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파고든 ‘학생 총판’…청소년 도박 근절, 언제쯤?

입력 2024.01.27 (09:00) 수정 2024.01.29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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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반반 확률로 게임처럼, 홀짝 게임처럼 그냥 가위 바위 보하듯이…."

처음엔 호기심이었습니다. 선배가 하고 있던 게임이 신기했습니다. 15초 안에 승패가 가려졌고, 베팅한 돈의 2배 정도를 받았습니다.

"너도 해볼래?"라는 말에 시작한 게임. 어느새 중독됐습니다. 당시 중학생이던 A 군은 아르바이트로 번 돈과 용돈을 털어 넣었습니다. 돈이 모자란 날엔 친구에게 약간의 이자를 주고 돈을 빌리기도 했습니다. 돈을 번 날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날이 더 많았습니다. 5분도 안 되는 시간에 100만 원이 넘는 돈이 오가기 시작하자 A 군의 일상은 점점 망가졌습니다.

선배가 하고 있던 그 게임은 사실 파워볼과 바카라라는 '도박'이었고, 그 선배는 이른바 '총판'이라고 불리는 불법 도박 조직원이었습니다.


■교실 파고든 '학생 총판'…"재력 과시해 도박 끌어들여"

'총판'은 도박 사이트에 회원을 소개하고 수수료를 챙깁니다. 이른바 모집책입니다. 수수료는 도박 참가자들이 입은 손실의 10~20% 수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총판은 주로 스팸 문자나 인터넷에 배너 광고를 올리고 회원을 끌어들이는데, '학생 총판'은 영업이 더 쉽습니다. 주변 친구들이나 후배들에게 도박을 게임처럼 소개하면서 영업을 하면 되기 때문인데, 이른바 '먹튀'가 없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현재 총판으로 활동 중인 고등학생인 B 군은 "어차피 '아는 사이'이기 때문에 믿고 시작할 수 있다"면서 "돈을 잃더라도 내가 받는 수수료에서 일부분을 돌려줄 수 있다. '너도 이익이다'라고 이야기하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시민단체 '도박없는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조호연 교장은 "학교에서 총판으로 활동하던 학생은 성인이 되면 동남아 등으로 건너가 본격적인 조직 생활을 하는 경우도 많다"면서 "후배들을 만날 때 고급 외제 차를 타고 나와서 재력을 과시해 조직원으로 끌어들인다"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온라인 불법 도박은 이미 교실 깊숙이 파고 들었습니다.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이 지난 2022년 초중고교생 18,444명을 조사한 결과 5% 정도가 도박 문제 위험 집단으로 분류됐습니다. 또 다른 조사에서는 도박을 처음 접하는 경로로 친구 등 지인 소개 55.3%로 가장 많았습니다.

자료 : 한국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 2020~2023년 ‘청소년’ ‘도박’ 관련 기사 워드클라우드 분석자료 : 한국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 2020~2023년 ‘청소년’ ‘도박’ 관련 기사 워드클라우드 분석

■정부 "불법 사이트·광고 차단"…전문가 "계좌부터 동결해야"

KBS 탐사보도부는 한국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를 활용해 '청소년'과 '도박' 두 단어를 중심으로 지난 4년 동안의 빅데이터를 분석해봤습니다.

관련 키워드로는 문제·불법이라는 단어가 '청소년' '도박'과 밀접하게 나타나는데, 2년 전부터는 '중독' '온라인 사이트'의 비중이 커졌습니다. 기사 언급량은 2020년부터 2022년까지는 평균 4백 건 정도였는데, 지난해엔 902건으로 두 배 넘게 늘었습니다. 정부가 대응팀을 꾸려 청소년 도박 근절 대책에 마련에 나선 영향입니다.

정부 대책은 크게 '수사'와 '차단'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온라인 불법 도박 사이트 운영자를 찾아내 엄벌하고, 도박 사이트와 이들의 광고를 빠르게 차단하겠다는 겁니다.

문제는 실효성입니다. 불법 도박 사이트 접속 차단까지 빨라도 3주 정도 걸리는데, 이를 우회하는 방법은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조호연 도박없는학교 교장은 "접속이 막히면 곧바로 그 홈페이지에서 IP 숫자만 하나 바뀌는 방식으로 똑같은 사이트가 바로 올라온다"면서 "온라인 도박을 근절하기 위해선 '돈줄'을 잘라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현재 전화금융사기, '보이스피싱'에만 적용하고 있는 '계좌 지급 정지' 조치를 온라인 불법 도박에도 활용하자는 건데, 실제로 효과도 있었습니다. 지난해 조 교장의 신고를 받은 경찰이 대포 통장에 대한 지급정지를 금융기관에 요청해보니, 불법 OTT 사이트에 올라와 있던 도박 광고가 없어지고 미성년자 가입도 막았습니다.

조 교장은 "통장이 잠기는 게 그만큼 큰 타격이기 때문에 온라인 불법 도박 사이트 운영자들이 미성년자 가입을 차단하고 있다"면서 "통장이 한 번 사고가 나면 대포 통장을 납품하는 업체에서 그 사이트랑은 거래를 끊으려고 하기 때문에 통장을 막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런 지적에 따라 정부는 현재 보이스피싱에만 가능한 계좌 지급정지를 불법 도박에까지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검찰은 청소년이 주로 이용하는 도박 사이트를 운영하거나 가담한 경우, 청소년을 도박 사이트 회원으로 모집한 총판 등에 대해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하고, 법정 최고형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할 계획입니다.

