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직 잃을 뻔한 태국 ‘총선 돌풍’ 주인공의 반전 [특파원 리포트]

입력 2024.01.26 (07:01) 수정 2024.01.26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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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돌아왔다’ 태국 헌법재판소의 ‘의원직 유지’ 결정 다음 날인 25일 의회로 출근한 피타 찜짜른랏 전 전진당 대표. 지난해 7월 의회를 떠날 때 착용했던 파란색 넥타이를 다시 맸다.  (사진 출처 : 방콕포스트)‘그가 돌아왔다’ 태국 헌법재판소의 ‘의원직 유지’ 결정 다음 날인 25일 의회로 출근한 피타 찜짜른랏 전 전진당 대표. 지난해 7월 의회를 떠날 때 착용했던 파란색 넥타이를 다시 맸다. (사진 출처 : 방콕포스트)

■ '그가 돌아왔다'…태국 '개혁의 아이콘' 피타의 귀환

피타 찜짜른랏 전 전진당(MFP) 대표. 40대 초반 훤칠한 외모에 탁월한 대중 소통 능력.
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정치인 중 한 명입니다.
이달 초 태국 매체 네이션이 조사한 '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에서, 1위 블랙핑크 리사에 이어 2위를 차지했을 정도입니다.
지난해 5월 총선에서 야당이었던 '전진당(MFP)'을 제1당의 위치에 올려놓은 장본인입니다.
당시 피타의 전진당이 내세운 공약은 파격 그 자체였습니다.

'왕실모독죄' 폐지, 동성결혼 합법화, 징병제 폐지…

시민들, 특히 젊은층이 환호했고, 피타의 전진당은 수도 방콕 33개 지역구 중 32개 지역구를 휩쓰는 등 의석수 151석을 얻으며 제1당이 됐습니다.
피타가 태국의 새 총리가 되고, 내각을 꾸려 실제 공약이 실현될 수도 있다는 기대감이 높아졌지만, 결국 좌절됐습니다.

피타는 이 과정에 헌법재판소의 '의원 직무 정지' 결정에 따라 의회를 떠났는데 6개월만인 25일, 의회로 돌아온 겁니다.

지난해 5월 태국 총선 당시 유세 중인 피타 찜짜른랏 전진당 대표.(사진 출처 : 연합뉴스)지난해 5월 태국 총선 당시 유세 중인 피타 찜짜른랏 전진당 대표.(사진 출처 : 연합뉴스)

■ 총리가 되지 못한 '제1당' 대표…'높은 벽' 실감

피타의 '개혁 공약'은 시민들에게는 환영받았지만 당시 군부 여당과 보수 정당들에게는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피타와 이들 사이에 우리에게도 익숙한 탁신 전 총리의 딸 패통탄 친나왓이 이끄는 '프아타이당'이 있었습니다. 당시 총선에서 141석을 얻어 제2당에 그친 프아타이당은 전진당과 연정을 꾸리기로 했습니다. 총 의석수 500석인 하원에선 이 연정이 과반을 했지만, 총리가 되려면 상원의 선택이 필요했습니다.

태국의 총리 선출 요건은 다소 복잡합니다. 상원 250명, 하원 500명 모두 750명의 의원들이 투표를 해 과반(376표 이상)을 차지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상원 250명을 군부가 지명하도록 돼 있습니다.

피타에게는 이미 넘기 힘든 산이었습니다.
그래도 혹시나, 총선의 민의를 확인한 다른 정당 의원들이 피타의 편에 서지 않을까 기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7월 열린 1차 총리 선출 투표에서 피타는 과반 376석에 52표 부족한 324표를 받았습니다.
2차 투표는 열리지도 못했습니다. 피타가 단독 후보로 나섰는데 군부가 '지명한' 상원이 "1차 투표를 통과하지 못한 후보를 다시 지명할 수 없다"고 버텼기 때문입니다. 2차 투표 대신 의회는 토론을 벌였고, 결국 투표를 통해 피타의 후보 재지명을 무산시켰습니다.

그런데 이날,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의회에 전달됩니다.
선관위가 피타를 고발한 사건을 받아들이고, 동시에 최종 판결이 나올 때까지 의원 직무를 '정지'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피타는 의회를 떠났고, 타에게 등을 돌린 '프아타이당'의 세타 타위신이 새 총리로 선출됐습니다.

