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헤어질 결심’…‘동족’ vs ‘두 국가’ 갈림길에 선 남한

입력 2024.01.22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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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남관계는 더이상 동족 관계, 동질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되었습니다."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해 연말 전원회의에서 했던 이 발언은, 북한의 대남 노선 일대 전환을 의미하는 상징적 선언으로 받아들여 졌습니다.

이후 북한은 신속한 대남기구 정리와 서해 해상완충구역에서의 잇따른 도발 등으로 이번 '헤어질 결심'은 진심이라는 것을 대내외에 천명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남한은 과연 북한을 이전처럼 '동족'으로 대할지, 혹은 다른 나라처럼 '두 국가'로 대해야 할지 학자들이 모여 토의하는 자리가 마련됐습니다.

■ "'흡수통일 차단' 의도…남북관계 변화 불가피"

외교·안보·통일 문제를 주로 연구하는 세종연구소가 개최한 '2024년 제1차 세종정책포럼'. 첫 발표자로 나선 최은주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북한이 새 노선을 제시한 배경엔 무엇보다 '흡수통일'에 대한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최 연구위원은 "북한에 의한 흡수통일이 불가능해진 현실에서 (남한에 의한) 제도 통일, 흡수통일 가능성을 차단하고 사회주의 국가로서의 독자 발전 전략"이라며 "2016년 7차 당 대회 당시도, 북한은 남한의 대북 정책을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제도 통일'로 평가하며 이를 전제로 한 통일 논의는 거부한다고 밝힌 바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2021년 6월 촬영된 북한 개성 시내 ‘우리국가제일주의’ 선전 구호2021년 6월 촬영된 북한 개성 시내 ‘우리국가제일주의’ 선전 구호

또 최 연구위원은 "북한은 2017년부터 경제 번영·국방력 강화를 골자로 하는 '우리국가제일주의'를 제기해, 이를 김정은 시대 핵심 지도 사상으로 삼아온 바 있다"며 "2021년 노동당 8차 대회 때는, 북한 최상위 규범인 '노동당 규약'에서 남북관계와 통일에 대한 내용을 수정해서 대남 인식의 변화를 일부 내비치기도 했다"고 분석했습니다.

아울러 이번에 북한이 규정한 두 국가론에 따라, 기존 남북관계도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라 봤습니다.

최 연구위원은 "통일을 지향하는 잠정적 특수관계를 전제로 진행해온 기존의 남북 경제협력 사업도 재논의가 이뤄져야 할 가능성이 있다"며 "최근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가 강화되면서 (노선 전환에) 유리한 조건이 형성됐다고 판단한 것으로도 보인다"고 덧붙였습니다.

■ "북, 핵 사용 정당화·주도권 회복 차원…내부 결속 위한 선택"

그런가 하면 북한의 대남 노선 전환이 남한을 향한 핵 사용을 정당화하고, 한반도에서의 주도권 회복을 위한 것이란 분석도 나왔습니다.

2023년 12월 대륙간 탄도미사일 ‘화성-18형’ 발사 당시2023년 12월 대륙간 탄도미사일 ‘화성-18형’ 발사 당시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처음) 북한은 핵 개발 목적으로 미국 핵 위협에 대한 자위권을 내세웠고, '동족'을 향한 핵 공격 가능성은 부인했다"며 "하지만 2022년 4월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과 김 위원장의 발언을 통해 남한을 향한 핵 공격을 언급하고 같은 해 9월 핵 무력 정책을 법령에 규정하면서는 사실상 남한이 대상임을 천명했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는 남한을 동족 관계가 아닌 적대관계로 확립"하기 위한 것이라며 "'핵 무력'의 실제성을 강화해 한반도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고, 한미일의 핵 억제력을 무력화해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기 위한 시도"라고 평가했습니다.

