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치됐다” 112신고에도 출동 안해…유족, 3억 원 소송
입력 2024.01.23 (13:25)
수정 2024.01.23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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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 조수석에 납치돼 가고 있어요. 출동해 주실 수 있나요." |
2022년 11월 18일 새벽, 광주경찰청에 한 여성이 112신고를 했습니다. 신고자는 39살 장 모 씨로, 그때 남자친구와 함께 있었습니다. 그리고 1시간 30분 뒤, 장 씨는 달리던 차에 치여 숨졌습니다.
장씨가 경찰에 도움을 요청한 건 남자친구 때문이었습니다. 남자친구 차를 함께 타고 시내를 달리던 중 말다툼이 벌어졌고, 남자친구가 제멋대로 고속도로에 진입하자 휴대전화로 경찰에 도움을 요청한 겁니다. 하지만 남자친구는 112에 신고 중이던 여자친구 장 씨의 휴대전화 너머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안 오셔도 돼요. 저 여자 술 취해서…" |
경찰은 출동하지 않았습니다. 다급해진 장 씨는 남자친구가 고속도로 갓길에 차를 세우자 내려 도로를 달리던 택시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살려주세요. 맞았으니까 경찰에 신고해주세요." (장 씨) "아무 일도 아니니까 그냥 가세요. 신고는 내가 해 줄게. 씨○○아"(남자친구) |
당시 승객을 태우고 있던 택시기사가 대신 112에 신고했지만, 문제는 약 10분 뒤 발생했습니다. 장 씨가 다른 차량에도 도움을 요청하려던 순간, 한 승용차가 장 씨를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치면서 사망 사고로 이어진 겁니다. 택시기사 신고를 받은 경찰이 현장에 도착한 건 사망사고 발생 후였습니다.
이런 사실은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장 씨의 남자친구에 대한 광주지법 재판 과정에서 뒤늦게 드러났습니다. 112신고를 받은 경찰이 부실하게 대응하는 바람에 사망 사고로 이어졌다는 지적이 나올만한 상황이 그때 있었던 겁니다.
경찰이 심야 시간에 "납치됐다"는 여성의 112신고를 받고도 출동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KBS 취재 결과 경찰은 장 씨의 신고 내용을 '코드4'로 분류했습니다. '코드4'는 '코드0'부터 시작되는 경찰의 5단계 신고 분류 체계 중 가장 낮은 단계로 '긴급성이 없는 민원·상담 신고'에 해당합니다. 이 기준에 따라 출동 지령도 내리지 않았습니다. 출동하지 않아도 된다는 남자친구의 말이 장 씨의 진짜 의사인지 확인도 하지 않았습니다.
광주경찰청은 당시 112신고를 코드4로 분류한 이유에 대해 "허위·오인신고로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런 판단을 내린 구체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이번 사건과 관련된 민·형사상 재판이 진행 중이어서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경찰로부터 이번 사건을 넘겨받은 광주지검도 경찰의 112신고 처리 과정을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당시 구체적인 상황과 조치의 적정성에 따라 경찰에 직무유기 소지가 있을 수 있다는 시각도 있지만 이런 혐의에 대해선 수사하지 않았습니다.
장 씨의 유족은 경찰의 112신고 묵살이 사망사고로 이어졌다며 국가를 상대로 3억 원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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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납치됐다” 112신고에도 출동 안해…유족, 3억 원 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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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4-01-23 13:25:34
- 수정2024-01-23 15:13:44
"차량 조수석에 납치돼 가고 있어요. 출동해 주실 수 있나요." |
2022년 11월 18일 새벽, 광주경찰청에 한 여성이 112신고를 했습니다. 신고자는 39살 장 모 씨로, 그때 남자친구와 함께 있었습니다. 그리고 1시간 30분 뒤, 장 씨는 달리던 차에 치여 숨졌습니다.
장씨가 경찰에 도움을 요청한 건 남자친구 때문이었습니다. 남자친구 차를 함께 타고 시내를 달리던 중 말다툼이 벌어졌고, 남자친구가 제멋대로 고속도로에 진입하자 휴대전화로 경찰에 도움을 요청한 겁니다. 하지만 남자친구는 112에 신고 중이던 여자친구 장 씨의 휴대전화 너머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안 오셔도 돼요. 저 여자 술 취해서…" |
경찰은 출동하지 않았습니다. 다급해진 장 씨는 남자친구가 고속도로 갓길에 차를 세우자 내려 도로를 달리던 택시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살려주세요. 맞았으니까 경찰에 신고해주세요." (장 씨) "아무 일도 아니니까 그냥 가세요. 신고는 내가 해 줄게. 씨○○아"(남자친구) |
당시 승객을 태우고 있던 택시기사가 대신 112에 신고했지만, 문제는 약 10분 뒤 발생했습니다. 장 씨가 다른 차량에도 도움을 요청하려던 순간, 한 승용차가 장 씨를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치면서 사망 사고로 이어진 겁니다. 택시기사 신고를 받은 경찰이 현장에 도착한 건 사망사고 발생 후였습니다.
이런 사실은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장 씨의 남자친구에 대한 광주지법 재판 과정에서 뒤늦게 드러났습니다. 112신고를 받은 경찰이 부실하게 대응하는 바람에 사망 사고로 이어졌다는 지적이 나올만한 상황이 그때 있었던 겁니다.
경찰이 심야 시간에 "납치됐다"는 여성의 112신고를 받고도 출동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KBS 취재 결과 경찰은 장 씨의 신고 내용을 '코드4'로 분류했습니다. '코드4'는 '코드0'부터 시작되는 경찰의 5단계 신고 분류 체계 중 가장 낮은 단계로 '긴급성이 없는 민원·상담 신고'에 해당합니다. 이 기준에 따라 출동 지령도 내리지 않았습니다. 출동하지 않아도 된다는 남자친구의 말이 장 씨의 진짜 의사인지 확인도 하지 않았습니다.
광주경찰청은 당시 112신고를 코드4로 분류한 이유에 대해 "허위·오인신고로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런 판단을 내린 구체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이번 사건과 관련된 민·형사상 재판이 진행 중이어서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경찰로부터 이번 사건을 넘겨받은 광주지검도 경찰의 112신고 처리 과정을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당시 구체적인 상황과 조치의 적정성에 따라 경찰에 직무유기 소지가 있을 수 있다는 시각도 있지만 이런 혐의에 대해선 수사하지 않았습니다.
장 씨의 유족은 경찰의 112신고 묵살이 사망사고로 이어졌다며 국가를 상대로 3억 원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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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 기자 k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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