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살린 건 팬들의 사랑” 유연수의 다음은

입력 2024.01.24 (16:36)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2022년 10월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사거리에서 음주운전 차량에 의한 교통 사고로 프로축구 제주유나이티드 소속 유연수 선수 등 5명이 다쳤다.2022년 10월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사거리에서 음주운전 차량에 의한 교통 사고로 프로축구 제주유나이티드 소속 유연수 선수 등 5명이 다쳤다.

눈을 떠보니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얼마 뒤 사이렌 소리가 울리고, 구급차에 옮겨진 뒤에야 가슴을 찌르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정신을 잃고 다시 눈을 떠보니 하얀 불빛이 보였다. 중환자실이었다.

이때까지 만해도 축구를 못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축구 없는 삶은 상상해 본 적도 없었을뿐더러, 평생을 뒷바라지한 부모님을 생각해서라도 그만둘 수 없었다. 하지만 의사의 진단은 냉혹했다.

'평생 누워있거나 휠체어를 타야 한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어머니는 끝내 쓰러져 엉엉 울었다. 함께 울면 더 슬퍼할까 봐 차오르는 눈물도 꾹 머금어야 했다. 그렇게 2년이 흘렀다. 프로축구 제주유나이티드에 입단한 지 3년, 축구를 시작한 지 16년 만에 선수 생활을 마감하게 된 25살 전 제주유나이티드 골키퍼 유연수 선수의 얘기다.

전 프로축구 제주유나이티드 소속 골키퍼 유연수 선수전 프로축구 제주유나이티드 소속 골키퍼 유연수 선수

유연수 선수는 KBS와의 통화에서 "최근에도 하루에 4시간씩 재활을 하고 있다"며 "여전히 육체적으로, 심리적으로 많이 힘들지만, 응원해주신 분들 덕에 열심히 치료에 전념하고 있다"고 근황을 전했다.


■ 나를 살린 건 팬들의 사랑

절망에 빠졌던 유연수를 버티게 한 건 가족과 제주유나이티드 팬들, 동료들이었다. 지난해 11월 열린 그의 은퇴식. 팬들은 경기 시작 전부터 그의 유니폼을 들고 눈물을 흘리며 유연수의 마지막을 배웅했다.

"연수 선수는 빛나니까 앞으로 빛나는 모든 날을 응원할게요."

이날 한 팬은 유연수 선수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렇게 팬들은 그의 빛나는 미래를 염원했다.

지난해 11월 제주유나이티드 경기 31분 31초에 팬들이 다함께 ‘유연수’를 외치는 모습 (제주유나이티드 제공)지난해 11월 제주유나이티드 경기 31분 31초에 팬들이 다함께 ‘유연수’를 외치는 모습 (제주유나이티드 제공)

유 씨의 은퇴식 날 열린 제주유나이티드 경기에선 31분 31초에 팬들이 다 함께 '유연수'를 크게 외쳤다. 그의 등 번호 31번에 맞춰 외친 함성이었다.

경기가 끝나고 마이크를 잡은 유 씨도 팬들에게 연신 감사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유 씨의 부모도 휠체어를 탄 아들의 뒤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다. 그가 지금까지 미소를 잃지 않고 재활에 전념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많은 이의 사랑'이었다.

지난해 11월 제주유나이티드 경기장에서 열린 유연수 선수의 은퇴식. 유 씨가 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제주유나이티드 제공)지난해 11월 제주유나이티드 경기장에서 열린 유연수 선수의 은퇴식. 유 씨가 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제주유나이티드 제공)

■ 구자철과 '축구부 출신' 변호사의 도움

유연수는 제주유나이티드 소속 구자철 선수의 도움으로 변호사를 소개받아 형사사건 변론을 진행하고 있다.

검찰은 지난해 열린 첫 공판에서 음주운전 사고를 낸 조 모(30대) 씨에게 '일반상해'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평생 하반신을 쓸 수 없게 된 유 씨의 상해 정도를 32주의 일반상해로 단순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유 씨의 사건을 맡고 있는 오군성 변호사(법무법인 오션)가 "부상 정도를 봤을 때 전치 32주가 아닌, 영구적인 하반신 마비 등을 동반한 '중상해'에 해당한다"고 주장했고, 법원은 검찰이 제기한 공소 사실에 제동을 걸었다.