박 교수는 또 "경제 분야에서의 성과가 제한되고 '반사회주의' 척결운동 등 사상 단속을 시도하는 가운데 내부 결속을 강화하기 위해 (남한에 대한) '주적' 개념을 고취 시키는 것"이라며 "의도적으로 신냉전을 강조해, 남한을 적대 대상으로 상정하고 북·중·러로 진영을 구축하려는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다만 박 교수는 현재 핵협의그룹(NCG) 등 한미의 확장억제가 작동하는 상황이고, 북한의 대남·통일 노선은 김일성과 김정일 등 선대가 채택해 북한 정권의 존재 이유에 연계된 것인 만큼 현재의 대남 노선 전환은 한계가 분명하다고도 봤습니다.

■ "남북관계 전환, 개헌 없인 어려워" vs "'별도 국가' 현실 인정 필요"

이런 가운데 향후 남한이 어떤 노선을 취해야 할 지에 대한 시각은 다소 엇갈렸습니다.

송인호 한동대 법학부 교수는 "헌법 3조('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의 영토 조항의 규범력에 비춰볼 때, 남북관계의 국가 관계 전환은 헌법 개정이 없는 한 어렵다"며 "정책적으로 현재 개헌을 통해 영토 조항을 삭제하는 것이 안보와 국익, 통일 관점에서 필요한지 보다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송 교수는 "현행 통일방안인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에서, 남한과 북한이 한반도의 모든 인간의 존엄성이 존중되는 새로운 '한반도가치공동체'를 추구하는 통일방안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반면 박영호 통일연구원 초청연구위원은 "남과 북은 둘 다 유엔 회원국이자 두 개의 독립·주권 국가로 '사실상' 두 국가 간 관계"라며 "그럼에도 서로 다른 형태의 통일을 목표로 대북, 대남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북한의 변화가 전제되지 않은 자유민주주의 질서로의 평화 통일은 불가능하다"며 "북한의 장기적 변화를 견인하기 위한 통일 정책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통일 이전 '남북 간 평화 공존 체제' 형성이 우선돼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를 위해 "남북이 독자 발전의 길을 걸으며 별도 국가로 존재하는 현실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며 "대외적으로도 북한을 국제사회에 포섭하기 위한 외교·안보 전략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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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1-22 17:3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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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남관계는 더이상 동족 관계, 동질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되었습니다."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해 연말 전원회의에서 했던 이 발언은, 북한의 대남 노선 일대 전환을 의미하는 상징적 선언으로 받아들여 졌습니다.

이후 북한은 신속한 대남기구 정리와 서해 해상완충구역에서의 잇따른 도발 등으로 이번 '헤어질 결심'은 진심이라는 것을 대내외에 천명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남한은 과연 북한을 이전처럼 '동족'으로 대할지, 혹은 다른 나라처럼 '두 국가'로 대해야 할지 학자들이 모여 토의하는 자리가 마련됐습니다.

■ "'흡수통일 차단' 의도…남북관계 변화 불가피"

외교·안보·통일 문제를 주로 연구하는 세종연구소가 개최한 '2024년 제1차 세종정책포럼'. 첫 발표자로 나선 최은주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북한이 새 노선을 제시한 배경엔 무엇보다 '흡수통일'에 대한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최 연구위원은 "북한에 의한 흡수통일이 불가능해진 현실에서 (남한에 의한) 제도 통일, 흡수통일 가능성을 차단하고 사회주의 국가로서의 독자 발전 전략"이라며 "2016년 7차 당 대회 당시도, 북한은 남한의 대북 정책을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제도 통일'로 평가하며 이를 전제로 한 통일 논의는 거부한다고 밝힌 바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2021년 6월 촬영된 북한 개성 시내 ‘우리국가제일주의’ 선전 구호
또 최 연구위원은 "북한은 2017년부터 경제 번영·국방력 강화를 골자로 하는 '우리국가제일주의'를 제기해, 이를 김정은 시대 핵심 지도 사상으로 삼아온 바 있다"며 "2021년 노동당 8차 대회 때는, 북한 최상위 규범인 '노동당 규약'에서 남북관계와 통일에 대한 내용을 수정해서 대남 인식의 변화를 일부 내비치기도 했다"고 분석했습니다.