지난해 6월, KBS 방콕 김원장 특파원과 인터뷰 중인 피타 당시 전진당 대표.(당시 KBS 인터뷰 화면)지난해 6월, KBS 방콕 김원장 특파원과 인터뷰 중인 피타 당시 전진당 대표.(당시 KBS 인터뷰 화면)

■ 좌절된 '개혁 민심'…그러나 반전은 있었다.

피타에게 적용된 혐의는 선거법 위반이었습니다. 태국은 언론사 사주나 주주의 공직 출마를 금지하고 있는데, 피타는 태국에서 방송사를 운영했던 iTV의 주식 4만 2천 주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총선 직전 친군부 진영의 문제 제기로 선관위가 조사에 나섰고, 선관위의 고발을 헌재가 받아들인 겁니다.
피타는 iTV가 2007년에 방송을 중단해 미디어 기업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해당 법 적용이 안 된다면서, 이는 자신을 제거하려는 정치적 음모라고 반박했습니다.
어차피 태국 정가를 장악하고 있던 군부, 문제를 제기했던 측이나 선관위 그리고 헌법재판소까지, 뭔가 '착착' 진행되던 과정이었기에 피타에 대한 유죄 결정과 의원직 박탈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지난 24일, 헌법재판소는 "피타가 총선에 출마할 당시 iTV는 미디어 기업으로 운영되고 있지 않았다"며 피타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동시에 의원직 유지 결정도 내렸습니다.
피타는 헌재 판결 후 법정을 나오며 "행복하다, 국민을 위해 계속 일하겠다"고 말했고,
다음날 의회 첫 출근길에는 "의회 분위기가 그리웠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지난 24일, 헌재가 피타의 의원직 유지 결정을 내린 직후 법원 앞에서 기다리던 지지자들이 환호하고 있다.(사진 출처 : AP)지난 24일, 헌재가 피타의 의원직 유지 결정을 내린 직후 법원 앞에서 기다리던 지지자들이 환호하고 있다.(사진 출처 : AP)

■ 아직 끝나지 않았다…태국 정가, 다시 혼돈 속으로?

피타는 의회 복귀 첫날, 정부의 재정 여력과 선심성 정책 비판 등 논란에 휩싸인 '디지털 화폐 지급 계획' 즉, 16세 이상 국민에게 1인당 1만밧(우리 돈 약 37만 원)을 지급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에 반대 입장을 내놨습니다. 그러면서도 "국민의 이익을 위한 일은 막지 않겠지만 옳지 않은 문제에는 반대하겠다"며 본격적인 의정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피타에게는 넘어야 할 큰 산이 하나 더 있습니다.
헌법재판소가 오는 31일 전진당의 총선 공약이었던 '왕실모독죄 개정'에 대한 판결을 앞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보수 법조인이 "국왕을 국가 원수로 하는 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려는 시도"라며 제소한 사건입니다.
헌재가 이 주장을 받아들이면 정당 해산과 주요 간부들의 정치활동 금지 처분을 내릴 수도 있습니다. 전례는 있습니다. 2020년 2월, 태국 헌재는 당시 정당법 위반 혐의로 '퓨처포워드당(FFP)'의 해산을 결정하고 10년간 지도부의 정치 활동을 금지했습니다. 앞서 2019년 11월 이 당의 대표였던 타나톤 중룽르앙낏은 미디어 기업 지분을 보유한 채 선거에 출마했다는 사실이 인정돼 의원직을 잃었습니다. 피타와 비슷한 혐의였지만 판단은 달랐던 겁니다.
2019년 총선 때 타나톤의 후계자로 정치에 입문한 인물이 피타였고, 이후 해산된 '퓨처포워드당(FFP)'의 후신이 바로 '전진당(MFP)'입니다.

