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때리고 입엔 박스테이프…병원은 “최선 다한 행위” [취재후]

입력 2024.01.23 (16:14) 수정 2024.01.23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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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인천의 한 요양병원에서 일하던 A 씨는 병실 CCTV 영상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환자 한 명이 간병인에 의해 폭행을 당하는 모습을 발견한 겁니다.

영상 속에서 간병인은 화장실에서 나가지 않고 버티던 환자의 멱살을 잡고 머리를 때렸습니다. 저항하던 환자가 주저앉자, 간병인은 환자의 다리를 꺾어 올리더니 병실 바닥에 질질 끌고 가기 시작했습니다.

완전히 제압당한 환자는 침대에 거칠게 던져진 뒤 팔다리가 묶였습니다.

■ 분리조치·보호자 통지 안 해…요양병원 "최선 다한 결과"


폭행을 당한 환자는 19살 B 군으로, 뇌 질환을 갖고 있어 의사소통에 다소 어려움을 겪는 환자였습니다.

병원 측은 사건 직후 담당 직원의 보고를 받고 폭행 사실을 인지했습니다. 하지만 환자와 간병인을 분리하지도, 환자의 보호자에게 폭행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리지도 않았습니다.

간병인을 불러다 "유사한 상황에서는 직원들의 도움을 요청하고, 환자를 이동시킬 때는 휠체어를 이용해야 한다"고 교육을 하는 데 그쳤습니다.

왜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병원 측은 "부상이 없었고, 특정 질환을 앓는 환자에게 이런 몸싸움은 흔한 일이라 보호자에게 통지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또 대부분의 간병인이 B 군의 간병을 꺼리는 와중에 해당 간병인은 '자원'을 했다며, 환자에 대한 애착이 남다른 사람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해당 환자가 있던 병실 직원들이 너무 힘들다고 호소해 병실을 옮긴 적이 있는데, 간병인은 그때도 환자를 따라 일터를 옮겼습니다. 이러한 사실만으로도 그 간병인에게는 환자를 향한 사랑이 넘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중략) 문만 나가면 바로 간호사실이 있고 복도에 다니는 여자 환자들도 있어, 그때 간병인이 보여준 행동은 행위만 보기엔 거칠게 보였어도 당시의 여러 정황을 종합하여 그로서는 최선을 다한 결과라고 판단하였습니다."
- 요양병원 측 입장

이 간병인이 회원으로 속해있는 한 민간 간병인협회도 사건 이후 병원으로부터 폭행 사실을 보고받았습니다. 하지만 협회 역시 간병인에게 학대 예방 교육 등을 실시하는 데 그쳤고, 환자와 간병인은 사건 이후 분리된 줄 알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원래 폭행 사건 등이 발생하면 병원에서 우리한테 간병인을 바꿔 달라고 요청을 해요. 제가 (사건 이후에) '교체를 하겠습니다' 했는데 (병원에서) '조금만 더 두고 봅시다' 그랬어요. 근데 간병인이 사건 이후에 자세가 좋아지니까 병원이 저한테 교체해달라고 요구를 안 했고. 환자가 병실을 바꿨다고 해서 저는 안심하고 있었는데 분리가 안 된 줄 몰랐네요."
- 간병인협회 측 입장



그런가 하면 이 병원의 또 다른 간병인이 80대 치매 환자의 입에 박스테이프를 붙인 정황도 드러났습니다. 거동을 전혀 하지 못해 침대에만 누워 생활하는 노인 환자였습니다.

병원 측은 "간병인에게 확인한 결과 테이프를 붙인 것은 맞다고 한다"면서도 "환자가 변을 입에 넣어 이를 방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던 조치"였다고 해명했습니다.

■"지위 모호한데다 인력도 부족"…'제도권 밖' 간병인


간병인에 의한 환자 폭행 사건은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최근에는 서울 광진구의 한 병원에서 60대 여성 간병인이 '짜증이 난다'는 이유로 돌보던 환자를 폭행했다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지난해에는 인천의 한 요양병원에서 환자의 몸에 배변 매트 조각을 집어넣은 간병인이 적발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간병인이 환자를 폭행하고 학대하는 행위가 끊이질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가장 큰 문제는 간병인이 아예 '제도권 밖 노동자'라는 점입니다.

대부분의 간병인은 민간 간병인협회에 매달 일정 금액의 회비를 냅니다. 협회가 돈을 받고 간병인과 병원을 연계해주고, 간병인은 해당 병원에 파견 근무를 가는 방식으로 일하게 됩니다. 병원 소속 근로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협회의 관리 감독을 받지도 않게 되는 것이죠. 사고가 발생한다 해도 이를 책임질 주체가 없는 셈입니다.

또 간병이 정확히 어떤 업무이고, 간병인은 누구의 관리·감독을 받는지 등이 어디에도 규정돼있지 않다보니, 간병인이 의료인이 해야 할 행위를 무단으로 대신하는 일도 종종 발생합니다.

간병인력이 부족하다는 점도 간병 서비스의 질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겠죠.