[연관 기사] ‘총판’이 모으고 ‘불법OTT’가 뿌리고…‘청소년 도박’ 근절 언제? [탐사K]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872360

촬영기자 : 이재섭 김한빈
데이터 분석 : 이지연
자료 조사 : 유현지, 이미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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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실 파고든 ‘학생 총판’…청소년 도박 근절, 언제쯤?
    • 입력 2024-01-27 09:00:47
    • 수정2024-01-29 10: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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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반반 확률로 게임처럼, 홀짝 게임처럼 그냥 가위 바위 보하듯이…."

처음엔 호기심이었습니다. 선배가 하고 있던 게임이 신기했습니다. 15초 안에 승패가 가려졌고, 베팅한 돈의 2배 정도를 받았습니다.

"너도 해볼래?"라는 말에 시작한 게임. 어느새 중독됐습니다. 당시 중학생이던 A 군은 아르바이트로 번 돈과 용돈을 털어 넣었습니다. 돈이 모자란 날엔 친구에게 약간의 이자를 주고 돈을 빌리기도 했습니다. 돈을 번 날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날이 더 많았습니다. 5분도 안 되는 시간에 100만 원이 넘는 돈이 오가기 시작하자 A 군의 일상은 점점 망가졌습니다.

선배가 하고 있던 그 게임은 사실 파워볼과 바카라라는 '도박'이었고, 그 선배는 이른바 '총판'이라고 불리는 불법 도박 조직원이었습니다.


■교실 파고든 '학생 총판'…"재력 과시해 도박 끌어들여"

'총판'은 도박 사이트에 회원을 소개하고 수수료를 챙깁니다. 이른바 모집책입니다. 수수료는 도박 참가자들이 입은 손실의 10~20% 수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총판은 주로 스팸 문자나 인터넷에 배너 광고를 올리고 회원을 끌어들이는데, '학생 총판'은 영업이 더 쉽습니다. 주변 친구들이나 후배들에게 도박을 게임처럼 소개하면서 영업을 하면 되기 때문인데, 이른바 '먹튀'가 없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현재 총판으로 활동 중인 고등학생인 B 군은 "어차피 '아는 사이'이기 때문에 믿고 시작할 수 있다"면서 "돈을 잃더라도 내가 받는 수수료에서 일부분을 돌려줄 수 있다. '너도 이익이다'라고 이야기하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시민단체 '도박없는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조호연 교장은 "학교에서 총판으로 활동하던 학생은 성인이 되면 동남아 등으로 건너가 본격적인 조직 생활을 하는 경우도 많다"면서 "후배들을 만날 때 고급 외제 차를 타고 나와서 재력을 과시해 조직원으로 끌어들인다"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온라인 불법 도박은 이미 교실 깊숙이 파고 들었습니다.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이 지난 2022년 초중고교생 18,444명을 조사한 결과 5% 정도가 도박 문제 위험 집단으로 분류됐습니다. 또 다른 조사에서는 도박을 처음 접하는 경로로 친구 등 지인 소개 55.3%로 가장 많았습니다.

자료 : 한국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 2020~2023년 ‘청소년’ ‘도박’ 관련 기사 워드클라우드 분석
■정부 "불법 사이트·광고 차단"…전문가 "계좌부터 동결해야"

KBS 탐사보도부는 한국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를 활용해 '청소년'과 '도박' 두 단어를 중심으로 지난 4년 동안의 빅데이터를 분석해봤습니다.

관련 키워드로는 문제·불법이라는 단어가 '청소년' '도박'과 밀접하게 나타나는데, 2년 전부터는 '중독' '온라인 사이트'의 비중이 커졌습니다. 기사 언급량은 2020년부터 2022년까지는 평균 4백 건 정도였는데, 지난해엔 902건으로 두 배 넘게 늘었습니다. 정부가 대응팀을 꾸려 청소년 도박 근절 대책에 마련에 나선 영향입니다.

정부 대책은 크게 '수사'와 '차단'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온라인 불법 도박 사이트 운영자를 찾아내 엄벌하고, 도박 사이트와 이들의 광고를 빠르게 차단하겠다는 겁니다.

문제는 실효성입니다. 불법 도박 사이트 접속 차단까지 빨라도 3주 정도 걸리는데, 이를 우회하는 방법은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조호연 도박없는학교 교장은 "접속이 막히면 곧바로 그 홈페이지에서 IP 숫자만 하나 바뀌는 방식으로 똑같은 사이트가 바로 올라온다"면서 "온라인 도박을 근절하기 위해선 '돈줄'을 잘라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현재 전화금융사기, '보이스피싱'에만 적용하고 있는 '계좌 지급 정지' 조치를 온라인 불법 도박에도 활용하자는 건데, 실제로 효과도 있었습니다. 지난해 조 교장의 신고를 받은 경찰이 대포 통장에 대한 지급정지를 금융기관에 요청해보니, 불법 OTT 사이트에 올라와 있던 도박 광고가 없어지고 미성년자 가입도 막았습니다.

조 교장은 "통장이 잠기는 게 그만큼 큰 타격이기 때문에 온라인 불법 도박 사이트 운영자들이 미성년자 가입을 차단하고 있다"면서 "통장이 한 번 사고가 나면 대포 통장을 납품하는 업체에서 그 사이트랑은 거래를 끊으려고 하기 때문에 통장을 막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런 지적에 따라 정부는 현재 보이스피싱에만 가능한 계좌 지급정지를 불법 도박에까지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검찰은 청소년이 주로 이용하는 도박 사이트를 운영하거나 가담한 경우, 청소년을 도박 사이트 회원으로 모집한 총판 등에 대해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하고, 법정 최고형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할 계획입니다.

[연관 기사] ‘총판’이 모으고 ‘불법OTT’가 뿌리고…‘청소년 도박’ 근절 언제? [탐사K]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872360

촬영기자 : 이재섭 김한빈
데이터 분석 : 이지연
자료 조사 : 유현지, 이미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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