재판부는 오 변호사의 주장을 받아들여 직권으로 양형 조사를 명령했다. 양형 조사는 형사사건을 심리하는 재판부가 검찰이 제출한 증거 외에도 양형의 판단 요소가 되는 자료를 직접 조사하는 제도다. 오 변호사는 양형 조사관과 검찰 측에 진단서 등을 제출했고, 이후 공소장에 '중상해'가 명시됐다.

구자철 선수와 오군성 변호사구자철 선수와 오군성 변호사

오 변호사는 어린 시절 제주 지역에서 가장 큰 축구 대회인 '백호기' 대회에서 우승하고, 도대표 경험도 있는 엘리트 선수 출신이다. 이 때문에 구자철 선수로부터 유 씨의 사연을 듣고 흔쾌히 도와주겠다며 사건을 맡았다.

오 변호사는 "유연수 선수가 얼마나 힘든 과정을 거쳐 프로 선수가 됐는지, 가족들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사건을 돕고 있다"며 "지금처럼 희망을 잃지 않고 은퇴 이후의 삶을 꾸려나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구자철 선수는 KBS와의 통화에서 "평소 아끼던 후배의 안타까운 사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었다"며 "연수가 어려움을 잘 극복하고, 비슷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많은 분이 음주운전에 대한 경각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연수가 어려움을 극복한 희망, 하나의 모범적인 사례가 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유연수를 응원하는 제주유나이티드 팬들(제주유나이티드 제공)유연수를 응원하는 제주유나이티드 팬들(제주유나이티드 제공)

젊은 나이에 인생의 끝자락을 경험한 유연수는 이전보다 더 성숙하고 단단해졌다. 유 씨는 "현재 재활에 전념하고 있고, 탁구와 사격 등 다른 스포츠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 종목은 정하지 않았지만, 그의 다음 목표는 대한민국 패럴림픽 대표 선수로 세계 무대에 출전하는 것이다.

사진 속 글귀처럼 여전히 팬들은 유연수의 '다음'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해 11월 열린 유연수 선수의 은퇴식. 팬들이 유연수 선수의 현수막을 들고 있는 모습(제주유나이티드 제공)지난해 11월 열린 유연수 선수의 은퇴식. 팬들이 유연수 선수의 현수막을 들고 있는 모습(제주유나이티드 제공)

한편 음주운전 사고를 낸 조 씨는 이 사건과 별개로 항거 불능 상태의 여성을 추행한 혐의(준강제추행)까지 적용돼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유 씨의 사건이 알려지자 5,000여 명이, 온라인으로도 1만여 명이 동참해 조 씨의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 검찰은 지난달 결심공판에서 조 씨에 징역 5년 형을 내려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조 씨에 대한 1심 선고는 내일(25일) 오후 2시 제주지방법원에서 열린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나를 살린 건 팬들의 사랑” 유연수의 다음은
    • 입력 2024-01-24 16:36:02
    심층K
2022년 10월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사거리에서 음주운전 차량에 의한 교통 사고로 프로축구 제주유나이티드 소속 유연수 선수 등 5명이 다쳤다.
눈을 떠보니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얼마 뒤 사이렌 소리가 울리고, 구급차에 옮겨진 뒤에야 가슴을 찌르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정신을 잃고 다시 눈을 떠보니 하얀 불빛이 보였다. 중환자실이었다.

이때까지 만해도 축구를 못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축구 없는 삶은 상상해 본 적도 없었을뿐더러, 평생을 뒷바라지한 부모님을 생각해서라도 그만둘 수 없었다. 하지만 의사의 진단은 냉혹했다.

'평생 누워있거나 휠체어를 타야 한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어머니는 끝내 쓰러져 엉엉 울었다. 함께 울면 더 슬퍼할까 봐 차오르는 눈물도 꾹 머금어야 했다. 그렇게 2년이 흘렀다. 프로축구 제주유나이티드에 입단한 지 3년, 축구를 시작한 지 16년 만에 선수 생활을 마감하게 된 25살 전 제주유나이티드 골키퍼 유연수 선수의 얘기다.

전 프로축구 제주유나이티드 소속 골키퍼 유연수 선수
유연수 선수는 KBS와의 통화에서 "최근에도 하루에 4시간씩 재활을 하고 있다"며 "여전히 육체적으로, 심리적으로 많이 힘들지만, 응원해주신 분들 덕에 열심히 치료에 전념하고 있다"고 근황을 전했다.


■ 나를 살린 건 팬들의 사랑

절망에 빠졌던 유연수를 버티게 한 건 가족과 제주유나이티드 팬들, 동료들이었다. 지난해 11월 열린 그의 은퇴식. 팬들은 경기 시작 전부터 그의 유니폼을 들고 눈물을 흘리며 유연수의 마지막을 배웅했다.