간병인의 절반 가까이는 외국인이고, 이 중 또 상당수는 중국 국적입니다. 코로나19 이후 많은 간병인이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인력이 더욱 부족해졌다는 게 요양병원과 간병인협회 측 설명입니다.

돌볼 사람이 부족하면 자연히 간병인 한 명이 돌보아야 할 환자의 수가 많아지고, 돌봄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일부 요양병원에서 간병인 한 명이 환자 10명 이상을 돌보는 경우가 생기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현행법상 요양병원은 환자 40명당 의사 1명, 환자 6명당 간호사 1명 이상을 두도록 하고 있는데, 간병인 자체가 '제도권 밖'에 있다 보니, 이런 규정마저 적용되지 않는 상황입니다.

■"간병을 제도권 안으로 들여와야"…'간병인 관리·감독 지침' 시행 예정

'제도권 밖 간병'의 부작용이 속출하자, 정부도 대책 마련에 나섰습니다.

보건복지부는 다가오는 7월부터 '요양병원 간병지원 시범사업'을 시행할 예정입니다. 간병인력이 부족한데다 간병비 부담은 갈수록 커지니, 정부가 나서서 이런 부담을 줄이겠단 겁니다.

이때 요양병원 간병인에 대한 관리 지침인 가칭 '요양병원 간병인 표준 관리 감독 지침'도 만들 계획입니다. 지금은 간병인의 업무가 명확하지 않고 뒤죽박죽인데, 간병인 업무의 범위와 한계를 설정해 불법 의료 행위 등을 막자는 취지입니다.

이밖에 '간병인은 간호사의 지도 아래 업무를 수행한다'는 식으로 간병인의 지도감독 관계도 명확히 하고, 의료기관으로부터 정기적인 교육과 훈련을 의무화하는 등 간병 업무의 질과 관련된 내용도 포함될 계획입니다.

다만 어디까지나 법적 구속력이 없는 '지침'인만큼, 간병의 정의와 간병인의 역할 등을 아예 법에 명시해야 한단 의견도 있습니다.

노동훈 대한요양병원협회 홍보위원장은 "우리나라에는 간병이라는 '제도' 자체가 없기에 환자뿐 아니라 간병인도 업무를 하며 발생하는 위험한 상황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없다"며 "간병 제도를 만들어 간병인에 대한 교육, 책임과 의무 등에 대한 규정을 만들고 병원이 간병인을 관리·감독 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드는 게 시급하다"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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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자 때리고 입엔 박스테이프…병원은 “최선 다한 행위” [취재후]
    • 입력 2024-01-23 16:14:10
    • 수정2024-01-23 16:14:24
    취재후·사건후

지난해 8월, 인천의 한 요양병원에서 일하던 A 씨는 병실 CCTV 영상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환자 한 명이 간병인에 의해 폭행을 당하는 모습을 발견한 겁니다.

영상 속에서 간병인은 화장실에서 나가지 않고 버티던 환자의 멱살을 잡고 머리를 때렸습니다. 저항하던 환자가 주저앉자, 간병인은 환자의 다리를 꺾어 올리더니 병실 바닥에 질질 끌고 가기 시작했습니다.

완전히 제압당한 환자는 침대에 거칠게 던져진 뒤 팔다리가 묶였습니다.

■ 분리조치·보호자 통지 안 해…요양병원 "최선 다한 결과"


폭행을 당한 환자는 19살 B 군으로, 뇌 질환을 갖고 있어 의사소통에 다소 어려움을 겪는 환자였습니다.

병원 측은 사건 직후 담당 직원의 보고를 받고 폭행 사실을 인지했습니다. 하지만 환자와 간병인을 분리하지도, 환자의 보호자에게 폭행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리지도 않았습니다.

간병인을 불러다 "유사한 상황에서는 직원들의 도움을 요청하고, 환자를 이동시킬 때는 휠체어를 이용해야 한다"고 교육을 하는 데 그쳤습니다.

왜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병원 측은 "부상이 없었고, 특정 질환을 앓는 환자에게 이런 몸싸움은 흔한 일이라 보호자에게 통지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또 대부분의 간병인이 B 군의 간병을 꺼리는 와중에 해당 간병인은 '자원'을 했다며, 환자에 대한 애착이 남다른 사람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해당 환자가 있던 병실 직원들이 너무 힘들다고 호소해 병실을 옮긴 적이 있는데, 간병인은 그때도 환자를 따라 일터를 옮겼습니다. 이러한 사실만으로도 그 간병인에게는 환자를 향한 사랑이 넘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중략) 문만 나가면 바로 간호사실이 있고 복도에 다니는 여자 환자들도 있어, 그때 간병인이 보여준 행동은 행위만 보기엔 거칠게 보였어도 당시의 여러 정황을 종합하여 그로서는 최선을 다한 결과라고 판단하였습니다."
- 요양병원 측 입장