아울러 이번에 북한이 규정한 두 국가론에 따라, 기존 남북관계도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라 봤습니다.

최 연구위원은 "통일을 지향하는 잠정적 특수관계를 전제로 진행해온 기존의 남북 경제협력 사업도 재논의가 이뤄져야 할 가능성이 있다"며 "최근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가 강화되면서 (노선 전환에) 유리한 조건이 형성됐다고 판단한 것으로도 보인다"고 덧붙였습니다.

■ "북, 핵 사용 정당화·주도권 회복 차원…내부 결속 위한 선택"

그런가 하면 북한의 대남 노선 전환이 남한을 향한 핵 사용을 정당화하고, 한반도에서의 주도권 회복을 위한 것이란 분석도 나왔습니다.

2023년 12월 대륙간 탄도미사일 ‘화성-18형’ 발사 당시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처음) 북한은 핵 개발 목적으로 미국 핵 위협에 대한 자위권을 내세웠고, '동족'을 향한 핵 공격 가능성은 부인했다"며 "하지만 2022년 4월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과 김 위원장의 발언을 통해 남한을 향한 핵 공격을 언급하고 같은 해 9월 핵 무력 정책을 법령에 규정하면서는 사실상 남한이 대상임을 천명했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는 남한을 동족 관계가 아닌 적대관계로 확립"하기 위한 것이라며 "'핵 무력'의 실제성을 강화해 한반도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고, 한미일의 핵 억제력을 무력화해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기 위한 시도"라고 평가했습니다.

박 교수는 또 "경제 분야에서의 성과가 제한되고 '반사회주의' 척결운동 등 사상 단속을 시도하는 가운데 내부 결속을 강화하기 위해 (남한에 대한) '주적' 개념을 고취 시키는 것"이라며 "의도적으로 신냉전을 강조해, 남한을 적대 대상으로 상정하고 북·중·러로 진영을 구축하려는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다만 박 교수는 현재 핵협의그룹(NCG) 등 한미의 확장억제가 작동하는 상황이고, 북한의 대남·통일 노선은 김일성과 김정일 등 선대가 채택해 북한 정권의 존재 이유에 연계된 것인 만큼 현재의 대남 노선 전환은 한계가 분명하다고도 봤습니다.

■ "남북관계 전환, 개헌 없인 어려워" vs "'별도 국가' 현실 인정 필요"

이런 가운데 향후 남한이 어떤 노선을 취해야 할 지에 대한 시각은 다소 엇갈렸습니다.

송인호 한동대 법학부 교수는 "헌법 3조('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의 영토 조항의 규범력에 비춰볼 때, 남북관계의 국가 관계 전환은 헌법 개정이 없는 한 어렵다"며 "정책적으로 현재 개헌을 통해 영토 조항을 삭제하는 것이 안보와 국익, 통일 관점에서 필요한지 보다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송 교수는 "현행 통일방안인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에서, 남한과 북한이 한반도의 모든 인간의 존엄성이 존중되는 새로운 '한반도가치공동체'를 추구하는 통일방안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반면 박영호 통일연구원 초청연구위원은 "남과 북은 둘 다 유엔 회원국이자 두 개의 독립·주권 국가로 '사실상' 두 국가 간 관계"라며 "그럼에도 서로 다른 형태의 통일을 목표로 대북, 대남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북한의 변화가 전제되지 않은 자유민주주의 질서로의 평화 통일은 불가능하다"며 "북한의 장기적 변화를 견인하기 위한 통일 정책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통일 이전 '남북 간 평화 공존 체제' 형성이 우선돼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를 위해 "남북이 독자 발전의 길을 걸으며 별도 국가로 존재하는 현실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며 "대외적으로도 북한을 국제사회에 포섭하기 위한 외교·안보 전략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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