헌재의 이번 결정에 따라 태국 정가는 또 한 번 소용돌이에 휩싸일 거라는 전망이 많습니다. 정당 해산 결정이 내려질 경우 지난 총선에서 전진당을 지지한 민심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는 겁니다. 실제 2020년 '퓨처포워드당' 해산 결정 이후 몇 달 동안 태국에선 민주화 시위가 이어졌습니다.
'전진당'이 유지된다면, 피타를 중심으로 한 진보 개혁 세력은 한층 더 힘을 받게 될 것이고, 그만큼 태국 정가에 장악력이 여전한 군부와 보수 세력의 견제도 강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세타 타위신 신임 총리가 선출되던 날, '공교롭게도' 부패 등 혐의로 해외를 떠돌다 귀국해 수감된 탁신 전 총리의 석방 임박도 또 하나의 변수입니다.
혼란이 또 이어진다면… 태국은 이미 19차례나 쿠데타가 일어난 곳, 정국 혼란 때마다 단골로 등장한 게 쿠데타 가능성입니다.
1월 31일, 태국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태국 국민들의 눈과 귀가 쏠려 있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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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원직 잃을 뻔한 태국 ‘총선 돌풍’ 주인공의 반전 [특파원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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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24-01-26 07: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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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돌아왔다’ 태국 헌법재판소의 ‘의원직 유지’ 결정 다음 날인 25일 의회로 출근한 피타 찜짜른랏 전 전진당 대표. 지난해 7월 의회를 떠날 때 착용했던 파란색 넥타이를 다시 맸다.  (사진 출처 : 방콕포스트)
■ '그가 돌아왔다'…태국 '개혁의 아이콘' 피타의 귀환

피타 찜짜른랏 전 전진당(MFP) 대표. 40대 초반 훤칠한 외모에 탁월한 대중 소통 능력.
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정치인 중 한 명입니다.
이달 초 태국 매체 네이션이 조사한 '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에서, 1위 블랙핑크 리사에 이어 2위를 차지했을 정도입니다.
지난해 5월 총선에서 야당이었던 '전진당(MFP)'을 제1당의 위치에 올려놓은 장본인입니다.
당시 피타의 전진당이 내세운 공약은 파격 그 자체였습니다.

'왕실모독죄' 폐지, 동성결혼 합법화, 징병제 폐지…

시민들, 특히 젊은층이 환호했고, 피타의 전진당은 수도 방콕 33개 지역구 중 32개 지역구를 휩쓰는 등 의석수 151석을 얻으며 제1당이 됐습니다.
피타가 태국의 새 총리가 되고, 내각을 꾸려 실제 공약이 실현될 수도 있다는 기대감이 높아졌지만, 결국 좌절됐습니다.

피타는 이 과정에 헌법재판소의 '의원 직무 정지' 결정에 따라 의회를 떠났는데 6개월만인 25일, 의회로 돌아온 겁니다.

지난해 5월 태국 총선 당시 유세 중인 피타 찜짜른랏 전진당 대표.(사진 출처 : 연합뉴스)
■ 총리가 되지 못한 '제1당' 대표…'높은 벽' 실감

피타의 '개혁 공약'은 시민들에게는 환영받았지만 당시 군부 여당과 보수 정당들에게는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피타와 이들 사이에 우리에게도 익숙한 탁신 전 총리의 딸 패통탄 친나왓이 이끄는 '프아타이당'이 있었습니다. 당시 총선에서 141석을 얻어 제2당에 그친 프아타이당은 전진당과 연정을 꾸리기로 했습니다. 총 의석수 500석인 하원에선 이 연정이 과반을 했지만, 총리가 되려면 상원의 선택이 필요했습니다.

태국의 총리 선출 요건은 다소 복잡합니다. 상원 250명, 하원 500명 모두 750명의 의원들이 투표를 해 과반(376표 이상)을 차지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상원 250명을 군부가 지명하도록 돼 있습니다.

피타에게는 이미 넘기 힘든 산이었습니다.
그래도 혹시나, 총선의 민의를 확인한 다른 정당 의원들이 피타의 편에 서지 않을까 기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7월 열린 1차 총리 선출 투표에서 피타는 과반 376석에 52표 부족한 324표를 받았습니다.
2차 투표는 열리지도 못했습니다. 피타가 단독 후보로 나섰는데 군부가 '지명한' 상원이 "1차 투표를 통과하지 못한 후보를 다시 지명할 수 없다"고 버텼기 때문입니다. 2차 투표 대신 의회는 토론을 벌였고, 결국 투표를 통해 피타의 후보 재지명을 무산시켰습니다.

그런데 이날,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의회에 전달됩니다.
선관위가 피타를 고발한 사건을 받아들이고, 동시에 최종 판결이 나올 때까지 의원 직무를 '정지'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피타는 의회를 떠났고, 타에게 등을 돌린 '프아타이당'의 세타 타위신이 새 총리로 선출됐습니다.

지난해 6월, KBS 방콕 김원장 특파원과 인터뷰 중인 피타 당시 전진당 대표.(당시 KBS 인터뷰 화면)
■ 좌절된 '개혁 민심'…그러나 반전은 있었다.

