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도 병에 걸리면 설사한다고요?…아픈 벌 찾아다니는 ‘꿀벌 수의사’ [주말엔]

입력 2024.01.21 (10:12) 수정 2024.01.21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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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도 아플까요?

네 꿀벌도 아픕니다. 기생충, 진드기, 바이러스 등에서 오는 질병이 꿀벌에게 36가지나 된다고 합니다.

병에 걸리면 식욕이 떨어지며 심지어 설사도 한다는데요, 사람은 아프면 병원에 간다지만 꿀벌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 국내 1호 '꿀벌 수의사'

다행히 꿀벌을 진료해주는 의사가 있습니다.

30년간 꿀벌을 연구하고 돌봐 온 정년기 수의사.

수의대를 졸업하고 대전보건환경연구원에서 일하던 1992년, 꿀벌과 처음 인연을 맺었습니다.

당시 가축의 전염병 감염 여부를 확인하는 업무를 맡았었는데 양봉농가도 많이 다녔다고 합니다. (꿀벌은 곤충이지만 축산법상 가축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정년기 수의사정년기 수의사

"양봉농가를 다니면서 아픈 꿀벌에게 어떤 약을 쓰는지 물었는데 대답이 다 달랐어요. 기준이 없었어요. 그러면 내가 한 번 알아봐야지 하고 연구를 시작했어요."

당시만 해도 올바른 약품 사용에 대한 지침이 없어 농가마다 각자 방식대로 꿀벌을 돌봐 온 겁니다.

직접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는데 전문 수의사도, 관련 서적도 국내엔 없었습니다.

정년기 수의사는 원서를 구해 공부하고 벌을 직접 키우며 독학한 끝에 2013년 대전광역시 중구에 '꿀벌동물병원'을 개원했습니다.

국내 1호 꿀벌 전문 수의사가 탄생한 순간입니다. (현재는 한 명 더 늘어 두 명의 수의사가 꿀벌을 치료하고 있습니다.)

대전광역시 중구에 있는 ‘꿀벌동물병원’대전광역시 중구에 있는 ‘꿀벌동물병원’

■ 민통선부터 제주까지…아픈 꿀벌을 찾아서

병원을 개원했지만 아픈 벌들이 찾아오진 않습니다.

양봉농가의 연락을 받으면 직접 찾아갑니다.

꿀벌 전문 수의사가 부족하다 보니 전국 팔도 안 가는 곳이 없습니다.

"현장에 답이 있습니다. 개체 별로 한 마리 한 마리도 증상을 봐야 하지만 벌터의 위치, 환경 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살피고 판단해야 해요."

"한 마리 한 마리 살려내는 게 아니고요. 그걸 근거로 해서 전체 벌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구제하는 방법입니다."

벌통을 살피기 전 벌지기와 이야기를 나누는 정년기 수의사벌통을 살피기 전 벌지기와 이야기를 나누는 정년기 수의사

양봉농가에 방문하면 우선 문진을 통해 문제를 파악하고 벌이 움직이는 소리와 벌통의 냄새로 벌의 상태를 확인합니다.

겨울은 꿀벌이 월동하는 시기라 벌통을 열지 않고 청진기나 적외선 카메라를 통해 진료하기도 합니다.

현장에서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엔 꿀벌 사체나 알을 병원으로 가져와 정밀 검사 후 진단하기도 합니다.

"전국에 있는 봉침은 다 맞고 다닙니다. 허허허"

월동 중인 꿀벌월동 중인 꿀벌

■ 꿀벌이 사라지면 인류도 사라질까?

정년기 수의사는 최근 들어 더 바빠졌습니다.

몇 년 사이 전국적으로 꿀벌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양봉협회에 따르면 지난 2023년 4월 기준, 월동 소멸피해를 입은 벌통 수는 93만 4천여 개로 개체 수로 따지면 월동 전 대비 61.4 퍼센트가 줄었다고 합니다.

"집단 폐사가 작년에도 일어나고 재작년에도 일어나서 상심이 큽니다. 월동 상태에 잘 들어가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어서 (원장님을)불렀습니다."

이상목 벌지기/전북특별자치도 무안군

집단 폐사한 꿀벌집단 폐사한 꿀벌

기후변화 외에 농약, 먹이 부족, 질병, 전자파 등 다양한 요인이 원인으로 꼽히지만 정확하게 밝혀진 것은 아직 없습니다.

꿀벌이 사라지면 우리에게도 큰 위협이 됩니다.

꿀벌은 화분매개곤충으로 농작물이 열매를 맺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꿀벌이 사라질 경우, 전 세계 식량 90%를 차지하는 100대 주요 작물 가운데 70%에 달하는 작물이 열매를 맺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특히 양파, 사과, 당근은 재배할 때 꿀벌의 기여도가 90%에 육박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꿀벌이 보내는 경고를 그냥 흘려 들어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열매가 맺지 않으면 식량 부족이 올 수 있겠죠. 자연 세계의 한 축이 무너지면 결과적으로 그 축은 나에게 다가오겠죠."

정 원장은 벌이 살 수 있는 환경 여건을 잘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 마지막 바람은 '후진양성'

"우리나라는 현재도 수의과 대학에서 꿀벌 질병 관련해서 학부 과정에서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다."

정년기 수의사에게 국내 1호 꿀벌 수의사로서 마지막 바람은 무엇인지 여쭤봤습니다.

그는 그동안 쌓아온 이론과 경험을 바탕으로 '꿀벌질병학'을 저술하고 싶다고 대답했습니다.

또 미래를 위해 꿀벌 전문 수의사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얘기합니다.

