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 전면제한 중단’ 권고에도…‘거부’ 학교 잇따라

입력 2024.01.23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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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한 중학교, 학생들이 등교하면 담임 교사가 휴대전화를 일괄 수거합니다. 일과시간에는 휴대전화를 소지하거나 사용할 수 없도록 교칙으로 정했습니다. 어기는 횟수에 따라 학부모 통보나 내교 상담, 생활선도위원회 회부까지 이뤄집니다.
이에 재학 중인 학생이 '인권 침해'라며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에 진정을 넣었습니다. 인권위의 판단은 어땠을까요?

■ "전면 제한은 인권침해" vs "교육 수단"

인권위는 이처럼 교육시간 외에도 휴대전화를 전면으로 제한하는 건 헌법상 '과잉금지 원칙'에 반할 소지가 크다고 봤습니다. 즉, 점심시간 등 휴식 시간에는 사용을 허가하는 등 학생 피해를 최소화하면서도 교육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고려할 수 있는데, 일괄적으로 제한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본 겁니다.

이에 인권위는 지난 7월 해당 중학교에 문제의 규정을 개정하라고 권고했습니다. 학생들의 일반적 행동 자유와 통신의 자유가 과도하게 제한되지 않도록 학교생활규정을 개정하라는 취지였습니다.

그러나 중학교장은 현행 규정을 유지하겠다며 권고를 불수용했습니다. 학교 측은 필요하다면 담임 교사의 허락을 통해 휴대전화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고, 휴대전화 규정 위반으로 징계에 이른 학생은 없다고도 했습니다. 학교 측이 밝힌 이유는 아래와 같았습니다.

학교에서 휴대전화를 상시 소지할 경우 교우들과의 인권침해, 교권침해, 불법 촬영, 녹음 등의 문제를 발생시키거나 노출될 우려가 크다.
학생의 자율적 관리 역량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강제 규제도 교육을 위한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인권위는 교사의 허락을 받는 과정에서 학생의 사생활이 노출될 수 있는 우려가 있다고 봤습니다. 그러면서 토론을 통해 규율을 정하고 이를 실천하는 과정을 통해 학생들이 스스로 욕구와 행동을 통제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르도록 교육하는 편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습니다.

■ '휴대전화 사용' 관련 진정 잇따르지만…"권고 한계"

사실 인권위에 접수되는 휴대전화 사용 관련 진정은 상당히 많습니다.

2022년에 인권위에 접수된 교육기관 인권침해 진정 건수는 모두 935건. 이 가운데 휴대전화 사용 제한 관련 진정은 127건, 약 14%에 달합니다. 기타(312건), 폭언·욕설(185건)에 이어서 가장 많이 접수된 진정입니다.

휴대전화 사용 제한 관련 인권위의 결정문들휴대전화 사용 제한 관련 인권위의 결정문들

당연히 이와 관련한 인권위 권고도 지속적으로 이뤄졌습니다. 결정 내용은 위에서 살펴본 판단 기준과 권고와 비슷합니다. 수업시간 사용 금지는 수용할 수 있지만, 쉬는 시간에는 허용해줘야 한다는 게 골자입니다.

그러나 이런 인권위의 권고, 학교들의 수용과 학칙 개선으로까지는 쉽게 이어지진 않고 있습니다. 지난해 인권위가 학칙 개정을 요구한 학교 56곳 가운데 이를 따르지 않은 경우가 24곳, 약 43%에 이릅니다.

인권위의 권고에는 강제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 권고를 불수용하더라도 인권위는 인권위법 25조에 따라 필요할 경우 이 내용을 공표할 수 있을 뿐입니다.

2022년 인권위는 학교 내 학생 휴대전화 소지·사용문화 정착을 위한 토론회를 열었다2022년 인권위는 학교 내 학생 휴대전화 소지·사용문화 정착을 위한 토론회를 열었다

물론 학교 내 휴대전화 사용 제한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고, 인권위의 권고가 곧 정답은 아닐 겁니다. 그럼에도 관련 진정이 계속되고 이에 따른 인권위의 비슷한 권고가 수년 동안 반복되는 건 소모적이라는 지적이 제기됩니다. 인권위가 2022년 토론회를 열고 학교 현장에서의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마련한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중요한 건 늘어난 학생들의 휴대전화 사용을 일괄적으로 규제하기보다, 우리 사회는 어떻게 바라보고 관리할지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게 아닐까요. 인권위가 오늘(23일) 발표한 결정문에서 밝혔듯이 휴대전화는 이제 사회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됐습니다. 학생의 신분을 벗어났을 때, 휴대전화를 어떻게 활용하고 통제할지 익히는 것 역시 중요한 교육일테니 말입니다.

현대 사회에서의 휴대전화는 단지 통신기기의 기능에 그치지 않고 개인 간의 상호작용을 중대하고 활성화시켜 사회적 관계를 생성·유지·발전시키는 도구이자 각종 정보를 취득할 수 있는 생활필수품의 의미를 가진다.

