답하는 것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설명합니다. ARS나 문자, 앱을 통한 인증번호 확인 방식이 더욱 안전하다고 강조합니다.

"쉽게 취득할 수 있는 정보를 물어보는 건 당연히 상대적으로 위험한 거고….
실시간으로 생성되는 어떤 고유 번호 아니면 어떤 문구 이런 걸 가지고 인증하는 게 더욱 안전하죠."
-김은성/한국인터넷진흥원 탐지대응팀장


■ 취재 시작되자…통신사 "명의 도용 피해 인정"

해당 통신사는 취재가 시작되자 서 씨 사례가 명의 도용 피해 사례로 인정된다며 사용료 등을 면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명의 도용 피해로 인정한 이유는 서 씨 실제 목소리와 명의 도용 당시 사칭인 목소리가 너무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경찰 수사 결과 명의 도용 사건으로 인정되면, 다른 피해자들도 사용료나 위약금 등을 물지 않아도 된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기회에 주민등록증 발급 날짜와 주민등록 번호만 묻고 본인 인증을 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도 검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 자료를 보면, 지난 한 해 우리나라 3대 통신업체가 접수한 명의 도용 피해 사례는 모두 580건이 넘습니다.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통신사 차원의 안전한 본인 인증 방식 마련이 필요해 보입니다.

[관련 기사]
[자막뉴스] "그 아파트는 가본 적도 없어요"…통신사에 전화했다가 '헉' / KBS 2024.01.11.
https://youtu.be/iGmeJAJgVPg
“주민등록번호 전화로 묻고 개통!”…‘위험천만’ 통신사 본인 인증 / KBS 2024.01.15.
https://youtu.be/bWcci2b2Uj4

(촬영기자 : 김동균 / 그래픽 : 최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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