"연수 선수는 빛나니까 앞으로 빛나는 모든 날을 응원할게요."

이날 한 팬은 유연수 선수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렇게 팬들은 그의 빛나는 미래를 염원했다.

지난해 11월 제주유나이티드 경기 31분 31초에 팬들이 다함께 ‘유연수’를 외치는 모습 (제주유나이티드 제공)
유 씨의 은퇴식 날 열린 제주유나이티드 경기에선 31분 31초에 팬들이 다 함께 '유연수'를 크게 외쳤다. 그의 등 번호 31번에 맞춰 외친 함성이었다.

경기가 끝나고 마이크를 잡은 유 씨도 팬들에게 연신 감사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유 씨의 부모도 휠체어를 탄 아들의 뒤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다. 그가 지금까지 미소를 잃지 않고 재활에 전념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많은 이의 사랑'이었다.

지난해 11월 제주유나이티드 경기장에서 열린 유연수 선수의 은퇴식. 유 씨가 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제주유나이티드 제공)
■ 구자철과 '축구부 출신' 변호사의 도움

유연수는 제주유나이티드 소속 구자철 선수의 도움으로 변호사를 소개받아 형사사건 변론을 진행하고 있다.

검찰은 지난해 열린 첫 공판에서 음주운전 사고를 낸 조 모(30대) 씨에게 '일반상해'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평생 하반신을 쓸 수 없게 된 유 씨의 상해 정도를 32주의 일반상해로 단순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유 씨의 사건을 맡고 있는 오군성 변호사(법무법인 오션)가 "부상 정도를 봤을 때 전치 32주가 아닌, 영구적인 하반신 마비 등을 동반한 '중상해'에 해당한다"고 주장했고, 법원은 검찰이 제기한 공소 사실에 제동을 걸었다.

재판부는 오 변호사의 주장을 받아들여 직권으로 양형 조사를 명령했다. 양형 조사는 형사사건을 심리하는 재판부가 검찰이 제출한 증거 외에도 양형의 판단 요소가 되는 자료를 직접 조사하는 제도다. 오 변호사는 양형 조사관과 검찰 측에 진단서 등을 제출했고, 이후 공소장에 '중상해'가 명시됐다.

구자철 선수와 오군성 변호사
오 변호사는 어린 시절 제주 지역에서 가장 큰 축구 대회인 '백호기' 대회에서 우승하고, 도대표 경험도 있는 엘리트 선수 출신이다. 이 때문에 구자철 선수로부터 유 씨의 사연을 듣고 흔쾌히 도와주겠다며 사건을 맡았다.

오 변호사는 "유연수 선수가 얼마나 힘든 과정을 거쳐 프로 선수가 됐는지, 가족들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사건을 돕고 있다"며 "지금처럼 희망을 잃지 않고 은퇴 이후의 삶을 꾸려나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구자철 선수는 KBS와의 통화에서 "평소 아끼던 후배의 안타까운 사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었다"며 "연수가 어려움을 잘 극복하고, 비슷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많은 분이 음주운전에 대한 경각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연수가 어려움을 극복한 희망, 하나의 모범적인 사례가 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유연수를 응원하는 제주유나이티드 팬들(제주유나이티드 제공)
젊은 나이에 인생의 끝자락을 경험한 유연수는 이전보다 더 성숙하고 단단해졌다. 유 씨는 "현재 재활에 전념하고 있고, 탁구와 사격 등 다른 스포츠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 종목은 정하지 않았지만, 그의 다음 목표는 대한민국 패럴림픽 대표 선수로 세계 무대에 출전하는 것이다.

사진 속 글귀처럼 여전히 팬들은 유연수의 '다음'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해 11월 열린 유연수 선수의 은퇴식. 팬들이 유연수 선수의 현수막을 들고 있는 모습(제주유나이티드 제공)
한편 음주운전 사고를 낸 조 씨는 이 사건과 별개로 항거 불능 상태의 여성을 추행한 혐의(준강제추행)까지 적용돼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유 씨의 사건이 알려지자 5,000여 명이, 온라인으로도 1만여 명이 동참해 조 씨의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 검찰은 지난달 결심공판에서 조 씨에 징역 5년 형을 내려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조 씨에 대한 1심 선고는 내일(25일) 오후 2시 제주지방법원에서 열린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