이 간병인이 회원으로 속해있는 한 민간 간병인협회도 사건 이후 병원으로부터 폭행 사실을 보고받았습니다. 하지만 협회 역시 간병인에게 학대 예방 교육 등을 실시하는 데 그쳤고, 환자와 간병인은 사건 이후 분리된 줄 알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원래 폭행 사건 등이 발생하면 병원에서 우리한테 간병인을 바꿔 달라고 요청을 해요. 제가 (사건 이후에) '교체를 하겠습니다' 했는데 (병원에서) '조금만 더 두고 봅시다' 그랬어요. 근데 간병인이 사건 이후에 자세가 좋아지니까 병원이 저한테 교체해달라고 요구를 안 했고. 환자가 병실을 바꿨다고 해서 저는 안심하고 있었는데 분리가 안 된 줄 몰랐네요."
- 간병인협회 측 입장



그런가 하면 이 병원의 또 다른 간병인이 80대 치매 환자의 입에 박스테이프를 붙인 정황도 드러났습니다. 거동을 전혀 하지 못해 침대에만 누워 생활하는 노인 환자였습니다.

병원 측은 "간병인에게 확인한 결과 테이프를 붙인 것은 맞다고 한다"면서도 "환자가 변을 입에 넣어 이를 방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던 조치"였다고 해명했습니다.

■"지위 모호한데다 인력도 부족"…'제도권 밖' 간병인


간병인에 의한 환자 폭행 사건은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최근에는 서울 광진구의 한 병원에서 60대 여성 간병인이 '짜증이 난다'는 이유로 돌보던 환자를 폭행했다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지난해에는 인천의 한 요양병원에서 환자의 몸에 배변 매트 조각을 집어넣은 간병인이 적발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간병인이 환자를 폭행하고 학대하는 행위가 끊이질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가장 큰 문제는 간병인이 아예 '제도권 밖 노동자'라는 점입니다.

대부분의 간병인은 민간 간병인협회에 매달 일정 금액의 회비를 냅니다. 협회가 돈을 받고 간병인과 병원을 연계해주고, 간병인은 해당 병원에 파견 근무를 가는 방식으로 일하게 됩니다. 병원 소속 근로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협회의 관리 감독을 받지도 않게 되는 것이죠. 사고가 발생한다 해도 이를 책임질 주체가 없는 셈입니다.

또 간병이 정확히 어떤 업무이고, 간병인은 누구의 관리·감독을 받는지 등이 어디에도 규정돼있지 않다보니, 간병인이 의료인이 해야 할 행위를 무단으로 대신하는 일도 종종 발생합니다.

간병인력이 부족하다는 점도 간병 서비스의 질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겠죠.

간병인의 절반 가까이는 외국인이고, 이 중 또 상당수는 중국 국적입니다. 코로나19 이후 많은 간병인이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인력이 더욱 부족해졌다는 게 요양병원과 간병인협회 측 설명입니다.

돌볼 사람이 부족하면 자연히 간병인 한 명이 돌보아야 할 환자의 수가 많아지고, 돌봄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일부 요양병원에서 간병인 한 명이 환자 10명 이상을 돌보는 경우가 생기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현행법상 요양병원은 환자 40명당 의사 1명, 환자 6명당 간호사 1명 이상을 두도록 하고 있는데, 간병인 자체가 '제도권 밖'에 있다 보니, 이런 규정마저 적용되지 않는 상황입니다.

■"간병을 제도권 안으로 들여와야"…'간병인 관리·감독 지침' 시행 예정

'제도권 밖 간병'의 부작용이 속출하자, 정부도 대책 마련에 나섰습니다.

보건복지부는 다가오는 7월부터 '요양병원 간병지원 시범사업'을 시행할 예정입니다. 간병인력이 부족한데다 간병비 부담은 갈수록 커지니, 정부가 나서서 이런 부담을 줄이겠단 겁니다.

이때 요양병원 간병인에 대한 관리 지침인 가칭 '요양병원 간병인 표준 관리 감독 지침'도 만들 계획입니다. 지금은 간병인의 업무가 명확하지 않고 뒤죽박죽인데, 간병인 업무의 범위와 한계를 설정해 불법 의료 행위 등을 막자는 취지입니다.

이밖에 '간병인은 간호사의 지도 아래 업무를 수행한다'는 식으로 간병인의 지도감독 관계도 명확히 하고, 의료기관으로부터 정기적인 교육과 훈련을 의무화하는 등 간병 업무의 질과 관련된 내용도 포함될 계획입니다.

다만 어디까지나 법적 구속력이 없는 '지침'인만큼, 간병의 정의와 간병인의 역할 등을 아예 법에 명시해야 한단 의견도 있습니다.

노동훈 대한요양병원협회 홍보위원장은 "우리나라에는 간병이라는 '제도' 자체가 없기에 환자뿐 아니라 간병인도 업무를 하며 발생하는 위험한 상황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없다"며 "간병 제도를 만들어 간병인에 대한 교육, 책임과 의무 등에 대한 규정을 만들고 병원이 간병인을 관리·감독 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드는 게 시급하다"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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