진정인과 같은 청소년이 성장 과정에 있는 존재라는 점을 고려하여 볼 때, 교육기관이 휴대전화 소지·사용으로 인한 부정적인 효과를 이류로 휴대전화 소지를 학교 일과 중에 전면적으로 금지하기보다는 공동체 내에서 토론을 통하여 규율을 정하고 이를 실천하는 과정을 통해 학생들이 본인의 욕구와 행동을 스스로 통제·관리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를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 보다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인권위 아동권리위원회 결정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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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휴대전화 전면제한 중단’ 권고에도…‘거부’ 학교 잇따라
    • 입력 2024-01-23 16: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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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한 중학교, 학생들이 등교하면 담임 교사가 휴대전화를 일괄 수거합니다. 일과시간에는 휴대전화를 소지하거나 사용할 수 없도록 교칙으로 정했습니다. 어기는 횟수에 따라 학부모 통보나 내교 상담, 생활선도위원회 회부까지 이뤄집니다.
이에 재학 중인 학생이 '인권 침해'라며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에 진정을 넣었습니다. 인권위의 판단은 어땠을까요?

■ "전면 제한은 인권침해" vs "교육 수단"

인권위는 이처럼 교육시간 외에도 휴대전화를 전면으로 제한하는 건 헌법상 '과잉금지 원칙'에 반할 소지가 크다고 봤습니다. 즉, 점심시간 등 휴식 시간에는 사용을 허가하는 등 학생 피해를 최소화하면서도 교육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고려할 수 있는데, 일괄적으로 제한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본 겁니다.

이에 인권위는 지난 7월 해당 중학교에 문제의 규정을 개정하라고 권고했습니다. 학생들의 일반적 행동 자유와 통신의 자유가 과도하게 제한되지 않도록 학교생활규정을 개정하라는 취지였습니다.

그러나 중학교장은 현행 규정을 유지하겠다며 권고를 불수용했습니다. 학교 측은 필요하다면 담임 교사의 허락을 통해 휴대전화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고, 휴대전화 규정 위반으로 징계에 이른 학생은 없다고도 했습니다. 학교 측이 밝힌 이유는 아래와 같았습니다.

학교에서 휴대전화를 상시 소지할 경우 교우들과의 인권침해, 교권침해, 불법 촬영, 녹음 등의 문제를 발생시키거나 노출될 우려가 크다.
학생의 자율적 관리 역량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강제 규제도 교육을 위한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인권위는 교사의 허락을 받는 과정에서 학생의 사생활이 노출될 수 있는 우려가 있다고 봤습니다. 그러면서 토론을 통해 규율을 정하고 이를 실천하는 과정을 통해 학생들이 스스로 욕구와 행동을 통제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르도록 교육하는 편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습니다.

■ '휴대전화 사용' 관련 진정 잇따르지만…"권고 한계"

사실 인권위에 접수되는 휴대전화 사용 관련 진정은 상당히 많습니다.

2022년에 인권위에 접수된 교육기관 인권침해 진정 건수는 모두 935건. 이 가운데 휴대전화 사용 제한 관련 진정은 127건, 약 14%에 달합니다. 기타(312건), 폭언·욕설(185건)에 이어서 가장 많이 접수된 진정입니다.

휴대전화 사용 제한 관련 인권위의 결정문들
당연히 이와 관련한 인권위 권고도 지속적으로 이뤄졌습니다. 결정 내용은 위에서 살펴본 판단 기준과 권고와 비슷합니다. 수업시간 사용 금지는 수용할 수 있지만, 쉬는 시간에는 허용해줘야 한다는 게 골자입니다.

그러나 이런 인권위의 권고, 학교들의 수용과 학칙 개선으로까지는 쉽게 이어지진 않고 있습니다. 지난해 인권위가 학칙 개정을 요구한 학교 56곳 가운데 이를 따르지 않은 경우가 24곳, 약 43%에 이릅니다.

인권위의 권고에는 강제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 권고를 불수용하더라도 인권위는 인권위법 25조에 따라 필요할 경우 이 내용을 공표할 수 있을 뿐입니다.

2022년 인권위는 학교 내 학생 휴대전화 소지·사용문화 정착을 위한 토론회를 열었다
물론 학교 내 휴대전화 사용 제한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고, 인권위의 권고가 곧 정답은 아닐 겁니다. 그럼에도 관련 진정이 계속되고 이에 따른 인권위의 비슷한 권고가 수년 동안 반복되는 건 소모적이라는 지적이 제기됩니다. 인권위가 2022년 토론회를 열고 학교 현장에서의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마련한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중요한 건 늘어난 학생들의 휴대전화 사용을 일괄적으로 규제하기보다, 우리 사회는 어떻게 바라보고 관리할지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게 아닐까요. 인권위가 오늘(23일) 발표한 결정문에서 밝혔듯이 휴대전화는 이제 사회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됐습니다. 학생의 신분을 벗어났을 때, 휴대전화를 어떻게 활용하고 통제할지 익히는 것 역시 중요한 교육일테니 말입니다.

현대 사회에서의 휴대전화는 단지 통신기기의 기능에 그치지 않고 개인 간의 상호작용을 중대하고 활성화시켜 사회적 관계를 생성·유지·발전시키는 도구이자 각종 정보를 취득할 수 있는 생활필수품의 의미를 가진다.

진정인과 같은 청소년이 성장 과정에 있는 존재라는 점을 고려하여 볼 때, 교육기관이 휴대전화 소지·사용으로 인한 부정적인 효과를 이류로 휴대전화 소지를 학교 일과 중에 전면적으로 금지하기보다는 공동체 내에서 토론을 통하여 규율을 정하고 이를 실천하는 과정을 통해 학생들이 본인의 욕구와 행동을 스스로 통제·관리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를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 보다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인권위 아동권리위원회 결정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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