피타에게 적용된 혐의는 선거법 위반이었습니다. 태국은 언론사 사주나 주주의 공직 출마를 금지하고 있는데, 피타는 태국에서 방송사를 운영했던 iTV의 주식 4만 2천 주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총선 직전 친군부 진영의 문제 제기로 선관위가 조사에 나섰고, 선관위의 고발을 헌재가 받아들인 겁니다.
피타는 iTV가 2007년에 방송을 중단해 미디어 기업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해당 법 적용이 안 된다면서, 이는 자신을 제거하려는 정치적 음모라고 반박했습니다.
어차피 태국 정가를 장악하고 있던 군부, 문제를 제기했던 측이나 선관위 그리고 헌법재판소까지, 뭔가 '착착' 진행되던 과정이었기에 피타에 대한 유죄 결정과 의원직 박탈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지난 24일, 헌법재판소는 "피타가 총선에 출마할 당시 iTV는 미디어 기업으로 운영되고 있지 않았다"며 피타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동시에 의원직 유지 결정도 내렸습니다.
피타는 헌재 판결 후 법정을 나오며 "행복하다, 국민을 위해 계속 일하겠다"고 말했고,
다음날 의회 첫 출근길에는 "의회 분위기가 그리웠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지난 24일, 헌재가 피타의 의원직 유지 결정을 내린 직후 법원 앞에서 기다리던 지지자들이 환호하고 있다.(사진 출처 : AP)
■ 아직 끝나지 않았다…태국 정가, 다시 혼돈 속으로?

피타는 의회 복귀 첫날, 정부의 재정 여력과 선심성 정책 비판 등 논란에 휩싸인 '디지털 화폐 지급 계획' 즉, 16세 이상 국민에게 1인당 1만밧(우리 돈 약 37만 원)을 지급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에 반대 입장을 내놨습니다. 그러면서도 "국민의 이익을 위한 일은 막지 않겠지만 옳지 않은 문제에는 반대하겠다"며 본격적인 의정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피타에게는 넘어야 할 큰 산이 하나 더 있습니다.
헌법재판소가 오는 31일 전진당의 총선 공약이었던 '왕실모독죄 개정'에 대한 판결을 앞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보수 법조인이 "국왕을 국가 원수로 하는 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려는 시도"라며 제소한 사건입니다.
헌재가 이 주장을 받아들이면 정당 해산과 주요 간부들의 정치활동 금지 처분을 내릴 수도 있습니다. 전례는 있습니다. 2020년 2월, 태국 헌재는 당시 정당법 위반 혐의로 '퓨처포워드당(FFP)'의 해산을 결정하고 10년간 지도부의 정치 활동을 금지했습니다. 앞서 2019년 11월 이 당의 대표였던 타나톤 중룽르앙낏은 미디어 기업 지분을 보유한 채 선거에 출마했다는 사실이 인정돼 의원직을 잃었습니다. 피타와 비슷한 혐의였지만 판단은 달랐던 겁니다.
2019년 총선 때 타나톤의 후계자로 정치에 입문한 인물이 피타였고, 이후 해산된 '퓨처포워드당(FFP)'의 후신이 바로 '전진당(MFP)'입니다.

헌재의 이번 결정에 따라 태국 정가는 또 한 번 소용돌이에 휩싸일 거라는 전망이 많습니다. 정당 해산 결정이 내려질 경우 지난 총선에서 전진당을 지지한 민심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는 겁니다. 실제 2020년 '퓨처포워드당' 해산 결정 이후 몇 달 동안 태국에선 민주화 시위가 이어졌습니다.
'전진당'이 유지된다면, 피타를 중심으로 한 진보 개혁 세력은 한층 더 힘을 받게 될 것이고, 그만큼 태국 정가에 장악력이 여전한 군부와 보수 세력의 견제도 강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세타 타위신 신임 총리가 선출되던 날, '공교롭게도' 부패 등 혐의로 해외를 떠돌다 귀국해 수감된 탁신 전 총리의 석방 임박도 또 하나의 변수입니다.
혼란이 또 이어진다면… 태국은 이미 19차례나 쿠데타가 일어난 곳, 정국 혼란 때마다 단골로 등장한 게 쿠데타 가능성입니다.
1월 31일, 태국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태국 국민들의 눈과 귀가 쏠려 있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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