정 원장은 환경 변화 탓에 해마다 새로운 질병이 발견되는 상황에서 꿀벌과 사람이 공존·공생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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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꿀벌도 병에 걸리면 설사한다고요?…아픈 벌 찾아다니는 ‘꿀벌 수의사’ [주말엔]
    • 입력 2024-01-21 10:12:18
    • 수정2024-01-21 10:17:31
    주말엔

꿀벌도 아플까요?

네 꿀벌도 아픕니다. 기생충, 진드기, 바이러스 등에서 오는 질병이 꿀벌에게 36가지나 된다고 합니다.

병에 걸리면 식욕이 떨어지며 심지어 설사도 한다는데요, 사람은 아프면 병원에 간다지만 꿀벌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 국내 1호 '꿀벌 수의사'

다행히 꿀벌을 진료해주는 의사가 있습니다.

30년간 꿀벌을 연구하고 돌봐 온 정년기 수의사.

수의대를 졸업하고 대전보건환경연구원에서 일하던 1992년, 꿀벌과 처음 인연을 맺었습니다.

당시 가축의 전염병 감염 여부를 확인하는 업무를 맡았었는데 양봉농가도 많이 다녔다고 합니다. (꿀벌은 곤충이지만 축산법상 가축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정년기 수의사
"양봉농가를 다니면서 아픈 꿀벌에게 어떤 약을 쓰는지 물었는데 대답이 다 달랐어요. 기준이 없었어요. 그러면 내가 한 번 알아봐야지 하고 연구를 시작했어요."

당시만 해도 올바른 약품 사용에 대한 지침이 없어 농가마다 각자 방식대로 꿀벌을 돌봐 온 겁니다.

직접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는데 전문 수의사도, 관련 서적도 국내엔 없었습니다.

정년기 수의사는 원서를 구해 공부하고 벌을 직접 키우며 독학한 끝에 2013년 대전광역시 중구에 '꿀벌동물병원'을 개원했습니다.

국내 1호 꿀벌 전문 수의사가 탄생한 순간입니다. (현재는 한 명 더 늘어 두 명의 수의사가 꿀벌을 치료하고 있습니다.)

대전광역시 중구에 있는 ‘꿀벌동물병원’
■ 민통선부터 제주까지…아픈 꿀벌을 찾아서

병원을 개원했지만 아픈 벌들이 찾아오진 않습니다.

양봉농가의 연락을 받으면 직접 찾아갑니다.

꿀벌 전문 수의사가 부족하다 보니 전국 팔도 안 가는 곳이 없습니다.

"현장에 답이 있습니다. 개체 별로 한 마리 한 마리도 증상을 봐야 하지만 벌터의 위치, 환경 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살피고 판단해야 해요."

"한 마리 한 마리 살려내는 게 아니고요. 그걸 근거로 해서 전체 벌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구제하는 방법입니다."

벌통을 살피기 전 벌지기와 이야기를 나누는 정년기 수의사
양봉농가에 방문하면 우선 문진을 통해 문제를 파악하고 벌이 움직이는 소리와 벌통의 냄새로 벌의 상태를 확인합니다.

겨울은 꿀벌이 월동하는 시기라 벌통을 열지 않고 청진기나 적외선 카메라를 통해 진료하기도 합니다.

현장에서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엔 꿀벌 사체나 알을 병원으로 가져와 정밀 검사 후 진단하기도 합니다.

"전국에 있는 봉침은 다 맞고 다닙니다. 허허허"

월동 중인 꿀벌
■ 꿀벌이 사라지면 인류도 사라질까?

정년기 수의사는 최근 들어 더 바빠졌습니다.

몇 년 사이 전국적으로 꿀벌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양봉협회에 따르면 지난 2023년 4월 기준, 월동 소멸피해를 입은 벌통 수는 93만 4천여 개로 개체 수로 따지면 월동 전 대비 61.4 퍼센트가 줄었다고 합니다.

"집단 폐사가 작년에도 일어나고 재작년에도 일어나서 상심이 큽니다. 월동 상태에 잘 들어가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어서 (원장님을)불렀습니다."

이상목 벌지기/전북특별자치도 무안군

집단 폐사한 꿀벌
기후변화 외에 농약, 먹이 부족, 질병, 전자파 등 다양한 요인이 원인으로 꼽히지만 정확하게 밝혀진 것은 아직 없습니다.

꿀벌이 사라지면 우리에게도 큰 위협이 됩니다.

꿀벌은 화분매개곤충으로 농작물이 열매를 맺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꿀벌이 사라질 경우, 전 세계 식량 90%를 차지하는 100대 주요 작물 가운데 70%에 달하는 작물이 열매를 맺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특히 양파, 사과, 당근은 재배할 때 꿀벌의 기여도가 90%에 육박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꿀벌이 보내는 경고를 그냥 흘려 들어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열매가 맺지 않으면 식량 부족이 올 수 있겠죠. 자연 세계의 한 축이 무너지면 결과적으로 그 축은 나에게 다가오겠죠."

정 원장은 벌이 살 수 있는 환경 여건을 잘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 마지막 바람은 '후진양성'

"우리나라는 현재도 수의과 대학에서 꿀벌 질병 관련해서 학부 과정에서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다."

정년기 수의사에게 국내 1호 꿀벌 수의사로서 마지막 바람은 무엇인지 여쭤봤습니다.

그는 그동안 쌓아온 이론과 경험을 바탕으로 '꿀벌질병학'을 저술하고 싶다고 대답했습니다.

또 미래를 위해 꿀벌 전문 수의사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얘기합니다.

정 원장은 환경 변화 탓에 해마다 새로운 질병이 발견되는 상황에서 꿀벌과 사람이 공존·공생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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